
“항상 말없이 안아주시며 응원해주던 엄마”
성시백 ● 초등학교 2학년 때 몸이 약한 아들을 위해 어머니는 일주일에 두 번씩 스케이트 수업을 듣게 했어요. 중학생이 될 무렵, 공부에 열중하고자 그만두려 하자 코치 선생님은 가능성이 있는데 그만둘 수 없다며 만류했어요. 그때는 둘 다 놓칠 수 없다는 생각에 공부와 병행하기로 마음을 먹었죠. 방과 후 스케이트 수업을 듣고, 또 다른 학과 보충수업을 듣고…. 어린 제가 두 가지 수업을 하는 모습이 안쓰러웠는지, 어머니께서는 매일 아침 저를 꼭 안아주었어요. 그럴 때마다 최선을 다해야겠다는 생각이 샘솟았죠. 따뜻하고 포근한 엄마의 품은 그 어떤 것보다 큰 힘이 됐어요.
고등학교에 진학할 무렵에는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갈림길에 서 있었는데, 저에게 3일 동안 시간을 주셨어요. 물론, 그 전에 부모님들과 충분히 대화를 했고요. 어머니는 어쩌면 제가 공부 쪽을 택하길 바랐는지도 몰라요. 하지만 제가 스케이트를 선택했을 때 어머니는 다치지 말고, 잘하라고 격려해줬죠. 그 후 첫 국가대표 선발대회에서 운이 좋지 않아 떨어졌어요. 그동안 쉽지 않은 훈련을 견딘 걸 생각하니 억울하고 아쉬워 집에 와서 엉엉 울었죠. 한참을 울고 있었는데 어머니가 조용히 제 방에 들어와서 꼭 안아주시며 이런 말을 해줬어요. “시백아, 작은 나무가 큰 나무가 될 때 비도 맞고, 폭풍도 맞으며 자란단다. 그러한 과정이 있어야 뿌리가 더욱 단단해져 더 크고 건강한 나무가 될 수 있는 것이지. 엄마는 시백이가 그 과정에 있는 것이고 조만간 큰 나무가 될 것이라 믿는다.” 어머니의 이 말과 따뜻한 품은 지금까지도 저에게 큰 힘이 되고 있어요.
★ 교육원칙
1 아이의 감정 컨트롤을 도와줘라 아이가 힘들 때나 기쁠 때마다 따뜻하게 안아주면 스스로 감정 컨트롤을 할 수 있는 힘이 길러진다. 어른이 되었을 때 큰 어려움이 닥쳐도 감정을 컨트롤하며 이겨나갈 수 있게 된다.
2 아이가 하고 싶은 것을 지원하라 엄마가 희망하는 것과 아이가 하고 싶은 것이 다를 때, 아이가 원하는 것을 할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

“큰 꿈을 꾸게 해준 엄마”
김연아 ● 어릴 때는 되고 싶은 것이 많잖아요. 저도 멋진 스케이트 선수도, 화려하고 노래 잘하는 가수도 되고 싶어 했어요. 그럴 때 어머니는 어린아이의 성장 과정이겠거니, 하고 넘기지 않고 한 가지 뚜렷한 꿈을 꿀 수 있도록 도와줬어요. 본격적으로 스케이트를 시작하면서 당시 최고의 선수였던 미셸 콴의 비디오를 사서 매일 보여줬고, 연습하다가 지칠 때면 그 꿈을 상기시키며 조금 더 앞으로 나갈 수 있도록 북돋아줬어요. 그때 미셸 콴은 안타깝게도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받지 못했지만, 그녀의 연기는 오래도록 마음속에 깊은 감동으로 남았고, 저 역시 ‘감동을 주는 선수’가 되어야겠다고 다짐했죠.
어머니는 제 가슴속에 깊이, 그리고 오래 남을 꿈을 안겨줬고, 그것을 실천할 수 있도록 도와줬어요. 하루도 빠짐없이 매니저처럼, 코치처럼 제 옆에 든든하게 있어주셨죠. 어머니 스스로 피겨 스케이팅 전문가 못지않은 이론을 익히려 했고, 제가 어떻게 하면 넘어지지 않는지 연구하기도 했어요. 제가 어렸을 때부터 하나의 꿈, 목표를 향해 달려갈 수 있도록 열정을 아끼지 않았던 어머니. 예전에 꿈에 대한 강연을 하게 됐을 때 어머니가 이런 말을 했다고 들었어요. “꿈은 아이의 몫이다. 엄마는 안내자다. 꿈으로 가는 길목의 안내자, 아이가 외롭지 않게 불을 밝혀주는 사람, 엄마는 그것으로 충분하다.” 그 강연의 내용처럼 어머니는 저의 꿈으로 가는 길목의 안내자였죠. 이번 동계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딸 수 있었던 것도 어머니의 희생과 딸에 대한 믿음과 열정 덕분이라고 생각해요.
