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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할아버지 외할머니에 대한 추억★

미션 |2011.04.06 20:46
조회 203 |추천 4

안녕하세요.. 천안에 살고 있는 한남자입니다

흔하디 흔한 외할아버지 외할머니에 대한 글입니다..

 

일단 이야기를 하려면 외가쪽 가족사항에 대해서 이야기 해야하는데요

저희 어머니는 9남매중에 둘쨰 되십니다..지역은 경상도 의성 안계구요..

지금 9남매라고 하면 상상이 안되는데 저희 어머니 나이대에서는 그리 흔한게 아니지요.

그런데 제가 외할아버지 외할머니의 첫손주로 태어났습니다 82년도에 태어날 때 이모들 삼촌들에 할머니할아버지 일가 친척들 다 모였드랬죠 정말 축복속에 태어났다고 하네요

뭐 제 기억에서는 없는 일이니 들어서 안거지만 첫손주라 그런지 절 유독 좋아하셨다고 하세요

대충 서론은 이쯤하고 일단 할아버지 이야기부터 하겠습니다.

 

제가 기억하는 외할아버님 제가 태어날 당시에 저 나중에 크면 주려고 뒤뜰에 사과나무를 하나 심으셨어요..요건 중요한부분이니 기억해주시고.. ㅋ

 

초등학교때 방학이면 시골에 내려가서 한달정도 생활을 했습니다 항상.. 시골에 내려가면 먹을거 많고 놀거리 많고 ㅋㅋ 낚시도 다니고 온 산으로 뛰어다녔져 정말 즐거웠어요.. 할아버지도 제가 오시면 표현은 안하시지만 인자하게 웃어주시고 많이 챙겨 주셨던거 같아요 어린애였지만

그걸 느낄수 있었어요.. 할아버지에 대해 더 쓰고 싶지만 하도 어릴때라 잘기억이 안나네요

본론으로 들어가서 6학년 여름 방학이였습니다.. 물론 이때도 시골에서 생활을 하고있었어요..

 

하루는 뭐하고 놀까 생각하면서 주위를 탐색하고 있었습니다. 뒤뜰 헛간을 수색하고 있는데

도끼 한자루가 눈에 뛰었어요. 원래 그 나이 사내아이들이 그렇듯이 그런거 보면 해보고 싶잖아요. 그래서 전 바로 도끼를 낑낑대며 들고 헛간을 나와서 뒤뜰을 살폈어요 도끼질해볼수 있는 적당한 나무를요 뒤뜰에는 딱 한그루 제 키보다 조금 큰 나무가 있었습니다.. 무엇인지는 설명안해도 아시겠져 할아버지가 제가 태어날때 심은 그 사과나무였어요.. 물론 저는 어렸고 들은 이야기도 없었고 철도 없었기 때문에 무작정 달려가서 냅다 도끼질을 했지요. 땀 삐질삐질 흘리면서 쓰러 뜨렸어요 그리고는 할아버지를 불렀습니다.. 자랑하고 싶었던거지요. 외할아버지가 오셔서는

표정변화 없이 우리 손주 씩씩하네 하면서 쓰다듬으셨던거로 기억합니다..

 

중요한건 그당시에 위암을 앓고 계셨던 거에요 아프신 와중에도 티도 안내시고 물론 저나

제 동생은 몰랐습니다.. 그일이 있고 불과 일주일만에 하늘나라로 가셨어요.. 그때는 저도 어려서 막연히 이제 할아버지 못보는구나 이생각만하면서 울었던 기억이 납니다..

 

 그 후10년후에 제가 군대에 있다가 휴가 나와서 이모댁에 들려서 하룻밤 있었던 적이 있는데요.

그 때 맥주 한잔하면서 우연히 할아버지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이모가 하시는 말씀이 너는 기억할지 모르겠지만 6학년때 네가 쓰러뜨렸던 나무가 사실은 제가 태어날때 절 위해서 심으셨던 사과나무라고 이야기를 하시는겁니다. 저는 성인이 다 되어서 군대 갈때까지도 몰랐던 일이에요

그 이야기 듣는 순간 왜그리 할아버지가 생각나고 또 아프셔도 내색 안하시고 절 사랑해주셨던게 새록새록 떠오르는 거에요. 이모 앞에서 난생 첨으로 펑펑 울었습니다. 누군가가 그렇게 그리워질수 있다는 것도 그때 알았습니다. 글을 쓰는 지금 이순간에도 외할아버지만 생각하면 철없던 제가 바보 같네요. 받은 사랑 조금이라도 돌려줄수 있다면 좋을텐데..

 

 외할아버지 이야기는 여기까지구요. 이제 외할머니 이야기를 해볼까합니다

 

 위에서 말했다시피 저희 외할머니는 9남매를 출산하셨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정말 대단한거

같아요.. 그 어려운 시절에 어떻게 다 키우셨을지 상상도 안되요 지금은 한명도 키우기 힘들잖아요.

