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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마니아 여행기 (10) 시게투에서는 히치하이킹이 개념!

조용석 |2011.03.22 03:24
조회 2,927 |추천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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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마니아 여행기 (1) 여행을 결심하다.루마니아 여행기 (2) 여행을 준비하다!루마니아 여행기 (3) 루마니아 가는 길루마니아 여행기 (4) 부카레스트에서의 첫 날루마니아 여행기 (5) 부카레스트 관광루마니아 여행기 (6) 안드레아를 만나다루마니아 여행기 (7) 고마워요, 안드레아!루마니아 여행기 (8) 바이아 마레, 뜻밖의 인연루마니아 여행기 (9) 시게투에서의 내 마음루마니아 여행기 (10) 시게투에서는 히치하이킹이 개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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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것은 한창 루마니아 여행 계획을 세우고 있던 때의 이야기.
 여행에 관해서라면 나의 스승뻘인 원열이형과 (http://j.mp/gtKu9o)
 루마니아 마라무레슈의 사푼차라는 마을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었다.

 용석 : 형, 여기 좀 보세요. 이 마을 진짜 멋있지 않아요?
 원열 : 그러네. 갈 수만 있으면 정말 좋은 여행지일 거 같다.
 용석 : (잉?)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그냥 가면 되죠 ㅋㅋㅋ
 원열 : (차분히) 용석아, 생각해봐. 이런데는 시골이잖아?
          시골은 아무래도 교통이 조금 불편하단 말이야.
          그렇다고 해서 네가 면허가 있는 것도 아니잖아?
 용석 : (수긍) 그렇죠.. 설령 있어도 술을 마셔야하니 별 쓸모 없겠죠..

음주 운전은 안됩니당..

 용석 : 하지만, 형! 일단 가면 뭐 어떻게든 되지 않겠어요?

 ... 그러한 나의 당찬 포부는 시게투에 와서도 계속 이어졌다.
 애초에 시게투를 여행 루트에 넣은 까닭도 바로 사푼차 때문!
 시게투에서 사푼차까지 가는 버스가 하루에 8대가 있다고 하니
 대충 어디서 타면 되는지만 알면 못 갈리는 없다고 생각했다.

 우선 아침에 일어나 여행자를 위한 인포메이션 센터에 가려고 했다.
 하지만 9시부터 문을 열어서 근처에 있는 전통 시장부터 가기로 결정!

 시게투의 전통시장에서도 마찬가지로 소박한 모습을 많이 엿볼 수 있었다.
 과일, 채소 등의 식료품은 물론이고 각종 생필품부터 시작해서 음반까지..
 나름 큰 도시에 속하던 바이아 마레와는 확실히 다른 모습이었다.
아침 대용으로 먹을 쿠키도 4레이 (약 1,600원) 주고 구입!
 넋을 빼고 구경하다보니 어느새 9시가 되어 인포메이션 센터에 갔지만
 여전히 굳게 잠겨 있는 문.. 오늘 영업을 하는지 마는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언제까지 이 곳이 열리기만을 기다릴 수는 없어서 계획을 바꾸기로 했다.
 때마침 200레이짜리 밖에 없어서 잔돈이 좀 필요하여 은행부터 가기로 했다.
 아직도 첫날 도착해서 환전한 돈이 많이 남아있었는데 대체로 큰 돈들이었다.
 아무래도 도심지 중심으로 다니는게 아니다보니 늘 잔돈을 갖고 있어야 했다.
 은행에 가서 200레이를 10레이, 50레이짜리로 좀 바꾸면서 길도 물어야겠다!
10원을 8000원으로 만드는건 가능해도 200레이를 10레이로 만들 수는 없지!

 루마니아를 다니다보면 은행을 자주 만날 수 있다. 환전 업무도 거의 다 겸한다.
 무엇보다도 지금처럼 내가 처한 상황에서도 쉽게 도움을 받을 수도 있기 때문에
 어차피 은행 업무도 봐야하는데 길도 좀 물어볼 겸 아무 은행이나 들어갔다.

