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은 ‘명품’의 조건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요?
비싼 소재? 높은 가격?
저는 ‘명품’이라 불리기 위해서는 그 브랜드 만의 고유한 ‘철학’과 ‘장인정신’,
즉 겉으로는 보이지 않는 ‘디테일’이 살아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겉 모습만 치중하고 다른 브랜드와 차별성을 갖지 못하는 명품은 진정한 명품이라고 볼 수 없겠죠.
다비도프의 창시자 지노 다비도프는 생전에
“Having a taste for quality is having a taste for life - 퀄리티란 더 풍부하고 더 즐거운 삶의 필수적 요소이다”,
“Details aren't everything, they are the only thing - 디테일이 모든 것’이라기보다도
디테일은 ‘그 유일한 어떤 것’이다”라는 말이 남기며 퀄리티와 디테일의 중요성을 강조했습니다.
이러한 기본적인 철학은 제품의 세부적인 면을 놓치지 않고
완벽한 상태의 제품으로 소비자에게 제공하는데 있다고 보여지는데요,
원료의 생산부터 제품의 디자인까지, 어느 것 하나도 타협하지 않는 정신.
그것이 오늘날 장인정신을 논할 때 지노 다비도프가 빠지지 않고 언급되는 이유가 아닐까 생각됩니다.
다비도프와 더불어 세계적인 명품으로 인정받는 브랜드가 또 있습니다.
바로 영국을 대표하는 세게적인 브랜드 ‘폴 스미스’인데요,
알록달록한 색채와 톡톡 튀는 디자인으로 눈에 띄는 이 브랜드는 ‘명품’하면 떠오르는
무거운 무채색의 컬러나 골드 빛깔의 뻔한 이미지와는 확실한 차별 노선을 걷고 있습니다.
6평짜리 작은 매장에서 시작한 폴 스미스는 현재 전 세계 40여 개국
수백여 개의 명품 매장을 운영하는 세계적인 브랜드가 됐는데요,
이 브랜드의 대표 디자이너인 폴 스미스는 영국 패션 산업에 기여한 공로로
2000년 엘리자베스 여왕으로부터 기사 작위를 수여 받기도 했다고 합니다.
이 독특한 브랜드의 창업자이자 디자이너가 최근
‘2010 inside Paul Smith’라는 전시를 위해 한국을 방문해서 화제를 모았습니다.
패션디자이너로 시작했지만 스타일리스트, 제품디자인, 무대디자인, 광고 영역까지
넘나들고 있는 그의 세계는 대체 무엇이 원천이었을까?
그를 알고 싶었고, 무엇보다 그를 통해 ‘영감’을 얻고 싶은 마음에
한적한 평일 오후 대림 미술관을 찾았습니다.
‘His art, His photography, His world’라는 부제를 달고 있는 이번 전시회에서
‘폴 스미스’하면 바로 떠오르는 ‘패션’은 주요 테마가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그의 ‘디자인 철학을 엿볼 수 있는 전시’라고 하는 게 맞을 겁니다.
패션 디자이너보다 사진가로서의 폴 스미스, 수집가로서의 폴 스미스의 모습을 볼 수 있었는데요,
그럼 지금부터 전시회 곳곳에 숨겨진 폴 스미스에 대한 단서를 꺼내 보도록 하겠습니다.
종로구 통의동에 위치한 대림미술관은 경복궁 옆 한적한 동네에 조용하게 숨어있었습니다.
제가 이 곳을 찾은 시각은 오후 5시.
폐장까지 한 시간 남짓 남은 시간이었는데도 불구하고 꽤 많은 사람들이 둘러보고 있더군요.
1층 매표소에서 입장권을 구입하고 올라간 2층은 ‘PAUL’S ART’라는 주제로
그가 개인으로 소장한 아트 콜렉션을 전시하고 있는 곳이었습니다.
이 수집품들은 패션 디자인 정규교육을 받지 않은 폴 스미스가
세계적인 디자이너로 성공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평가 받고 있는데요,
과연 그의 개인적인 취향이 어떨지 궁금하더군요.
“나의 눈이 원하는 것을 선택한다”
자신을 ‘아트 컬렉터’라고 하긴 어려울 것 같다고 말하는 폴 스미스는
십대 시절부터 빈티지 포스터를 수집하기 시작했다고 하는데요,
무엇보다도 그의 아트 컬렉션에서 주목할 만한 점은
그가 유명세나 미술사적 가치에 따라 예술작품을 수집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특정 아티스트에 대해 심도 깊은 지식과 열정을 가지고 수집을 하는 것이 아닌
‘자신의 눈이 원하는 것’을 선택한다는 점이 특별하게 다가왔죠.
그 때문에 컬렉션들은 이름 없는 작가에서부터 앤디 워홀, 데이빗 호크니,
뱅크시와 같은 현대 미술의 거장들까지 다양하게 아우르고 있었습니다.
특히 저는 이 작품들에서 주로 강렬한 원색과 보색 대비를 많이 찾을 수 있었는데요,
이는 아마도 폴 스미스 브랜드만의 고유한 스트라이프 패턴의 원천이 되지 않았을까 생각해봤습니다.
