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부적 까닭으론 불화입니다.
사실 내 집도 아니었으며
나의 가족도 아니었지만
그들과의 관계상 불화 때문입니다.
어떤 불화일까요?
저가 성년이 되는 즈음서부터
이혼녀 나의 모친은 나의 이름을
자기 사업에 사용했습니다.
물론 그 사업의 수입으로
모친은 우리를 먹여살렸습니다.
모친은 나의 통장과 도장을
빈번하게 상용했습니다.
사업도 나의 이름으로 했고
자동차도 나의 이름으로 구했습니다.
이는 동시에 여러가지 일들을 하는
쌍동이 자리 사람들의 특징이자
사업가들의 주된 특기일 것입니다.
앞서서 쓰인 글들을 읽은 분들은
부친과 모친 그리고 나의
가족구성적 문제에 대해
충분히 이해했을 것입니다.
다시금 요약하면
부부 사이에 아무 사랑이 없이
강요와 폭력과 증오와 분노가 있었으며
그들의 피해 의식과 까다로운 소감을
그 사이 자녀인 저가 스스로 지닌다는
이 점을 이해하셨을 것입니다.
인위적이고 구색맞추기일 뿐인
그러나 인륜지대사인 결혼
그것을 거친 부적절한 인간관계였습니다.
그런 관계의 산증인으로서 나는
무의식적으로 그리고 의식적으로
간접적으로 그리고 직접적으로
부조리와 부조화의 핵심을
간파할 수밖에는 도리가 없습니다.
시간이 걸린다고 하여도
그 길을 이제껏 걸어왔습니다.
이혼 후 몇 년이 지나서
모친은 재혼했고
새 남편은 연하의 총각이었습니다.
둘이 참 잘 어울려서
저는 반겼습니다.
저의 동생이 결혼식에 오지도 않았음과 다르게
저는 참석을 했고 박수도 쳤습니다.
동생을 아껴주고 날 멸시하던 모친에게
그러한 반어적인 상황을 보여줬던 겁니다.
나는 모친과 아무래도 거리감 있던 관계였기에
객관적으로 평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을까요?
심리적 거리감과 무관히
나의 통장과 도장은 항상
모친에게 있었습니다.
IMF 때에 모친의 남편 '아저씨'는
건축자금횡령으로 감옥에 갔습니다.
아저씨라고 부르라고 했기에
항상 아저씨라고 불렀습니다.
그 아저씨가 모친의 도장을 몰래 사용하여서
나의 모친도 덩달아서 신용불량자가 됐습니다.
이런 어려운 상황에서
당연히 나의 명의는
더욱 이용되었습니다.
모친의 남편 그 아저씨가 출소를 하고
연거푸 자기 사업에 어려움을 겪던 그 아저씨는
어느날 나의 모친을 통해 도움을 청했습니다.
사채를 빌리자는 것이었지오.
그 아저씨의 지인을 통해 모 사채업자를 골라
그 사무실에 저하고 아저씨가 함께 방문해
서류를 작성하고 수천만 원을 빌렸습니다.
이 날에 그 아저씨는 모친을 대신하여
저의 통장과 도장을 갖고 은행에 가서
그 돈을 찾아서 자기 사업에 투자했습니다.
그러나 날이 갈수록 어찌 된 일인지
모친을 통해 들리는 아저씨의 소식은 좋지 않아서
실제 그 아저씨가 어떻게 지내는지 알지는 못하지만
모친은 매우 어려운 듯이 가계를 꾸려갔습니다.
물론 모친도 자기 사업이 있었으며
그 아저씨는 그 사업장에 자주 나타났습니다.
모친은 아저씨의 사업을 감찰하곤 했는지
나는 알지를 못합니다.
그 아저씨의 사업장이 어디에 있는지조차 모르지만
모친을 통해 내 명의 차량을 할부구입하여
그 아저씨가 자기사업장에서 사용했다는데
자동차 법규위반 과태료 및 세금 연체와 또한
어찌 된 일인지 지금 차량의 행방이 묘연하고
아무리 물어봐도 대답을 않습니다.
모친이 대답하지 않으니 아저씨를 만나야 하나
모친은 아저씨에 대해선 결코 말하여 주지 않으며
무언으로 나에게 뭔가 역할을 맡긴 듯 싶습니다.
