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한도전 지난주편은 정말 감동이었다. 그런게 무한도전이다. 이번 동계올림픽편이 가르쳐준것은 그 안에 작은 삶이었다.
이번 무한도전에 미션중 마지막 미션은 정말 사람들이 살아가는데 그 삶을 넣어둔 것같았다. 사람들은 많은 다른 사람들을 만나고 그렇게 살아가며 무도멤버들이 올랐던 슬로프처럼 많은 역경을 받으며 살아간다.
하지만 세상이 그리 공평하지 않은 것처럼 또 다들 살아가는 각도가 다 다른것처럼 어떤 시련과 역경들이 자신에게 어떻게 다가오는지는 다 다르다.
어떤 사람은 발이 빨라서 뛰는 것에 대한 시련과 역경이 와도 쉽게 해낼수있지만 발이 느린 사람은 그에대한 시련을 이겨는데에는 더 많은 힘이 필요하다. 이와 같이 각자의 능력과 특화된 부분은 다 다르기에 어떤 역경이든 다 다가오는 각도는 다르다.
이번 무도의 미션 역시 그렇다. 운동을 많이하고 비교적 몸도 가벼운 재석같은 경우는 쉽게 올랐으며 그에 비해 비교적 재석보다 무거운 길은 쉽게 오르지 못했다. 이것은 개인적인 능력의 차이이지 길 때문이다!!라고 말하지는 못한다. 그저 길은 그 방면에 능력이 없었을 뿐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길을 보는 눈이 곱지 못했던 것은 믿음이라는 것때문이다. 사실 이번 무도는 믿음의 특집같았다. 어떤 시련이든 다가오는 강도가 다르기에 쉽게 오르는 재석이나 쉽게 오르지 못하는 길같은 사람이 발생하기 마련이다. 각자 다가오는 강도가 다르기에...근데 그럼에도 무한도전의 모든 멤버들은 등반에 성공햇다. 그것은 믿음때문이었다. 많은 멤버들은 서로 믿고 의지햇다. 다만 길은 그것이 부족했다. 먼저 올라간 재석은 많은 멤버들이 올라가기 쉽게 로프에 끝에서 자신의 몸으로 길이를 늘려주었다. 이것은 사회로 치면 앞서가는 사람이 자신보다 뒤처지는 사람을 위해 팔을 뻗어주는 것과 같다. 이 치열한 경쟁사회에서 하나라도 더 떨구려는 사회에 내가 대학에 처음 들어갈때 배운 함께라는 의미를 다시 살려주는 그런 모습이었다.
첫 엠티에서 우리는 고운 모래가 있는 곳에서 선배들에게 교육(?)을 받았다. 사실 교육이라기보다는 처음 들어온 후배들에게 동기의 필요성을 알려주는 그런 것이었다. 처음에 선배들은 고운 흙이 가득한 백사장에서 우리에게 미션하나를 내렸다.
"반화점을 돌아와라. 선착한 1등만 쉰다."
그렇게 우린 서로를 밀치고 하며서 반환점을 돌았고 결국 1등은 나왔다. 1등을 제외한 나머지는 다시
"반화점을 돌아와라. 선착한 1등만 쉰다."
이 말을 듣게 되었고 반복해서 뛰게 되었다. 하지만 뛰는 도중에 이상한 광경을 목격하게 된다. 바로 선착한 인원들이 교육(?)을 받는 장면이다. 그들은 선착을 했음에도 쉬는 것 대신 어쩌면 뛰고 있는 우리보다 더욱 힘든 교육(?)을 받고 있었다. 그렇게 몇번 반복했을때 선배들은 선착한 인원들을 다시 우리에게 함류시켰고
"반화점을 돌아와라. 선착한 1등만 쉰다."
이 말을 다시 하였다. 우린 어리둥절했다. 몇번을 뛰었고 1등은 계속 나왔다. 그러나 그들은 쉬지 못했다. 이걸 어떻게 해야한단말이가?
곧 그에 대한 해답은 선배들의 입에서 나왔다.
"너희들이 동시에 들어오면 다 1등이 아니냐?"
이 말은 색다른 충격이었다. 다들 1등을 하려고만 했지 공동 1등을 생각해본적이 없었다. 또한 선배들을
"어차피 너네는 이 학교에 들어와서 동기라는 이름으로 묶였다. 앞으로 대학생활에 서로 각자 다른 꿈을 가지고 살겠지만 적어도 동기라는 이름이 서로에게 의지가 되는 이름이어야하지 않겠느냐?"
라고 말했었다. 비록 대학을 다니는 동안 나는 과동기들과 그리 친하지 않았고 또한 다른 과아이들도 그 당시 기억은 '굴렀다'정도로 기억하고 넘겼지만 이번 무도는 그런 의미를 다시 살려주는 색다른 경험이었다.
재석의 행동처럼 남을 챙기는 모습이 멋있지만 이 챙기는 모습이 더 빛을 발하려면 화답하는 뒤처진 사람의 믿음이 있어야한다. 사실 사기가 판치고 남을 등쳐먹는 이 더러운 세상에서 남을 믿기란 쉽지않다. 이번 무도 특집에서도 길은 재석을 믿지못햇다. 물론 재석이 사기를 친다...이런 거에 대한 의심은 아니지만 자신이 행여 누가되지 않을까하는 불안함이 재석을 믿지 못하게 한것이다. 물론 그리하여 재석이 '넌 왜 사람을 믿지못하냐...'라는 말을 듣게된다. 사실 이 또한 어릴때 배우는 항목이다. 믿음...만약에 세상에 서로를 믿지 못하고 의심과 불신만이 쌓이는 세상이라면...얼마나 그 세상이 지옥이겠는가...