★ 교육원칙
1 구체적으로 꿈을 세워줘라 어린아이일수록 많은 꿈을 꾸지만 그럴 때 아이에게 어떤 재능이 있는지 파악하고, 하나의 꿈을 제안해주는 것이 필요하다. 이때, 엄마가 먼저 정보를 캐치해 더욱 구체적으로 꿈을 세워주면 아이가 일찍 꿈을 향해 나아갈 수 있다.
2 아이가 집중할 수 있는 말로 표현하라 아이들은 똑같은 의미라도 표현을 달리해주면 두뇌가 각성해서 새로운 정보로 받아들이는 효과가 높아진다. 예를 들어 “발 모아!”라고 말을 계속하는데도 아이가 계속 잊어버린다면 “발이 떨어지지 않게!”라고 말을 바꾸는 것이 방법이다. 같은 의미의 말을 하더라도 아이가 새롭게 익힐 수 있도록 다르게 표현하면 다시 마음을 다잡을 수 있다.
who is
성시백 연세대학교 사회체육학과를 졸업하고 현재 용인시청 소속이다. 2010 밴쿠버 동계올림픽 쇼트트랙 500m에서 금메달보다 더 갚진 은메달을, 5000m 계주에서도 은메달을 획득했다.
김연아 피겨 스케이트의 불모지였던 우리나라에 올림픽 금메달을 안겨준 스무살 소녀. 2009 ISU 세계 피겨 스케이팅 챔피언십 여자 싱글 1위, 밴쿠버 동계올림픽 피겨 스케이팅 여자 싱글 세계신기록으로 금메달 획득 등 피겨 여자 싱글 사상 첫 그랜드슬램을 달성했다. 라이벌인 일본의 아사다마오와는 달리 어려운 국내 피겨 스케이트 환경에도 불구하고 세계 정상을 차지해 온 국민에게 큰 감동을 선사했다.

“피난길에 피아노를 싣고 갈 정도로 자식들의 재능에 열정적이었던 엄마”
정트리오 ● 일제강점기 말 어머니는 7남매를 키우기 위해 고등학교 교사를 포기하고 시장에서 장국밥 장사를 해야 했을 정도로 경제적으로 넉넉하지 않았어요. 방이 딸린 가게를 얻어 우리는 언제나 시끄럽고, 다툼도 많은 시장에서 자랐죠. 그런 환경에서 자랄 우리의 정서와 교육이 걱정된 어머니는 우리가 정서적으로 건강하게 자랄 수 있도록 피아노를 가르치셨어요. 문제는 돈이었죠. 피아노는 지금도 고가의 물건이니 당시에는 두말할 필요도 없었어요. 처음에는 피아노를 빌렸고, 결국 악착같이 돈을 벌어서 구입했어요. 피아노를 가르쳐보니 소질과 재능이 보이는 자식은 실력 있는 선생님을 찾아가 레슨까지 부탁했죠. 이런 어머니의 열정은 전쟁 중에 더 빛을 발했어요.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잘 알고 있던 어머니는 피난길에도 피아노를 실었죠. 전쟁이 끝나고 돌아와서도 피아노 레슨은 쉬지 않고 받았어요.
다들 알다시피 우리 자식 중에 피아노로 성공한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어요. 어머니는 피아노를 사주고 가르쳤다고 해서 피아노를 강요하지 않았거든요. 우리에게서 음악적 재능을 발견한 어머니는 또 다른 재능을 찾아서 그 재능을 살릴 수 있게 도와줬어요. 우리는 모두 자신의 삶에 만족하며 행복하게 살고 있어요. 극성스러운 조기교육을 한 게 아니라 우리가 타고난 재능을 찾고, 그것을 최대한 살릴 수 있도록 도와주는 맞춤교육을 했다고 볼 수 있죠. 어려운 상황이었지만 자식들의 재능을 찾아주는 데 모든 걸 건 어머니가 없었다면 지금의 우리도 없었을 거예요.
★ 교육원칙
1 아이의 선택을 존중하라 아이의 미래를 강요해선 안 된다. 재능을 찾은 아이는 스스로 미래를 설계하고 추진하는 능력을 갖는다는 것을 믿어라.
2 아이의 행동을 유심히 관찰하라 사물을 유심히 관찰하고 금붕어나 화초 키우는 일에 흥미를 느끼던 막내는 음악을 선택한 다른 형제들과 달리 의대에 가길 원했고 현재 행복하게 의사 생활을 하고 있다. 사소하지만 아이의 행동을 유심히 관찰하면 재능을 찾아낼 수 있다.
