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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토록 죽고싶었던 작가, 다자이 오사무

시대의우울 |2011.05.27 03:07
조회 27,440 |추천 92

1909년 6월 19일

정치가 집안에서 유복하게 태어난 소년, 쓰시마 슈지.

어머니는 아이를 낳자마자 병을 앓아 슈지는 유모와 숙모 사이에서 길러진다.

 

 <슈지가 태어난 생가>

 

엄할뿐더러 정치적 입지가 더 중요했던 아버지와

남편의 정치를 내조하기 위해 집을 비우는 시간이 더 많았던 어머니.

 

 

외로운 아이의 어린 마음을 달래려고,

숙모와 유모는 슈지에게 옛날이야기를 많이 들려주었다.

 

<어린시절의 슈지>

 

그것이 시작이었는지, 이 아이는 훗날 일본의 대문호가 된다.

 

 

 

정치가의 삶은 참으로 고된가보다.

그의 아들은 어떻게든 남들에게 우러러 보일 수 있도록 커야 했고,

슈지는 다행히 수석으로 소학교에 합격하고

이후 중학교, 고등학교를 아울러 우수한 성적을 거두었다.

 

문예 활동을 하면서 다량의 동인지와 문예지에 작품을 발표했지만

마음 속의 텅 빈 자리는 그 무엇도 채울 수 없었다.

 

 

<학창시절의 슈지> 

 

 

결국 1927년, 슈지는 19살 때 다량의 수면제 칼모틴을 복용했다가 혼수상태에 빠진다.

아쿠타가와 상(현재 일본의 권위있는 문학상 중 하나)의 시발점이 된

유명 작가 아쿠타가와 류노스케가 자살했다는 소식을 들은 뒤였다.

 

다행히 목숨은 건져 오와니 온천 야마니 센유칸에서 요양생활을 하게 된다.

정신병원에 강제로 끌려간 것이나 다름 없었다.

 

그의 마음은 어디로 흐르는 것일까.

무엇이 자꾸 그를 어둠으로 이끄는가.

 

섬세하고 나약한 성격은 인간에 대한 공포심을 낳았고, 극심한 불안과 죄의식은 계속됐다.

 

<학창시절의 슈지> 

 

 

1930년 그는 지금의 동경대학교인 도쿄제국대학 불문과에 입학한다.

최고의 교육을 받을 수 있는 자리임에도,

그는 유복하게 자란 자기 환경과는 달리 가난하고 절박한 사람들이 자꾸만 눈에 들어왔고,

그들을 위해 데모하기에 이른다.

 

자신의 집안이 고리대금업으로 부를 축적한 신흥 졸부였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이를 부끄럽게 여겼기 때문이었다.

공산주의적 학생운동에 참여하다가 쫓기기도 여러번...

 

가진 자와 못 가진 자에 대한 고뇌는 어릴 적 유복했던 본가에서부터 계속되어왔고,

그는 약자들을 더 사랑했다.

 

 

 

그는 결국 다시금 술집 할리우드 바의 여급 다나베 아쓰미와

로유루기자키에서 수면제를 함께 마시고 만다.

 

그러나 다음날 아침, 함께 죽기로 했던 여인은 야속하게 저 세상으로 떠나고

슈지는 혼자 남아 배를 움켜쥐고 고통스러워하고 있었다.

 

함께 죽기로 했지만 죽지 못했다는 마음은 죄책감처럼 번져,

그에게 엄청난 충격을 가져다준다.

이런 죽은 여인에 대한 자책 때문에

이 시기에 쓰인 글들은 성서를 언급하는 작품들이 많다고 한다.

 

 

그는 요양하러 내려간 온천에서 만난 여인과 가혼례를 맺어 보았으나 위로가 되지 않았고,

혼자 가마쿠라야마로 가서 목을 매보았지만 미수에 그쳤다.

 

<지금의 동경대. 도쿄제국대학> 

 

그쯤 되자 대학에서는 수업을 들으러 오지 않는 그를 제적 처리 해버리고 만다.

 

1938년, 그는 이시하라 미치코라는 여인을 만나 정식으로 결혼하고

이듬해 장녀 소노코를 낳는다.

