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본인 관리들도 휘호 받길 원해
안중근은 3월 26일 형이 집행되던 날에도 한 편의 휘호를 썼다. 일본 육군 헌병 상등병 지바 도시치[千葉十七]는 하얼빈의거[哈爾濱義擧] 때부터 안중근을 호송하는 일원으로 차출되어 여순감옥에서 간수가 되었다. 그래서 안중근과는 주야로 접촉할 수 있었다. 지바는 일본 군인이지만 안중근을 마음속으로 몹시 경외하고 있었다.
나카노 야스오[中野奉雄]의 저서《죽은 자의 죄를 묻는다》에서는 안중근이 사형 전에 지바와 나눈 마지막 대화를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최후로 지바 도시치가 안중근 의사와 이야기한 것은 사형집행이 절박해 온 일요일의 당직근무 때였다. 이날의 이야기 내용에 대하여 가노(나카노 야스오의 조카)는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생각끝에 지바는 이런 말을 했다. "안씨, 일본이 당신 나라의 독립을 위협하게 된 것은 정말 미안한 일이오. 일본인의 한 사람으로써 깊이 사과드리고 싶은 심정이오" 하고 이야기 했더니, 안중근은 손을 잡으면서, "지바씨 그 말에 가슴이 찡하오. 일본 사람, 특히 군인의 신분인 당신으로부터 그와 같은 말을 듣게 된 것은 뜻밖이오. 역사의 흐름은 개인의 힘으로는 어쩔수 없는 것이오. 전에 말한 바와 같이, 한일 간이 이렇게 불행한 사이가 된 것도, 이토 한 사람만의 책임은 아닐지도 모르겠소. 그리고, 나의 이번과 같은 행동에 의해서 역사의 흐름이 바뀌지는 않을 것이오. 그러나 내가 저지른 이같은 불상사가 장차, 머지 않아서, 아니, 먼 훗날에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나, 우리 한국동포의 애국심과 독립심을 자각케 하는 계기가 되어 주기를 기대하고 있소. 특히 나는 나의 뒤를 이을 조국의 젊은이들의 애국심을 굳게 믿고 있소."
지바는 안중근의 손을 양손으로 잡고 흔들면서, "안씨, 나는 일본의 군인, 특히 헌병이기 때문에 당신과 같은 훌륭한 분을 중대범인으로, 간수하게 된 것이 매우 괴롭소." 하자, 안중근은
"아니오, 당신은 군인으로서 당연한 임무를 수행하고 있는 것이오. 이토 때문에, 굴욕적으로 한국 군대가 강제로 해산된 뒤에, 나는 동지들과 대한제국 의병부대를 결성하고, 그 참모중장이 되었고, 이 의병에 속하고 있는 동지들은 각기 생업에 종사하면서, 독립과 평화를 위해 동맹하는 것이며, 농부는 농사에, 선전유세를 담당하는 사람은 선전유세로, 이와 같이 각기의 임무를 별도로 하고 있소. 이토를 죽이게 된 것도, 나의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서였소. 군인은 나라를 지키고, 일단 유사시에는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치는 것이 그 본분이기 때문에 서로의 입장에서 어쩔 수 없는 일이고, 자기의 임무에 최후까지 충실하는 것만이 중요한 것이요." 지바의 손을 힘주어 잡고 있던, 안중근의 손은 따뜻하기만 했다.
마지막으로 지바는 전부터 염원하고 있었던 것을 용기를 내어 말을 했다. "안씨, 비단을 준비하였으니, 나에게 무언가 한 폭의 글을 써 주지 않겠소? 앞으로 소중히 간직하고 싶소……."’
지바의 부탁을 받은 안중근은 “오늘은 쓰고 싶은 생각이 없으니, 이해해 달라”라고 정중하게 거절했다. 그러나 늘 그것이 마음의 부담이 되었던 안중근은 사형이 집행되던 날 출발을 기다리기 직전에 그에게 한 폭의 글을 써 주었다.
‘사형 집행이 되던 그 날, 안중근은 친족들이 이 날을 위해서 준비해 두어 차입시킨 하얀 한복을 입고 출발을 기다리고 있던 바로 직전에, 지바는 안중근으로부터, "전일에 당신이 부탁한 글 한 폭을 씁시다"라는 말을 듣고, 비단 한 폭, 붓, 벼루, 먹을 준비해 주자, 안중근은 붓을 잡고 "국가를 위해 몸을 바치는 것은 군인의 본분이다(爲國獻身 軍人本分)"라고 단숨에 쓰고, "경술 3월 어여순옥중(庚戌三月 於旅順獄中) 대한국인 안중근 근배(大韓國人 安重根 謹拜)"라 쓴 다음, 무명지를 절단한 왼손 손바닥의 수인을 찍었다. 이것은 안중근 자신이 의병대 참모중장으로서 목숨을 나라에 바치는 것이 군인의 본분임을 나타내는 동시에, 지바 도시치의 장래를 위한 글월이었음은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다.
그리고 안중근은 지바에게, "친절하게 대해 주시어 정말 감사합니다. 동양의 평화가 찾아와서, 한일간의 우호가 되살아나면, 다시 태어나서 만나 뵙도록 하겠습니다"라고 말함으로써 지바는 감격하여 자기도 모르게 "감사합니다."라고 큰 소리로 외쳐 대답했다. 잠시후에 감옥의 문을 나서, 형장으로 출발한 것이 오전 9시의 일이었다. 1시간 후에 안중근은 태연히 죽음을 맞이했다.’
