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사를 하고 나서 이 사이에 낀 음식물이라도 조금 없애볼까 해서 껌이라도 사러 가는데,
길가에서 그것도 차들이 생생 다니는 대로변에서 작은 판을 펼쳐놓고 작은 악세사리를 파는 한 엄마와 그 딸을 보게 되었다.
딸은 한 세살이나 되었을까 엄마 품에 안겨서 잠을 자고 있었다.
대체 이런 상황은 무엇이란 말인가. 매연 가득한 곳에서 엄마가 딸을 안고 행상을 해야하는 이 가슴 아픈 상황은 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나 는 길에서 물건을 잘 사지 않고 소위 걸거리 적선도 잘 하지 않는 편이다. 일회성 적선보다는 정기적으로 납입하는 기부를 해오고 있는데 그 모습을 보니 여섯살 된 내 조카가 생각이 났다. 내 조카가 엄마에 손에 이끌려 매연 가득한 곳에서 잠을 잔다면 얼마나 가슴 아프고 서러울까. 눈물이 조금 났다.
그 엄마에게 가서 악세사시를 하나 사주었다. 앞에 있던 악세사리는 만원이라고 하는데 행여나 비싸다고 생각할까봐 오천원 육천원 짜리도 보여주신다. 남자에게는 필요 없는 아이들용 악세사리지만 만원 주고 하나를 샀다. 그저 드리고 싶었지만 그러면 그 분이 자존심이 상할까 싶어 물건을 받고 사왔다.
어떤 이유로 어린 딸이 엄마와 같이 나와야 했는지 알 수 없지만 복잡한 생각을 할수는 없었다. 그냥 지나갈 수가 없었다. 난 결혼도 못했지만 자식도 없지만 어린 아이들이 고통 받고 어려운 세상을 사는 것은 정말 가슴 아프게 생각한다.
예전에 유아를 위한 예방 접종비 지원금이 전액 삭감당했다는 뉴스를 보았다. 이 정부 들어 분노한 일이 한두번이 아니지만 이건 정말 참을 수 없다고 생각했다. 어른들이 고통스럽고 어려운 것은 그럭저럭 견디기라도 하겠지만 자라라는 아이들이 힘들고 고통스럽게 사는 세상을 어른들이 만든다면 이 얼마나 부끄러운 일인가!
조카들을 보면서 항상 생각하곤 한다. 삼촌이 조카들에게 조금은 나은 세상을 만들어주어야 할텐데.. 조카들이 나중에 '왜 어른들은 세상을 우리들에게 이렇게 힘들게 만들었나요' 하소연 하는 것을 듣는다면 이것보다도 부끄러운 일은 없을 거 같다. 새로 자라나는 우리 아이들에게 그 고통을 전가시키는 것은 참으로 부끄러운게 아닌가.
우리끼리는 물고 뜯고 싸워도 우리의 사랑스런 아이들에게는 조금이라도 따뜻한 세상을 만들어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