“1등을 강조하지 않았던 엄마”
조수미 ● 어머니와 떨어져 유학 시절을 보내고, 한참 콩쿠르에 참가하던 시절, 늘 전날 어머니에게 전화를 걸었어요. 내일이 결승이라는 것을 전하는 의미도 있지만, 그보다 어머니가 무슨 꿈을 꾸었는지 궁금해서였죠.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지금까지 어머니의 꿈은 한 번도 어긋난 적이 없었어요. 크고 작은 대회 전날 어머니께서 “수미야, 걱정 마, 잘해낼 거야. 꿈이 기가 막혔거든”이라고 말씀해주시면 저절로 힘이 났어요. 어머니는 그런 말만 할 뿐, 1등을 하라는 등의 부담은 전혀 주지 않았어요. 하루는 큰 콩쿠르 전날이라 어김없이 국제전화를 했는데 그날도 어머니는 다른 말 없이 꿈이 좋았다고 얘기해줬어요. 바로 직전 어머니가 큰 수술을 받았는데도 그 사실을 저에게 알리지 않으셨던 거죠. 오히려 밝은 목소리로 저에게 힘을 북돋아줬어요. 나중에 이 사실을 알고 제가 모든 일에 더 최선을 다하는 계기가 됐어요.
저에게 항상 묵묵히 힘을 주시는 어머니는 꿈 많은 문학소녀였대요. 문학을 좋아하고 특히 음악을 좋아해 제가 어렸을 때부터 무척 많은 노래를 들려줬어요. 그 영향으로 저는 음악이 좋았고, 노래가 좋았어요. 어머니가 만들어준 환경이 저의 재능을 빨리 찾아 시작할 수 있게 만들어준 것 같아요. 지금까지도 어머니의 칭찬은 절 더욱 힘나게 해주는 원동력이에요. 어머니를생각하면 늘 더 멋진 공연을 할 수 있답니다.
★ 교육원칙
1 아낌없이 칭찬하라 어떤 일이든 아이가 잘할 때에는 칭찬을 아끼지 않아야 한다. 어떤 일이든 적극적으로, 그리고 최선을 다하는 사람이 되는지름길이기 때문이다.
2 1등을 강요하는 대신 희망을 심어줘라 1등을 해야 한다고 말하면 아이들은 강박관념에 시달린다. 어차피 잘해야 한다는 부담감은 본인이 더 가지고 있으므로 엄마까지 마음의 짐을 줄 필요는 없는 것. 대신 꿈이 좋았다거나 긴장하지 말라는 말로 자신감을 주는 격려가 필요하다.
“밤새 어린 아들의 이야기를 들어준 엄마”최불암 ● 어릴 때부터 영화를 좋아해 집 근처 영화관에서 자주 영화를 봤어요. 영화를 보고 난 뒤에는 항상 어머니에게 그날 본 영화 이야기를 했죠. 어린 아들의 얘기가 재미없을 법도 한데 어머니는 늘 내 이야기를 아주 재미있게 들어줬어요. 지금 생각해보면 당시 어머니는 학교 이야기, 친구들과 있었던 이야기, 영화 이야기 등 아들이 하는 이야기를 아주 좋아했던 것 같아요. 아마도 영화에 관심이 있는 저의 재능을 알아채서인지 아들의 표현력을 길러주고 싶었던 모양이에요. 들어주는 것뿐 아니었죠. 어머니는 문인, 미술가, 교수, 학생 같은 문화예술 계통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문화 마당 같은 주점을 운영했는데 그 사람들과 이야기 나누는 것을 참 좋아했어요. 하루도 빠짐없이 일이 끝나 집으로 돌아와서는 각 분야의 훌륭한 사람들과 나눴던 문화예술에 관한 이야기를 내게 해줬죠. 어머니를 통해 문화예술 부분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전 조금씩 연출자의 꿈을 키웠습니다. 그 후 연출자가 되고, 연기의 재미에 빠져 탤런트가 됐을 때도 어머니의 가르침은 계속됐어요. 배역에 맞게 옷 입는 것부터 연기는 물론 극중 인물의 기본 성격까지 자세히 분석하고 조언했어요. 어머니가 해주는 꼼꼼한 모니터로 <수사반장>의 박 반장이, <전원일기>의 김 회장이 탄생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죠. 이제 이 세상에 안 계시지만 어머니의 모습과 말씀은 아직도 제겐 가장 큰 힘이 되고 있습니다.
★ 교육원칙
1 신뢰하며 독립심을 키워줘라 아이에게 꼭 무엇이 되라고 강요하기보다 아이의 생각과 판단을 신뢰하고 스스로 할 수 있게 끔 도와주는 것이 더 중요하다. 부모가 자신을 신뢰한다는 것을 아는 아이는 독립심을 키울 수 있다. 더불어 아이의 재능을 응원해야 한다. 자신의 재능을 믿어주는 부모로 인해 자신감이 생긴 아이는 모든 일에 최선을 다한다.
