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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여행 길게 보내는 법 - 제2일 -

하늬바람 |2003.12.15 05:11
조회 558 |추천 0

 

‘99.11.03(수) 흐림 제2일


  도쿄의 아침은 아침 6시에도 이미 밝다. (南中時間은 30분차이지만 체감시간은 1시간 차이 이상이다. 오후 3시면 벌써 해가 기울기 시작해 마음이 바빠진다) 오늘은 공식 일정이 없기에 자유복 차림을 할 수 있는지라 모직바지, 모직셔츠, 두터운 점퍼차림! (모두 두툼한 새 옷으로 아내가 객지의 남편을 생각하여 방한에 만전을 기한 것인데 일본은 생각보다 따뜻하여 오후에는 점퍼는 들고 다닌 시간이 많았다.) 버스가 출발하자 우시오 상이 오늘 저녁부터 3일간 저녁식사는 개별매식하라며 1인당 9,000엔씩을 나누어 주었다. 왠 떡 아니 돈?자유 행동 지원 자금인가? 그러나 흐뭇함도 잠시 단장이 어제 예고한 대로 연수보고서 작성 분담자 6명을 호명하겠다는데, 그만 첫 호명에 일본교육제도 담당자로 지명되고 말았다. 이 좋은 날에 더 무슨 사설을 늘어 놓을 수 있겠는가? 체념이 상책이지… 나는 연수여행 보고서와 인연이 무척 깊은가 보다…

  오늘 아침의 방문지는 도쿄 에도(江戶)박물관이다. 이 박물관의 건물은 고상식(高床式)이라는 일본 전통 창고 양식으로 지어졌고 높이가 63m로 에도성 천수각의 높이와 같은데 도시화의 격류에 사라지는 일본 전통, 특히 에도시대 일본을 복원하여, 근?현대와 비교 전시함으로써 교육의 장으로 활용키 위해 지었다고 한다. 실물보다는 모형이 주 전시물이지만 실물 크기로 지어진 목조 료고쿠교(兩國橋)하며 가마, 가부키(歌舞伎) 무대, 서민의 살림집(長屋 : 막부가 지은 도시서민용 단층 임대 공동주택인데 단칸방에 칸막이가 얇아 프라이버시가 보장되지 못했지만 서로의 어려움과 기쁨을을 깊이 알게되어 주민들의 단결력은 강해졌다 함), 수도시설 등 에도시대 인구, 상업, 인쇄, 출판, 염색, 도시 구조 등 한국어 이어폰 해설과 그림만으로도 대강을 이해할 수 있어 역사교육의 장으로 훌륭하였다.

  에도 시대의 인구가 100만을 넘어 인구 과밀화 현상이 나타날 정도의 대도시였다는 점, 출판, 여러 색의 치밀한 인쇄 기술, 염색, 대중예술의 성행에 상수도 시설까지… 역사 공부한 사람으로서 이렇게 일본을 몰랐다는 사실에 부끄럼을 견딜 수 없었다. 자세히 보았으면 했지만 김포공항에서 혼자 늦은 전과가 있는지라 시계를 들여다 보며 발걸음을 재촉하면서 때론 용감하게(?) 일본인에게 카메라를 들이밀었다. “스미마센 돗데구다사이!” “하!” 찰칵!

  근대 일본 전시구역은 고속(?)으로 지나쳐 시간에 맞춰 로비에 나와 이어폰을 반납하고 일행과 합류, 인근 식당으로 향했다. 식당은 일본 스모인들의 식당풍을 낸 관광용 전통식당 료고쿠(兩國)인데 역시 깨끗하고 일본 음악이 분위기를 살리고 있었고 흰 고체 알콜로 불을 피우고 고기와 야채를 데쳐 먹는 아마도 샤부샤부(?)로 점심을 들었다. 물론 여기서도 각 개인별로 상차림이 나왔다.  식후 고상식 박물관 건물을 배경으로 단체 사진을 찍고 전자상가로 이름난 아키하바라(秋葉原)역 앞에서 해산, 첫 자유시간을 얻었다.

  자유! 그 얼마나 고원한 이상인가? 그러나 이상은 곧 꿈으로 드러난다. 자유가 주어지면 인간은 “갈 곳 몰라하노라”다. 오죽 했으면 “?유로부터의 도피”라는 말이 나왔겠는가? 자유에는 선택의 권리 행사에 따른 갈등과 외로움의 가혹한 대가를 치루어야 함을 주어지는 순간부터 느끼게 되며 따라서 인간은 집단 속에서 갈등하면서 자유를 꿈꾸면서 결국 집단 속으로 돌아와 구속을 소속으로 받아들일 수 밖에 없는 것이리라. 나는 이제 스스로 개인주의자가 되어 일행의 시선을 흘리며 일행과 거리를 두고 “나홀로 여행”을 시도할 것이다.