이후 잇따라 태어나는 아이들과 아내의 존재로 인해 그에게는 모종의 희망이 있었고,

비로소 안정되었던 이 시기에는 ‘달려라 메로스’와 같은 밝은 작품들이 많아졌다.

 

<자녀들과 함께한 슈지> 

 

 

 

그러나 그의 우울은 끝나지 않았다.

그는 이내 예전처럼 삶이 고통이라고 여기기 시작했다.

 

 

 

1948년 6월

 

 

“태어나서 죄송합니다.”

 

 

그토록 자신을 혐오하고 용서가 되지 않아

그토록 죽고싶었던 작가, 슈지.

 

가벼운 평상복 차림으로 집을 나선 그는

숨겨진 연인이며 또한 미용사였던 야마자키 토미에와 함께

다마가와 강에 투신해서 자살하고 만다.

<함께 투신한 야마자키 토미에>

 

 

그의 나의 39세였고, 다섯 번의 자살시도 끝에 얻은 죽음이었다.

 

<투신 후 꺼낸 시신> 

 

 

그는 고향 사투리로 읽어도 발음이 변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필명을 다자이 오사무[津島修治.1909-1948]라 칭했고,

이러한 일련의 사건들을 자전적으로 서술한 소설 “인간실격”은

지금도 명작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읽혀지고 있다.

 

‘인간실격’ 속의 주인공은 그를 투영하고 있는데,

인간의 세계 속에서 살아갈 때,

나약한 본심을 숨기고 가면을 쓴 채 살아가야 하며,

그 가면을 벗어버리면 사회적으로 죽음을 맞을 수 밖에 없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나는 고양이로소이다” "도련님"으로 유명한 나츠메 소세키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일본의 대문호 다자이 오사무.

 

<인간실격에 언급된 실제 루팡 Bar에서 찍은 사진>

 

 

그는 태어난 이후로 그토록 죽고 싶어하고 삶 자체를 송구스러워 했지만

 

그의 삶에 내재된 불안함은

종전 직후 군국주의 일본 청년들의 마음을 대변했으며

지금도 그의 글은 방황하는 청춘의 자화상으로서

 

많은 이들에게 자신을 돌아보도록 만들고 있다.

 

 

 

:: 여담 ::

 

인간실격은 여러번 리메이크 되고 있는데,

데스노트의 작가가 인간실격을 그린 것이 꽤 유명하다.

 

영화로도 개봉되었고, 드라마로도 만들어져 있으며

 

애니메이션 "푸른문학시리즈" 중에도 인간실격이 등장한다. 

 

 

 

 

안녕하세요 시대의 우울입니다.

 

다자이 오사무의 이야기는

인간이 어디까지 허무할 수 있는가를 보여주는 결정판이라고 할 수 있어요.

준재벌 집안에서 태어나 공부도 수석이었고 도쿄대까지 들어가서 글도 인정받았지만

정작 그는 자신의 삶의 무게가 너무 무거웠고 부담스러웠던 것이죠.

 

다섯 번이나 자살시도를 하다니...

그런 용기로 살라고 말해주는 사람이 그 때도 한 명쯤은 있었으리라 믿고 싶습니다.

그러나 묘하게도,

그가 마음을 고쳐먹었더라면 우리는 인간실격과 같은 명작을 만나지 못했을지도 모르죠.

 

<내용 참고> 

 

http://dazai.or.jp/kr/knowing/writer.html

 

http://weekly.hankooki.com/lpage/focus/201102/wk20110216232111105530.htm

 

 

 

 좋은 밤 되시구요

늘 읽어주시는 분들 오늘도 감사드려요.

 

그리고 아낌없는 추천 늘 고맙습니다. 

 

추신 >

 

제가 일때문에 많이 바빠질 것 같아요.

당분간 판을 못쓰게 됐습니다.ㅠㅠ

10회에 이런 얘길 쓰니 뭔가 기분이 이상하긴 한데...

틈틈히 판 계속 즐겨볼거에요^^

일이 정리되면 또 흥미로운 얘기로 찾아뵙겠습니다! 화이팅! ㅠㅠ

추천수92
반대수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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