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째는 도구적 사랑이다.
상대가 머리가 좋거나
특별한 재능을 갖고 있거나
훌륭한 가문의 후손이거나
부잣집 자식이라는 이유만으로
사랑을 느낀다면 이것은 도구적 사랑이다.
물론 능력은 녹슬 수 있고,
가문은 몰락할 수 있으며,
재산은 한 순간에 날아갈 수 있다.
이때 도구적 사랑도 깨어질 가능성이 높다.
여기서는 도구, 수단, 사랑 모두 우연적이고 가변적이다.
소금이 짠 맛을 잃으면 아궁이 속으로 던져지듯
효용성을 잃은 도구, 수단, 사랑도
속절없이 내팽겨쳐지기 마련이다.
둘째는 쾌락적 사랑이다.
상대의 성격, 외모, 취향 등이 마음에 들고
그 때문에 함께하는 시간이 즐겁고 행복해서 사랑하게 된다면
이것은 쾌락적 사랑이다.
그러나 꽃이 열흘 동안 붉게 핀 채로 있기가 어렵듯
내게 기쁨과 만족을 주는 상대의 아름다움/멋있음도
시간 속에서 변치않는 매력으로 머무르기 어렵다.
상대의 매력이, 설령, 변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내 감수성이 변할 수 있다.
시간과 공간에 따라,
지금 하고 있는 일에 따라,
그리고 또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셋째는 완전한 사랑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이 완전한 사랑에는 세 가지 요소가 불가결하다고 말한다.
먼저 상태로서의 '선(善)'이다.
여기서 그는 선을 단지 도덕적 의미로만 얘기하지 않는다.
완전한 사랑을 위해서 상대도 나도 존재 자체의 '선'을 이루어야한다는 의미다.
다음은 활동으로서의 '덕(德)'이다.
덕이란 어떤 존재가 자기 능력을 제대로 발휘하는 활동성을 말한다.
덕은 상대를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최대한 잘하려는 의욕으로 발현된다.
마지막은 관계로서의 '유사성(resembleness)'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이 유사성에 대해 길고 상세한 설명을 덧붙이고 있는데,
요약하자면,
마음을 다해 사랑하는 두 사람의 관계는
차이성(difference)에서 동일성(sameness)으로 향하는
줄기찬 노력의 과정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여기서 동일성이란 목표가 아니라 방향이자 과정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선'과 '덕'과 '유사성'을 갖춘 것만이 완전한 사랑이라고 했다.
이런 사랑은 우리에게 하나의 이상(理想)일지 모른다.
그러나 지금 사랑에 빠진 사람들,
앞으로 사랑할 사람들,
아니 심지어 이제 모든 사랑이 한갓 추억으로 남아 있을 뿐인 사람들조차
이 완전한 사랑의 꿈을 포기하지 못할 것이다.
참 어려운 얘긴데...
아리스토텔레스의 말을 빌자면,
"짠 소금을 함께 먹은" 후라야 비로소 그런 사랑의 단계로 들어설 수 있다.
요컨대,
사랑에도 시간을 함께하는 역사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역사가
자동적으로 사랑을 성숙이나 완성을 향해 나아가도록 만들어주지는 않는다.
그 역사 고비고비에 필요한 반성이 결핍된 탓에
너 나 할 것 없이 비극적으로 끝나는 사랑이 또 얼마나 많은가.
에리히 프롬은 <사랑의 기술> 에서,
"사랑은 기술이다" 는 도발적 명제를 제시하고
이 기술(?)을 체득하기 위해서는
'인식과 노력'이 필요하다고 부언한다.
그에 따르면,
사랑을 위한 불가결의 요소는 다섯이다 :
giving (베풂),
care (살핌),
responsibility (책임),
respect (존경),
knowledge (인식).
프롬은 마지막 요소인 knowledge, 즉 '인식' 에 대해 특별히 긴 해설을 덧붙인다.
"사고에 의한 인식, 즉 심리학적 인식은
사랑이라는 행위를 온전히 인식하는데 필요한 조건이다.
나는 타인의 실체를 알기 위해서,
혹은 내가 그에 대해 가졌던 환상이나 불합리하게 왜곡된 이미지를 극복하기 위해서
다른 사람과 나 자신을 정확하게 인식해야만 한다.
오직 내가 인간 존재를 객관적으로 인식할 때만
나는 인간을
궁극적 본질에서,
사랑의 행위에서 인식할 수 있을 것이다."
결국 '인식' 이란,
나를 알고
상대를 알고
나와 상대가 함께 얽힌 종횡의 맥락들을 아는 것이다.
특히 반성은 그것을 흘러간 지평 위에 되돌려 놓고 보는 것이다.
인식과 반성이 결여될 때,
우리의 사랑은
도구적 사랑, 쾌락적 사랑으로 굴러떨어질 위기에
시나브로 몰린다.
그러므로,
그대,
이런 건 어떤가?
'사랑은 중간에서 만나는 것이다.'
중간에서 만나 뭘 하느냐고?
뭘 하긴...
아리스토텔레스가 그러잖네?
짠 소금을 함께 들이키자꾸나,
국산 천일염으로다가 한 바가지씩...
컥!
- C.J., an old fashioned lover bo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