 은행을 관공서라고 할 수는 없지만 여행을 하다보면 이런 곳의 도움을 많이 받는다.
 바이아 마레에서도 관광처의 도움으로 정보와 엽서는 물론 짐까지 맡길 수 있었고,
 예전에 제주도 올레 여행을 갔을때에도 우체국에서 물 한잔 얻어 마신 기억도 있다.
 소소한 기억이기도 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취지에 맞지 않는 민폐라고 할 수 있지만
 이런 실례를 웃음으로써 넘어갈 수 있는 것이야 말로 여행의 특권이 아닐까.
깔끔한 루마니아 여행의 모습
분주하지 않은 그 모습에 죄책감을 좀 덜어두기로 했다.
 용석 : (200레이 2장을 보이며) 이걸 10레이, 50레이 좀 바꾸고 싶은데요.
 직원 : 어서오세요, 각 각 몇 장씩 드릴까요?
 용석 : 50레이 2장, 10레이 10장으로 바꿔주세요.
 직원 : (사무적으로) 네
 용석 : (조심스레) 아, 그리고 또 하나 부탁이 있는데요.
 직원 : 네, 말씀하세요~
 바빠 보이지는 않았지만 일을 빠르게 처리하는 직원에게 주눅이 들던 찰나,
 한 남자가 자신의 차례를 기다리기 위해 내 뒤로 다가와서 줄을 섰다.
 은행과 관련된 업무를 부탁하는 게 아니니 나는 일단 차례를 양보했다.
 양보해줘서 고맙다고 인사까지 건넨 그 남자가 돌아가고 나서야 다시 다가갔다.
 슬슬 은행 직원은 ‘도대체 무슨 부탁을 하려고...’ 하는 표정으로 나를 쳐다본다.
 
 용석 : 제가 사푼차로 여행을 가려고 하는데요, 버스를 어디서 타야할까요? 
 적지 않게 당황하는 직원의 눈치. 하지만 성가심을 뜻하는 눈빛은 아니었다.
 서로 능숙하지 않은 영어로 대화를 나누는 이 상황에서 그걸 어떻게 설명한담!
 우선 그 직원은 다른 직원에게 루마니아로 사푼차에 관한 걸 이것 저것 물었다.
 
 하지만 서로 심각하게 이야기를 주고 받더니 이내 돌아오는 대답은, 
 직원 : 저희도 잘 모르겠네요. 그렇지만 버스 정류장에 가면 있지 않을까요?
 용석 : (솔깃) 그럼 버스 정류장은 어디죠?
 직원 : 혹시 지도 있으세요? 
그리고는 나에게 지도를 건네받고 친절하게 위치를 알려주는 직원.
 서로가 진땀을 빼면서 떠듬떠듬 길을 알려주고 이해하던 그 시간은
 아마도 그 은행이 생긴 이래 가장 격정적인 순간이 아니었을까 싶다.
 사진 찍진 못 했지만 모든 직원들이 기웃거리며 구경하던 그 모습이란!
정말 고맙다

 그렇게 직원의 설명대로 내가 찾아간 버스정류장은,
 다름 아닌 어제 시게투에 처음 도착했을 때 내린 버스 정류장이었다!
 좀만 생각해봤으면 쉽게 올수 있었을텐데 직원에게 미안하기도 하고..
 그치만 난 돈을 바꾸러 은행에 간 거잖아? 그러니까 괜찮아.. 라고 위로했다.
 정류장에 도착하니 내 또래의 젊은 남자가 한 명 서 있었다.
 그래도 나름 젊은 사람이니까 영어를 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하고 말을 건넸다.
 용석 : 여기, 사푼차로 가는 버스 있어요?
 남자 : (놀라며 떠듬떠듬) 미안해요, 나 영어 못 해요.
 그래, 젊다고 전부 영어를 할 줄 아는 것은 아니지.
 그 사실을 우리나라에 여행오는 외국인들도 새겨 들었음 좋겠다. 
 아무튼 그건 그렇고, 그렇다고 해서 내가 포기할 수는 없었는 처지였다.
 용석 : (이제부터 루마니아어로만) 음.. 음.. 사푼차!! 아우토부줄!! (Autobuzul/버스) 
         (손짓으로 어디론가 가는 모습을 취한다) 사푼차! 사푼차! 
 나의 이런 손짓에 감동이라도 했는지 그 젊은이는 날 한참 보다가
 뭐라고 말을 해야 좋을지 한참 고민을 하다가 이렇게 말했다. 
 남자 : (손가락으로 X 표시를 하며) 사푼차, 노 아우토부줄!!
뭐라구요?

 으아니!! 분명히 가이드북에도 하루에 8대의 버스가 있다고 했는데!!
 은행에서도 버스 정류장에 가면 있을 거라고 말해주었는데,
 젊은 양반, 이게 무슨 소리요..!! 내가 내가 고, 고자...는 아니고..
 
