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고2때 파파이스가 서울각지에 생겨나기 시작했는데
당시 KFC랑 맥도날드랑 롯데리아 세개가 꽉잡고 있을때였거든요
근데 파파이스라는데가 생기니까 겉으로만 보고 어린마음에
'저긴 조카 고급음식점'이란 생각이 든거에요
그때 처음 소개팅을 했는데 처음에 만나서 투다리서 술먹고 헤어지고
두번째 만나서 고민고민 하다가 파파이스를 갔어요
여자애를 2층에 자리잡으라고 올려보내고 쿨하게 카운터에 한 팔 걸치고
건들건들 하면서 메뉴판를 보고 있었어요
근데 뒤에서 아가씨 하나가 기다리다가 '지금 주문 안하실거면 비켜줄래요?'
그래서 뒤로 나와서 팔짱끼고 메뉴를 쭉 탐색했지요
뭐가 뭔지는 하나도 모르겠는데 암튼 닭고기를 조각으로 파니까
양이 적을것 같아서 닭고기랑 버거랑 후렌치 후라이랑 볶음밥이랑 빵이랑
이것저것 막 시켰어요 (세트메뉴 개념도 몰랐음)
4만 얼마 나오니까 이미 예상했다는 표정으로 당당하게 계산하고
(속으로 고급 음식점이니까 당연하지라고 생각)
뒤에 팔짱끼고 십여분 기다렸다가 한가득 안고 올라갔더니 여자애가
왜이렇게 늦었냐고 막 뭐라 그러다가 사온걸 보고 놀래는거에요
(속으로 촌스럽긴 여긴 고급음식점의 대명사 파파이스라고 생각)
그러더니 '이걸 누가 다먹으라고?? 야야 종이수저를 여섯개나 줬다 봐라'
그러길래 그제야 엄청 당황해서
'이.. 이거 다 먹어.. 내.. 내가 좀 잘먹거든... 히히'
그러고 먹기 시작했는데 이게 줄지를 않더군요
그래서 여자애 화장실 갔을때 햄버거 포장지에 치킨조각이랑 감자튀김이랑
막 싸서 가방에 넣었는데도 치킨이 막 증식하는 것 같이 보였음
콜라 리필 그런것도 몰라서 목은 꽉 멕히는데 꾸역꾸역 한시간 넘게 걸려서
다 먹고 나왔는데 도저히 산책을 한다거나 커피숍을 갈 컨디션이 아니었어요
그래서 집에 가자고 그러니까 여자애가 '뭐 이런 병신이...'하는 표정으로
쳐다보길래 떠밀어서 집에 가는 버스를 같이 탔음
맨 뒷자석에 둘이 나란히 앉았는데 자꾸 사람들이 흘낏흘낏 쳐다보길래
그제서야 파파이스의 그 독특한 맵고달큰한 냄새가 목구멍에서 올라오는게
아니라 가방에서 풍기는걸 알았고
한마디도 없이 앉아가던 여자애는 집근처도 안갔는데
'먼저 갈께' 그러고 휙 내려버렸음
자는척하고 집까지 가서 가방 열어보니까 포장지 너덜너덜하게 다 풀려서
치킨이랑 감자튀김이랑 책이랑 막 뒤엉켜서 워크맨 이어폰 꽂는 곳에 닭뼈 꽂혀있고
그중에 가장 멀쩡하게 남은 치킨 조각 잘 털어서
접시에 담아서 안방에 엄마한테 갖다 드리니까
'왜 이렇게 늦게왔니... 밥 해놨는데 이런건 왜 사왔어... '
그러시는데 눈물이 왈칵 났네요
그게 인생 처음이자 마지막 소개팅이었습니다.
http://blog.naver.com/gariel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