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이 도무지 끝날 것 같지도 않아 보이는 이 추운 계절에
더 추운 광경을 어느 날 목격했다.
지하철 역 개찰구 앞에서 한 이십대 중후반 쯤으로 보이는 한 여성이
남자친구의 품에 안겨 흐느끼고 있던 것이다.
마스카라는 다 지워져 너구리 눈이 되었고 얼굴은 갓난아기처럼 새뺄개져서
주변이야 보든 말든 목 놓아 울고 있었다.
양복과 버버리코트를 걸친 그 남자 역시도
지나다니는 지하철 승객들의 호기심 어린 시선은 전혀 아랑곳하지 않고
어떻게든 필사적으로 그녀를 얼러가면서 설득하려고 했다.
그럼에도 여자는 계속 받아들일 수 없다는 듯, 울고만 있었다.
대체 그들에겐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 그냥 단순한 사랑싸움인가 아니면
심각한 이별이야기가 진행되고 있는 것일까.
헌데 내막이 궁금하기도 전에 내 일차적 반응은 뜬금없이
‘아 참 좋을 때다. 역시 연애는 좋은 거야’ 였다.
이런 불경스러운. 하지만 생각해보면 이 세상이 무너져내릴 것 같은 슬픔도,
온 몸이 마비될 것 같은 기쁨도 모두 연애가 가르쳐주었던 것 같다.
그만큼 결혼 전의 미혼여성에게 연애는 그만큼 중요한 일이었다.
내 경우를 되돌아보면 사랑이 인생의 모든 것이었던 때도 있었던 것 같다.
그 사람을 놓치면 난 아마도 그냥 죽어버릴 거야, 라고 정말 진심으로 당시엔 믿어
의심치 않았는데, 왠걸 호되게 차였어도(그 때도 올해처럼 몹시 추운 겨울날이었다)
여태 난 잘 살아있다. 심지어 뻔뻔하게 다른 남자랑 결혼도 해버리고 막.
어쨌든 그 모든 달고 쓴 사랑의 기억들을 종합해보자니,
난 어느새 이런 결론에 도달하게 되었다.
아무리 힘든 연애라도 안 하는 것보다 하는 편이 훨씬 낫다고.
최악의 남자라도 없는 편보다 훨씬 낫다고.
적어도 우리는 거기서 여러 가지 인생에 대해 배울 수 있고 성장할 수 있다고.
하지만 조금 세월이 흘러 되짚어보니 이런 논지는 다소 위험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뒤도 돌아보지 말고 연애할 수 있을 때 하라.’
‘내가 만신창이가 되더라도 그 상처마저도 감미로운 것이다.’ 같은 메시지는
모든 여자들한테 일괄 적용되기는 현실적으로 힘들 수도 있다.
어떤 여자들은 더 뻔뻔하고 터프하고 외향적으로 극복을 하고
심지어는 내가 먼저 그 질퍽한 세계에 들어가서
일을 벌리는 마는 ‘드라마퀸’의 습성조차 가지고 있지만,
또 어떤 여자들에겐 인생의 경험을 쌓기보다
차라리 마음의 상처가 오래 남지 않기를 더 바랄 수가 있다.
감당하기에 정말 힘겹다면 충분히 그럴 수가 있다.
지하철의 그 연인이든, 지금 연애하면서 고통스러워하는 커플이든,
과거의 상처 때문에 새로운 사랑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솔로든, 부디 상처가 힘겹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그럼에도 역시 나는 연애를 포기못할 것 같다.
대신 힘겨운 연애보다 ‘좋은’ 연애를 하도록 노력해보자고 유도하기로 마음 먹었다.
그렇다면 좋은 연애는 무엇일까.
그것은 미래에 헤어지는 일이 있더라도 연애하는 동안,
진정 사랑받고 있다고 실감할 수 있는 연애, 라고 난 생각한다.
사실 결혼으로 연결되지 않는 이상 우리는 모두 언젠가는 헤어진다.
하지만 적어도 연애하는 동안에 우리가 제대로 서로에게 몰입해서
사랑하고 사랑받은 적이 있다면 적어도 후회는 없을 것이다.
연애를 제대로 연애답게 했던 그 따뜻하고 행복한 느낌,
그걸 ‘기적’이라는 말 외에 그 무엇으로 표현할 수 있을까?
그리고 이것을 기적이라고 생각하면 모든 일에 겸허해질 수 있다.
나중에 무슨 일이 두 사람 사이에 있던 간에
‘그래도 그 때 나를 진심으로 사랑해줘 고마워’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발렌타인 데이는 그 기적의 느낌을 새록새록 새기는 날이 되었으면 한다.
어떻게 하면 남들과는 조금 다른 더 고급스런 초콜릿을 사거나 만들까를 고민한들
그것이 그들의 사랑을 더 특별한 것으로 만드는 것에는 한계가 있다.
사실 대다수의 기적은 ‘보이지 않는 것’에 존재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두 사람 사이에서만 통했던 그 저릿하고 애잔하고 설레고 몽글몽글한 그 느낌,
그것이 얼마나 두 사람을 행복하게 해줬는지를 기억하고
잠시나마 그런 기적의 순간들이 있었음을 겸허히 감사하게 생각하는 날이어야 한다.
솔로들도 마찬가지다.
‘흥, 누군 애인 있어서 좋겠네’라며 한 없이 우울해 해본들 연애세포만 더 죽을 뿐이다.
그녀들에게 발렌타인 데이는 만남에 대한 기대감, 기적에 대한 희망을 가지고
스스로 여러 기회를 만들어가는 신호탄으로 삼아야 한다.
연애를 발견하고 만나기 위해 좀 더 자신의 본성과 감성을 믿으며
먼저 능동적으로 행동하기를 다짐하는 날이어야 한다.
왜냐하면 기다려본들 연애가 먼저 알아서 내게 와주지는 않기 때문이다.
모든 연애는 기적이다. 그래서 그 기적에 감사하는 마음을 갖고 그 기적을 만드는
실천을 다짐하는 것, 그것이 우리가 맞이해야 할 발렌타인 데이일 것이다.
글/임경선(칼럼니스트)
[출처] [러브메신저 임경선] 발렌타인데이에 내린 기적 (마몽드 공식 카페: 카페 마몽드) |작성자 마몽드앤
출처 밝혔으니까 괜찮겠죠?
임경선님 말은 항상 진리인듯 ㅠㅠ 항상 맞는말만 하는것 같아
유희열의 라디오천국 헉소리 상담소도 꼬박꼬박 챙겨듣고
마몽드 카페에도 맨날 들어가서 읽어봐요
솔로라서 발렌타인데이 다가오니 짜증났는데 ㅎㅎ 노력해야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