 아무튼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영어라도 통한다면 되물어보겠는데
 그 남자도 난감하고 불쌍하다는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볼 뿐이었다.
 옆에 있던 어르신도 작금의 상황이 궁금한지 남자와 대화를 나누다가
 이내 나를 보고는 고개를 절레 절레 흔들며 손으로 X 표시를 할뿐이었다.
 남자 : 사푼차! 아우토부줄, 호스피탈 (엄지 손가락을 치켜세운다)

 이게 무슨 소리야. 분명히 아까는 사푼차까지 가는 버스가 없다면서
 다시 아우토부줄은 대체 무슨 의도인걸까, 게다가 저 손짓의 의미는?
 그 남자는 한참동안 나에게 같은 말, 같은 행동을 반복할 뿐이었다.
무슨 말인지 모르겠단 말이다!!!
 혹시 사푼차에 가려면 버스를 타고 호스피탈 - 즉 병원에 내려가지고
 히치하이킹을 하란 뜻이 아닐까? 그래서 내가 ‘히치하이킹?’이라 되묻자
 그 남자는 그제서야 고개를 끄덕이면서 ‘호스피탈, 호스피탈’을 말했다.
 그러고보니 루마니아 중에서도 마라무레슈에서는 히치하이킹이 흔하다는데
 이 곳까지 온 이상 한번 히치하이킹을 해볼 필요는 있지 않을까 싶었다.
 하지만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는 일에 도전한다는 것이 조금 두려웠지만
 나에게 아무렇지도 않게 히치하이킹을 권하는 남자를 보니 안심은 됐다.
 하지만 미처 내가 안심하기도 전에 남자는 나를 보고는 이렇게 말했다.
 남자 :  (떠듬떠듬) 유... 어론... 히어?? (You, Alone Here??)
 아마도 혼자 여행을 왔느냐는 질문 같기에 나는 자랑스럽게 말했다.
 용석 : 다! (Da/네) 프롬 꼬레! (한국에서 왔어요)
 남자는 대단하다는 듯 나를 향해 다시 한번 엄지를 치켜세웠다.
 하지만 이내 그 남자는 나를 다독이는 듯한 눈빛으로 말을 해주었다.
 남자 : Be cafefull (조심해...)
아니, 뭐 어쩌라는거야...

 아니, 대체 뭘 조심하라는거지.. 이제껏 아무 일 없이 잘 지냈는데..
 그래서 안심하고 히치하이킹에 도전해 보려고 했는데 조심하라니...
 남자와 도무지 종 잡을 수 없는 대화를 나누는 사이 버스가 도착했다.
 그 남자는 이 버스를 타면 된다는 손짓으로 나와 함께 버스에 올랐다.
시게투 마르마찌에의 버스 풍경
신기하게 버스 요금을 이렇게 안에서 계산한다.
호스피탈 (병원)에 간다고 하니 1.6레이(약 640원)이라고 한다.
 그래도 그 남자는 루마니아 사람답게 무척이나 친절한 사람이었다.
 자신은 내가 내려야할 곳 보다 먼저 내리는지 버스 안 승객에게
 이 사람은 병원 앞에서 내려야하니 잘 챙겨달라고 부탁하는 것 같았다. 아마도 조심하라는 의미는 건강히 여행을 하라는 응원의 메시지인 모양이다.

 아무튼 어영부영하는 사이에 나는 히치하이킹을 해야만 하는 상황에 쳐했고
 그 남자는 나에게 행운을 빈다는 손짓으로 나보다 먼저 버스에서 내렸다.
 그렇게 몇 정거장 가니 생각보다 빠르게 병원 앞에 도착하게 되었는데
 어째 눈에 익은 풍경들이 보인다 싶었는데, 그곳은 바로 내 숙소 앞이었다.


 히치하이킹은 보통 마을 끝에서 주로 이뤄지기 때문에 이곳까지 온 것 같다.
 시게투는 워낙 조그맣기 때문에 버스 몇 번만 타면 마을 끝에 도착할 수 있다.
 호스피탈이 내 숙소 앞에 있는 곳인줄 알았다면 굳이 버스를 타지 않았겠지만..
 