2 대화야말로 표현력을 길러주는 수단이다 서로 어떤 일이 있었는지, 무엇을 보고 어떻게 느꼈는지 집요할 정도로 자세히 묻고 답하고 설명해라. 그 때 아이의 느낌은 어땠는지, 다른 사람의 상황이 나라면 어떨 것 같은지 물어라. 영화 속 여자가 입은 옷은 무슨 색이었는지, 집은 어떤 분위기 였는지 즐겁게 묻고 공감하는 동안 아이의 표현력이 자란다.
who is
정트리오 한국인 남매로 이뤄진 피아노 트리오. 첼로의 정명화, 바이올린의 정경화, 피아니스트 겸 지휘자인 정명훈으로 구성됐다. 현재는 트리오 활동보다 각자 솔로 활동에 더욱 초점을 맞춰 세계 여러 나라에서 활동 중이다.
조수미 서울대 성악과 재학 중 이탈리아로 유학, 로마의 산타 체칠리아 음악원에서 수학했다. 한국인으로서 최초로 세계 5대 오페라 극장의 프리마돈나로 데뷔, 전설적인 지휘자 카라얀으로부터 ‘신이 내린 목소리’라는 찬사를 받은 바 있다. 1986년 바르셀로나 비냐스 국제 콩쿠르, 베로나 국제 콩쿠르 등에서 1등에 입상하며 세계 무대에 자리매김했다.
최불암 1967년 KBS 드라마 <수양대군>으로 방송에 데뷔했으며, 국회의원을 지내기도 했다. 국민훈장 모란장, 백상예술상을 수상했으며, 대표 출연작은 <수사반장> <전원일기> 등이 있다.
part2 믿음으로 자신감을 준 엄마
“단짝 친구보다 더 친구 같은 엄마”
이상화 ● 유치원과 초등학교를 등하교할 때 늘 어머니가 함께했어요. 손잡고 학교에서 있었던 일, 운동하며 있었던 일을 이야기하다 보면 어머니가 친구처럼 느껴졌어요. 사춘기 때 친구에게 말 못하는 고민거리도 어머니에게는 했죠. 그래서인지 무슨 일을 할 때마다 어머니를 먼저 생각하게 돼서, 어긋나고 옳지 않은 일은 하지 않았던 것 같아요.
또한 어머니는 저희에게 말 대신 몸으로 ‘희생’을 가르쳤어요. 오빠와 저를 낳기 전에 양장점에서 일했는데, 저희가 생긴 후 바로 그만두고 전업주부가 됐다고 해요. 그 후 우리가 학교에서 돌아왔을 때 한 번도 빈집인 적이 없었어요. 항상 어머니가 맞이해줬고, 따뜻한 밥을 차려줬죠. 초등학교 때 저와 오빠가 둘 다 스케이트를 하면서 경제적으로 힘들 때도 어머니는 다시 회사를 나가지 않고 집에서 부업을 했어요. 어렸을 적, 항상 어머니와 함께 있어서 좋았고, 또 어머니를 보며 ‘내가 더욱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순탄치 않았던 선수 생활을 할 때도 힘을 얻을 수 있었던 건 늘 든든하게 우리 곁을 지켜준 어머니의 사랑 때문인 것 같아요.
★ 교육원칙
아이와 대화를 많이 하라 아이가 어렸을 때부터 눈을 맞추며 대화를 많이 하면 커서도 친구처럼 편하게 대할 수 있다. 어려움이 있을 때 혼자 고민하지 않고 부모와 먼저 상담하는 원동력이 되는 것이다.
“긍정적인 힘을 가르쳐준 엄마”
이승훈 ● 어릴 적부터 운동하고, 시합을 나가다 보면 실패를 많이 경험하게 돼요. 항상 1등을 할 수 없으니까요. 그럴 때 좌절할 수도 있고, 슬럼프에 빠질 수 있는데 저는 긍정적인 어머니 덕분에 그럴 때마다 지혜롭게 지나갈 수 있었어요. “승훈이는 잘할 수 있다, 승훈이는 항상 기쁜 마음으로 보낼 수 있다” 등의 말을 많이 해줬는데, 그럴 때마다 제가 무엇이든 잘할 수 있을 것 같은 긍정의 힘이 생겼답니다.
그런 것들이 영향을 미쳐서인지 힘들 때도 ‘힘들다’는 생각이 드는 게 아니라 이 순간이 지나면 더 좋은 시간이 찾아올 것이라는 생각으로 극복해요. 어머니는 항상 저를 믿어줬어요. 이번 올림픽 때 쇼트트랙에서 스피드 스케이팅으로 종목을 바꿨을 때도 걱정하는 기색은 전혀 없이 오히려 기뻐하고 격려해줬죠. 이런 어머니 덕분에 나중에 후회하지 않기 위해 매 순간 최선을 다하고, 즐거운 마음으로 새로운 것에 도전하는 힘을 얻는 것 같아요.
