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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년 전, 어머니의 억울한 죽음

억울함에긴... |2011.05.19 19:59
조회 1,214 |추천 17

항상 판 눈팅만 하던 여대생 입니다.

다른게 아니라 오늘 한 톡을 보게 되었습니다.

자살로 판명된 친구의 의문사 라는 제목으로요.

베플에 자작글이다 라는 말이 많더라구요.

글쓴이님을 비판하려는 의도는 없습니다.

다만 제목을 보면서부터 저희 가족의 억울한 과거가

생각나서 마음이 아팠습니다.

그냥 재미로 쓴 글 일수도 있고 한데,

제가 과민반응을 보이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억울함을 당해보지 않은 당사자들은 모릅니다.

남아있는 가족들이 얼마나 아픈지...

사람의 목숨에 대해 가벼운 글은 삼가해 주시길 바라면서...

 

 

벌써 취업을 준비하는 그런 나이가 되었네요.

아직도 그 8년전 과거가 생생히 떠올라 아직도 죽음에 대해서

너무 무섭네요...

 

8년전, 저는 너무 사랑하던 어머니를 잃었습니다.

하지만 지금까지도 그 죽음에 대해서 저희 가족들은 억울함을

호소할 곳 없이 8년이라는 세월을 보냈습니다.

 

때는 2003년 3월 경, 어머니는 미국에 가서 자리잡고

저와 제 동생을 부르겠노라 약속을 하며 커다란 짐가방을

챙기시고 집을 나섰습니다.

어머니가 갑작스럽게 미국행을 택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요.

아메리칸 드림, 어머니는 자신이 대학교를 나오지 못한 것에

대해 후회가 많으셨고, 그만큼 자식들의 교육열이 남다르셨습니다.

하지만, 가정과 자식에 대한 교육열로 집안을 일으켜보겠다고

아둥바둥 살던 저희 순진한 어머니께서 미국에 대해서

어떻게 아셨으며, 도대체 어디에 가서 생활하려고 하셨을까요.

아직도 후회가 됩니다. 조금만 더 말을 잘 듣고 열심히 할걸 하면서요...

그때 어머니가 많이 힘드셨으리라 생각됩니다.

아버지의 노름으로 인한 빚에, 아둥바둥 모아서 산 집에 차압 압박이

들어왔고, 항상 빚에 대한 이자를 갚아야 하기 때문에

아무리 어머니가 보험업 팀장직을 맡으면서 일을 했어도

항상 생활은 쪼들릴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렇게 자식들만 보고 살던 어머니였는데, 사춘기였던 그들의 자식들은

어머니의 그런 힘든 노력을 등돌렸습니다.

항상 짜증만 내고, 이야기 한번 들어주려 하지 않았습니다.

그때, 어머니께서는 아는 분이 채팅을 가르쳐주셔서 채팅에 빠지게 되셨습니다.

매일 헤드폰을 끼고 음악방송을 하고, 그러면 어렸던 우리들은

그것이 너무 싫기만 했어요.

그래서 항상 어머니께 그런거 하지말라고, 왜 그러냐며 어머니의

스트레스 해소공간 마저도 인정해주지 않았죠.

그곳에서 순진한 저희 어머니에게 "미국에 가자, 미국에서 자신이 사업을 하고 있는데

가면 자기가 아이들과 살 수 있도록, 자리 잡을수 있도록 돕겠다."

한 남자의 제안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미국 정착금으로 자신에게

얼마를 보내라 등의 돈을 요구하게 되었습니다.

그 당시 어렸던 저는 그저 어머니의 미국행을 보면서, 나도 미국가서 공부할 수 있겠구나

하는 어린 생각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그때 그 순간 어머니를 잡지 않은 것이 이렇게 평생의 한으로 돌아올 줄은 몰랐습니다.

 

어머니가 미국을 가겠다며 집을 나서기 전에 이모 두분께서는 이 남자를 한번 본 적이 있다고 하십니다.

그때 어머니가 말하셨다고 하십니다. 저 사람이 미국가면 다 도와주겠다고 했다고

미국에서 큰 사업을 하고 있다며,

이모 두분은 '저 XX 사기꾼이니 믿지마라' 신신당부하였지만

어머니는 이미 마음을 결정한 상태였고, 욕심많고 악착같았던 저희 어머니는 그 후 며칠뒤

이모와 외할머니, 가족들의 만류 모두 뿌리치고, 자가용을 이끌고 집을 나서셨습니다.

그때 이모와 할머니는 이렇게 될 것을 아셨나 봅니다.