 그래도 그 남자의 도움으로 히치하이킹에 도전하게 되었으니 용기를 가져보자! 굳은 결심을 하고는 쌩쌩 달리는 차도에 서서 열심히 손을 흔들었다.
 하지만 차들은 무심하게 몇 번이나 나를 빠르게 지나치고 갈 뿐이었다.
 서두를 필요는 없었지만 5분이 지나도록 한 대도 멈추지 않아서 좀 무안했다. 
 그때 그런 나를 멀리서 지켜보고 있던 노인 한 분이 나에게 조심스레 다가왔다.
 이런 분들은 대게 언어의 장벽을 느끼지 않고 하시고 싶은 말씀을 그냥 하신다.
 일단 웃으면서 나에게 말씀을 건네시는 것을 보니 호의를 베푸시는 것 같았다.
 다음 대화는 ‘아마도 이런 뜻이었을 것이다’ 라는 나의 추측으로 작성한 내용이다. 
 어르신 : (나를 신기하게 보며) 오, 외국인이네. 히치하이킹 하려는 거야?
 용석 : 네, 여기서 히치하이킹을 하려고 하는데 잘 안 되네요.
 어르신 : 나도 어디 좀 갈 일이 있어서 하려고 하는데, 자네는 어디 가는 건가?
 용석 : 저는 사푼차 가려고요. 근데 차가 너무 안 잡히네요.
 어르신 : 당연하지, 여기는 히치하이킹이 잘 되는 곳이 아니야. 자, 날 따라와. 
 그렇게 말을 하고는 나에게 손짓을 하면서 자신을 따라오라고 하신다.
 사실 나는 우리가 제대로 대화를 하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 어르신께서 왜 나보고 따라오라고 하는지는 전혀 알 수가 없었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이 곳은 좋은 곳이 아니야’ 라는 의도를 읽을 수 있었다. 어르신은 나를 이끌고 ‘시게투 마르마찌에의 끝’을 알리는 간판 아래 섰다.
 그리고는 나에게 ‘여기서 한번 히치하이킹을 해봐’ 라는 듯 손을 흔들었다.
 아무래도 내 생각과 어르신의 생각이 다른 것 같지는 않아서 믿기로 했다. 
 그러자 신기하게도 바로 내 앞에 차 한 대가 멈춰서는 것이 아닌가!?
 그렇다, 이건 일종의 약속이었던 셈이다. 나는 운전을 하지 않아 잘 모르겠지만
 아무리 히치하이킹이 일반화 되어있다고 해도 아무 곳에서나 할 수는 없다.
 운전자라고 해서 늘 인도에 서 있는 사람의 손짓을 주시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암묵적으로 정해진 것이 히치하이킹은 마을 끝 표지판에서 하는 것이다.
 
 내 앞에 멈춰선 차는 나에게 행선지를 물었고 어르신이 먼저 내 상황을 설명했다.
 그러자 그 남자는 흔쾌히 티라고 했고 그렇게 나는 얼떨결에 히치하이킹에 성공했다.
생전 처음 해본 히치하이킹.
앞에 타 있던 남자도 이 남자의 차를 빌려 어디론가 가는 사람이었다.

 너무나 쉽게 히치하이킹에 성공한 내가 차 안에서도 어리둥절해 있자
 어르신께서는 나의 어깨를 툭 치고는 흐뭇하게 미소를 지으신다.
 그건 마치 점순이가 감자를 내밀며 ‘느 집엔 이거 없지?’ 라고 하듯
 ‘너희 나라에는 이런 거 없지?’ 라고 물어보는 것 같았다. 있긴 있을텐데...
 앞서 먼저 타고 있던 사람은 사푼차에 닿기 전 한 마을에서 내렸다.
 그러면서 2레이를 건네는 모습이 보이 길래 나도 준비해야겠다 싶었다.
 잘 알지는 못 했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 성의는 해야 한다는 건 알고 있었다.
 나는 10분 뒤에나 내리게 되었는데 감사의 표시로 4레이 (약 1,600원)을 건넸다. 
 그러면서 어르신도 같이 내리시는 건가 싶었는데 웃으며 손을 흔드신다.
 그제야 이 분은 다른 곳에 간다는 것을 알고는 아쉬운 작별의 인사를 했다.
 함께 사푼차 구경을 떠났어도 좋았을텐데! 다시 생각해보니 참 아쉬울 뿐이다. 
그렇게 도착한 사푼차! 이 마을은 완전한 시골 마을이기 때문에 조금 설렜다.

이곳에 도착하니 휴대폰 로밍이 우크라이나로 바뀌었다.
루마니아와 우크라이나의 국경 지대에 내가 서 있는 것이다!

 시게투로 오는 버스에 보았던 작은 마을의 풍경이 고스란히 담겨져 있었다.
 가장 유명한 ‘즐거운 공동묘지’를 보고나서는 마을 구경도 해야겠다 생각했다. 큰 길을 중심으로 몇 안 되는 갈래로 나눠진 길에 서있는 간판의 도움으로
 생각보다 쉽게 ‘Merry Cemetery (즐거운 공동묘지)’에 도착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곳은 여행을 오기 전 맛본 설렘과 기대를 만족시키기 충분했다. 
 이곳이 즐거운 공동묘지라고 불리우는 까닭은 화려한 묘비들 때문이다.
 세상을 떠난 사람의 슬픔을 회색 비석에 새겨둔 평범한 묘지와는 달리
 그 사람이 어떤 인생을 살아왔으며 어떻게 세상을 등지게 되었는지 비석에
 독특한 글과 화려한 그림으로 잘 표현하여 하나하나 유심히 보게 만들었다.

