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북도 청원군 낭성면 귀래리에 있는 단재 신채호 선생 추모 기념관은 1980년에 탄신 100주년 기념으로 건립됐으며, 사당은 본래 1960년 종중에서 처음 건립하였고 1978년 지금 위치로 옮겨왔습니다.
1905년에 황성신문의 논설위원으로, 그 이듬해에 대한매일신보의 주필로 근무하면서 맹렬한 반일필봉으로 일제의 한국 침략과 매국노들의 민족반역행위를 신랄하게 비판했던 언론인이었으며, 신민회와 동제사에서 독립운동 자금 모금에 참여하고 1921년에 월간잡지《천고》를 발행하여 반일운동의 명분을 강조하고 1922년에 의열단의 행동강령인《조선혁명선언》을 집필하여 폭력적인 방법의 독립운동을 주장했으며 1928년에 ‘동방무정부주의자연맹’에 가입하여 무정부주의운동에 참여했던 독립운동가였고, 1928년에『을지문덕전』·『이태리건국삼걸전』·『독사신론』, 1931년에『조선상고사』·『조선상고문화사』등의 역사 관련 저작을 집필·발표했던 역사학자였고,『꿈하늘』과 같은 환상적 기법의 우화 소설을 쓰기도 했던 위대한 문장가였던 단재 신채호 선생은 국사 연구와 교육을 중시하였고, 민중을 중심으로 하는 민족주의 사관을 확립하여 일제 식민주의 사관에 대항했으며, 자주적이고 진취적인 민족 고유의 사상을 추구했던 학자이며 혁명가였습니다.
중국과 일본의 한국 역사에 대한 왜곡이 더욱 노골화되고 있는 이 정세에서 아직도 일제 식민주의 사학의 잔재에서 해방되지 못하고 있는 우리 나라의 현실은 단재 신채호 선생의 민족주의 사관을 다시 한번 일깨워주고 있습니다. 또 선생이 무정부주의 운동에 가담했던 전력은 공권력·경제력에서 강자의 위치에 있는 상류층이 몰락한 중산층·서민층의 숨통을 더욱 탁하게 흐려놓는 상황에서 약육강식의 사회, 승자독식의 시대에 대한 경고를 전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