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유학생활과 이민생활에 온 우울증 어떻게 고치었나면요.
안녕하세요? 저는 지금 30살된 미국에서 살고있는 사람입니다. 한국에서 16살때 호주로 유학을 갔었던 사람입니다.
16살 혼자떠난 유학생길
아무것도 모르고 무작정 유학을 가겼냐는 엄마의 말에 허락을 했다.
와서 친척이라는 고모를 만났고 만나지 얼마 안되서 살고 있던 하숙집에서 잠깐 방문을 하였던 고모에게 전화가 와서 나의 짐을 다 싸놓았다면 갇고 나가라 했습니다. 제가 호주집에서 하숙을 했는데 하숙집 아줌마에게 영어배우는 학교가 집에서 너무 멀어서 옮기고 싶다고 한적이 있습니다.
그말을 들은 하숙집 아저씨가 일을 갔다와 그걸 듣고 화가난지 친척고모에게 욕을 퍼부었다고 합니다. 저는 뭘 어떻게 할지 몰라서 엄마에게 연락했고..엄마는 유학원에다가 전화를 해서 어떻게 되었냐구하니깐 유학원에서 급희 다른집으로 옮기게 했고 난 영어도 잘안되는데 어쩔주 모르며 두려움에 떨었고 그고모는 당신 이민생활에 이런일 까지 끼어들기에 힘들다 하셨고 나는 하나의 상처를 내맘속에 닮고 그집에 가서 무작정 짐을 싸 택시를 타고 이사를 했음니다.
상처하나-아무도 모르는 외국에 와서 만난 친척의 도움을 주지않았던것.
그 이후로도 많이 이사를 다니면서 집이라는 계념이 없어서 그것이 가슴에서 쌓이기 시작했어요.
상처둘-집 없는 서러움.
아직도 인종차별이 있는 세상
언어학교를 마치고 고등학교 1학년 그러니깐 호주에서 말하면 Year 10 2학기를 들으면서. 버스에서 의자에서 안지 못하게해서 하루는 너무 서러워서 교장에게 이야기를 하고 따졌는데 그 버스안에 있는 아이들에게 인터뷰를 하고 그들은 나에게 아무짓도 하지 않다고 하였습니다. 저는 거짓말쟁이로 몰았고 전 징계로 휴지를 주었지요. 그러고선 인종차별은 계속하여 진행되었고.학교에서는 걸어당기면 2층에서 아이들이 제 머리위에 침을 벧었지요.
상처셋-인종차별.
경제적 충격. 너무나 좋은 나이드신 부부의 배려. 불투명한 나의 앞길.한국사람들을 알고 기대기 시작.
IMF 으로 경제가 좋치않는 상황에서 지내던 하숙집에서 하숙갚이 원래 주에 $180 인데 $130 으로 깍아주신 믿기지 않은 그런일들이 있었다. 가족처럼 너무 잘해주셧다.
고등학교 졸업하지 못하게 생겨서 10학년을 마치고 다닐수 있는 전문대 호주에서는 TAFE 이란곳을 다니기 시작했어요. 유아교육을 하고싶었지만 18살이 되지않아 관광과를 갇고 집에서 너무멀어서 좋으신분들을 두고 한국 같이 공부하는 언니와 같이 살게되면서 힘든 나날들을 보냈다. 한 선생님이 나에게 하루는 그랬다 힘들게 그렇게 살지 말고 부자 돈많은 남자 만나 결혼하라구…
상처셋-돈없어서 서러움. 하고싶은 공부 못하고 불투명 했던 나의 미래.
힘들지만 너무 하고싶던 유아교육과 그리고 계속되는 인종차별.
너무 유아교육을 하고싶은 난 엄마에게 부탁했다 전문대가서 이것만 맞추고 한국 가겠다고. 열씨미 하면서도 외롭고 힘든 공부를 하며 실습을 나간적있다. 그곳에 있는 원장은 나에게 2쨰주 실습하면서 나에게 나의 영어실력과 아이들이 날 불편하다했다. 너무 충격받은 나는 학교에 있는 선생에게 상담했고 그분조차도 유학생에겐 힘든 코스라했다.