 묘비 앞에는 그 사람이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보여주고 있다면
 뒤에는 어떻게 세상을 떠나게 되었는지 이야기해주고 있다. 한 사람 한 사람의 죽음은 늘 비극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우리는 그 비극을 늘 간직한 채 살아가고 있다.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어떤 인생을 살아왔을지 알 수 있다.
 정육점 주인, 음악가, 군인, 바텐더...
또한 그 사람이 어떻게 떠나게 되었는지도 알 수 있다.
물에 빠져서 목숨을 잃거나 전쟁에서 희생당하거나
 일을 하다가 신의 부름을 받고 갑자기 세상을 등지게 되었다거나...
근래 지어진 묘비에는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난 사람들도 많이 있었다.
 내가 알기로는 묘비의 그림 못지않게 적힌 내용 역시 재미있다고 하는데
 이제야 겨우 ‘화장실이 어디에요?’ 라는 말을 할 수 있는 내 자신에게 
 묘비에 적혀있는 내용을 해석할 수 있는 능력이란 있을 리가 없었다.
 그래서 인터넷에 있는 묘비 문구를 이 곳을 통해 소개하고자 한다.

 * 나는 여기 잠들었습니다. / 이름은 게오르게 폽 / 산 속 미끈한 전나무 같이 부모님 땅에서 살았습니다. 
   젊고 마음씨 좋고 동리에 나만한 인물은 많지 않았지요. 군대를 마치자 자동차를 사서 온 나라를 여행했습니다. 
   많은 친구를 사귀고 / 모두 친절한 친구들, / 젊었던 시절의 그 삶이 좋았습니다. / 흙속에서 썩어가며

 * 옛날, 결혼 전에는 노래하고 춤추는 것이 그리도 좋았다. / 그러나 결혼 후에는 그렇지 못했지. 
 왜냐하면 네 엄마가 허락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병이 든 다음에는 아들아 너하고 좀 더 말을 하고 싶었다. 
 그것도 할 수 없었다. 네 엄마 허락이 없었기 때문에 / 그래서 지금 슬픈 마음으로 죽어간다. 

 * ... 재미있는 한 마디 / 친구와 어울려 술집에서 노상 추이카(ţuica, 자두주)를 즐겼는데 
   왜 거기 갔는지 항상 까먹었거든

 * ... 내가 살아있는 동안 남편이 늘 골칫거리였다. 
   문밖에서 예쁘게 짠 담요를 팔며 기다렸는데 / 내 인생은 끝나고 그는 오지 않았다... 

 * 이 무거운 십자가 밑에 / 내 불상한 계모가 누워있다. 
   만약 그 여자가 사흘만 더 살았다면 / 내가 여기 누웠고 그 여자가 이 글을 읽고 있겠지. 
   옆을 지나는 당신들, 제발 그녀를 깨우지 않도록 부탁합니다. 
   만일 그 여자가 돌아온다면 내 머리를 물어뜯을 테니까요. 
   그러나 나도 똑 같이 할 겁니다. / 그래서 그녀가 돌아오지 않기를 / 사랑하는 계모여, 가만히 여기 묻혀 있기를
 
 [출처] 루마니아 마라무레슈, 사푼차 마을의 명랑한 묘지와 이자계곡의 나무교회 | http://skksun.blog.me/30093240620

 할아버니, 할아버지의 죽음, 15년동안 기르던 강아지의 죽음. 하지만 전부 예정되었던 죽음.
 죽음의 무게에는 경중이 없지만 그래도 난 아직 비통함으로 이어지는 죽음을 경험하지 못 했다.
 하지만 분명히 내 주위에는 죽음이 어슬렁거리고 있고 때때로 그것은 갑자기 찾아오기도 한다.
 마치 일상보다 더 즐거운 마음으로 루마니아에 도착한 날에 전해들은 부고 소식처럼 말이다.

 그래도 죽음이 항상 같은 모습으로 간직될 필요가 있을까? 하는 의문은 던져볼 필요가 있다.
 우리는 모두 같은 곳으로 향해 가고 있을 뿐이고, 먼저 간 사람에게는 3일간의 애도를 표한다. 
 그 방식이 죽음을 가장 정직하게 대할 수 있는 것도 아닌데 우리는 모두 그렇게 움직인다.
 떠난 사람은 누군가 자신을 위해 슬퍼하길 바라겠지만 그게 또 영원하길 바라지는 않을 것이다.
 그런 우스운 변덕이 세상에 농익어 갈수록 즐거운 공동묘지는 또 생겨나게 되지 않을까?

