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령화 사회를 넘어 초고령화 사회로 넘어가고 있다는 얘기는 이미 피부로 느낄 수 있을 정도로 다가온 듯하다. 특히 버스나 지하철 같이 서민들이 많이 이용하는 대중교통을 이용해보면 쉽게 느낄 수 있다. 한창 바쁜 출근시간대 이후나 낮 시간, 그리고 퇴근시간에 임박했을 때 대중교통을 이용해보면 눈으로도 쉽게 알 수 있다.
나는 매일 아침 지하철을 타고 출근한다. 부모님께서 지하철역에 내려주시면 지하철을 타고 가서 10여분을 걸어서 출근한다. 출근시간에 늦지 않기 위해 꾀를 부려서 조금이나마 동선을 줄인다. 지하철에서 내리자마자 개찰구로 통하는 계단으로 나갈 수 있게 열차 칸 번호를 익혀두었다. 그 칸은 노약자석이 문 바로 옆에 있는 열차 칸이다. 그래서 아침 출근 때마다 노인 분들을 항상 본다.
지하철 노약자석은 버스 노약자석과는 조금 다르게 자리가 비어있어도 젊은 사람들은 잘 앉지 않는 게 특징이다. 글쎄, 왜 그런지는 잘 모르겠지만 열차 한 칸 좌석 수에 비해 노약자석의 수가 적기 때문인지 아니면 열차 칸 양끝에 있기 때문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보통 그렇다. 나 같은 경우에는 버스든 지하철이든 노약자석에는 잘 앉지 않는다. 그 자리에 앉아있으면 괜히 눈치가 보이고 매 정류장마다 노약자가 타나 안타나 신경 쓰는 게 싫어서 그냥 아예 앉을 생각 자체를 잘 안한다. 물론 피곤에 찌든 날이면 은근슬쩍 스스로를 설득해서 앉곤 하지만 말이다.
노약자석에 앉는 사람들을 보노라면 참 각양각색의 사람들이 그 자리에 앉는다. 나이가 많이 들어 보이는 사람, 걸음걸이가 불편한 사람, 산만한 등산 가방을 멘 사람, 짐이 너무 많은 사람, 배가 불룩한 임산부, 갓난아이를 안고 있는 엄마, 꼬마 아이를 데리고 앉은 부모, 다리에 깁스를 한 사람, 피곤에 찌들어 꾸벅꾸벅 졸면서 가는 사람, 술에 절어서 혼자서 모든 다리 독식하고 지나가는 사람들한테 시비 걸고 욕설하는 사람, 사지 멀쩡하면서 옆에 노약자가 있어도 스마트폰으로 수다를 떨거나 영화를 보거나 노래를 들으며 모른 척하는 사람 등 다양하다. 그러고 보면 글 하나를 쓰면서 자리 하나 같고도 여러 사람들을 되돌아 볼 수 있다는 것에 글의 끝없는 능력에 또 한 번 놀란다.
그러고 보니 노인과 관련된 에피소드가 하나 있다. 지하철을 타고 집에 가는 길이었다. 다행히도 퇴근시간대에 겹치지 않아 사람이 많지 않았다. 한적했지만 좌석은 모두 차있었고 서서 가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나도 느긋하게 앉아서 가고 있었는데 내 근처에 어떤 할아버지께서 서 계셨다. 나는 습관처럼 앉으시라고 자리를 비켜드렸으나 멀뚱히 서 계셨다. ‘혹시 못 보셨거나 잘 못 들으셨나?’ 하고 손으로 내가 앉았던 자리를 가리키며 앉으시라고 말씀드렸다. 그러나 그 분의 표정은 그다지 썩 좋아 보이지 않았다. 마치 ‘이 녀석은 뭔데 나를 노인네 취급을 하고 있나?’ 하는 듯한 짜증 섞인 표정의 도끼눈으로 날 노려보셨다. 허, 나는 호의를 베풀었을 뿐인데 그런 반응을 받으니 당황스럽고 기분이 나빴다. 그렇게 서있는 나와 그 호의를 기분 나쁘게 받은 할아버지 사이의 어색하고 어정쩡한 몇 초간 주위 사람들의 시선이 느껴져 내 얼굴이 벌게졌다. 하는 수 없이 나는 다시 자리에 푹 주저앉았고 그 할아버지는 아랑곳하지 않고 서서 가셨다. 그 할아버지께서 내리실 때까지 가시방석에 앉은 듯한 느낌을 받았다. 그 사건 이후로 노약자석엔 잘 앉지 않고 가끔 노약자석이 아닌 자리에 앉았을 때 노인분이 오시면 은근슬쩍 딴청을 피우거나 피곤해 죽겠다는 듯한 표정으로 창밖을 바라보는 그런 못 된 젊은이가 되기도 한다. 말하자면 아예 그런 빌미를 제공하지 않거나 모르쇠로 일관하는 것이랄까? 전자는 그나마 나으나 후자는 못 된 버릇을 들인 것 같아 ‘나를 이렇게 만든 것은 그 할아버지야!’ 하며 슬그머니 그 할아버지 탓을 하는 것은 아닌가 싶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스스로 반성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오늘 아침 출근길에 봤던 광경이 또 생각났다. 