너무 서러운 나머지 포기하고 싶었지만 엄마는 나에게 캠퍼스를 바꾸어 보라하였고 난 그렇게 결정하고 갔다.
상처넷-계속되는 인종차별은 외국에 살면서도 한국사람에게 더욱 기대기시작.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 한국가서 만난 미국에 산다는 친구.
캠퍼스를 옮기니 호주사람들 별로 없고 중국, 대만, 일본, 한국 학생들이 있었고 난 실습가서 우수한 성적을 땄다. 난 그전에 있던 캠퍼스에가서 그사람들에게 똑똑희 보여주고 싶었다. 내가 할수있다는것을.
그해에 한국방문을 했고 어떻게 알게된 친구가 있는데 말이 너무 잘통하여 멀리서라도 사귀어 보기로 했다.
상처다섯-나에게 할수없었닸던사람들의 향한 분노감.
유아교육 정식대학교. 내가 걸으면서 말로 고백한 꿈들. 생각지도 못한 영주권 땀
내가 23살 데던 해에 유아교육 정식 대학교로 옴기었다. 그때에 친구를 통하여 교회에 나가기 시작했고. 열씨미 하다보니 많은일들을 하고 친구도 마니 만나며 가끔 찬양할때 가슴속에서 울음이 나왔다. 어렸을때부터 다니었던 부모님 등에떠밀러 갔던 교회라 하나님이 나를 위해 죽고 내가 그걸 믿으면 천국가는 지식은 알고 있었다. 그런데 찬양할떄 뭔가가 뜨겁게 나의 가슴을 감쌌다.
그해에 영주권을 신청할기회가 왔다. 16살전에 유학을 오면 그 시기가 사춘기시절이라 다시 살던 나라로 가면 적응힘듬이라는 이유로 하는 영주권이 이었다. 하지만 조건은 16살 전에 4년 이상으라는 시간을 보냈어야했다.
그런데 어는 사람이 16살에 와서 2년정도 호주에 살았고 이사람이 이 종류의 영주권을 신청해서 불합격이 되어 그사람이 고소하여 이겼다.
그래서 내가 그 사항에 들어가 신청할수 있었다. 어찌댄일인지 영주권이 나왔다. 그래서 난 교회에서 열씨미 일해서 영주권 선물로 하나님이 주었나보다 생각했다.
그후 얼마안되서 내가 살고 있는 동네에 무슬람아이들이 만이 살고 동양사람들이 만이 사는 그런동네. 이런동네라도 유치원에 취직하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얼마되지 않아 엄마가 이젠 직장을 잡아보라 했다. 그래서 첫번재로 신청한곳이 내가 살던 그동네 있는 유치원 이었고. 취직이 되었다. 그래서 이것도 하나님이 쓰실때 팍팍 쓰나보다며 좋아했다. 그해에 얼마 안되 친 오빠가 워킹할레데이 비자로 호주로 와 나랑 같이 살게되었다.
운이 좋아 생긴일들 (하나님이라는분에서 온것들일지도 모르는것들)-영주권. 직장. 친오빠의 방문
친오빠의 떠남.친구들의 떠남. 직장에서 오는 스트레스들. 멀어진 교회. 술과 담배 시작.
이젠 친오빠와 친구들이 한국에 돌아가면서 난 같이 열씨미 교회를 다니었던것들을 마치고 같이 일하는 사람들과 어울려 술과 담배를 즐겼다.
아이들은 엄마만 키우는 집이나 가정폭력에 상처입은 아이들이 40 퍼센트가 와서 아이들에게 솓은 사랑은 구멍난 항아리에 물을 붇기시작해서 힘들었다.
상처 여섯-친오빠와 친구들의 떠남은 외로움으로 외로움는 담배와 술로 채우려 했다. 멀어진 교회.
다시만난 미국에사는 남자친구 방문과 심해진 우울증과 싸움.
매일 몇년 통화만 하다가 멀리 미국까지 가서 한다보내고 오면 우울증은 심해졌다. 돌아와서 너무 힘들어 술 담배를 끈고 교회를 다시 찻아감.