묘지 안의 교회는 한창 공사 중이었다.
공사에 방해되지 않도록 조심스레 내부를 엿보았다!
덕분에 교회 꼭대기에 걸려있을 종도 가까이에서 구경할 수 있었다!

 즐거운 공동묘지는 1935년 처음 생겨서 그 자손이 대대로 묘비를 제작하고 있다.
 사푼차의 자랑거리이기도 하고 지구에서 찾아보기 힘든 독특한 그 분위기 때문에
 나를 비롯한 많은 관광객들을 위한 전시관 및 박물관도 있다고 하여 찾아가 보았다.

 하지만 굳에 잠겨 있는 문 앞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아무 것도 없었고...
 언제 열릴지 모르는 이 곳을 마냥 기다릴 수도 없기에 여기는 그냥 지나치기로 했다.
 내 눈으로 직접 즐거운 공동묘지를 본 것만으로 나는 그 의의를 다 했다고 생각했다!
 
굳게 닫혀 있던 박물관.
지금까지의 즐거운 공동묘지의 모습이나 제작과정,
그리고 처음으로 이 묘비를 만들었던 사람에 대한 것들을 볼 수 있다고 한다.
 딱히 아쉬움은 없었다. 그보다 나는 빨리 마을을 구경하고 싶은 마음이 더 컸다.
 시게투로 오는 버스 안에서 보았던 작고 소박한 마을들의 일상에 녹아들고 싶었다.
 혼잡하고 번잡했던 도시 부카레스트를 떠나, 그 보다 한적한 바이아 마레를 지나서
 그 보다 더욱 조용한 세게투 마르마찌에서 출발하여 도착한 아주 작은 마을 사푼차.

 이 작은 마을에도 각자의 삶을, 그들의 삶을, 그리고 우리의 삶을 일구고 있었다.
 그 속에서 나는 함께 인사를 나누면서 같은 삶을 공유하고 또 만끽할 수 있었다.
 이제 더 이상 루마니아는 내 마음 속에서 낯선 땅이 아님을 확인하는 순간이었다.

아무렇게나 거리를 활보하는 오리의 모습

아슬아슬 다리를 건너는 할머니의 모습
무사히 건너가실 때까지 나는 숨 죽여 지켜볼 수 밖에 없었다.

 어제 조르지와 사푼차에 대해서 대화할 때 들은 이야기가 하나 있다.
 사푼차에는 유럽에서 가장 높은 목조교회가 있으니 꼭 들려보라고 했다
 두번째로 높은 목조교회는 안드레아와 바이아 마레에서 가보았는데
 유럽에서 가장 높다니! 이미 말만 들어도 기대되어 설레이기 시작했다.

 교회를 뜻하는 Biserica (비세리쿠)를 연신 외치며 사람들에게 길을 물었다.
 사람들은 친절하게 길을 알려주었고 덕분에 나는 어렵지 않게 찾아갈 수 있었다.
 그러고보니 가이드북의 도움을 받지 않고 여행해보는건 오늘이 처음 아닌가?


저 길게 뻗은 산길을 20분 정도 걸어갔어야 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열살쯤 되는 꼬마 아이에게 길을 묻기도 했다.

드디어 도착!!
사진으로 그 크기가 느껴질지 모르겠지만
교회 왼쪽에 있는 트럭과 비교해본다면 감이 올지도!?

 목조 교회는 완공되긴 했지만 다른 건물들은 전체적으로는 한창 공사중이었다.
 사실 이 교회는 지어진지 얼마 되지 않은 교회였다. 그래서 감동은 좀 덜했다.
 이 교회가 없었다면 바이아 마레의 목조 교회들이 유럽에서 가장 높은 교회일텐데..
 분명히 같은 목조 교회인데 언제 지어졌는가에 대한 부분이 어떤 차이를 만들었다.

 바이아 마레에서 봤던 목조 교회는 오랜 역사를 간직했기에 그 지역 사람들의 애환을
 하나 하나 품고 보듬어주고 있다는 생각이 나의 감상이었다. 높이는 그 다음 문제였다.
 물론 처음 그 교회를 지을 때에는 하늘과 보다 가까워지기 위해서 높게 지었을 것이고
 다른 한편으로는 일반 교회와는 다른 어떤 위엄을 과시하려던 마음도 있었을 것이다.
 그것이 오랜 시간이 지나면서 자연스레 고풍스러운 멋이 우러난 것이라고 생각한다.

 다시 말하면, 시간이 모든 것을 해결해준 셈이다.
 지금 유럽에서 가장 높은 목조 교회를 지은 것에는 어떤 의의가 있는지 잘 모르겠다.
 거칠게 생각해보면 우리나라에 으리으리하게 지어지는 교회들과 같은 맥락일지 모른다.
 그렇다면 지금 내 눈 앞에 있는 목조 교회도, 하루가 멀다하고 지어지는 한국 교회도
 전부 시간이 지나면 역사적인 가치를 지니게 되는 그런 건축물이 되어버리는 것일까?