실은 이 얘기를 쓰기 위해 글을 시작했지만 사설이 너무 길어져서 갑자기 떠올랐다는 식으로 능구렁이처럼 어물쩍 넘어가고자 한다. 위에서 이미 말했다시피 내가 항상 타는 지하철 칸은 노약자석이 있는 칸이다. 오늘도 역시나 그랬다. 한 할아버지께서 노약자석 한 자리에 앉으셨고 중년 여성이 자기 큰 짐을 노약자석 한 자리에 올려놓고 그 앞에 서서 가고 있었다. 나는 그 할아버지 앞에 서서 갔다. 다음에 어떤 젊은 여자가 열차에 탔다. 딱 봐도 대학생이거나 20대 후반의 직장인 느낌이 나는 말쑥한 차림의 여자였다. 그 여자는 어디가 불편한 듯 머뭇머뭇 거리다가 나머지 한 자리가 남은 노약자석에 앉았다. 어디 몸이 안 좋은지 핸드백을 배에 꼭 품고 앞쪽으로 고개를 푹 숙인 채로 있었다. 그 다음엔 어떤 할머니께서 근처로 오셨다. 그 젊은 여자는 할머니가 근처에 계시다는 것을 눈치 채고 얼른 자리를 내드렸다. 그리고 자신은 열차 칸 사이 통로 쪽 벽에 서 있다가 그 자리에서 앉아서 가는 것이 아닌가? 표정은 괜찮아 보였으나 행동으로 보기엔 몸 상태가 그다지 좋아 보이지 않았다. 그러자 앉아 계시던 할아버지께서 일어서셔서 젊은 여자를 불러다 팔을 잡아끌어 앉히셨다. 그 여자는 괜찮다고 웃으며 정중히 사양했으나 할아버지의 호의에 황송한 듯 어쩔 줄 몰라 하며 자리에 앉았다. 그렇게 몇 한두 정거장을 가서 할아버지께서 내리시는데 그 여자는 감사하다고 안녕히 가시라며 연거푸 인사를 드렸고 할아버지께서는 별 일 아니라는 듯이 말없이 고개로 끄덕이며 인사를 받고 내리셨다.
마침 나도 내릴 역이라 따라 내렸다. 할아버지의 뒷모습을 보며 걸어가는데 복식이나 외양이 멀끔한 신사는 아닌, 쪽빛 트레이닝복에 흰 헝겊 운동화 차림의 보통 동네 할아버지였음에도 굉장히 신사답고 멋지게 느껴졌다. 요즘에 보기 힘든 노인과 청년의 훈훈한 광경이 아닌가 싶어 그 때 흐뭇한 감정이 아직도 느껴져서 이렇게 장문의 글을 쓰게 되었다.
며칠 전에 한 유명 포털사이트 메인에 “무개념 노인들” 이란 주제의 글들이 올라가 있는 것을 봤다. 좀 너무하다는 느낌을 들게 하는 노인들에 대한 글도 있었지만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라고 그 밖의 노인들을 옹호하는 글들도 있었다. 내가 봤을 때도 좀 유난히 나이를 생색내거나 대놓고 투정을 부리거나 심지어 비키라고 화를 내는 분들도 있으나 그것은 몇몇 극심한 분들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노인들이 점점 많아지면서 상대적으로 그런 사람들이 늘어나지 않을까 하고 산술적으로 생각을 해보지만 꼭 그렇지만도 않을 것 같기도 하고 참 복잡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확실한 것은 앞으로 노인과 청년 사이의 문제가 늘어나면 늘어났지 줄어들지는 않을 것이라는 것이다.
노인 분에게 자리를 양보하는 젊은 여자와 젊지만 몸이 안 좋은 젊은 여자에게 자리를 양보하는 사려 깊은 노인 분. 초고령화 시대에 진입한 우리 사회에 앞으로 생길 우려할만한 세대 간 문제들에 대한 해답을 이 두 사람을 통해서 얻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며 그 광경을 곱씹으며 가슴 속엔 아직도 미소가 번진다. 역시 사회가 아무리 삭막해지고 차가워지고 있다고 해도 노약자석엔 아직 온기가 남아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증거가 아닐까?
이 글을 쓰면서 예전에 나의 호의를 거절해서 나를 무안하게 만들었던 그 할아버지를 용서 아닌 용서를 하고 어렸을 때처럼 노인공경을 잘 하는 젊은이가 되도록 노력해야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이 졸렬한 글을 읽는 여러분들도 오늘 하루쯤은 자리를 기꺼이 내줄 수 있는 (설령 나처럼 거절을 당할지라도) 그런 사람이 되어보는 것은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