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적]예수 없는 교회
김태관 논설위원 입력 : 2011-04-25 19:03:09ㅣ수정 : 2011-04-25 23:15:14부활절 설교를 마친 목사에게 아내가 묻는다. “어쩜 그렇게 설교를 잘해요. 당신은 부활을 진짜로 믿나 보죠?” 목사의 대답이다. “미쳤어? 그걸 믿게. 내가 목사니까 설교했을 뿐이야.” 부활 신앙은 아무나 갖지 못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설교 예화다. 그런데 어떤 목사들은 예화에서처럼 정말로 예수를 안 믿는 것이 아닐까. 답을 찾기 위해선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에 나오는 극시 ‘대심문관’을 더듬어볼 필요가 있다.
종교재판의 불길이 하늘을 찌르던 중세 유럽의 세빌리아에 예수가 다시 인간의 모습으로 강림한다. 그리스도는 병자를 고치고 죽은 소녀를 살리는 등 기적을 행한다. 이를 본 대심문관(추기경)이 부하를 시켜 예수를 감옥에 가둔다. 밤이 되자 대심문관은 몰래 감옥에 찾아가 묻는다. “네가 예수냐?” 아무 대답이 없자 대심문관은 혼잣말을 한다. “네가 정말로 예수여도 상관없다. 너는 우리를 방해하면 안 된다. 나는 내일 너를 화형시킬 것이다!”
교회가 예수를 배척하는 것이 중세 때의 얘기만은 아니다. 십자가가 지천인 오늘날에도 예수가 필요없는 교회는 많다. 목사끼리 주먹질을 하거나 법정다툼을 벌이는 등의 추문이 그것을 보여준다. ‘예수 이름’으로 싸우는 그들에게 예수는 방해꾼일 뿐이다. 시골교회 집사였던 동화작가 권정생은 <우리들의 하느님>에서 이렇게 말했다. “기독교 2000년 역사에서 예수님은 많이도 시달려 왔다. 십자군 군대의 앞에 서기도 하고, …대한민국 기독교 100년 역사에서는 반공이데올로기의 선봉장 노릇도 했다. 더러는 땅투기꾼에게 더러는 출세주의자들에게 예수님은 이용당해 왔다.” 그런데 이런 말이 실린 권정생의 책은 국방부에 의해 불온서적으로 낙인이 찍혔다. 헌법재판소는 이를 합헌으로 못박기도 했다. 대통령이 교회 장로인 나라에서의 일이다.올 부활절은 어느 해보다 교회의 ‘회개와 자성’이 강조됐다고 한다. 엊그제 열린 연합예배에서 설교 목사는 “교회가 세상에 걱정을 끼치고 있다”며 “십자가와 부활의 복음으로 새롭게 태어나자”고 했다. 어떤 이의 표현처럼 ‘하나님이 없다고 확신하는 목사’들을 향한 호소다. ‘대심문관’에서 침묵으로 일관하던 예수는 마지막에 추기경에게 다가가 조용히 입을 맞춘다. 예수가 필요없어진 교회야말로 예수가 필요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장면이다. 소망의 법칙은 유한한 인간에게는 그럴싸한 논리적 비약을 이끌어 냅니다.
나는 신적 존재에 대해 확신을 가질만한 어떤 특별함도 경험해 보지 못했기에
객관화 할 수 없는 신의 존재를 부정할 수 밖에 없다고 하니깐
어느 누구는 자신은 자기가 모르는 세계라고 부정할 수 없고
신이 없다는 확인을 할 수 없으니깐
신의 존재를 믿을 수 밖에 없다고 합니다.
둘 다 신의 존재에 대한 확인을 못하는 것은 마찬가지지만
한 사람은 불신하고 한 사람은 믿고 있습니다.
여기에 소망의 법칙이 인간의 판단력에 간섭을 합니다.
그 것은 우리 인간 합리적 이성 이전에 인간의 심리적방어기제에서
발현되어 결국 한 인격의 정체성을 이루게 되는 것 같습니다.
우리 인간의 이성은 불확실한 것이고
그 이성을 보다 객관화 하기위해 과학이나 상식이 존재하기는 하지만
이 또한 인간의 뇌적활동의 산물이고 최종적인 답은 아닌 것입니다.
그렇기에 어떤 전제도 가능합니다.
따라서 과학이든 종교든 자기 합리화에 빠질 가능성이 많아 집니다.
이렇게 혼란스런 인간의 이성의 대립을 해소할 만한 것은
역시 인간이 만든 불확실한 잣대이기는 하지만
어쩔 수 없이 인류의 공동가치인 생명존중, 신체와 양심의 자유, 행복, 나눔, 배품, 희망 등을
기준으로 할 수 밖에 없습니다.