 

 외할머니도 물론 저를 많이 사랑하셨어요.. 제가 어릴때는 키는 컷지만 말랐었어요. 초등학교때

이미 168정도 였거든요.. 그래서 그런지 그게 항상 마음에 걸렸던겁니다.. 한약이며.. 몸에좋다는 여러가지 음식들을 항상 보내주셨어요 9남매면 저말고도 물론 손주들이 많이있습니다..

제 밑으로도 사촌동생들만 열댓명이 됩니다. 그런데 절 제일 많이 챙겨주셨어요

 

 그런데 어리고 철없던 저는 한약이 쓰고 맛없으니 먹기 싫은 나머지 먹는척 하면서 싱크대에 버렸던것도 기억나고 지금 생각해보면 그렇게 맜있었던 할머니표 음식들을 거들떠도 안봤어요.. 초등학생들 입맛이 다 그렇잖아요.. 성인이 되고 나서도 매년 쌀이며 음식이며 저희집에는 항상

보내 주셨어요.. 연세도 있으시고 몸무게가 많이 나가셔서 거동이 불편하신데도 불구하구요..

 

 제가 성인이 되고나서 할머니는 무릎 관절 수술만 몇번하셨어요 체중이 많이 나가시는데다

몇 번 넘어지시니 급속도로 악화 되신거져..몸도 안좋으신데 항상 무언가를 해서 보내십니다.

 

매년 찾아뵙고 인사드려도 모자를 판에 몇년동안 못보다가 작년에 한살터울의 사촌여동생 결혼식이 있었어요 그때 오랫만에 할머니를 뵈었어요.. 그런데 정말 예전에 봤던 할머니가 아닌거에요.. 흰머리도 거의 없었는데 흰머리하며 잘 걷지 못하시는 모습을 보고 정말 마음이 아팠습니다. 머리로는 이렇게 생각해도 저도 잘표현을 못했어요 할머니한테 그러고나서 작년 추석때 할머니가 저 보고 싶다고 한번 내려오라고 했었어요. 저는 일도 있었고 너무 피곤해서 다음에 내려간다고 했지요.. 전화라도 드리고 목소리라도 들려드리고 해야하는데 그러고 나서 올해 설날까지 전화 한통화 못드렸어요. 설날에도 꼭 내려갔어야 하는데 저만 못가고 나머지 가족들은 다 같이 다녀왔어요.. 저는 전화만 한통 드리구요.. 마음은 가봐야지 가봐야지 하는데 일도 그렇고 생활하다보면 잘 안되더군요.

 

 그러다 3월달이 왔어요.. 일하는 와중에 여동생한테서 전화가 오는겁니다.. 여동생한테 전화오는건 뭔가 특별한 일이 있을경우이지요.. 거의 통화안하거든요. 할머니가 쓰러지셨다고 하는거에요. 저는 또 그렇게 생각했지요 아 또 넘어지셨나보다 그런데 가족 다 시골 내려가자고 하는거에요. 그냥 넘어 지신게 아닌가 이런 생각하면서 내려가게 되었습니다..

도착해서 제가 본거는 여러 화환들과 이모 삼촌 일가 친척들의 울음소리였어요.. 저는 떨리는 발걸음으로 할머니 영정앞에 갔져 ㅠㅠ 그순간 저도 모르게 그전에 저한테 전화하셔서 보고싶다고 하시고 전 꼭 찾아뵙겠다고 했던 통화내용이며.. 전에 있었던 일들이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가는거에요 정말 그렇게 슬플수가 없었어요 그앞에서 마음으로는 펑펑 울고있는데도 눈물은 안나더군요.. 그렇게 인사 하고 나와서 화장실갔는데 그때서야 눈물이 나오는거에요..

 

 제가 첫손주이고 또 외삼촌들은 아직 자식들이 없어서 장지갈때 영정사진도 제가 들고 제일 앞에서 외할아버지 묘소까지 가는데 왜 이리 슬픈건지 눈물이 멈추지 않더군요..

 

 재미 없는글 여기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해요. 제가 이글을 왜 썼냐하면 뭐랄까 지금까지도 아직

슬픔에서 못벗어나기도 했고 우울하기도 하고 그냥 이야기해보고 싶어서에요..

지금에 와서 너무나 후회됩니다. 조금만 신경쓰면 전화도 드리고 찾아뵙고 인사드리는 그런 작은게 그분들에게는 정말 큰 기쁨이었을건데 그걸 못한게 너무나 후회돼요.

지금 이 글을 읽으신분은 아버지 어머니뿐만아니라 할아버지 할머니에게도 시간이 되신다면 안부 전화라도 드리세요 저 처럼 후회하지마시구요 지금은 목소리 한번 들어보려고 해도 못듣네요

 

할아버지 할머니 사랑합니다. 좋은곳에서 지켜봐 주세요..!

 

추천수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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