어려서부터 엄마라고 부르며 경제적인 면에선
항상 협조를 해왔는데
그 역할이란 무엇일까요?
어느 날 불쑥 초인종 소리 들리고
나는 스스로 문을 열어주었습니다.
허나 그들을 들이면서 나 자신은
밖으로 나가 집으로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지금 중학생인 아저씨 아들에게 이후에 물어보니
그들은 과연 사복차림을 했던 정신병원의 인부들이었습니다.
서울이 아닌 지방의 동떨어진 모처의 병원에서
그 인부들을 불러다 나를 싣고서 데려가란 것이었지오.
그 언제인가 모친이 말하였듯
'이러저러한 일을 다시금 하면 영원히 정신병원에 가둘 것이다'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이러저러한 일이 무엇일까요?
듣기도 싫어하는 얘기를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가령 이 국제유태자본론 카페에서 하는 얘기들이죠.
일찍이 나의 모친은 우리 카페를 알기도 전에
우리 카페의 관심사에 관련해 먼저 인식을 했던
내 모든 말들을 철저하게 지탄해 왔습니다.
'그런 달나라 가는 얘기를 하지 말아라'
'무슨 외계인 같은 소리를 하고 있구나'
'너는 그 따위 식으로 매우 사상이 불순하다'
'인터넷의 네 친구라는 것들은 모두 미쳤다'
'니가 제정신이 아니다'
이러한 반응들이 모친에게서 있어왔습니다.
모친에게 경제적으로 확실하게 협조를 하던 본인을
모친 새 남편 그 아저씨는 확실히 이용했고
모친을 방패삼아 사채도 갚지 않으며
사채를 빌릴 수 있게 해줬던 나의 명의의 재산마저
모친 부부는 나도 모르게 처분했습니다.
나의 명의를 이용하여 건물을 소유하고
모든 재산권 행사들을 하고서
건물 명의의 나를 앞세워 사채를 빌리고는
나 몰래 건물을 팔아버린 겁니다.
팔아서 얻은 돈으로 사채는 갚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이제 본인을 영원하게 가두고 싶은 것이죠.
이런 극단적인 일들의 배후에는 무엇이 있을까요?
상상을 초월하는 일일 겁니다.
나 태어나기 전에도 있던 세상을
나는 제대로 알지 못하는 법입니다.
그들을 피해 전국을 다니다가 어느날
친가 큰집을 방문했습니다.
숙모께서 하시는 말씀
" 지금 네 엄마 남편이 옛날 네 엄마 애인이란다.
네 아빠하고 결혼하기 전에는 그냥 백수요 깡패였지. "
하기는 언제인가 모친의 고향 친구인 여자 스님이 하신 말
" 네 엄마 참 남자 하나를 잊지 못해서.. "(끝이 불분명)
정말로 골치아픈 세상입니다.
날 잉태한지 석달 쯤에서 수면제를 잔뜩 먹고서
방 안에 연탄불을 들여다 놓고 죽기를 시도했던
그 모친에게 비밀이 있었으니
결혼은 오직 사람들 눈치보여 한 것이었고
나란 존재는 빼도박도 못하게 하는 계기였기에
오직 의무감으로 키울 본인은 모친에게
사적으로는 오직 화근이었던 것입니다.
나 땜에 결혼생활을 계속한단 것이었지오.
그리고는 장차에 키우면서 '네 애비'라고
나에게 나의 정체를 각인시켰으며
이윽고 오늘에는 옛 애인과 합쳐
철천지 원수 본인을 생매장하려는 것입니다.
옛날 남편을 찾아가서 복수를 하지
왜 나를 인형으로서 삼아 바늘을 꽂습니까?
이조시대 안방의 인형으로 복수를 하던 장면이
떠오르지 않겠습니까?
인형을 마구 찌르니 멀리 원수가 아파한다?
그러나 나는 누구를 본뜬 인형도 아닙니다.
외모는 닮았는지 모르나 전혀 협력이 없습니다.
나는 오히려 모친에게 협조를 해왔지오.
엄마라고 부르며 순진하게 따랐던 것입니다.
물론 엄마로서는 매우 부족하기는 했습니다.
매우 거칠고 사려없고 부주의했기 때문이죠.
그래서 저는 고3때부터 서태지를 따랐습니다.
매우 곱고 사려깊고 주의력있어 보인 인물이었죠.