내가 읽은 무협소설중 박살이라는 책에 복이라는 인물이 나온다. 이 주인공이 무림맹이라는 단체에서 직책을 받고 일을 하게 되는데 그 임무중에 절명마검이라는 검하나를 회수하는 일이 있었다. 그 일을 수행하면서 복이는 시귀라는 인물과 마교의 부교주인 혈제라는 인물을 만나게 되고 시귀라는 인물에게는 태청단이라는 영약을 혈제에게는 임무인 절명마검을 준 죄로 무림맹에서 반역죄라는 죄를 씌고 재판을 받게 된다. 당시 복이가 시귀에게 태청단을 준 이유는 시귀의 손녀가 병에 걸렸고 그 병에 태청단은 큰 효용이 있으므로 준 것이었고 시귀는 그 보답으로 자신이 가지고 있던 절명마검을 복이에게 넘겨주었다. 그리고는 혈제라는 인물을 만나는데 복이는 혈제가 자신이 절명마검이 주인이라는 말에 검을 넘겨줬다. 물론 이 사연을 안 무림맹이지만 복이를 재판한것이다. 그에 복이와 함께 다니던 안현이라는 인물이 재판장에서 복이를 변호하는데 이런 대화를 한다.
"그런 일(시귀에게 태청단을 혈제에게 절명마검을 준 일)들을 하셨는데 아무 꺼리낌이 없었나요?"
"네!"
중략
"복이 당신은 절명마검을 어디서 났죠?"
"아저씨에게요."
"아저씨라면 시귀를 말하는 것인가요?"
"시귀가 누구요?"
"아 당신이 만난 사람이 시귀입니다. 이제부터 그 사람을 시귀라 통일하기로 하죠."
"그럴 이름으로 불릴분이 아닌거 같았는데..."
중략
"시귀가 왜 당신에게 절명마검을 줬죠?"
"선물이었어요"
"선물이요?왜 그가 절명마검을 당신에게 줬죠?"
"제가 태청단을 줬기 때문이죠."
"태청단이 엄청난 보물이긴 해도 절명마검과 비교가 되지 않는데 왜 그랬을까요?"
중략
"그러니까 시귀의 손녀가 주화입마(죽을병)에 걸렸는데 그것을 치료하는데 태청단이 필요했기때문에 주었고 그 보답으로 절명마검을 받았다이거죠?"
"아마 그럴껄요?"
"흠 그럼 왜 시귀에게 태청단을 주었죠? 이것은 당신에게도 매우 귀한 것일건데요?"
"말했잖아요!그분의 손녀가 아프다고 했다니까요?"
"그러니까 처음 본 사람의 손녀가 아프단말에 태청단을 줬단 말인가요?"
"예"
"왜요?"
"내참 그 사람의 손녀가 아프다고 했다고요. 그대로 두면 죽는다고요. 사람의 목숨이 왔다갔다하는데 그깟 영약이 중요해요?"
안현이라는 사람은 이말을 듣고 청중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내참 처음 본 사람의 손녀가 죽는다고 했다고 태청단이라는 희귀의 영약을 넘겨줬다네요 이사람 바보죠?"
안현의 말을 들은 청중들은 안현에게
"협의를 행한 사람에게 바보라니!!!"
라면서 성토한다.
중략
"그럼 혈제라는 인물에게 왜 절명마검을 주었죠?"
"그 사람이 자신이 주인이라고 했으니까요"
"그 말을 대뜸 믿었단 말인가요?"
"그사람이 자신의 것이라고 했고 거짓말처럼 보이지 않았는데요?"
"어떻게 남을 그렇게 쉽게 믿죠?"
"남을 믿지 못하면 어떻게 세상을 살아요? 남을 믿지 못하면 남도 나를 믿지않는다는거 안씨는 몰라요? 안씨는 그렇게 살고 싶어요? 나는 그렇게 살기 싫은데요?"
"남을 믿는 사회라 좋은 말이군요. 하지만 그건 이상이잖아요. 세상은 이상만으로 살아 갈 수 없는게 현실이죠."
"현실이고 이상이고 그 차이가 잘 모르겠지만 나는 사람을 믿어야 한다고 배웠어요."
"그렇죠. 저도 예전에 저희 부친께서 저를 무릎에 앉히시고는 이런말을 하셨죠. 사람은 믿어야한다고, 그래야 주변에 진실한 사람들이 많아진다고 말이죠."
그러자 주변의 사람들이 갑자기 숙연해졌다. 서로 등치고 사는 세상에서 자신들도 어릴땐 그런 교육들을 받았었다.
하지만 세상을 살고 나이를 먹다보니 점점 잊혀졌고 세상에 물들어갔다.
한편으로는 그런 사람들이 많았다면 이런 세상도 조금은 변햇을거라고 생각했다.
위의 내용은 그저 소설에 한부분일 뿐이지만 이또한 새로운 충격이었다. 하지만 전부 맞는 말이었다. 우리는 어릴때 사람을 믿어야한다고 배웠다. 하지만 세상에 살면서 세상에 찌들면서 많이들 이 사실을 잊어갔고 또 잊혀졌다. 비록 남에게 누가 될까봐... 또 속게 될까봐... 내가 피해를 입을까봐... 믿음이 줄어든 이 세상에서 이번 무한도전 특집은 다시 믿어보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비록 하나의 예능방송일지 모른다. 하지만 그 예능방송이 많은 사람들에게 이런 교훈들을 남겨준다는 것에 무한도전은 정말 역사를 써가고 있다. 내가 살아가는 이 시대에 이런 방송이 나왔다는 것에 정말 감사하다는 생각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