  일행과 떨어지는데는 불과 몇 걸음도 걸리지 않았다, 한낮의 일본 인파 속에 휩쓸려 들어갔으니 이를 “군중 속의 고독”이라 한다던가…. “가을잎의 벌판”이라는 아름다운 이름의 이 거리는 세계적인 전자상가로서 붐비고 있었는데 한 블록을 돌아서자 갑자기 차 없는 대로가 펼쳐졌다. 난 대로 중앙을 산책하며, “미래의 大物”이라 써 놓고 카세트를 켜 놓은 채 춤을 추며 노래하는 아가씨 일행에 시선을 주기도 하고, 원맨쇼를 하는 노란 무용복 차림의 소년을 돌아보기도 하면서 사진을 찍고 몇 개의 컴퓨터 가게를 잠깐 구경한 다음 국립박물관을 보기 위해 우에노공원으로 향했다.

  여러 선의 철도가 있는 우에노(上野) 공원역은 밖으로 나가는 출구를 찾기가 쉽지 않았지만, 길을 묻지 않고 아니 못하고 안내도와 표지에 의거하여 용케 공원 입구로 빠져 나왔다. 어사 상야공원(御賜 上野公園)이라고 쓰여 있는 입구를 지나 지도에서처럼 안내도에도 동물원, 미술관, 과학관, 그리고 가장 안쪽에 박물관이 있기에 천천히 걸어 들어갔다. 동물더큐멘터리 프로에서 본 일본의 도시 까마귀들이 울음소리로서 나를 맞아 주었다. 까마귀는 떼지어 날기도 했는데 까치보다 훨씬 크고 사람을 그렇게 피하지도 않았다. 어릴 적 이후 처음 본 까마귀에 신기해하며 발길을 옮기니 한 쪽 그늘에서 몇 명의 소녀가 그룹 댄스를 연습하는가 하면 말쑥한 노신사가 점치는 업을 하고도 있었다.

  14:30분쯤 박물관에 도착하니 일장기가 정문에 X로 게양되어 있어 일제시대 관청과 병영 정문을 연상케 하였는데 심사가 착잡한다. 살펴보니 평성(平成) 천황 즉위 10주년 기념으로 개관한 평성관에서 일본문화재 금은보화 특별전이 열리고 있었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평성관으로 향하고 거기에서 나왔다. 그러나 이에 개의치 않고 일본 전래의 문화를 보기 위해 본관 등의 입장권을 끊고 차례로 살펴 보기로 했다.

  본관은 3층이었고 석기시대 유물부터 차례로 배열되어 있었는데 여기에도 사람은 꽤 많았고 아이들을 동반한 가족들도 적지 않았다. 석기, 토기, 도자기, 불상도 있었지만, 아무래도 일본 옷, 검, 무구, 그림이 인상적이 었으며 사람이나 풍경을 우리 한국화와 달리 인물 등을 크고 대담하게 그리고 때로는 물감이 번지는 기법을 사용하였는지 꿈꾸는 듯한 분위기를 낸 것이 인상적이었다.  

  주마간산격으로 훑고 나오니 16:00시 무렵… 벌써 해가 지고 있어 나그네의 마음이 급해진다. 우측의 표경관(表敬館)에 들르니 우리나라와 중국, 서역의 전시물이 있는데 우리 문화재를 대할 때는 어딘지 친근한 느낌을 받았지만 착잡한 마음이 한 구석에 남는다. 이어 석양이 지는 시간에 마저 욕심을 내어 좌측의 홍콩 전시관을 들러 중국 문화재, 특히 청동향로, 상아, 옥 가공품, 도자기에 새삼 경탄하며 스쳐보며 주마간산 아니 보행간문화재하였다. 불상이 놓여있는 전시대 아래를 관리원 작업 탓에 우연히 보게 되었는데 전시대가 무언가 아마 진동 흡수장치가 되어 있는듯 했다.

  나오면서 동물원을 훑어 보자하고 방향을 찾으니 조그만 벽돌건물 앞 게시판에 옛 우에노 음악학교 건물이라고 쓰어 있다. 그렇다! 애국가, 코리어 환타지의 안익태가 나온 학교가 아닌가? 조센징 무시 속에서 실력과 열정으로 일인 스승을 감동시켜 사사를 허용 받고 음악가로 자라나기 시작했던 곳이다. 몰려 나오는 인파를 헤치고 동물원 입구에 가니 매표소가 이미 닫쳤다. 무슨 신사라고 써 있기에 슬쩍보고 나오니 까맣게 탄 나무가 눈에 띄는데 2차대전 중 폭격으로 탔다고 써 있는 듯 했다. 동경 대공습이 있음을 에도 박물관에서 보고 듣지 않았던가, 수만명의 사상자, 일본군의 군가와 비행기의 굉음과 폭탄의 폭발음 그리고  굶어 죽은 동물원 동물의 사진…