★ 교육원칙
1 엄마 먼저 긍정적인 사람이 돼라 스펀지처럼 흡수하는 어린아이는 부모를 보고 저절로 배운다. 엄마가 항상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모습으로 살아가면 아이도 그 모습을 배워 실행하게 된다.
2 아이를 무조건 감싸기 전에 믿어라 아이를 걱정하고, 감싸기 전에 새로운 것에 도전할 수 있도록, 그리고 담대하게 나갈 수 있도록 믿는 것 역시 부모의 몫. 그러면 아이도 자립심이 생겨 성인이 되어서도 어떠한 난관이든 극복하는 힘이 생긴다.
“긍지와 자신감을 갖도록 칭찬을 아끼지 않았던 엄마”정은아 ● 어머니는 우리 삼남매를 아주 사소한 것부터 칭찬하며 키웠어요. 집에 손님이 오면 “큰애는 얼굴은 안 예뻐도 공부를 제법 하고요, 둘째는 음악에 재능이 있고 목소리가 고와요. 막내는 키는 작아도 글씨를 얼마나 잘 쓰는지 몰라요”라고 칭찬해 우리 어깨가 늘 으쓱했죠. 저는 공부를 잘한다는 칭찬에 늘 집에 손님이 오면 기분이 좋았어요.
연필을 잘 깎아도, 동생을 잘 돌봐도, 신발을 가지런히 놓아도 항상 공부 잘하는 것과 똑같이 칭찬을 받았고, 이런 어머니의 칭찬은 긍지와 자신감을 갖게 했을 뿐 아니라 스스로를 사랑하고 신뢰할 수 있는 사람으로 만들어줬어요. 사람은 누구나 소중하고 인생은 끊임없이 배워야 할 가치가 있다는 것을 몸소 가르친 어머니. 그런 어머니가 있기에 오늘의 내가 있다고 생각해요.
★ 교육원칙
작은 일에도 칭찬하라 장난감을 잘 치워도, 씩씩하게 뛰어놀아도, 밥 한 그릇을 뚝딱 비워도 칭찬한다. 남들보다 잘하는 것 말고, 아이의 입장에서 최선을 다한 것에는 늘 칭찬을 아끼지 않아야 자신감을 갖고 자신을 사랑하는 법을 알아 매사에 최선을 다하는 사람이 된다.
who is
이상화 한국체육대학교에 재학 중이며, 2010년 ISU 세계스프린트선수권대회 여자부 종합우승, 2010년 밴쿠버 동계올림픽 스피드 스케이팅 여자 500m 금메달을 획득했다.
이승훈 한국체육대학교에 재학 중이며, 2010 밴쿠버 동계올림픽 스피드 스케이팅 10000m 금메달, 5000m 은메달 획득했다.
정은아 한국외대를 나와 1990년 KBS 아나운서 공채 17기로 입사한 뒤 대표적인 방송진행자로 활동 중이며, 한국방송대상 아나운서상, 대한민국연예예술상 TV진행상 등을 수상했다.
오한숙희 ● 제가 어린 시절엔 말 잘하는 아이를 좋게 평가하지 않았어요. 질문과 이유가 많은 아이는 어른을 귀찮게만 하고, 버릇없이 어른한테 말대답하는 존재로 치부되기 십상이었거든요. 하지만 오직 단 한 명. 어머니만이 재잘재잘 말하기 좋아하는 딸의 유일한 말동무가 되어주셨죠. 학교에서 돌아오면 부뚜막에 걸터앉아 밥을 먹곤 했는데 부엌일을 하던 어머니에게 학교에서 있었던 일을 미주알고주알 떠들어댔어요. 부뚜막은 저의 독무대였죠. 청중은 항상 말 없는 청중인 어머니 한 사람. 내 말을 안 듣는다고 투정을 부리기도 했지만 지금 생각하면 내 말의 물꼬를 터주기 위해 듣고만 있었던 것 같아요. 나는 연극하는 것처럼 말하는 능력을 부엌에서 키웠고, 상대의 반응을 살펴 관심과 호기심을 끌어내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자연스럽게 알았어요.
나에게 사람들 앞에서 말하는 법을 알게 해준 어머니가 있었기에 지금도 많은 사람의 이야기를 들으며 상담하고, 강의하는 행복한 삶을 살게 됐다고 믿어요.
★ 교육원칙
아이의 이야기를 들을 땐 눈을 맞추고 경청하라 아이가 이야기할 때 우습게 여겨서는 안 된다. 어른이 볼 때 사소하고 우스운 이야기일지라도 진지하게 눈을 맞추고 경청하면 아이 또한 남을 존중할 줄 알고 바르게 말할 줄 아는 사람으로 자란다.