물론 자세히 따져보니, 난 신봉하진 않지만
서태지는 내 부친과 같은 사주를 지녔군요.
성명학적으로도 매우 비슷한 결과였습니다.
농담이지만, 그렇다면 모친은
나보단 서태지를 더 원수 삼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영화 속 비극적인 운명의 주인공들을
섬세하고도 통큰 배려심에서 공감했고
모친의 인생 장면장면도 나는
공감하는 주관으로서 감수했습니다.
갓난아기에 대한 모친의 증언으로,
부친에 쫓겨 도망을 치던 모친의 등에
업혀서 나는 숨소리조차 내지 않았다 하죠?
94년도 어느날인가 목동 하버드 레스토랑에서
어두운 조명 아래에 객실 의자로 걸어가는
그 아저씨의 표정을 나는 기억합니다.
아무것도 모르는 처음 본 아저씨의 표정을 보고
난 무얼 알았을까요?
그 표정이란
'오래된 매우 소중한 것을 찾아낸
절절하고 장중한' 그런 표정이었습니다.
심지어 매우 숙연해지는 그런 진지함
뭔가 귀중한 기억 한 조각 생각케 하는
그러한 매우 특별한 심각함이었고
본심에 따른다면 눈물도 흐를
엄청난 차분함이었습니다.
지금 이 글을 쓰면서 저의 눈에는
과연 눈물이 고이지만
그러나 그들 부부는
나를 원수로 여깁니다.
그런 장면과 매우 비등한 허나 반대상황의
장중하고 숙연한 장면들이 영화에 있습니다.
'화이어 라이트'(Fire Light)에서
식물인간 아내를 찬바람에 노출시키며
흐느끼는 남편이 그러했고 -
"주여 내 아내를 데려가소서"
'폭풍의 언덕'에서
고향에 돌아와서 여자가 죽었음을 알고서
매우 흐느껴 우는 남자가 그러했죠 -
"캐시... 캐시.."
현실에도 있었습니다,
외삼촌이 숙모를 잃고 초상날
찔끔 눈물을 얹은 채 짓던 표정을 보았지오.
모두 같았습니다.
왜 모친 부부는 나를 원수로 여겨야만 하는가?
내 아버지를 닮았기 때문이라 합니다.
성적으로 일방적이고 폭력 행사도 했고
저 초상날의 삼촌과 한판 붙기도 했습니다.
마루가 쿵쿵대는 정도로 시끄럽던 기억이
나의 아동기 시절 있었습니다.
아주 훗 날에 숙모를 잃고 잠시간
나를 요상한 눈빛으로 보기도 했던 삼촌은
이내 아내를 다시 구하고서는
내게 큰소리치며 화를 내고는 했습니다.
"전화요금이 얼마나오는데 전화질 하고 지랄이야!"
외가의 사람들이 날 호대하지 않으며
전혀 초대도 하지 않음을 기억해야 했으며
심지어는 모친이 그들과의 만남을 막곤 했음을
또한 기억해야만 했습니다.
모친은 그들에게 언제나 나를 폄하해 말하였고
그들은 어느 누구도 나를 달가워 하지 않았습니다.
이런 친족관계를 일찌감치 인식해
나의 환경을 정확하게 의식을 해야 했지만
나는 언제나 모친에게 사랑을 희구하며
그러나 무표정을 뒤집어쓴 어린애였고
이런 사실을 나의 모친을 간파했습니다.
그러나, 미운 자식은 미운 것이죠.
장차 옛 첫사랑과 재혼을 하게 되어서
부부로서 그들은 이제 복수를 하게 됩니다.
허나 전?
스스로 나의 애인도 청렴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인도의 노래 한 귀절 생각납니다.
' 신이시여, 당신은 오직 나만의 것으로서 유일한 분이시네.
신 당신만이 내 것으로서 유일하시네. '
항상, 태초의 아담(총각) 이브(처녀)를 호도하는
세속의, 아담 이브가 아닌 부부는
여실하게 불순하게도 집단성을 고수합니다.
그들 사이에 나는 철저한 타인이죠.
집단이기주의 이것은 바로 신에게 대한 반역이었고
신의 소관하시는 바를 자기들끼리 의논하였음이
그 처음이었으며
여기 세속의 부부들은
아이가 누굴 닮았으므로 원수라고 운명을 정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