너무 힘들어서 정말 살기가 힘들어 교회를 찻아갔다. 하지만 옛날같지 않아서 찬양팀에 들어 그 뜨거운 무엇인가를 다시 느껴보고싶었다. 하지만 예전 같지 않았고. 또 찬양팀에 리더에 난 상처를 받아 한 교회 머물지 않았다.
남자친구는 나에게 가슴에 하나님이 없다고 해서 내가 믿었던 남자친구마져 날이해해주지 못하는것같아서 서러웠다. 정신과를 가보라고 나에게 권면했고..난 그가 날 미친사람으로 모는거 같아서 힘들었다.
어떤 기독교 서적을 접하게되었다. 우울증을 어떻게 치료하는것에데해. 그중 내가 기억나는 것은 어렸을떄 어린시절보다는 어른인척 모든걸 해결하는 것이 우울증하나의 증상이었다. 그래서 그 책에 나오듯 엄마에게 전화해서 내가 원망해서 미안하다구 날 용서하라고 했다.
하지만 엄마는 속상한지 쓸때 없는 생각 말라했다.
또 하나의 책은 삶의목적 이것또한 기독교 서적이었고 요약은 하나님은 우리를 만드시고 그아들 예수그리스도를 보내어 우리의 죄를 대신하여 죽었으니 우리는 그분을 믿고 영생을 얻으매. 우리는 다른 사람에게 이것을 각자 주어진 탤런트를 갇고 살아야된다는것. 머리로 이해하고 그때 잠깐 나에게 위로 되었지만 난 다시포커스를 남자친구에게 주었고. 그와 결혼하는것이 나의 마지막 꿈이 었다.
그래서 한국가는 대신 살을 뺴서 남자친구를 2번쨰로 미국 방문 하기로 했다.
외모에 신경쓰던 나는 신용카드로 비싼 옷을 사고 운동을 심하게 하면서 외모꾸미는데 목숨을 걸었다.
상처 일곱-남자친구가 날 미친사람 취급. 엄마가 나의 우울증을 인정하지 않음
교회에 대한 상처
운이 좋아서 보게된 책들 (하나님이 불쌍해서 내려준 선물?)
계속되는 우울증 남자친구와 어디서 살꺼있지 다툼 그리고 임플란트
계속되는 우울증에 나는 남자친구에게 호주에 오지 않는다면 헤어지자고 했고. 남자친구는 해봐서 중간에 안되면 주님의 뜻이 아니라 생각하고 미국으로 오는것이라 했고. 갑자기 뺴야한 이는 돈이 엄청나게 들어가는 일이 생겼다.
남자친구온다는 기대했다가 실망감과 더욱 심해가는 우울증
내가 호주에서 미국으로 가야하는 두려움. 매일 같은 인생에 새로운것이 필요했다.
내가 호주를 떠나고 9년 안 남자친구를 믿고 다시 시작 해야하는 두려움은 내가 무엇인가 바꾸어야 한다 생각했다. 그래서 직장에대한 스트레스를 내 우울증으로 확신 시키고 6년 일한 유치원에 가서 스트레스 돈을 다주는 휴가후 은퇴를 요구 했다. 하지만 그들은 내가 일떄매 그러는것이 아니라 정이 들었는데 직장을 옮기기 힘들어서 그런거 같다고. 내가 의사한테 따온 일 떄문에 스트레스라는 것을 인정하지 안으며 만약에 내가 그것을 계속 대응하면 그사람들은 날 고소하겠다고 하였다. 난 정말 너무 힘들었다 답이 나오지 않았다 그들은 나에게 1주일 특별한 휴가와 은퇴를 권면하였다. 난 그렇게 하기로 하고 정신과를 방문 하기로 하였다.
상처 8-사람에게서온 배신감.
정신과 방문
정신과 의사는 나에게 “행복을 다른 사람에게 찻으려 하세요”? 라고 물었고
처방된 약을 갇고 집에오면서 더 힘들었다
상처 9-나의 고생한맘을 모르는 서러움
새로운 직장. 나의 서러움을 갚아줌.
새로운 유치원 을 다니며 조금더 높은 지휘에서 원장이 주는 스트레스와 우울증. 미국으로 도망갈 생각뿐이었다. 그와중 원장에 대하여 만은 사람들이 불평을 했고 정식적으로 나와 더불어 만은 사람들이 그사람을 고발했다.
