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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펌)판문점 미루나무 도끼 만행사건

흐이구 |2011.05.26 21:21
조회 7,904 |추천 9

판문점 도끼만행사건 대해서 알고 계시나요?

이 사건은 판문점 공동경비구역 안에서 일어났던 사건입니다.


UN군측인 미군은 판문점 공동경비구역 안의 제5관측소에서 제3초소와 비무장지대를 관측하는 임무를 수행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북한군 3개 초소에 둘러싸인 제3초소 부근에 약 12m에 이르는 미루나무 가지가 무성하여 이를 제대로 관측할 수 없었습니다. 이 미루나무는 공동경비구역에서 오래전부터 자라온 나무로 남과 북 양측이 상대방을 감시하는데에 지장을 주고 있었습니다.

 

[사건의 발단이 된 미루나무]

1976년 8월 18일 오전 10시경 미군 장교 2명과 사병 4명, 대한민국 국군 장교 1명과 사병 4명 등 11명이 판문점 공동경비구역 안의 '돌아오지 않는 다리' 남쪽 UN군측 제3초소 부근에서 시야를 가리는 미루나무의 가지를 치는 한국인 노무자 5명의 작업을 감독·경비하고 있었습니다.
※ 돌아오지 않는 다리

 판문점에 있는 다리로 군사 경계선이 지나는 공동경비 구역의 서쪽을 흐르는 사천에 놓여 있습니다. 민족 분단의 비극을 상징적으로 나타내는 이 다리는 원래 널문다리라고 하였는데, 1953년 7월 휴전협정 조인 후 현재의 이름으로 바뀌었습니다. 포로 교환을 비롯하여 남북적십자회담 대표들의 왕래 등 많은 사건들이 이 다리를 통해 이루어졌던 곳으로 한번 가면 돌아오지 못한다고 하여 돌아오지 않는 다리 입니다.

 

 



돌아오지 않는 다리는 도끼 만행 사건이 일어난 곳과 아주 가까운 곳에 위치하여 있습니다


이때 북한군 장교 2명과 수십 명의 사병이 나타나 작업중지를 요구하였습니다. 그러나 한국측 경비병이 이를 무시하고 작업을 계속하자 인근 초소에 있던 경비 병력을 요청하여 수십 명의 북한군 사병들이 트럭을 타고 달려왔습니다.
인민군 사병들은 가지고 온 몽둥이와 UN군측 노무자들이 나무 밑에 두었던 도끼 등을 빼앗아 휘두르며 기습 공격하였습니다. 이들은 UN군측 지휘관과 장병들에게 집중 공격을 가해 미군 장교 2명(경비중대장 아서 보니파스 미군 대위와 소대장 마크 배럿 미군 중위)이 피살되었으며, 나머지 9명이 중 ·경상을 입었고, UN군측 트럭 3대가 파손되었습니다.

 

 

[도끼 만행사건 당시 모습]

사건 발생 후 주한미군과 한국군은 ‘데프콘 3’(경계상태돌입)을 발령하고 전투태세를 갖추었습니다. 미군은 F-4 전폭기 1개 대대와 F-111 전폭기 1개 대대를 한국에 증파하고, 항공모함 미드웨이호를 한국해역으로 항진시켰으며, B-52 폭격기를 출동시키는 등 강경한 대응을 취했습니다.

8월 21일 UN군은 '데프콘 2(전쟁돌입상태)'를 발령한 가운데 문제의 미루나무 절단작업에 나섰습니다. 포드 대통령의 지시에 따라 한미 양국간 협의결정으로 실시된 이 작전에는 건십헬리콥터 26대, B-52 중폭격기 3대, F-4 및 F-111 폭격기 수십 대가 판문점 상공을 엄호하는 가운데 3백여 명의 한미 양군 기동타격대가 투입되었습니다.
  
그러나 기세에 놀란 북한군이 이에 대응하지 않고 물러서서 더 이상의 무력사태로까지 확대되진 않았습니다. 북한의 김일성이 유감의 뜻을 표명하는 사과문을 국제연합군측에 전달함으로써 사건은 일단락되었습니다. 이 사건으로 9월부터는 판문점 공동경비구역이 남과 북으로 나뉘어 경비하게 되었습니다.

 

 


[절단된 후의 미루나무]
 

도끼만행사건은 남북한의 분단 하의 비극적인 사건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추천수9
반대수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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