내부는 바이아 마레에서 본 교회와는 많이 달랐다.
신식 교회라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그보다는 수수하지 못 한 화려함에
내가 기대했던 것과는 다른 감정이 밀려오기 시작했다.

 종교인이 아닌 입장에서 이런 문제에 대해 골돌히 생각해본다는 것은
 한 없이 객관적일 수 있고 한 없이 비판적일 수도 있기에 조심스러워 진다.
 나는 아직 교회 건물이 지녀야할 종교적 사명이라든가 의의에 대해 잘 모르겠다.
 정확한 것은 시대에 어울리지 않고 현실에 어울리지 않는 행동은 옳지 않다고 믿는다.
 모든 것이 돈으로 환산되는 이 시대에 종교가 환원해야할 영역이 과연 어디여야 할까?

 유럽에서 가장 높은 목조 교회라고 하여 조금 부푼 기대감을 갖고 이 곳에 왔었는데
 내 눈 앞에 보이는 현실은 너무나도 저돌적이기 때문에 더 큰 실망을 했는지 모른다.
 그래도 고통 받는 사람들이 이 교회에 와서 자신의 삶을 위로 받길 바라길 기도했다.

뭐, 이럴 수도 있다는 겁니다...

 교회에서 나와 다시 마을로 돌아갈 생각을 하니 조금 귀찮아졌다.
 그때 때마침 교회에서 차 한 대가 나오길래 당돌하게 히치하이킹!
 이제 두려울 것이 없었다! 뭐든 한 번 해보면 그 이후는 쉬운 법이다!

 아직 사푼차를 더 구경하고 싶어서 마을까지만 데려다 달라고 했다.
 자동차로 5분 정도만 가면 되는 거리이기 때문에 서로 부담은 없었다.

내 인생 두번째 히치하이킹! 이제 두려울 것은 없다!
워낙 짧은 거리라 돈을 주기도 뭐해서 그냥 내렸다..

 다시 사푼차 마을 중심지에 내렸다. 중심지래봤자 큰 길가에 서있을 뿐.
 아침을 쿠키 몇 조각으로 떼우고 시간도 어느새 점심이 넘어가 버린 후라
 슬슬 점심을 먹을 필요가 있었다. 때마침 식당이 보이길래 무작정 들어갔다!

 즐거운 공동묘지를 향해 갈 때나 목조 교회를 찾아 갈 때에도 유심히 봤지만
 워낙 작은 마을이라서 식당이 많아 보이지도 않았고 여기 외에는 보지도 못 했다.
 선택권이 없기는 했지만 지나가면서 봤던 소소한 외관은 나를 유혹하기 충분했다!

평범한 사푼차의 마을 식당

일단 난 맥주 한 잔을 시키고 메뉴판을 골돌히 분석했다.
하지만 내가 아는 것은 아무 것도 없었기에
가장 만만하지만 가장 좋아하는 치오르버 데 벌타 (소내장스프)를 주문하고
정말 메뉴판에서 아무 생각 없이 음식 하나를 찝어서 주문했다!

여행기를 쓰고 있는 지금도 그리워서 미칠 것 같은 치오르버 데 벌타!

그리고 무작정 시킨 음식은 이런 거였다!

꼭 호떡처럼 생겼지만 안에는 쫀득쫀득한 치즈가 들어있었다.
그렇다고 해서 느끼하지는 않았다! 짭짤하고 고소한 치즈의 맛만 남아있었다.

 그렇게 배불리 식사를 마쳤다. 가격을 메모해두지 않았지만 아마 12레이쯤 (약 4,800) 했던 것 같다. 
 식당에 가만히 앉아서 맥주를 몇 병 더 마시면서 가게 안을 메운 사람들을 유심히 구경했다.
 우리나라 시골 식당이나 슈퍼를 가도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이기에 이국적으로 느껴지지 않았다.

 역시 사람이 사는 모습은 전부 똑같다. 외모와 말만 다를 뿐 우리는 같은 관심사를 지니고 있다.
 부모로부터 태어나 자신의 삶을 꾸려나가고 누군가를 만나기도 하면서 결국에 죽음으로 향한다.
 여행이란 '다른 곳의 사람들은 얼마나 다르게 살고 있나' 확인하는 과정이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낯설고 외딴 곳이지만 이 곳이 사람들도 나와 같은 모습으로 살고 있다는 것을 확인하며 안심한다.
 진정한 여행이란 차이점을 발견하는 과정이 아니라 공통점을 찾아가는 것임을 새삼 깨닫게 되었다.

