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 타임머신을 개발한 존 드로리언
마약사건에 휘말려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사라진 드림카를 꿈꾸던 엔지니어가 있었습니다. 자동차 업계에서는 이단아로 불리는 존 드로리언이 그 주인공. 한때 세계 최대의 자동차 회사였던 제너널 모터스의 부사장이라는 명예를 거부하고 자신의 꿈을 담은 자동차 회사를 설립합니다. 그가 개발한 자동차는 DMC12라는 모델로 1981년 제네바 모터쇼를 통해 데뷔를 하게 됩니다.
우리에겐 영화 ‘백투더 퓨처’에서 브라운 박사가 발명한 타임머신으로 더욱 친근한 모델인데요. 6기통 엔진에 2.8리터 엔진은 145마력를 발휘하여 최고 속도도 208Km/h까지 달려 당시로써는 고성능 자동차였습니다.
존 드로이언은 크라이슬러 공과 대학을 졸업 후 패커드의 엔지니어로 첫 사회생활을 시작 합니다. 그 후 GM으로 스카웃되어 폰티악 GTO를 개발하게 됩니다. 판매량에서 고전을 면치 못하던 폰티악을 업계 3위까지 올려 놓는 공을 세웁니다. 최고의 기량으로 드로리언의 고공행진은 계속되어 40대에 부사장이라는 당시에는 파격적인 인사를 단행하게 됩니다. 차기 대표의 물망에도 오르며 당시 모든 이의 꿈이었던 GM본사 14층으로 사무실을 옮긴 드로리언은 세상 누구 부럽지 않은 생활을 누립니다. 하지만 그의 강직한 성격 때문이었을까요? 승진 1년 만에 GM경영층과의 잦은 마찰과 사내의 권력투쟁에 회의를 느낀 그는 회사를 그만 둡니다. 그가 남긴 유명한 일화도 화제가 되었습니다. “GM이 나를 해고 한 것이 아니라 내가 GM을 해고 했다”며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명언을 남깁니다.
회사를 그만 둔지 일년 만에 약 2억 달러의 투자금을 조성하여 드로리언 자동차 회사(DeLorean Motor Company)를 설립합니다. 당시 분쟁지역이던 북아일랜드에 공장을 조성하며 드로리언은 영국으로부터 천문학적인 지원을 받습니다. 하지만 새로운 모델 개발에 너무나 많은 비용을 지출한 드로리언은 자금 압박에 새로운 모델의 출시를 서두르게 됩니다. DMC 12는 프로토타입이 완성된 후 많은 테스트를 생략하고 출시를 해버리게 되죠.
숙련되지 않은 직원에 의해 생산된 자동차는 출시 후 많은 문제점들이 드러나게 됩니다. 차의 발전기 용량이 부족해 전기장치를 동시에 작동시키면 주행 중에도 배터리가 방전되기도 하고 걸윙도어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 물이 새는고, 공조장치가 작동되지 않아 실내가 더워지고 엔진 과열이 되는 등 크고 작은 문제가 계속해서 발생합니다. 이는 소문을 타고 빠르게 번져나갔습니다. 결국 차를 사려고 했던 이들이 계약금을 모두 환수하면서 판매량은 바닥으로 곤두박질 칩니다. 가장 든든한 파트너였던 영국정부마저 그를 외면하자 드로리언은 결국 극단적인 방법을 선택합니다. 1982년 10월, 그는 마약을 미국에 반입하려 한 혐의로 FBI에게 체포되었습니다. 드로리언은 10일 만에 전 재산을 팔아 보석금 1천200만 달러를 주고 풀려난 후 정부를 상대로 재판에 들어가죠. 2년 후 혐의는 기각됐지만, 회사의 신뢰도는 땅에 떨어졌고 얼마 지나지 않아 회사도 파산하게 됩니다.
DMC 12모델은 2년 동안 총 8,583대가 생산되었습니다. 드로리언 자동차 회사가 문을 닫은 후 세계경기는 회복되고 드로리언 DMC 12는 흥미로운 비하인드 스토리를 갖춘 수집가들의 관심을 끌게 됩니다. 텍사스의 한 회사가 공장을 폐쇄한 후 남아있던 부품과 제작공구를 매입하며 드로리언을 리뉴얼해 판매하기 시작했고, 리로이언은 현재도 과거를 담아 계속해서 재생산되어 판매되고 있습니다. 현재의 GM 사태를 지켜 보면서 30년 후를 내다본 드로이언의 통찰력이 놀랍기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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