나가자마자 112에 실종신고 내고, 지금 공항으로 향하고 있으니 그 차를 잡아달라고,

그렇게 목놓아 경찰관에게 부탁했지만, 경찰관들은 저희 가족들의 울부짖음을 무시했습니다.

그게 무슨 실종이냐, 차 못 잡는다, 별일 없으니 과민반응 하지말아라

결국... 그렇게 집을 나선 며칠뒤에, 차는 어딘지는 지금은 잘 기억이 안나지만,

차만 발견됩니다.

어머니는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구요...

 

그렇게 한달이 거의 지나던 차에 4월 5일, 그때가 어머니의 목소리를 듣는 마지막날이 될줄은 몰랐습니다.

여보세요?

응 엄마, 어디야? 언제올거야?

응 엄마 곧갈거야, 우리딸 오늘 생일인데 미역국도 못챙겨줘서 어떡해?

아니야 괜찮아 엄마 빨리와 보고싶어

 

그 짧은 몇초간의 통화를 마치고 어머니는 다급하게 전화를 끊으셨습니다.

나는 엄마 빨리오라고 보고싶다고 어디냐고 미국이냐고 그때는 몰랐었습니다...

그리고 나서 그 후 약 2개월 후 어머니는 을왕리 라는 외딴 곳에서

한번도 가본적 없는 곳에서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되었습니다...

그런데 이 모든 상황들이 너무 억울하고 또 억울합니다...

그 외딴 섬에 왜 들어갔으며, 그곳에서 왜 빨래줄에 매달린채 발견되었어야만 했는지...

 

6월 초, 새벽녁부터 전화벨이 울려왔습니다.

경찰이라며, XXX씨 보호자분 되시냐고, 주검으로 발견되셨다고, 인천 을왕리라며...

그날 새벽녁부터 전화기를 부여잡고 울던 아버지의 모습...

자다가 일어나 우리 네 가족은 서로 부둥켜 안고 울었었습니다.

저는 아침에 그래도 아무렇지도 않은 척 학교로 향했지만,

아버지와 오빠, 그리고 이모 두분은 을왕리로 향하셨습니다.

절대 자살하실 그런 나약한 분도 아니셨고, 분명히 저와 약속했었습니다.

금방 가겠다고, 엄마 금방 갈거라고 잘 지내고 있으라고...

이모는 그 소식을 듣자마자 현장보존 해달라고, 아무것도 손대지도 말고 그냥 가족들이

직접가서 눈으로 확인하기 전까지는 아무 손 대지 말라고

하지만 저희 가족들의 이런 요구, 다 무시되었습니다.

도착했더니 현장 보존 전혀 안돼있었구요,

형사 한분이 저희 오빠 옆에 오더니 "너 엄마 자살이다, 자살이야"

이 상황을 전혀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는 우리 가족들에게 경찰이라는 사람은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저희 오빠는 우리엄마 그럴 사람아니라고, 저 XX 죽여버리겠다고

 

어머니가 을왕리에 들어간 것은 몇달 되었다고 합니다.

어떤 남자 한명이랑 같이 왔다고 하구요, 바로 그때 그 미국행을 꼬신 그 사람입니다.

여관집 주인의 말에 따르면, 그 남자는 어머니와 부부관계라고 거짓말을 하였고,

큰소리가 나면, 별거 아니다 그냥 말다툼을 한거다 안심시켰고,

들어가 있으라며 그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사건 그 당일도 그랬습니다.

이상한 소리에 나오니, 아무일도 아니다...라며

그 사람은 자살인척 위장하고 처벌하나 안받고, 증거 불충분이라는 이유로 풀려났습니다.

하지만 정황상 절대로 자살일리가 없었습니다.

 

어머니에게 전화를 받은 변호사 친구분이 계셨습니다.

"내가 지금 시간이 없다, 지금 내가 불러주는것 제대로 적어라, 내가 죽을지도 모른다."

그러면서 어떤 사람의 이름과 주민번호를 부르더랍니다.

또 같이 일하던 동료에게도 한통의 전화를 남겼습니다.

"내가 가지못하면 내가 관리하던 보험고객들 다 맡아달라"

 

가족들이 추측하는 것은 이렇습니다.

사기임을 알아차린 악착같은 저희 어머니께서는

이 사람한테 미국가기 위해 주었던 돈 다시 내놓아라 압박을 했을 것이며,

그에 따라 그 사람은 저희 어머니를 목졸라 죽이고, 그것을 자살로 위장하기 위해

빨래줄에 매단 것이라고요.