이런 보편타당한 가치를 최고의 선으로 여기지 않는 종교는
그 존립자체의 의의를 상실한 것으로 사회에서 퇴출되거나
스스로의 자정 노력에 의해서 합목적적인 가치 추구를 위해 분골쇄신의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 입니다.
종교를 마치 개인 윤리인냥 나 하나만 좋으면 된다는 식으로
접근하다 보면 이 세상은 마구니의 세상이 되어 버릴 것입니다.
그 선구자의 역할에 서야할 자가 목사와 승려가 되어야 하는데
지금 성직자들을 배출하는 방식이 대학이란 제도를 통해 무제한으로
벽돌 찍어 내듯 배출해 내니 공급이 수요를 초과하게 되어
결국 성직자들도 밥 그릇 싸움을 하지 않을 수 없는
적자생존이라는 쟝글의 법칙이 종교집단에서도 발생하게 되어
사회적 문제로 돌출되는 것은 자명한 것으로 보입니다.
세상은 한 개인의 선의지로만 가지고는 바뀌지 않습니다.
공자도, 석가모니도, 예수도
인이라는 인간의 최고 덕목도 오욕 칠정을 다스리지 못했고
자비라는 궁극적인 가치도 하나의 제시적인 측면으로만 그쳤고
사랑이라는 최고의 선도 삶의 지향적인 목표로서 타당성만 가졌을 뿐 이었지
인류에게 내재된 마치 우주와도 같은 다양성은 인간의 유전자에
그대로 남아 중생심이라는 모습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인간의 사고는 빈약하고 감정은 늘 불안정합니다.
종교는 이 이성적으로 불완전존자인 인간에게 방향을 제시하고
감정에 있어 불안정하여 행 불행의 순환고리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인간에게 위로가 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거짓 이성으로 인간을 현혹하고
거짓 위로로써 인간의 마음을 희롱한다면
결국 종교는 마약과도 다를 바 없는 사회악일 수 밖에 없는 것이라 봅니다.
지금 종교인들은 신의 음성 내지 교조의 참된 말씀을 전달하는 것 보다는
편견과 인지부조화적인 이성을 투영하듯이 자신의 음성만
자신의 사고만을 이야기 합니다.
교조와 그 말씀 또는 법을 벗어나 인간의 사리사욕에 맞닿는 달콤한
언어로써 교도들의 귀를 희롱합니다.
그렇지만....이 또한 인간이 피할 수 없는 그래서 극복해 내야 할 인간살이 이기에
뚜벅 뚜벅 자신의 길을 찾아 나서야 합니다. 남영현 (玄德) 님
2011.04.26 11:07:05 윗 기사 내용대로 예수 팔아 부귀영달 한 인간들 참 많다. 이분법적이고 배타적인 교리야말로 교회 장사하는데 있어선 엄청난 특혜이다. 하지만 개량 한복 입고 진보 행세하며 허울좋게 "민족" "자주" 운운하며 앞으로는 예수 찾고 참 신앙 찾으며 뒤로는 자신의 잇속과 정치적 이득본 더러운 인간도 엄청 많다... 홍희숙 (차이인정) 님ㅣ 2011.04.26 11:31:26 ㅣ 소망의 법칙은 유한한 인간에게는 그럴싸한 논리적 비약을 이끌어 냅니다.
나는 신적 존재에 대해 확신을 가질만한 어떤 특별함도 경험해 보지 못했기에
객관화 할 수 없는 신의 존재를 부정할 수 밖에 없다고 하니깐
어느 누구는 자신은 자기가 모르는 세계라고 부정할 수 없고
신이 없다는 확인을 할 수 없으니깐
신의 존재를 믿을 수 밖에 없다고 합니다.
둘 다 신의 존재에 대한 확인을 못하는 것은 마찬가지지만
한 사람은 불신하고 한 사람은 믿고 있습니다.
여기에 소망의 법칙이 인간의 판단력에 간섭을 합니다.
그 것은 우리 인간 합리적 이성 이전에 인간의 심리적방어기제에서
발현되어 결국 한 인격의 정체성을 이루게 되는 것 같습니다.
우리 인간의 이성은 불확실한 것이고
그 이성을 보다 객관화 하기위해 과학이나 상식이 존재하기는 하지만
이 또한 인간의 뇌적활동의 산물이고 최종적인 답은 아닌 것입니다.
그렇기에 어떤 전제도 가능합니다.
따라서 과학이든 종교든 자기 합리화에 빠질 가능성이 많아 집니다.
이렇게 혼란스런 인간의 이성의 대립을 해소할 만한 것은
역시 인간이 만든 불확실한 잣대이기는 하지만
어쩔 수 없이 인류의 공동가치인 생명존중, 신체와 양심의 자유, 행복, 나눔, 배품, 희망 등을
기준으로 할 수 밖에 없습니다.
