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과 이별이니, 그 사랑과 이별에 관해서 말해보자.
이별을 한 후에 후폭풍은 어디에서 오는가?
헤어진 대상과 자주 들리던 장소에 홀로 갔을 때?
아직 버리지 못한 사진을 바라볼 때?
주위 사람들이 헤어졌냐고 물어올 때?
대상과 함께했던 모든 것들을 혼자 하고있는 자신을 발견했을 때?
아니다.
그건 본인이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을 때다.
시간과 다른 사람으로 잊기에는 큰 존재인 그 사람을 생각하면서, 멀뚱히 본인이 할 일을
하고있지 않기 때문이다.
통계적으로, 이별 한 후 상대방을 쉽게 잊지 못하는 이들을 보면,
대부분 필요 이상의 움직임은 하지 않는 이들이다.
평소와도 같은 일상을 보내고 있으니, 몸은 평균적인 컨디션을 유지하려한다.
이때 필요 이상의 움직임, 즉 운동을 하거나 사귈때 하지 못했던 많은 것들을 하는 사람들은
어떨까?
몸은 굉장히 정직한 본인의 소유물이다.
헤어진 이후에는 몸의 컨디션이 평소보다 저조하다.
그에 맞추어 행동도 느릿해지고, 무얼 하던지 귀찮고 가슴만 쓰리다.
마치 감기에 걸린 것 마냥 무겁고, 잠도 잘 오지 않는다.
이는 뇌가 저조해진 컨디션으로 인해 무리하지 않으려고 이상 신호를 보내오는 것이기 때문에,
본인의 의지가 없다면 몇개월이고 계속된다.
이런 상황에, 몸의 활동량을 더욱 높혀본다면?
뇌는 무리한 몸에 지속적으로 이상 신호를 보내오려 하지만,
말했듯이 몸은 정직하다.
피곤하면 쉬어야하고, 아파오면 쑤셔야한다.
혹사된 몸의 컨디션의 이상을 더 이상 두고볼 수만은 없다.
뇌는 이런 몸에 '잠을 자라' 라는 신호를 보내온다.
그럼 잔다.
이렇게고 몇 주를 보낸다면, 몸은 그에 맞는 컨디션을 유지하게 된다.
그럼 이때가 시간이 약이라는 소리가 들어맞는 때이다.
몸을 움직임으로써, 저절로 시간은 흐르고 상대방을 생각하는 시간이 적어진다.
인간은 매우 조직적이고 간사한 동물이다.
기억력이란 것을 아는가?
뇌는 수면과 같다.
깊은 바다와도 같다.
모든 것을 저장하고 있지만,
모든 것을 꺼내놓지 않는다.
가라앚은 상대방의 기억들은 조금씩 떠오르려 하겠지만,
예전만큼 부력이 강하지 않다.
길게 풀어놓았지만,
결론은 몸을 움직이면 된다는 것이다.
이 또한 귀찮다면,
그냥 앓아라.
가슴 깊이 앓이하고 또 하라.
그 또한 방법이다.
위의 정보로,
내가 이별을 위해 했던 일들.
- 나는 남자기 때문에, 막노동판에 나가 일을 했다.
아파트를 짓는 공사현장에 아는 분의 소개로 들어가 두달을 일했다.
외소한 체형이기 때문에 몸이 떨어져 나가는 고통을 겪긴 했지만,
이 또한 어떠한가, 마음이 곯아 터지는 것 보단 좋지 않은가.
- 떠올릴 것들을 미리 제거하면 된다.
보면 아파질 것들, 추억거리들을 작은 박스에 옮겨 담아 창고에 두었다.
아련해 질 때 가끔 꺼내어 보기도 하지만, 헤어질 당시의 아픔은 아문지 오래였다.
- 당분 섭취는 항상 중요하다.
당분을 섭취하면 사람은 기분이 좋아진다.
회복또한 빨라지고, 아픔이 조금 가시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다만 본인은 2kg 쪘다.
단지 쵸콜렛 만으로 말이다.
- 아쉬워 말라.
이전이 존재했다면, 다음도 오는거다.
왜 다음을 기다리지 못해 아파하는가.
다음엔 백마... 까지는 아니어도, 어떤 사람이 올지는 모르는거다.
- 기대의 끈을 놓지 말아라.
중요하다.
다시 돌아와줄 거란 기대, 다른 사람을 만날 수 있을 거란 기대, 이런 아픔은 조금 지나면
사라져 버릴 거란 기대, 로또에 맞을 거란 기대 뭐 어떤거라도 좋다.
희망은 삶의 가장 큰 효소 중 하나이다.
마음 껏 부풀려라.
돈 드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사랑이란 건,
두 사람이 맞잡았던 두 손의 온기를
뇌가 끄집어 내 주지 않아도
저절로 떠올리기 때문에,
이별후에 아파오는 것이다.
두 손을 맞잡고 다닐 떄의 감정,
입술을 맞대어 포개었을때의 감정,
처음으로 들려줬던,
귓가에 아른거리는 말,
사랑해.
이 모든 것들이 저절로 수면 위로 떠오른다.
결국 남들이 어떤 말을 해주어도,
아픈건 아픈거다.
사랑에 끝은 없다.
사랑으로 시작해 정으로 끝나고,
혹은 중간에 이별을 하여 남이 되어도,
그 두 사람이 사랑했다는 사실은 여전하다.
그 끝없는 사랑을 계속 해나가야 하기 때문에
그 때문에 지금 당신은 아파하는 것이다.
지금 아파하지 않으면, 나중에 더 크게 아파하게 될 지도 모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