  연못가의 행상들과 음식 냄새, 연못의 보트 이 두가지는 우리의 이삽십년전 풍경이어서 환경을 강조하는 요즘에 이런 풍경이 남아 있다는 게 “여기가 일본 맞아?”라는 혼잣말이 나올 정도… 연못에 무성한 연(蓮), 오리, 그리고 어둠 속에 우뚝 솟은 독특한 모양의 인근 아파트, 젊은이의 포옹들을 뒤로 하고 어둠을 빠져 나와 다시 전철역의 혼잡 속으로 뛰어 들었다. 가자! 긴쟈(銀座), 그 밤과 화려함 속으로…

  그러나 불빛으로 가득찬 거리로 나오니 뜻 밖에도 확성기 소리가 거리의 소음을 제압한다. 돌아보니 지프차 위에 확성기가 얹혀 있고 뭐라 하는지 알 수 없지만 차 옆에 천황 즉위기념 축전 분쇄 운운하고 적혀 있다. 얼마 전에 황거 주변 교차로에 평성 천황 즉위 10주년 기념 축전을 위해 황거 주변 도로를 통제한다는 예고가 걸려있던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역시 확성기 지프차에 대화숙(大和塾)인가 하는 기관 명의로 일본정신의 교육을 고취하는 가두방송을 들었던 기억도 났다. 2개의 일본이 공존하고 있다. 우리는 무엇을 보고 무엇을 해야 할 것이가? 앞으로…

  이제 다소 익은 JR(“제이아루”)가 아닌 일반 지하철을 타기로 하고 열심히 지하철 안내도를 살피며 회사가 달라(都營線, 營團線 등) 요금을 따로 내야 한다는 설명을 상기하며 긴쟈에 도착하였다. 밤거리는 화려하다. 그러나 어디로 간단 말인가? 모두 고급 식당인 것 같아 배가 고파지는데도 거리를 헤맬 뿐, 선뜻 들어갈 용기가 나지 않는다. 마지막 후보 몇 집을 놓고 메뉴를 살펴보며 가격을 저울질하며 오락가락 한 끝에 지하층에 있는 음식집에 들어 갔다.

  메뉴를 보니 라면. 그런데 가격은 800엔, “미챤 라멘”이라던가 하는 이름인데 고기가 많이 있어 말 없이 손가락으로 가리켰더니 식탁을 준비한다. 벽에는 400년 전통의 라면 운운 써 있는 것 같고 마침내 음식이 나오는데 푸짐하며 고기맛을 보니 닭고기였다. 식당 이름은 아이아이(愛愛), 종업원 아가씨에게 사진을 찍어 달라고 하면서 연수단 명찰을 보이며 신분을 노출하고, 이어 지도를 꺼내 보이며 “야에스(八重洲) 북 스토어?” 하고 물었다. 아가씨는 설명하기 어려운 듯, 환히 보이는 주방의 주인 남자에게 가서 한참 의논을 하더니 약도를 그려와 나에게 설명하는데 알아 듣기 어렵다. 이윽고 날 데리고 밖으로 가더니 방향을 알려 준다. “베리 카인드, 탱큐!”라고 말하고 그 방향으로 걸었다. 한참 걷다 길가에 앉은 여학생 둘에게 물으니 무거운 짐이 있는데도 날 데리고 파출소에 가서 경찰관의 설명을 듣게 하였다. 경찰관은 토막 영어로 나에게 설명하는데 대충 세 블록 가서 좌측으로 한 블록 가라는 얘기 같았다. “고맙다” 인사하고 나와 두 여학생에게 “베리 카인드 오브 유 탱큐!‘라고 진심으로 말해 줬다.

  밤길에다가 골목이 적지 않아 블록수가 얼마인지 혼란에 빠져 발걸음에 자신이 없다. 마침 학생들을 안내하던 수학여행단 아줌마 안내원에게 “스미마센, 야에스 북스토어?”하니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설명해줬고 이를 따라 가니 동경역이 나오고 6층에 큰 책방이 있길래 일단 자동차 지도를 3000엔에 구입하였더니 책방은 삼성당 지점이란다. 책 구입 목적은 달성했지만 야에스를 못찾은 아쉬움에 파장의 상가 분위기에도 불구하고 다시 “야에스 북스토아?”하니 젊은 점원이 와이셔츠 바람에 날 데리고 1층으로 내려가 길 건너 편까지 간 다음 야에스를 멀리 가리킨다. 얼마 후 21:00시쯤 기어이 야에스를 찾아냈다. 기념으로 7개층 매장을 돈 다음 연수단 보고서 분담 숙제를 위해, 그리고 길 찾기 성공을 기념하기 위해 얇은 교육제도 책을 구입했다. 이 성공의 경험은 내일의 “나홀로 여행”에도 도움이 되리라…JR순환선으로 호텔에 돌아와 늦게 까지 TV를 보았다. 단풍, 스모, 축구, 훈도시 차림의 아슬아슬한 게임까지…

  오늘 아침 버스에서 우리 호텔 지하 수퍼에서 술을 팔고 있다고 하기에 지하 수퍼에 가서 4가지 크고 작은 캔맥주를 사서 TV를 보며 두 병을 혼자 비웠다. 낯선 곳에서 두 번째 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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