“자식에게도 늘 높임말을 쓰시던 엄마”안철수 ● 어머니는 늘 자식들한테 높임말을 썼어요. 우리 집안에서는 자연스러운 일이라 그게 특별한 가르침이라고 깨닫지 못했죠. 고등학교 2학년 어느 날, 늦은 등굣길에 어머니는 큰길까지 따라 나와 택시를 잡아주고는 “잘 다녀오세요”라고 인사했어요. 여느 때와 같이 대수롭지 않게 여기며 “네”라고 대답했는데 택시 기사가 깜짝 놀라더군요. 한참 동안 무슨 생각을 하더니 “학생은 참 훌륭한 어머니를 두었네. 나중에라도 그 은혜를 잊지 말고 잘 모셔야 하네”라고 말하더군요. 그때는 택시 기사가 왜 그런 말을 하는지 잘 깨닫지 못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어린 자식들에게 손수 인간에 대한 ‘존중’을 가르친 것 같아요.
말투 하나도 남달랐던 어머니의 교육 철학은 남달랐죠. 늘 두 가지 원칙을 강조했는데 첫째는 사람은 어떤 환경에서도 항상 자신한테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며 살아야 한다는 것, 둘째는 깨어 있는 모든 시간에 나 자신보다 남을 먼저 생각하고 배려하라는 것이었죠. 의사일을 그만두고 더욱 가치 있는 일을 찾아 고민할 때도, 회사를 경영하면서도 내 삶 곳곳에 배어 있는 소중한 원칙들은 모두 어머니의 깊은 가르침이 준 큰 재산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 교육원칙
겸손함을 가르쳐라 평소 자신감을 갖도록 작은 일도 칭찬하되, 남의 칭찬에 우쭐해져선 안된다는 것을 함께 강조한다. 최선을 다하면 자기 자랑을 하지 않고도 인정받을 수 있다는 것을 가르쳐야 한다.
“매일 딸을 위해 정성 가득한 도시락을 싸주시던 엄마”
이경숙 ● 어머니는 겨울날 추운 새벽마다 학교로 나서는 저에게 정성스럽게 준비한 도시락을 건네셨어요. 매일 아침 싸주신 도시락에는 어머니가 못다 잔 새벽잠만큼 어머니의 큰 사랑이 가득 담겨 있었죠. 말과 표현이 귀하던 시절, 어머니는 딸에 대한 사랑과 믿음, 기대를 그렇게 도시락 하나에 모두 담아주셨던 것 같아요.
정성이 담긴 음식은 마음을 살찌우는 힘이 있다고 생각해요. 넘치지 않게 항상 마음을 든든하게 만드는 자신감과 편안함, 그래서 초조해하지 않고 넉넉한 마음으로 세상을 넓게 생각할 수 있었던 그 모든 것이 어머니의 따뜻한 도시락에 담긴 사랑의 힘이었죠. 어머니의 사랑은 지금도 아주 든든한 버팀목이고, 바른 길로 이끌어주는 힘이에요. 학창 시절 하루 종일 어머니의 온기와 사랑을 가장 깊게 느낄 수 있었던 어머니의 사랑은 새벽녘 가방 속에 넣어주셨던 그 도시락이 아니었을까, 생각해요.
★ 교육원칙
엄마는 아이의 영양사다 맞벌이 부부가 늘면서 요즘은 인스턴트식품으로 식사를 때우는 아이들이 많다. 몸과 마음이 건강한 아이로 자라게 하는 것은 엄마의 의무다. 아이에게 엄마가 손수 만든 따뜻한 식사를 만들어주는 일은 끼니를 때우는 것 이상의 소중한 의미가 담겨 있다.
who is
오한숙희 대중적인 여성운동가로 이화여대와 대학원에서 사회학, 여성학을 공부하고 김포여성민우회 대표, 가족과 성 상담소 소장을 지냈다. 상담 사이트 해심터를 운영 중이며 <그래, 수다로 풀자> <딸들에게 희망을> 등의 저서가 있다.
안철수 서울대 의대 박사 과정 중 컴퓨터 바이러스 백신을 개발하고, 1995년 안철수 바이러스연구소(현 안철수연구소)를 설립했다. 현재 안철수연구소 이사회 의장이면서 카이스트 석좌교수로 있다.
이경숙 전 숙명여대 총장으로 숙명여대, 사우스캐롤라이나 대학원에서 정치학을 전공했고 1994년부터 2008년까지 숙명여대 총장에 네 번 연임되었다. 제17대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위원장을 맡기도 했다.
part3 좋은 습관을 보여주며 본보기 교육을 한 엄마

“잠들기 전 늘 책을 읽어주시던 엄마”
이어령 ● 저는 글자를 알기 전에 책을 먼저 알았어요. 어머니는 내가 잠들기 전 늘 머리맡에서 책을 읽고 있었고, 어떤 책은 소리내어 읽어주시기도 했죠. 감기에 걸려 온몸에 열이 오를 때도 <무쇠탈> 등의 소설을 읽어주셨는데, 기억할 수 없는 이야기들을 아련한 한약 냄새 속에서 들었던 기억이 나요. 그런 어머니의 등 너머로 자연스럽게 책 읽기가 시작됐고, 대학에 들어가서는 저녁이면 친구들과 어울리지 않고 집에 와 책을 읽는 습관을 들였어요. 그렇게 제가 50여 년 동안 읽은 책만 3만여 권에 이르고, 집에 책이 넘쳐 두 곳에서 도서관을 운영할 정도가 됐죠.