순국 직전에 안중근의 친필 휘호를 받은 지바는 36세에 퇴역하여 고향으로 돌아가서 안중근 의사의 유덕을 기리며 안중근 의사의 사진과 ‘위국헌신 군인본분(爲國獻身軍人本分)’의 족자를 소중히 간직하다가 1934년 50세로 사망했다. 그의 부인도 남편의 영향을 받아 안중근 의사의 영정을 남편의 위패와 나란히 모시고, 조석으로 불공을 드렸다. 그녀는 1965년 73세로 세상을 떠났다.
지바가 사망하고 45년이 지난 1979년 12월 일본《아사히신문》에는 다음과 같은 제목의 기사가 실렸다.
“안중근의 유묵 조국으로”
“미야기의 농가가 비장”
“일본인 간수에게 증정한 글씨”
안중근이 지바에게 써 준 유묵 ‘위국헌신 군인본분’을 지바의 질녀이자 소지자였던 미우라 쿠니코가 한국에 반환했다는 사실을 보도한 것이다. 이 유묵은 남산 안중근 의사 기념관에 기증되었다. 안중근의 마지막 혼이 깃든 유묵이 고국으로 돌아온 것이다.
○ 안중근 의사의 하얼빈의거와《동양평화론》은 후세에 어떤 메세지를 전하는가?
올해 2009년 10월 26일은 하얼빈의거 100주년 기념일이다. 21세기가 되는 지금까지 안중근 의사가 그토록 염원하던 ‘동양평화’는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한국은 분단상태를 유지하고 있다. 일본의 극우파세력은 여전히 군사대국화를 지향하면서 동양평화를 어지럽히고 한국의 고유 영토인 독도를 넘보고 있다. 중국은 신중화주의 노선을 추구하면서 한국의 고대사를 왜곡하고 백두산을 넘보고 있다.
우리 나라의 실정은 어떤가? 민족해방 63주년을 넘긴 지금까지도 안중근 의사의 유해조차 찾지 못한 채 안중근 의사의 위업은 점점 잊혀져가고 있다. 친일파의 후예가 한국 사회의 주류가 되고 국민 여론조사를 하면 파시즘 군부독재정치의 원흉이었던 박정희가 가장 존경받는 인물로 등장한다. ‘박정희 신드롬’은 식을 줄을 모르고 그를 추종하는 세력이 득세한다. 수구정치세력인 한나라당을 지지하는 ‘뉴라이트 전국연합’이라는 어용단체가 등장해 안중근(安重根)·김구(金九)·윤봉길(尹奉吉)·김원봉(金元鳳)·나석주(羅錫疇) 등 일본 제국주의 세력에 맞서 가장 치열하게 투쟁한 분들을 “알카에다보다 더 흉악한 테러리스트”라는 독설로 모욕하기 시작했다.
역사는 가끔 ‘우연’을 보여준다. 그것이 단순한 우연인지, 필연인지, 아니면 어떤 계시인지는 알기 어렵다. 가령 안중근 의사의 이토 히로부미 처단 의거일과 김재규의 박정희 암살이 같은 날인 10월 26일이다. 안중근과 박정희는 특별한 연고가 없는 것 같다. 안중근 의사가 손가락을 잘라 혈서로서 일제와 싸울 결심을 굳힌 것과, 박정희가 혈서지원으로 일본군에 입대했다는 사실을 빼고는 말이다.
이승만(李承晩)도 안중근 의사의 이토 히로부미 처단 의거와 장인환(張仁煥)·전명운(田明雲)의 스티븐스 제거 거사를 미국인들이 싫어한다는 이유로 못마땅해 했다고 한다. 요즘 이승만을 ‘국부(國父)’니 ‘건국의 아버지’라는 이름으로 떠받들고자 하는 지식인이나 언론인이 부쩍 많아졌다. 시대착오·역사왜곡의 극치를 보여주는 모습이다. 4·19민중혁명의 영령들이 지하에서 통곡할 일이다.
우리 나라의 역사가 급속히 후진하고 있는 것 같다. 일본 극우파를 비판하면서도 그들을 배우고 본받으려 하고 있다. 1789년 프랑스 시민혁명 뒤에 나타난 반동과 극단적 악순환을 두고 “변할수록 옛 모습을 닮아간다”는 말이 나돌았다. 우리의 현실과는 거리가 먼 나라의 얘기인가?
하지만 필자는 희망을 접지 않는다. 이유는 두가지 때문이다. 콩도르세의 “미래의 태양은 의롭게 살고자 하는 진보주의자들의 머리 위에만 비추게 될 것이다”라는 ‘역사인식’과 정호승 시인의「봄 길」에서 ‘역사인물’들의 행적을 알기 때문이다.
‘길이 끝나는 곳에서도
길이 있다
길이 끝나는 곳에서도
길이 되는 사람이 있다.
스스로 봄길이 되어
끝없이 걸어가는 사람이 있다.’
알제리아 전쟁이 한창일 때 신학자 카잘리스는 “폭력에는 자유롭게 하는 폭력과 속박하게 하는 폭력이 있다”고 선언했다. 안중근 의사의 ‘폭력’은 한국 민족을 자유롭게 하는 폭력이었고, 이토 히로부미의 폭력은 조선민중을 속박하게 하는 폭력이었다. 안중근 의사의 길, “길이 끝나는 곳에서도 길이 되는” 그의 길을 찾는다. 그 길은 바로 나라사랑, 민족통일, 동양평화의 길이라고 생각된다.
▶ 출처; 김삼웅(金三雄) 前 독립기념관장 著《안중근평전(安重根評傳)》시대의창編(2009년版)
【이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