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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지우펀에는 계속 안개가 꼈다.

김진형 |2011.03.17 23:56
조회 2,944 |추천 4

 아침 잠이 없는 아버지는 일찍 일어나서 아침 산책을 나설 채비를 하셨다. 아버지에게는 아침 산책일지 몰라도, 평일에도 8시에 일어나는 게으른 직장인에게 새벽 5시는 밤에 가깝다. 아니, 아직 해가 뜨지 않았으니 밤이 맞다. 일어나고 싶었으나 심순애가 이수일을 붙잡을 때처럼 침대가 나를 절대 놔주지 않았다. 반만 일어난 기묘한 자세로 한참을 고민하다가, '집에 잘 가지도 않는 불효자, 이럴 때라도 의리를 지켜야 겠다'는 의지로 일어났다.

 

 바다 쪽은 여전히 안개가 가득했으나, 마을 쪽은 안개가 없었다. 골목을 이리저리 옮겨다니며 지우펀 초등학교까지 올라갔다. 마을은 어둠에, 적막에 휩싸여 너무나 고요했다. 모두 자고 있을 때 일어나 있는 것은, 모두가 출근할 때 휴가를 내고 노는 것처럼 짜릿하다. 물론 밤새 고스톱을 치거나 게임을 하느라 못잤다면 죄책감이 들게 마련이지만, 가끔 밤새 공부를 하거나 야근을 하느라 잠못들고 있을 때는 왠지 모를 뿌듯함이 느껴진다.

 

 밍셩 템플 뒤 언덕에서 사원 지붕 너머 바다를 봤다. 바다 쪽에 있던 안개가 육지로 점점 올라오는 모습이 장관이었다. 안개는 재난 영화에서 주인공들을 뒤따라 오는 허리케인, 마그마, 식인 상어처럼, 눈에 보일만큼 빠른 속도로 올라와 금새 우리를 덮쳤다. 그런데 아 젠장, 그냥 안개가 아니라 비를 동반한 안개였다. 어제는 나쁜 일도 잘 생각해보면 좋은 일도 어쩌구 하면서 잘 넘어갔지만, 지금은 이성이 제대로 작동하기 전의, 그러니까 무의식이 나를 지배하는 밤 시간이다. "정말 지긋지긋하게 비가 오는구나" 한숨을 내쉬며 호텔로 돌아왔다. 레인 자켓을 입고 다시 호텔 아래 동네로 산책을 나가는 아버지의 뒷모습에는 존경을 표시한다.

 

 침대에 다시 누워 봤으나 이미 잠이 다 깼다. 소파에 앉아 바다를 아니 바다를 뒤덮은 안개를 보며 일기를 조금 썼다. 아 그런데, 그런데, 거짓말처럼 안개가 순식간에 다 걷혔다. 아까 그 재난 영화에서 모든 역경을 딛고 살아남은 주인공 커플이 마지막에 키스를 할 때처럼 말이다. 얼른 카메라를 들고 테라스로 나가서 인증샷을 찍었다. 그리고 호들갑을 떨며 온 가족을 다 깨웠다. 매번 여행을 할 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역시 난 여행 운이 억수로 좋은 사람이다. 내 여행 운은 지우펀의 안개도 걷어낸다.

 

 

 

 

 

마침내 모습을 드러낸 지우펀 앞바다

 

 

 

 

저 멀리 항구까지 다 보인다.

 

 

 

 

잠시 후 안개는 다시 마을을 삼켜버렸다.

 

 

 

 

 

 여자들은 아침에 준비를 하는데 오래 걸린다. 여행을 하기에는 아침에 일어나서 씻고 밥을 먹고 사무실까지 가는데 40분이면 충분한 나 같은 사람이 (그래서 8시에 일어날 수 있다) 훨씬 유리하다. 여튼 우리 집 여자들이 준비를 하는 동안 아버지는 뉴스로 일본 소식을 보고, 나는 산책을 나섰다. 밤에는 잘 몰랐는데, 아침에 보니 집집마다 아기자기하게 장식을 많이 해 놓았다. 간판도 지나치지 않게, 정성스럽게 꾸며 놓았고, 꽃이나 화분을 내놓은 집도 많았다. 이런 세심한 배려들이 모여서 지우펀을 아름답게 하는 것이다. 디자인 서울을 한답시고 인공적으로, 억지로, 강제로 도시 디자인을 하고 있는 서울시장님께서 꼭 보셨으면 한다.

 

 호텔 바로 옆에 있던 작은 사원에서는 노래를 틀어놓았다. 반복적인 멜로디가 반복되는 (이런. 반복되는 말을 반복했군) 중독성 있는 음악이었는데, 종교 음악인 듯 했다. 누군가 아침 일찍 청소를 하고 향도 피워놓았다. 향 냄새가 나는 곳에 들어가면 왠지 경건해진다. 나를 따라오던 누렁이도 냄새를 맡고 경건해졌는지 사원 안으로는 들어오지 않았다. 영특한 것. 평소 같으면 사원에 들어올 때마다 맞아서 몸으로 익힌 것이라고 생각하겠지만, 묘한 음악이 흘러나오는 안개에 쌓인 사원은 개도 영적으로 보이게 만들었다.