빈약하지만 제가 매일 퍼내 쓸 수 있는 상상력의 우물을 가지고 있다면 그것은 책 읽는 어머니의 목소리예요. 어머니는 제 환상의 도서관이었고, 최초의 시, 드라마였으며 끝나지 않는 길고 긴 이야기 책이었죠. 어머니의 목소리가 담긴 근원적인 책 한 권이 저를 따라다닙니다. 그 환상의 책은 60년 동안 수천 수만의 책이 됐고 그 목소리는 나에게 수십 권의 글을 쓰게 한 거죠.
★ 교육원칙
1 부모의 좋은 습관을 보여줘라 부모의 좋은 습관만큼 좋은 본보기 교육은 없다. 독서뿐 아니라 일기 쓰기, 가계부 꼼꼼히 정리하기,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이부자리 정리하기 등 몸에 밴 좋은 습관을 아이 눈에 띄게 한다.
2 바쁘다는 핑계를 대지 마라 세상에 바쁘지 않은 부모는 없다. 바쁘다는 핑계로 자녀교육에 소홀하거나 1년 내내 책 한 권 읽지 않는 어른이 많다. 부모가 솔선수범하지 않고, 아이와 가까워지는 노력을 하지 않는다면 아이의 재능의 밑거름이 될 부모의 존경스러운 모습은 없다.
“바른 습관을 익히게 해줬던 엄마”
금나나 ● 어릴 적 저는 동네 친구들을 집으로 데리고 오는 것을 좋아했어요. 시끄럽게 떠들며 신문지를 가위로 잘라 수북하게 쌓아놓아도, 흙을 묻혀가며 소꿉놀이를 해도, 밤늦게까지 인형놀이를 해도 어머니는 한 번도 “시끄럽다, 그만해라”라는 말씀을 하시지 않았죠. 단지 “뒷정리를 깨끗이 하라”는 말만 했어요. 벽에 아무리 그림을 그려도, 책상과 의자 위치를 매일 마음대로 바꿔도 야단치지 않았어요. 오히려 방이 새로워졌다며 칭찬해주셨죠. 지금 생각해보면 다양한 놀이를 하며 창의력을 키웠고, 깨끗이 뒷정리하는 습관도 기른 것 같아요.
어머니는 ‘매일 일기 쓰기’ 하나만큼은 꼭 지키라고 강조했어요. 처음에는 귀찮아 매일 쓰기가 쉽지 않은데 쓰다 보면 자신을 되돌아보게 되고, 새로운 각오를 하게 돼요. 영어를 배울 때면 영어 단어를 중간중간 섞어서 쓰기도 하고, 동물이나 식물을 관찰한 날에는 관찰일기를 썼죠. 친구가 보고 싶을 때는 친구에게 편지를 쓰기도 했어요. 이렇게 매일 일기를 쓰면서 표현력이 늘어나고, 모든 것을 기록하는 습관이 생겼어요. 어머니는 이렇게 무엇을 강압적으로 하라고 지시하는 대신, 제가 스스로 바른 습관을 익힐 수 있도록 인도해줬고, 그 습관이 몸에 배어 공부하는 데도 큰 도움이 되고 있어요.
★ 교육원칙
1 매일 일기 쓰는 습관을 길러줘라 대학에 가서 리포트를 쓰거나, 회사에서 일할 때 기초가 되는 것이 글을 쓰는 것이다. 이것의 밑바탕이 되는 것이 일기. 어릴 때부터 일기를 쓰는 습관을 길러주면 표현력이 늘 뿐만 아니라 끈기를 갖고 꾸준히 하는 습관, 기록하는 습관 등이 길러진다.
2 집안을 놀이터로 인정해줘라 아이들의 창의력과 상상력은 무궁무진하다. 이것을 어른의 눈으로 보고 제압하기 전에, 마음껏 놀게 한다. 단, 뒷정리하는 것은 스스로 하도록 해 바른 생활을 익히도록 한다.

