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3.
"여보세요.."
"저 이정우입니다."
"아~ 정우씨.. 그래 결심하셨나요?"
"네"
"생각 잘하셨습니다. 그러면 시간이 되시면 지금 만날까요? 전화상으로 말하기는
조금 곤란해서... 정우씨 전에 우리가 만났던 한정식집 아시죠?
그쪽으로 만날까요? 제가 지금 나가면 넉넉잡고 한시간정도 걸릴것 같은데
괜찮나요?"
"네에..그럼 거기서 뵙겠습니다."
정우가 먼저 약속장소에 도착했다.
가만히 앉아서 천장을 올려다보자 저절로 한숨이 터져나왔다.
이번이 마지막인데...되돌릴수 있는..
정우는 안주머니에 있는 봉투를 만져보았다.
그러나 병실에서 초퀘한 모습으로 누워계시는 어머니의 얼굴이 정우의 머리속에서
지워지지 않았다.
어머니...
일찍이 남편을 지병으로 잃고 세남매를 위해서 새벽부터 늦은밤까지 몸이 부서지라고
소처럼 일만 하신 우리 어머니..
지문이 다닳아서 주민등록증 만들때 지문이 검출이 안되자 부끄러운듯
고개를 숙이던 우리 어머니...
당신은 미음조차 넘기는걸 힘들어하면서도 끼니는 잘챙겨먹고 있는지..
예전에 머리가 굵어진 자식놈들 먼저 걱정하시는 우리 어머니...
어미고양이마냥 우리에게 항상 든든한 방패가 되어주었지만
정작 못난자식놈은 병원비도 변변히 준비못해서 이렇게...
장변호사 문을 열고 들어오면서 정우를 보면서
"아이구~ 차가 막혀서 늦었습니다. 죄송합니다.
서울교통 하루 이틀 애기도 아닌데...이렇게 구차한 핑계를 대는군요.."
"아닙니다. 저도 방금 왔습니다."
장변호사는 자리에 앉으면서
"식사전이죠? 우선 식사를 먼저 하죠. 여기가 녹차도 괜찮지만 한정식으로도
꽤 유명한곳이죠. 예전에 한상에 200만원짜리라고 해서 매스컴에서
한창 나왔던 집이 바로 여기입니다. 그러면 오늘 우리도 그걸로 할까요?"
정우는 아무말도 하지 않고 시선을 내려서 바닥만 보고 있었다.
장변호사는 알아서 음식주문을 하고 기다리는 동안 장변호사는 정우를 보면서
"지금부터 하는 말은 제가 맡은일과 별개로 개인적인 생각을 말씀드리는겁니다.
정우씨...제가 정우씨보다는 수십년 먼저 세상의 달맛쓴맛을 먼저
본 인생선배로써 몇가지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그냥 늙은이의 넋두리구나 이렇게 생각하셔도 좋습니다.
저도 정우씨 같은 시절이 있었습니다. 사랑하나면 모든것이 다된다고
생각하던 그런 시절이...
믿기지않죠? 머리가 희끗희끗한 저같은 늙은이에게 그런시절이 있었을까 싶으니까요..
그당시여자쪽 집안이 너무 처진다고해서 다들 주위에서 결혼을 반대했죠. ..
특히 집안에서 반대는 더더욱 심했죠.
자식 부모간의 연의 끊자는 말까지 나왔으니깐..
그래도 제가 밀어붙였습니다...그 여인이 바로 제 아내입니다.
그렇게 어렵게 어렵게 결혼하고 몇년이 지나고 어느날 문득 이여자가 정말 내가
목숨까지도 던질수 있다고하면서 사랑했던 그사람이 맞을까?
아니야..다른사람 다른 사랑이 있는걸 아닐까? 하는 회의가 들더군.
그래요 정우씨.. 이사랑만이 절대적인 사랑이라는 생각은 하지마세요.
사랑에는 정답이 없으니깐요."
"설령 그답이 오답이라고 하더라도 저는 서희를..."
정우는 말을 잇지못했다.
내가 여기서 무슨 염치로 서희를 사랑한다고 말할것인가?
그리고 장변호사의 이런저런 애기가 이어지고 정우는 일방적으로 듣는 입장이었다.
잠시후 식사가 한상 가득 셋팅이 되자 장변호사는 정우에게
"자..들죠?"
"네에.."
상에는 어디서 수저를 가야할지 모를정도로 산해진미가 가득 차있지만
그중에도 간장게장이 정우의 눈에 들어왔다.
'저것 서희가 좋아하는건데...'
어느날 서희가 언니한테 뺏다시피하면서 가져왔다고 자랑스럽게 말하면서
저녁식사때 간장게장을 내놓은적이 있는데
서희는 껍질까지 오독오독 소리내면서 어찌나 기분좋게 잘먹는지...
정우는 자신의 그릇에 있는것까지 서희한테 밀어주자
"왜? 오빠는 안먹어?"
"나 원래 게 싫어하잖아..너 많이 먹어.."
"칫..기껏 가져왔더니...이게 얼마나 비싼데..정말 나혼자 다 먹어버린다?"
"어 그래..."
서희는 헤헤 웃으면서
"예전에 우리집에서 간장게장했는데 그날밤에 내가 몰래 일어나서
주방바닥에 철퍼덕 주저앉아서
밥통끼고 간장게장 먹고있는데 마침 그때 물마시러 나오신 엄마랑 딱 마주친거야
그러니깐 엄마가 기겁을 하신거야..
상상을 해봐..얼마나 놀라겠어?
