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 룩' 창조 세계적 명가로 세계 곳곳의 유명 백화점 명품관은 자신들의 가치를 높이기 위해 두 개의 브랜드는 반드시 유치하려 한다. 그리고 이들 매장을 가장 잘 보이는 곳에 배치한다. 하나가 샤넬이고 또 다른 하나가 바로 디오르이다.
오늘날 '디오르'라는 이름은 세계 최고의 패션 하우스를 지칭하는 용어가 되었다. 옷뿐만 아니라 란제리, 향수, 액세서리, 넥타이 등 각 분야 최고의 패션 스타일을 설명해 주는 단어가 '디오르'로 통하는 셈이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디오르의 창시자 크리스티앙 디오르가 패션계에서 활동했던 기간은 10년(1947~1957)뿐이다. 패션의 역사에서 가장 위대한 이름의 하나로 기록되는 그는 10년 내 이 모든 것을 이루고 사라진 것이다. 극적으로 죽은 것은 아니지만 그는 이른 나이에 아쉽게 죽었다. 그의 죽음에 관한 기록은 심장마비로 죽었다는 것밖에 없다.
"여성의 아름다움을 찾아주자."
1905년생인 디오르가 패션계에서 첫 작품을 선보인 때는 1947년이다. 뒤늦게 패션계에 입문한 그는 당시 군인의 제복을 연상케하는 딱딱한 옷들에 염증을 느꼈다. 그의 첫 컬렉션에서는 부드러운 소재를 사용해 여성들의 신체를 부각시켰고 자유로운 허리선, 다양한 스커트 길이, 풍성한 치마를 선보였다. 그 전에는 볼 수 없었던 새로운 스타일을 만들어 내며 패션 역사에선 이런 스타일을 '뉴 룩'이라는 용어로 설명하게 된다.
샤넬이 단순함과 실용성을 내세웠다면 디오르는 여성미와 우아함을 살려 몸의 선을 드러내고자 했던 것이다. 물론 "패션에는 자유와 해방이 담겨 있어야 한다"는 철학은 두 사람이 추구했던 공통점이기도 하다.
활동 기간이 짧았던 만큼 디오르 개인에 대한 기록은 많지 않다. 다만 디오르는 이브 생로랑, 장 프랑코 페레, 존 갈리아노 등 금세기 최고의 패션 천재들로 자신의 스타일을 이어가며 여전히 '최고의 패션 명가'로 세계인들의 입에 끊임없이 오르내리고 있는 것이다.
디오르는 사람을 보는 데 남다른 눈을 가졌던 것 같다. 10대 후반의 이브 생로랑을 디오르사의 수석 디자이너로 발탁했으며 최고의 패션디자이너면서 동시에 가장 독특한 디자이너로 꼽히는 존 갈리아노에게 디오르사의 지휘봉을 넘기며 디오르 사후에도 디오르의 이름은 늘 최정상에 올라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