“생활 속 모든 것을 허투루 보지 않았던 상상력의 소유자 엄마”
강우현 ● 어머니는 눈썰미와 손재주도 대단했어요. 대학에서 디자인을 배운 저를 까무러치게 할 정도였으니까요. 한번은 어머니가 아이들이 갖고 노는 고무 찰흙으로 동물을 빚었는데 마치 작품처럼 빛이 나 깜짝 놀랐어요. 덩어리 찰흙을 어머니가 엄지손가락으로 꾹 누른 다음, 가운뎃손가락으로 살짝 한 번 더 만지작거리기만 해도 오리가 되고, 닭이 되고, 소가 됐거든요. 그때 어머니에게 전시회를 열어드리고 싶다는 말까지 했을 정도였죠. 그 뒤 전 작품을 할 때 늘 어머니한테 자문을 구하는 버릇이 생겼어요. 어떤 작품을 만들 것인지를 생각할 때는 늘 가까운 곳에서 실마리를 찾는 어머니식 발상법에 의존하기도 했어요. ‘~처럼’이라는 말을 유난히도 많이 썼던 어머니는 아마 생활 속 모든 것을 허투루 보는 일이 없고, 그 속에서 지혜를 발휘해 손끝 하나하나 창의성 가득한 힘을 냈던 것 같아요.
전 어머니를 생각하면 슬픈 기억이 거의 없어요. 어머니가 즐겨 쓰던 비유법과 상상력은 모두 동화이고 이미지이자 만화영화였죠. 아마 나의 상상력이 누군가에게 기쁨을 준다면 그것은 모두 어머니에게 물려받은 상상력이라는 재산 때문이 아닐까 싶어요.
★ 교육원칙
주위 사물을 이용해 상상력을 키워줘라 상상하는 것은 어려운 것이 아니다. 다 똑같이 보는 평범한 사물을 남들과 다르게 보는 것이 바로 상상력이다. 주위의 평범한 사물을 활용해 아이의 상상력을 키워줘라. 네모난 창문 하나로도 할 수 있다. “저 네모난 창문 위에 뿔 두 개를 달면 TV가 된다” 등 평범한 사물을 활용해 상상력을 키워준다.
“진짜 성우보다 더 성우 같던 만능 탤런트 엄마”배한성 ● 어머니는 여학생 때부터 영화 보는 것을 좋아하셨대요. 텔레비젼은커녕 라디오도 없던 시절, 어머니는 영화를 보고 온 날이면 꼭 동네 사람들 앞에 서서 영화 이야기를 하셨죠. 저녁밥을 먹고 나면 동네 사람들이 하나 둘 어머니의 영화 이야기를 들으러 집으로 모여들었고, 저 또한 곁에 앉아 어머니의 모습을 지켜봤어요. 어머니는 웃었다 울었다 하는 것도 모자라 앉았다 엎드렸다 하며 배우들의 연기를 실감나게 흉내 냈죠. 사람들은 마치 영화관에서 진짜 영화를 보듯 푹 빠져 있었어요.
중학교 때 국어시간이었어요. 선생님이 라디오 드라마의 한 장면을 아이들한테 성우처럼 직접 연기해보자고 제안했는데, 친구들이 합창하듯 나를 추천했고 나는 신나게 해냈죠. 그때 선생님은 “한성이는 그 좋은 재능을 누구한테 물려받았니? 앞으로 훌륭한 성우가 될 수 있을 것 같다”며 칭찬했어요. 어렸을 때 봤던 탤런트 같은 어머니의 모습이야말로 완전한 나의 스승이었어요. 삶에서도 연기 생활에서도 말이죠.
★ 교육원칙
본보기가 돼라 아이는 부모의 거울이다. 부모가 하는 행동을 모방하고, 그것이 몸에 배어 습관이 된다. 늘 책 읽는 모습을 보이고, 뭐든 열심히 노력하는 모습을 보인다. 몸소 가르치는 것보다 더 효과적인 교육은 없다.
who is
이어령 평론가 겸 작가. 현대평론가협회 동인으로 활약하면서 경기고등학교 교사, 단국대학교 전임강사, 이화여자대학교 교수를 지냈으며 <문학사상>주간과 문화부 장관을 지내기도 했다.
금나나 경북대 의예과 1학년 재학 중, 2002년 미스코리아 진에 당선. 그 후 2년 뒤 미국 MIT와 하버드 대학에 동시에 합격해 소위 ‘엄친딸’ 1호가 된다. 최근 하버드대와 존스홉킨스대 대학원 박사과정에 동시 합격해 또 다시 화제를 모으고 있다.
강우현 그래픽디자이너, 일러스트레이터로 활동하면서 현재 알씨컨텐츠 대표이사, 남이섬 대표이사, 국제아동도서협의회 한국위원장이다. 주요 작품은 <나미벤또> <남이섬 미완의 상상> <포인트 스토리> <가우디의 바다> 등이 있다.
배한성 서라벌 예대를 나와 1969년 TBC 공채성우 2기로 방송 활동을 시작했다. KBS 최우수 남자성우상을 수상했고 성우, 방송 진행자로 활동 중이다. 현재 한국성우협회 이사장으로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