이런 보편타당한 가치를 최고의 선으로 여기지 않는 종교는
그 존립자체의 의의를 상실한 것으로 사회에서 퇴출되거나
스스로의 자정 노력에 의해서 합목적적인 가치 추구를 위해 분골쇄신의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 입니다.
종교를 마치 개인 윤리인냥 나 하나만 좋으면 된다는 식으로
접근하다 보면 이 세상은 마구니의 세상이 되어 버릴 것입니다.
그 선구자의 역할에 서야할 자가 목사와 승려가 되어야 하는데
지금 성직자들을 배출하는 방식이 대학이란 제도를 통해 무제한으로
벽돌 찍어 내듯 배출해 내니 공급이 수요를 초과하게 되어
결국 성직자들도 밥 그릇 싸움을 하지 않을 수 없는
적자생존이라는 쟝글의 법칙이 종교집단에서도 발생하게 되어
사회적 문제로 돌출되는 것은 자명한 것으로 보입니다.
세상은 한 개인의 선의지로만 가지고는 바뀌지 않습니다.
공자도, 석가모니도, 예수도
인이라는 인간의 최고 덕목도 오욕 칠정을 다스리지 못했고
자비라는 궁극적인 가치도 하나의 제시적인 측면으로만 그쳤고
사랑이라는 최고의 선도 삶의 지향적인 목표로서 타당성만 가졌을 뿐 이었지
인류에게 내재된 마치 우주와도 같은 다양성은 인간의 유전자에
그대로 남아 중생심이라는 모습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인간의 사고는 빈약하고 감정은 늘 불안정합니다.
종교는 이 이성적으로 불완전존자인 인간에게 방향을 제시하고
감정에 있어 불안정하여 행 불행의 순환고리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인간에게 위로가 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거짓 이성으로 인간을 현혹하고
거짓 위로로써 인간의 마음을 희롱한다면
결국 종교는 마약과도 다를 바 없는 사회악일 수 밖에 없는 것이라 봅니다.
지금 종교인들은 신의 음성 내지 교조의 참된 말씀을 전달하는 것 보다는
편견과 인지부조화적인 이성을 투영하듯이 자신의 음성만
자신의 사고만을 이야기 합니다.
교조와 그 말씀 또는 법을 벗어나 인간의 사리사욕에 맞닿는 달콤한
언어로써 교도들의 귀를 희롱합니다.
그렇지만....이 또한 인간이 피할 수 없는 그래서 극복해 내야 할 인간살이 이기에
뚜벅 뚜벅 자신의 길을 찾아 나서야 합니다. 남영현 (玄德) 님ㅣ 2011.04.26 11:07:05 ㅣ 기득권을 가진 목사들은 정신차려야한다. 예수께서 그토록 싫어하시던 성전에서의 장사치가 바로 당신들이라는 걸 뼈져리게 반성하고,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개혁하지 않는다면, 다음세대의 기독교는 말그대로 잊혀진 신화로 전락할것이다. 당신들이 원하는 것이 땅끝까지 이르러 내 복음을 전하라는 주님의 지상명령인지, 아니면 당신자신과 가족들의 부귀와 명예인지 반드시 돌아보아야한다. 내가 알기로는 여기서 자유로운 목회자는 전체대비 10%이하이다. 임명재 (바른말합시다) 님ㅣ 2011.04.26 19:50:03 ㅣ 가장 근본적인 문제는, 첫째 목사되기가 너무 많다. 둘째 교회가 너무 많다. 마지막 셋째 자교회중심적 사고를 버리지 못한다면 결코 개혁은 이루어질수 없다. 이를 극복하지 못한다면 결국 교회는 지금보다더 손가락질 받는 그들만의 리그로 전락할것이다.... 임명재 (바른말합시다) 님ㅣ 2011.04.26 19:47:22 ㅣ 어릴적부터 신앙을 가져온 사람으로서 작금의 교계현실은 가슴을 찢는듯하다.
세상의 빛과 소금의 역할을 해야할 기독교계가 오히려 썩은 내 풀풀 풍기는 천덕꾸러기로 변했다.
누구를 원망하고 누구를 지탄해야하는가?
가슴이 콱콱~ 막히고, 눈물이 핑~ 돌다가 이젠 그마저 포기해야할 실정이다.
... 임명재 (바른말합시다) 님ㅣ 2011.04.26 19:44:51 ㅣ 부할절 예배에서 교회들의 회개와 자성의 목소리,
그리고 연합 예배에서
"교회가 세상에 걱정을 끼치고 있다" 새롭게 태어나자는 설교내용은 코메디에 불과하다.
목사들은 자주 오류를 범해왔고 한기총 사건에서 보듯이 잘못을 고치려 하지 않기 때문이다.
목사들이 축도한 내용은 이루어 지지 않는다 그래도 그들은 계속한다.