 일을 마치고 잠시 들려서 따뜻한 차 한잔을 마시며 수다를 떠는 동네 아저씨,
 동네를 순찰를 돌고 나서는 잠깐 쉬려고 들렸는지 경찰관의 모습도 보인다.
 그런 사람들을 일일이 챙겨주고 상대해주는 주인 아주머니의 인심 좋은 미소.
 그 미소는 이내 멀리서 온 나에게까지 향하여서 맛있었냐고 물어봐주었다.
 나는 손가락을 치켜 세우며 '부나! 부나! (Buna Buna / 좋아요, 좋아요)를 외쳤다.

아쉬운 마음에 다시 한번 들른 즐거운 공동묘지

여행 중에 내가 사고가 나서 떠나게 된다면
이 곳에 묻히길 바라는 못된 상상도 조금 해보았다

거리 위 일상은 너무나도 평화롭게 이어지고 있었다.
 좀 더 마을에 머물고 싶었지만 어제 시게투를 제대로 즐기지 못 한 까닭에
 조금씩 아쉬움이 스며들기 시작할 때 이 곳을 떠나기로 마음을 먹었다.
 아침에 할아버지가 알려준 대로 마을 끝 표지판 아래 서서 히치하이킹 시도!

 워낙 차들이 빠르게 쌩쌩 지나가는 도로 한 복판이라서 쉽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5분이 지나지 않아 웬 영업용 봉고차 한 대가 내 앞에 멈춰섰다.
 분주하게 누구와 통화를 하던 그 남자는 나에게 타라고 손짓을 하였다.

  물품을 납품하는 일을 하시는지 여러 박스가 쌓인 봉고차였다!

 워낙 바쁘신 모양인지 운전하는 내내 계속 통화를 하고 있었다.
 영어가 가능하신지 모르겠지만 조금이나 대화하고 싶은 내 맘은
 그 분의 바쁜 사업으로 인하여 좌절할 수 밖에 없었지만 그래도
 조금씩 비가 내리기 시작하는 차창 밖 풍경이 내 시선을 뺏었다.

 사푼차에 올 때도 어느정도 성의를 보였기 때문에 이번에도
 4레이 (약 1,600원) 정도를 꺼내보였더니 아저씨가 기겁을 하신다.
 돈을 내지 않아도 된다면서 그냥 내리라고 하신다. 정말 그래도 돼?
 아무래도 바쁘게 통화하느랴 날 챙겨주지 못 해 죄송해서 그런건가?

 날 챙겨주지 않아서 고마워!


 사실 4레이면 식당에서 맥주 한 병 마시는 돈이기 때문에
 적지만 극대의 효율성을 끌어올릴 수 있는 액수이기는 하다.
 그래도 이렇게 호의를 베푸신 분께는 전혀 아깝지 않은데
 극구 거절을 하시니 나로써도 계속 강요할 수는 없는 노릇!

 헤어지는 동안에도 계속 전화를 하시는 아저씨에게 손을 흔들며
 어느새 다시 시게투 마르마찌에에 도착한 내 자신을 발견하였다.
 이제부터는 어제 못 다 즐긴 이 도시에서 제대로 한번 놀아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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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월부터 쓰기 시작한 루마니아 여행기가 어느새 10편이 되었네요.

 처음에는 하루에 한 편씩 써서 20부 정도쯤 되지 않을까 싶었는데,

 정작 오늘 이야기만 해도 반나절인지라 20부가 넘을 수도 있겠네요.


 네이트판에서 보고 오시든 디시에서 보고 오시든 어디서 보셨든

 모두 저의 이야기에 관심을 갖고 재밌게 봐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일일이 댓글을 못 달아드려서 (갯수도 얼마 안 되는데) 죄송합니다.

 궁금한 것이나 듣고 싶은 이야기가 있으면 얼마든지 말씀해주세요.

 종종 쪽지로 여행 정보를 물어보시는 분들도 많은데 전 괜찮습니다!


 일주일에 한 편씩 쓰겠다고 나름 약속한 터라 새벽 3시 20분이 돼서야

 겨우 완성했네요. 중간에 한번 날려서 제 수명이 단축되기도 했습니다.

 다음부터는 미리미리 좀 써놔서 여유 있게 올릴 수 있도록 해야겠어요.

 암튼 여행기 10편을 기념하여 맥주 한 잔 없는 노원의 작은 방구석에서

 혼자 자축의 글을 몇 글자 적어봤습니다, 앞으로도 계속 지켜봐주세요!

 

 

추천수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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