그때 기분은 내가 당했던것들이 갚아진거 같아 좋았다.
상처-갚은거 같으면서도 기분이 좋치 않은 기분. 또 심해지는 우울증.
드디어 미국 도착. 차가업으면 움직이 못하는 번화되지 안은 동네.
와서 좋았다. 하지만 심해지는 우울증. 목소리들이 들리기 시작 죽으라고.
내 힘으로 절대 되지 않아 정말 마지막 이라 생각하고 기도를 했다.
쉽게 놓아지지 않는 상처들. 내가 갇고 있는 소유함이 나를 소유했다는것을 보게됨.
그떄 어렸을떄 이후로 하나님은 나에게 먼 존재였다. 그리고 죄지면 날 도와주지 안을 꺼라는 생각을 하고 살았다. 그래도 기도시작 해보았다. 그런데 하나님이라신 분이 날 조건업이 사랑해준다는거라는거이 이해가 안됬다.
옆에서 남편은 계속하여 기도하라 용기를 주었고. 내속에서 살았던 상처들과 서러운 영혼들이 있었다. 또한 시기 질투 두려움 그리고 원망하는 영혼들도 있었다.
굶으며 하는 기도는 어렷을때 엄마나 아빠가 하는것지 보았지 난 첨으로 마지막 기회라 생각하고 기도했다. 기도하면 할수록 내 속에 있는것들은 날 떠나지 안으려했다. 하지만 내가 예수그리스도 이름으로 계속하여 물리칠때 그영혼들은 괴로워 하며 나에게서 나갔다.
하나님의 조건없는 사랑을 받는것.
계속해서 기도하니 가슴이 따듯하며 내 속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내가 받아들이기 시작하며 더욱 힘입어 날 누르는것들을 물리쳤다.
마지막으로 용서못했던 아는 교회 사람도 하나님이 용서하면서 끝까지 날떠나지 않았던 영혼은 떠났다.
나중에 알게된 나의 현재.과거.미래.
하나님은 내 맘속에 와서 나에게 그랬다 난 하나님이 내가 그분을 알고 믿으면서도 보이는것에 기대고 기대하며 살았지만 그분은 날 위해 만은 사람과 책을 통하여 구해주려 했지만 내가 계속하여 죄를 지으며 가족을 미워하고 사람들을 질투하고 경멸하며 복수와 화냄과 서러움을 술과 담배와 사람에게 의존하며 그많은 나쁜영들을 먹이를 주면서 크게 키웠다고 하였다.
그래서 난 자살을 하려 했지만 주님이 심어놓은 소망의 씨 나의 남편. 주님을 위해 일하시는 자랑스런 엄마아빠의 기도, 날 알지만 잘모른 사람들에 기도때문에 내가 용기를 내어 하나님께 다시 돌아와 구해달라고 했다고 한다.
과거에도 하나님은 나의 꿈을 들어주셨고 그안에서 내가 그아이들과 주님을 믿지만 힘들어 하는 사람에게 소망의 씨가 되도록 도와주셨지만 난 죄를 계속지면서 나의 의지대로 미국으로 온것이다. 그나쁜 영들과 함꼐…
하나님은 나에게 내가 돌고 돌았던 산들이 얼마나 힘들었는지 인간으로써. 하나님이 없으면 죄라는 것은 보이고 좋아보이지만 그것은 죽음으로 몰아간다는것. 아무리 인간은 온전치 않아 죄에 조금이라도 빠져있으면 끝까지 가는것이 인간이기에 우리는 하나님이 필요하다고 하셨다.
난…
이제 그 나쁜영혼에서 자유을 얻었다.
어떻게?
교회가서?
헌금을 내서?
내가 미쳐서?
내가 오랫동안 사귄 남자친구 였던 남편 때문에?
하나님이라는 분께 물어보기만 하면된다.
난 방안에서 조용희 하나님 나좀 도와달라했을뿐인데
우리가 죄를 짓고 돌아와도 우리가 그것을 회개하면
조건없이 우리을 사랑해주시고 그 어둠에서 구해주신다.
내인생을 볼떄 하나님이란분 믿어볼만한 분 아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