한국교회는 대부분 이미 성경 말씀에서 떠나 버렸다. 박강희 (박춘풍) 님ㅣ 2011.04.26 18:44:48 ㅣ 예수, 그는 2,000 년 전에 실존했을 제법 똑똑한 머리를 가진 한 인간이다.
시대가 흐르다보면 언젠가 한번씩 혜성같은 존재가 나타나 기존의 법칙과 형식의 틀을 깨는 언어와 행동으로 기득권층으로부터 소외와 박해까지도 받으며 자기 소리를 외쳤던 것이다.
여러 종교 창시자들을 살펴보면 그들은 세상을 바라보는 남다른 시각과 뛰어난 화술을 겸비하고 있었음을 알 수가 있다.
그중에서도 예수란 사람은 그가 살았던 당시의 사회에서 정치적으로는 로마 식민 제도에 시달리면서도 종교적으로는 로마 제국과의 야합을 이루며 기득권을 유지하고자 하였던 정통 유태교회의 지도층으로부터 멸시와 천대를 받았던 하층의 유대 민중들을 그의 놀라운 지략과 언변을 동원하여 자극하고 선동함으로서 그들로 하여금 민중의 구세주라는 믿음을 갖게 하였고 나아가 인간의 몸을 입은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실로 기괴한 논리까지도 수용하게 하는 놀라운 능력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그의 탄생에서부터 비롯된 신약 성서를 제대로 살펴보면 현재 한국 사회에서 말하는 목사들의 논리가 얼마나 비약되고 과장되어 우리에게 다가오는지를 쉽게 가늠할 수 있다.
그렇기에 지금 목사들이 하는 소리의 대부분은 신앙적 진정성은 오간데 없고, 오직 제 자랑이나 늘어놓으며 마치 스스로가 유사 예수인양 헛소리만 외쳐대는 꼴이다. 정경훈 (임영박체포조) 님ㅣ 2011.04.26 16:04:19 ㅣ 죽음을 당하신 예수님
저는 당신을 사랑합니다.
당신이 가르쳐 주신 당신의 나라 곧 모든 사람들의 나라 당신의 아버지 곧 모두의 아버지 당신의 하나님 곧 나의 하나님을 사랑합니다. 그 아름다움에 늘 감격합니다.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이시요 세상을 구원하시는 나의 길이요 생명이십니다. ... 김정재 (진실하게) 님ㅣ 2011.04.26 15:04:29 ㅣ 천국은 죽고 가는 곳이 아닙니다. 지금 우리들의 마음속에 깨닫고 귀히여기는 것입니다. 섬기는 자가 높임을 받고 종이 되어야 최고가 되는 나라 일찍 온자나 늦게 온 자나 똑 같이 하루 품삯을 받는 나라 곧 가족이니까 가능하지요. 하나님은 한 분이시요 우리 모든 사람들은 하나님의 지으심을 받은 하나님의 자녀로서 형제입니다. 천국을 가르쳐 주시려고 미움과 조롱과... 김정재 (진실하게) 님ㅣ 2011.04.26 15:00:55 ㅣ 온 세상이 한 가족임을 가르치고 깨닫게 하여 서로 형제 사랑하기를 내몸같이 하라시는 주님의 말씀을 마음에 새기고 이세상나라가 아닌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내나라 곧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기를 바라며 소망하는 기쁨과 은혜를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내 나라 곧 하나님의 나라를 귀히 여기는 자들에게 하나님의 나라가 유업으로 주어집니다. ... 김정재 (진실하게) 님ㅣ 2011.04.26 14:55:46 ㅣ 이 세상나라는 한 가족이 아닌 것 처럼 살아갑니다. 하나님은 유일하신 모든 사람의 아버지십니다. 이 사실을 말하는 예수님을 세상의 기득권자들은 싫어합니다. 가족은 협력관계요 상호의존관계 곧 유기체적 한 몸을 이룹니다. 세상은 서로 비교하고 자랑하고 시기하지요. 그러므로 세상은 죄의 종 곧 사탄이 세상의 법을 만들고 모든 사람들이 자신의 법을 따르게 만들었습... 김정재 (진실하게) 님ㅣ 2011.04.26 14:51:31 ㅣ
부활의 의미는 가족을 다시 찾게 된다는 의미입니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원래 믿음으로 하나 된 나라가 하나님의 나라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내나라입니다.
예수님은 천국을 가르치시려고 보내심을 받았습니다. 자신의 말을 무시하고 천국 곧 하나님께서 함께하시는 삶을 싫어하는 사람들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밖아 죽였습니다. ... 김정재 (진실하게) 님ㅣ 2011.04.26 14:45:12 ㅣ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104251903095&code=990201&cmt&cmt&cmtpage=&cmtpage=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