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월 초 인터넷에는 ‘신세계 백화점의 위엄’이라는장난기 섞인 제목의 이미지가 나돌았다. 클릭해본 이미지는 바로 2011년 봄 신세계 백화점의 광고 캠페인. 슈퍼 모델 사샤와 스텔라 테넌트가 나른하게 소파 위에 누워 있는 이미지는 딱 이태리 〈보그〉 화보를 그대로 옮겨 놓은 듯했다. 아니나 다를까, 당대 최고 사진가 스티븐 마이젤께서 손수 셔터를 눌러 완성된 이미지였다! 모델도 모델이지만, 스타일리스트는 미국 〈보그〉 패션 에디터 카밀라 니커슨. 최고의 스태프들이 한국 백화점 브랜드 광고 사진을 위해 모였으니, 인터넷 패션 마니아들 사이에서 화제가 될 수밖에(이이미지를 ‘Happy Sale’이란 문구와 함께 세일 전단지로 사용했다는 점이 진정 위엄 있는 이유!). “6개월 정도 준비를 거쳤습니다. 회화적이고 고급스러운 사진의 스티븐 마이젤이 신세계 백화점 이미지와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번 프로젝트를 위해 신세계 백화점의 패션 에디터(백화점의 패션 에디터라는 독특한 타이틀) 양윤경이 말했다.“다른 백화점과 차별화되는 고급 이미지를 보여주기 위한 첫 번째 스텝입니다.” 당연히경쟁 백화점들은 신세계 백화점의 깜짝 시도에 만만찮은 자극을 받았다는 후문.이 에피소드는 ‘달라지고 있는 한국 백화점’이란 거창한 주제에선 하나의 작은 조각에 불과하다. 그동안의 보수적이고 고리타분한 백화점 이미지를 벗기 위한 고군분투의 흔적을 여기저기 찾아볼 수 있으니 말이다. 패션 프레스들의 시선으로 보자면, 요 몇 년 새 부쩍 늘어난 멀티숍들의 등장과 인기에 백화점이 조금 긴장했기 때문이라고 결론짓고 싶지만, 백화점 측에서 듣는다면 ‘소설 쓰냐며’며 코웃음 칠지도 모르겠다. 국내 모든 유통비즈니스의 정점인 백화점의 힘은 스케줄 맞추기 힘든 해외 브랜드 한국 지사장들을 한날한시 밀라노나 파리로 불러모을 정도로 위력적이므로.
그렇긴 해도, 백화점들의 ‘스타일 지수’가 급격히 상승 그래프를 그린 건 백화점이 직접 운영하는 멀티숍들 수가 늘기 시작하면서부터 라는 건 그들도 인정한다. 브랜드들에게 고고한 태도로 공간만 내어주고 나 몰라라 했던 예전 백화점 이미지(속된 말로 ‘패션 부동산’사업체)를싹 바꾸기 위한 지름길은 바로 직접 숍을 꾸미는 것이라는 걸 그들도 알게 된 것이다. “단순히 브랜드들을 건물 안에 나열하는 것이 아닌, 고객들이 선호할 만한 디자인의 옷들을 선별해 멀티숍을 구성하는 건 지금 시점에서 꼭 필요한 비즈니스 형태입니다.” 가장 먼저 멀티숍을 선보였던 갤러리아 백화점 바이어 오아람의 말이다(갤러리아에는 고객들의 입맛에 맞춘 GDS, 맨 GDS, 스티븐 알란, 알란 걸, 지스트리트 494 등 멀티숍 7개가 자리하고 있다). 갤러리아는 최근 클래식 남성복에 초점을 맞춘 ‘지 스트리트 494옴므’도 발 빠르게 오픈했다. 덩달아 롯데 백화점(D-코드), 현대백화점(스타일 429) 도 멀티숍 갖추기에 뛰어든 것은 물론.
일찌감치 자신들만의 멀티숍을 갖추고 있던 신세계는 또 다른 방식으로 백화점의 스타일 지수를 높이고 있다. 한국 디자이너들과의 콜라보레이션이 그 해답. 신세계 백화점의 멀티숍 블루핏은 김재현과는 블루 슈에뜨, 진태옥과는 제이아이엔, 최지형과는 쟈니 바이츠 블루 등 블루핏만을 위한 스페셜 에디션을 마련해 한국 디자이너들을 보다 광범위하게 대중들에게 소개하는 기회를 마련했다. “한때 한국디자이너 숍이 백화점에 많았지만, 지금은 해외 브랜드에밀려 몇 남지 않았어요. 이전과는 다른 방식으로 국내 하이패션을 대중에 알리고자 하는 의지가 있습니다. 백화점의 장점과 디자이너의 개성이 시너지 효과를 거둔 협업도 있었고요.” 콜라보레이션 프로젝트들을 진두지휘했던 바이어 최재혁이 자신감 있게 말했다. 그는 최근 남성복으로 방향을 틀어 올여름에는 요즘 패션에 관심 많은 남성들이라면 혹할 만한 남성 멀티숍 오픈을 준비 중인데, 역시 국내디자이너들과의 협업이 기대되는 부분이다. “올봄에는 스티브 J&요니 P와 블루핏과의 깜짝 놀랄 만한 프로젝트도 있으니 기대해주세요!”
“좀더 많은 대중과 만날 수 있다는 면에서 백화점은 아주 좋은 파트너입니다. 특히 요즘 한국 디자이너들에게 보여주는 백화점 측의 관심은 저희에게 큰 도움이 되죠.” 갤러리아 백화점의 GDS, 스티븐 알란, 그리고 신세계 백화점의 블루핏에 옷을 선보이고 있는 쟈니 해이츠 재즈의 최지형이말했다. 또, 백화점은 철저히 외국 라벨에 집중하는 대부분의 멀티숍들에 비해 한국 디자이너들에게 비교적 열린 마음을 가졌다. 신인 디자이너들을 통해 좀더 젊은 기운을 얻고자 하는 백화점들의 행보가 그 증거. 지난해 말 신세계 백화점은 한국의 젊은 디자이너들을 모아 ‘신진 디자이너 페어’를 열었고, 롯데와 현대 백화점도 각각 신인 디자이너들의옷을 모은 숍을 구성했다(디자이너들의 리스트가 모두를 만족시키기엔 부족했지만). 또신세계 백화점은 신진 발굴을 위해 매년 연말 〈보그 코리아〉와 전국의 패션학과 학생들의 졸업 작품을 대상으로 한 ‘Art to Wear’ 전시를 개최하고 있다.
백화점이 쇼핑하기에 좋은 장점들을 두루 갖추고 있다는 건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다양한 브랜드들을 한 곳에 만날 수 있는 것은 물론 할인이나 적립 혜택, 상품권과 선물 등 소비자들의 입장에선 혹할 만한 보너스도 제공하고 있으니까. 다만 이제껏 부족했던 건 패션 좀 안다 싶은 사람들까지 유혹할 만한 앞선 감각. “한국의 백화점들이 바니스 뉴욕처럼 변하기는 불가능할 겁니다. 백화점 바이어가 모든 아이템을 직접 바잉하는 백화점이 아니니까요. 하지만 나름대로 변화를 위한 자구책을 찾고 있습니다.” 매일 밤 한국 백화점의 새로운 모습을 꿈꾸며 잠든다는 신세계 블루핏의 최재혁이 웃으며 말했다. “우선 한 층에 그 층의 성격을 대표할 수 있을 만한 숍이 하나씩만 마련된다면 그것만으로도 훨씬 감각적인 모습이 되지 않을까요?” http://club.cyworld.com/Qoocob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