왜냐하면, 매듭을 묶었던 모양은 군대에서 사용하는 매듭묶는 방식이라고 하더군요.

그리고 술 마시지 못하는 저희 어머니셨는데, 부검결과 알코올이 발견되었습니다.

술을 먹이고 잠자는 우리엄마를 그렇게 죽이고 어떻게 그렇게 당당하게 돌아다닐 수가

있는지 아직도 그 생각을 하면... 정말 그 XX 똑같이, 아니 더 고통스럽게 갈기갈기

찢어 죽여버리고 싶습니다...

 

억울한 죽음때문에 억울하게 돌아가신 우리 엄마를 두번 죽여야만 했습니다.

부검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을 하였고, 그 장면을 아버지, 이모, 오빠는 두 눈을 뜨고

지켜보아야만 했습니다. 하지만, 경찰관들이요, 이런거 다 무시하고

자살로 판정짓고 사건 종결시켰습니다.

장래를 치를 때, 온몸이 붕대로 감겨있던 우리엄마의 모습... 잊을 수가 없습니다.

차마 눈뜰 수 없었고, 그 예쁘던 우리엄마를... 다시는 볼 수 없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무너졌습니다. 그때서야 실감이 났습니다. 어머니가 돌아가셨다는게...

그때 외할머니의 말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내 딸이 울고 있어, 가서 눈물 닦아줘야돼..."

얼마나 억울했으면 죽어서도... 눈 제대로 감기 못하고... 눈물을 흘리고 있었을까요...

얼마나 무서웠을지...

 

억울한 저희 가족은, 지방사는 이모 두분은 법률사무소 찾아다니면서

자신들의 생계 다 포기하고 서울로 상경하여 백방으로 뛰어다녔습니다.

그때에 엄마의 전화를 받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증인으로서 참작해 달라고

부탁을 하였는데, 자신에게 불똥이 튈까봐 처음에 했던 이야기와는

다른 이야기로 말을 바꾸더군요... 모두가 죽은 사람 앞에서, 말없는 사람앞에서

등을 돌리더군요... 그리고 우리가족들 외로운 싸움을 했습니다.

통장에서 나간 돈이며, 증거 수집했습니다.

하지만, 그 살인마 새ㄲ는 이미 풀려난 상황이었고, 살인죄가 아니라

사기죄로 공소시효 5년 주더군요.

 

이미 8년이 지났습니다. 그 살인마가 아직도 거리를 활보하고

우리엄마 죽이고도 잘 살아갈 생각을 하면 억울하고 억울합니다.

드라마에서나 나오는 이야기인줄 알았지 우리 가족들이 이런 일을 당할줄은 몰랐습니다.

정말 어린 나이지만 독해져야만 했습니다.

엄마없다는 손가락질, 엄마가 바람나서 나갔다는 손가락질... 뒷이야기...

그거 다 들으면서도 보란듯이 더 강해져야만 했습니다.

정말 사람이란 존재가 너무 무섭고도 잔인하네요...

 

그 돈이 뭐라고, 그깟 돈이 뭐라고 사람을 이렇게 비참하고

벼량끝까지 몰고갑니까...

우리엄마도 참 미련하지... 유품을 정리하는데 어머니의 지갑속에서 가족들 사진이 발견되었는데

그걸 보니 정말 억장이 무너졌습니다. 그 사진을 보면서 얼마나 그리웠고, 얼마나 무서웠을까요...

 

저도 너무 어린 나이였고, 직접 본것이 아니라, 가족들의 말과 증거수집 과정과 사진만 본것이기에

제가 알고 있고, 기억나는 사항은 이렇습니다.

 

엄마, 요즘에는 꿈에도 한번 보이지가 않네...

엄마는 아마도 하얀색 예쁜 옷 입고 천국가서 예쁜 천사가 되어있을것 같아.

외할머니가 봤대, 엄마가 하얀옷 입고와서 너무 밝은 표정으로 마지막 인사하고 가는거...

그게 벌써 8년 전이네... 힘들면 제일 보고싶고 제일 생각 많이 나는게 엄마인데

나 진짜 부끄럽지 않은 딸 되게 위해 노력할게...

엄마 하늘나라에서 부디 우리가족들 보살펴줘...

사랑해...

 

 

너무 억울한 마음에 두서없이 써내려 갔습니다.

긴글 읽어주시리라 기대는 않습니다.

다만 저희 어머니와 같은 희생자가 없기를 바랄 뿐입니다.

그저 너무 답답하고 호소할 곳이 없어

이 곳에 이렇게 긴 글을 쓰게 됐네요.

 

추천수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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