 

 사당에는 너무 많은 분이 모셔서 있어서, 도대체 누구를 위한 곳인지 알 수 없었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한 곳에 사당을 지어놓고, 각자 자기가 믿는 신을 모셔다 놓으면, 누구나 다 가서 기도를 할 수 있으니 좋을 것 같다. 십자가도, 부처님도, 비쉬뉴도, 알라도, 기타 잡신들도 모두 있는 곳 (피스라고 이름을 붙여보자)이 있다면, 그래서 피스에 기도하러 온 사람들끼리 서로 인사도 하며 친해지게 된다면, 상대방의 신에 대해 묻고 대답하며 이해하게 된다면, 종교 분쟁 같은 것도 없지 않을까. 피스 마다 싸움이 일어나는 것이 더 현실적인가.

 

 

 

 

 

 

 

 

 

 

 

 

 

 

 

 

 

아침 안개 속의 지우펀

 

 

 

 

 

 

 

 

피스에 모셔놓은 신들

 

 

 

 

 

 

 

 

 

 

 

 

 

 

 

 

 

 

 

 

 

 

 

 

 

 

 

 

 

 

 

 

 

 

 

 

 

지우펀의 아침

 

 

 

 

 

 

다시 호텔로 돌아와 짐을 싸고 아침을 먹으러 갔다. 아침은 커피와 샌드위치였는데, 둘 다 훌륭했다. 커피는 사이폰으로 내려 줬는데, 평소에 사이폰 커피는 화학 실험을 하는 것 같아 싫어하지만 (직업상 물이 역류하는 것을 보며 "PV=NRT에 의해 온도가 증가하면 압력이 증가하는구나" 하고 생각을 하게 된다), 아침에 먹기는 깔끔하고 좋았다. 샌드위치도 정성이 가득 들어간 것이 느껴졌다. 대만 음식에 불만이 많던 우리 어머니도 이 샌드위치만큼은 아주 만족하셨다. "헌 하오 츠 (정말 맛있다)" 라고 했더니 만들어주신 분들은 매우 기뻐하셨다. 역시 현지 말은 조금이라도 배우고 써먹어 볼 일이다. 내친 김에 동생에게 "처숴 짜이 날?(화장실 어디에요?)"을 가르쳐줬다. 동생은 성조를 할 수 없기 때문에 대만 분들이 알아듣지 못할 것이라고 내심 기대했는데, 바로 화장실이 어딘지 알려주셨다. 선생님한테 성조가 중요하다고 지겹게 들었는데...... 왠지 기분이 나쁘다.

 

 

 

아침을 준비하는 분들

 

 

 

 

이 과일 정말 맛있었는데 이름이 뭐죠?

 

 

 

 

사이폰. 바로 옆에 내가 그토록 갖고싶어하는 동 포트

 

 

 

 

 

맛있는 아침

 

 

 

 

 

아침을 먹고 지아링을 불러 체크아웃을 했다. 새벽에 안개가 잠시 물러났을 때 찍었던 사진을 보여줬더니 깜짝 놀랐다. "언제 이렇게 맑았어요?" 그러게 말입니다. 그녀는 이번에도 지우펀 입구까지 스쿠터로 짐을 실어줬다. 가족 경영(?)을 하는 B&B는 다들 이렇게 친절하다. 지우펀에서 택시를 타고 다시 루이팡 역으로 내려갔다. 택시 기사는 실타래처럼 얽힌 꼬불꼬불한 길을 엄청난 속도로 내려갔다. 직선을 달릴 때의 속도와 커브를 돌 때의 속도가 별로 차이나지 않았다. 수시로 눈 앞을 가로막는 스쿠터들도 그에게는 별 문제가 되지 않았다. 슈마허가 와도 여기서는 이렇게 운전할 수 없다. 세계 어디에서나 택시 기사들은 운전을 잘 하는 것 같다. 잘 하는지 잘 못하는지 사실 잘 모르지만, 이럴 때는 잘 할거라 믿는 것이 마음 편하다. 올 때의 반도 안되는 시간에 루이팡 역에 도착했다.  

 

 

 

 

 

 

 

지우펀 입구에 있는 밍셩 템플

 

 

 

 

택시 기사가 모셔 놓은 분. 달마대사인가? 여튼 이 분께서 택시를 지켜주시니 우리는 안전할거다

 

 

 

 

 택시 기사가 빨리 도착한 덕분에 시간이 남아 루이팡 역을 어슬렁거리면서 사진을 찍었다. 마침 저 쪽에서도 어슬렁거리면서 사진을 찍는 사람이 있었는데, 리코 GR1V를 들고 있었다. GR1V 마크가 눈에 띄도록 세심하게 주의를 기울여 들고 있었던 것은 아니고, 대충 들고 있었지만 내 눈에는 딱 들어왔다. 정말 갖고 싶었지만 물건이 잘 없어 왠만해서는 구할 수 없는 (물론 돈만 주면 구할 수 있지만 적당한 가격에는 구할 수 없는) 필름 카메라다. 이럴 때는 아는 척을 해주는 것이 예의다.