비몽사몽 잠결에 나오셨는데 주방에서 웬여자가 뭘 오독오독 씹고 있으니
그것도 머리라도 짧어? 긴머리에 잠옷바람으로...
마치 전설의 고향 납량특집에서 자주 나오는 장면있잖아?
묘지를 파서 뼈를 오독오독 씹고 있는 구미호를 직접 대면한 심정이겠지..
그리고나서 엄마한테 등짝 엄청 맞았는데...
그래서 그때 내가 생각한게 다음에 결혼은 꼭 간장게장집 아들한테
시집가야지하고 굳건히 결심했는데.."
"어떻게하냐? 간장게장집 아들이 아니라서..."
"후후..오빠 자체가 나한테 간장게장이야.."
"그래서 너가 나를 종종 오독오독 씹는거냐?"
"당연하지..히히.."
정우는 자신의 앞에 놓인 간장게장을 보면서 그때를 생각하면서 빙긋 웃었다.
이제는 게를 싫어한다고 거짓말안해도 되고 혼자서 먹기에도 큰게이고
양념땟깔도 곱지만 소태를 씹은듯 입안이 까끌했다.
정우는 몇수저 뜨다가 수저를 내려놓았다.
그러자 장변호사는
"왜 그만드세요? 찬이 입에 안맞으시나요?"
"아니요..입맛이 없네요.저는 상관마시고 천천히 많이 드세요."
장변호사도 이내 수저를 내려놓고 상을 치워달라고 하자 입가심으로 마실만한
차와 다과가 들어왔다.
장변호사는 마시던 찻잔을 서서히 내려놓으면서
"저어..전에 말씀드렸던것 말입니다. 몇가지를 서류상으로 남겼으면 합니다."
"서류라면?"
"각서말입니다..다시는 서희양과 만나지 않겠다는 그런 내용의 각서를 한장
남겨주셨으면 합니다."
"네에..원하신다면 그렇게 하겠습니다.."
"그리고 또... 이것은 부탁드리기가 곤란한데.."
하면서 장변호사는 머뭇거리다가 어렵게 정우에게 말을 꺼내자
장변호사가 하는말을 다 듣고 정우는 미간을 찌푸리면서
"저기...그렇게까지 할필요가 있을까요?"
"저희도 정우씨가 말을 바꾸는 그런 분은 아니라고 믿습니다. 하지만 서희양도 정우씨를
깨끗이 잊어야지 서희양도 다른 미래를 준비할수있겠죠.
물론 저희도 터무니없는 요구이라는걸 너무나 잘알고 있습니다.
서희양을 위한 마지막 배려라고 생각하시고 염치불구하고 꼭 좀 부탁드립니다."
'그래 어쩌면 이것이 서희를 위해서 내가 해줄수 있는 마지막 배려일지도 모른다.
같이 살아가면서 변변한 선물하나 못해줬는데...
이런것이 마지막이 선물이라니...휴~ '
한참후에 정우는 그렇게 하겠다고 대답을 하자 장변호사는 고개를 숙이면서
"고맙습니다. 정우씨 본인에게 어려운 결정일텐데..."
이제는 서희에게로 가는 길을 완전히 자신의 손으로 끊고 다시는 돌아갈수 없는
길을 만들고 있다는걸 정우는 너무나 잘알고 있다.
하지만 어떻게 할것인가?
갑자기 숨이 턱하고 막히는듯 했다.
정우는 장변호사와 이야기하던것을 처리하고 집으로 향했다.
발걸음은 마치 무거운쇠덩이를 달아놓은듯 한걸음 한걸음이 고통스러웠다.
현관을 열고 들어오자
"오빠왔어...얼릉와. 밥은?."하고 밝게 맞아주는 서희의 얼굴을 보자
왈칵하고 눈물이 나지만 애써 참으면서 정우는 고개를 돌리면서
"먹고 왔어..아직도 안잤냐?"
"오빠가 안들어와는데 어떻게 자? 오빠 요즈음 들어서 늦네..
혹시 바람난것 아니야? 늦바람이 무섭다는데..헤헤.."
"아니야.."
"오빠 눈이 빨개..충혈됐는데.."
"책을 너무 오래봐서 피곤해서 그런가봐"
"그게 아니고 도서관에서 공부는 안하고 너무 엎드려서 자서 그런것 아니야?
"짜식 칼이네..."
"오빠 먼저 자..난 애들 교육계획표도 만들어야하고 내일 수업할것
준비해야하니깐..."
"그래 알았다..먼저 잘게..너무 무리하지말고 일찍 자라..
밤늦게까지 안자면 빨리 피부상한다고 하더라.우리 예쁜 서희 피부 상하면
오빠 많이 속상하니깐.."
"어디서 저런 느끼 닭살 멘트를...?"
"내 특기아니냐? 후후..그래 나 들어간다. 잘자라.."
"그래 오빠도 잘자"
불을 끄고 누워서 한참을 뒤적이면서 정우는 쉽사리 잠을 이룰수없었다.
언제 이 시간들이 산산이 부서질지 모르는 불안한 마음과 이제는 다시는
서희를 볼수 없다는 사실이 현실로 한걸음 한걸음 다가오는 안타까움에 당장
서희에게 뛰어가서 모든것은 다 말하고 싶었다.
하지만.... 하지만.....
그리고 며칠후 서희는 자신의 이름 앞으로 된 우편물을 하나 받았다.
서희는 그것을 열어보고 자신의 눈을 의심하지 않을수 없었다.
아니..
헉~ 하고 놀란 서희는 한동안 말을 못하다가 무너지듯 바닥에 주저앉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