↑폴 스미스의 상징이라고 볼 수 있는 고유한 스트라이프 패턴
이 패턴을 만들게 된 계기는 1990년대 초였다고 하는데요,
당시 그는 그리 좋은 원단을 살만한 돈이 없었던 그는 저렴하고 심플한 원단만을 구입하였다고 합니다.
그러한 심플한 원단들에 생명력을 불어넣고 다양한 색상의 조합을 만들어 낸 것이 시초가 된 셈이죠.
“어울리지 않는 것끼리의 결합이 나의 전공 분야”
3층의 전시장은 보다 폴 스미스를 가까이 느낄 수 있게 만들어진 공간이었는데요,
올라가면 바로 마주할 수 있는 첫 번째 공간에서는
폴 스미스가 일상 생활과 여행 중에 직접 찍은 300여 장의 사진들을 볼 수 있습니다.
이 사진들은 사물과 세상을 바라보는 폴 스미스의 예리하면서도
경쾌한 시선을 따라가 볼 수 있는 공간이었는데요,
카메라를 마치 사진 일기처럼 사용한다는 그의 말처럼 모든 사진들은
보이는 것들과 순간을 즉석에서 포착한 사진들이었습니다.
↑폴 스미스의 ‘일상 탈출’ 혹은 ‘일상 비틀기’를 엿볼 수 있는 그의 사진들
사진들은 대부분 ‘일상의 공간’을 무대로 하고 있었는데요,
폴 스미스 자신이 ‘어울리지 않는 것끼리의 결합이 나의 전공 분야’라고 밝혔듯이
사진들은 하나같이 평범한 일상을 비틀어낸 점이 눈에 띄었습니다.
거꾸로 돌려진 신호등이라든지, 유독 그림자 사진이 많은 것도 모두 뻔한 일상을
새롭게 보는 폴 스미스만의 시각을 확인해 볼 수 있었던 것이죠.
↑15년 동안 익명의 팬들이 보내온 다양한 오브제들
이는 사진 전시 공간 옆에 마련된 오브제 컬렉션 코너를 통해서도 확인해 볼 수 있습니다.
‘Stamped Objects’라고 이름 붙여진 이 곳에는 지난 1998년부터 15년 동안
익명의 팬 또는 팬들이 폴 스미스 앞으로 보내온 물건들로 이루어져 있었습니다.
팬들 조차 폴 스미스의 호기심과 엉뚱한 취향을 반영하여
이런 특별한 작품들을 보냈다는 사실이 참으로 흥미로웠습니다.
폴 스미스는 "실제로 나는 이 물건들이 전세계적으로 추앙 받는
많은 예술품들보다도 더 예술적이라고 느낀다"고 말하기도 했다고 하네요.
↑폴 스미스의 영감의 원천이 되는 런던 오피스를 재현해 놓은 공간
“당신은 어떤 것에서도 영감을 찾을 수 있다”
마지막으로 마련된 곳은 바로 이번 전시의
하이라이트라고 할 수 있는 폴 스미스의 오피스를 재현한 공간입니다.
이 공간은 폴 스미스의 라이프 스타일을 집약적으로 보여줄 수 있는 곳으로
'일상'과 '예술'의 경계를 허물고 있는 폴 스미스 만의 유쾌한 세상을 엿볼 수 있는 공간이었습니다.
폴 스미스가 쓴 책 중 '당신은 어떤 것에서도 영감을 찾을 수 있습니다'라는 책이 있는데,
이 공간을 보고 나면 책 제목을 왜 그렇게 지었는지 단번에 알아챌 수 있습니다.
런던에 실존하는 이 오피스 겸 스튜디오는 ‘컬렉터의 천국’과도 같은 곳인데요,
상상할 수 있는 모든 오브제들이 한데 섞여 선반과 탁자 위, 의자
심지어 바닥 위에도 수북하게 쌓여있는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귀하고 값진 것에서부터 재미있고 키치적인 아이템에 이르기까지
마치 해변에서 파도에 의해 씻겨지고 움직여지듯이,
아이템들은 그렇게 오피스 공간을 이동하고 있었습니다.
이 스튜디오는 같은 모습을 오랫동안 보여준 적이 거의 없다고 하는데요,
방문할 때마다 흥미로운 아이템들이 새롭게 비축되어 있기 때문 이라네요.
이번 전시를 통해 ‘세상의 모든 것에서 영감을 얻는다’는 그의 말을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음악, 그래픽, 사진 등 모든 것이 영감의 원천이라고 말하는 그는
항상 카메라와 손가락만한 작은 수첩을 가지고 다니며 기록하기를 즐기고 있었습니다.
해외를 다니며 찍었던 사진이나 끄적거린 스케치가 실제 제품화 되는 경우가
다반사인 것도 다 이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 봤습니다.
무엇보다 인상 깊었던 사실은 ‘일상을 다르게 보는 그의 독특한 시각’이었습니다.
이는 지루한 일상을 빠져 나와 가로수 길에서 소소한
일탈을 즐기는 저의 생활과도 맞닿아 있다고 생각했는데요,
폴 스미스처럼 나도 나만의 ‘가로수 길 오브제’를 만들어 보는 것도 재미있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생각만해도 즐거워집니다. 여러분들도 일상을 달리 바라보는 시간을 가져보시는 건 어떨까요?
적어도 삶이 지루하게 느껴지진 않을 테니 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