 

"그거 리코에요?"

"네 GR1V에요 (GR1S보다 한 단계 위라는 것을 강조하기 위함)"

"한 번 봐도 돼요?"

 

손에 딱 들어오는, 정말 예쁜 카메라다. 뷰파인더도 마음에 든다. 나라도 이런 카메라라면 절대 팔지 않을 것이다. 중고 시장에 잘 나오지 않는 이유가 다 있었다.

 

"이거 얼마 주고 샀어요?"

"@#%(기억안남) 홍콩 달러요"

"아... 홍콩에서 오셨어요?"

"네. 이 카메라 참 구하기 힘들죠?"

 

 그의 미소에서는 자부심이 느껴졌다. 그 카메라보다 5배는 비싼 디지털 카메라를 어깨에 매고 있었음에도 나는 그가 부러웠다. 친구들과의 모임에 김태희만큼 예쁜 여자친구를 데리고 온 남자도, 아니 김태희를 데리고 온  남자도 이런 미소는 지어주지 못한다. 구할 수 없는 카메라란 그런 것이다.

 

 

 

 

 

 

 

 

 

 

 

 

 

지우펀 역

 

 

 

 

 

 화리엔(花蓮 화련) 행 열차가 도착했다. 타이페이에서 화련에 가는 열차로, 중간에 지우펀에도 정차를 한다. 대만에 잠시 사셨던 박재붕 대리님이 귀뜸해 주신 대로 화련 가는 길은 정말 예뻤다. 밀림을 통과하는가 싶더니 어느새 해안을 끼고 달린다. 왼 쪽은 바다, 오른 쪽은 산이고 중간 중간에 작은 마을을 지나간다. 바다 색은 코발트 블루였다. 괴물같은 건물들이 뒤덮은 타이페이와 달리 작은 마을들은 아기자기하고 예뻤다. 길가에 나와서 손을 흔들어주는 동네 아이들은 없었지만, 꼬리를 흔들어주는 소는 많이 보였다. 언제 비가 내렸냐는 듯이 날씨도 좋았다. 모든 것이 완벽했다. 그러니까 약간의 허기와 주체 못할 호기심으로 도시락을 하나 사기 전까지는 말이다.

 

 밥과 닭 요리가 들어있는 간단한 도시락이다. 열차에서 이 도시락을 먹는 분들을 정말 많이 봤으므로, 우리 나라에서 김밥 도시락만큼이나 이 도시락이 대만 국민 도시락임은 분명 하다. 하지만 대만 국민 여러분께 정말 죄송하게도 그 도시락은 정말 맛이 없었다. 딱히 비위가 상하는 냄새가 나는 것도 아니고, 향신료를 너무 많이 넣어 역한 것도 아니었는데, 뭐라 딱 꼬집어 표현할 수 없게 맛이 없었다. 그 도시락을 먹고 대만 요리에 대한 입맛을 영원히 잃어버린 우리 어머니는 그 후로 비싼 음식만을 드셔서 여행 자금을 간당간당하게 만들 정도로 이상했다.

 

 

 

 

 화련행 기차

 

 

 

 

루이팡에서 화련까지 3시간 정도 걸린다. 가격은 282*40원. 계산하기 귀찮네.

 

 

 

 

 

 바다 건너 거북이 섬

 

 

 

 

 계속 거북이 섬을 보면서 달린다

 

 

 

 

 

논에 하늘이 예쁘게 반사되었으나, 능력이 부족해 못찍었다.

 

 

 

 

 

 문제의 도시락

 

 

  

 아 이 무슨!!!

 

 

 

 

 

 그래도 바다는 참 예쁘다.

 

 

 

 

 

 코발트 블루!!

 

 

 

열차는 수 많은 역을 정차한 후 화련 역에 도착했다. 역 앞에서 "타로꼬 투어" 호객행위를 하던 택시 기사는 우리가 차를 렌트할 것이라고 하자 바로 렌트카 영업사원으로 바뀌었다. 그를 따라 포니 렌트카로 갔다. 스쿠터를 빌려 주는 것으로 외국인들에게 유명한 곳이다. 홈페이지도 없으니 자신들은 아마 자신들이 인터넷에서 유명하다는 사실을 모를거다. 1600CC 자동차를 하루 빌리는데 2000 NT$, 우리 돈으로는 8만원 정도 한다. 과속이나 신호 위반을 하게 될 경우 물게 될 무시무시한 과태료에 대해 설명을 듣고 타로꼬로 출발했다.

 

 

 

 우리가 빌린 닛산 리비나. 핸들이 너무 무거워서 힘들었다.

 

 

 

 

 

타로꼬로 출발!!!

 

 

추천수4
반대수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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