퍼온글이라...
봤던분도 많이 계실거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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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은미는 11월 22일날 아침 갑작스럽게 사라졌다.
여느 때 처럼 예쁜 입으로 ‘다녀오겠습니다.’를 명랑하게 외친 그녀는 학교에 오지 않았고, 곧이어 선생님의 전화가 부모님의 귀에 들어가게 되었다.
처음에 부모님들은 의아해하기는 했지만 크게 심각하게 여기지는 않았다. 9살인 그녀는 요즘 학교가기 싫다고 징징댔기 때문에 근처 놀이터나 PC방 같은 곳에서 찾을 수 있다고 여겼던 모양이다.
하지만 두 사람의 예상은 크게 빗나갔다. 밤늦게까지 두 사람은 온 동네를 휘젓고 다녔지만 딸의 흔적은 발견할 수 없었고, 사건이 하루를 넘어갈 무렵에서야 이 실종사건은 경찰의 손에 넘어갔다.
경찰은 등굣길에 갑자기 사라졌다는 점, 그리고 사건 전후에 별다른 이상 징후가 없단 점을 들어 간순 가출이 아닌 납치 등의 강력 범죄로 보고 수사를 시작했다. 당장 실종자의 집 주변 1km를 200명의 전경들이 샅샅이 수색하기 시작했고, 형사들은 즉시 목격자를 찾기 위해 신속히 움직였다. 거리마다 은미의 마지막 인상착의가 적힌 전단지가 뿌려졌고 사거리마다 커다란 플래카드가 펄럭였다.
이 정도의 노력이면 금방 은미를 찾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지만 그들의 예상은 한참 빗나가고 말았다. 수백 명의 경찰들이 근처 야산은 물론이고 연립주택과 아파트단지까지 일일이 들어가는 수고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머리띠 하나 신발 하나도 찾아내지 못했다.
실종 20일이 넘어가자 매스컴에서는 언제나처럼 경찰의 전시대적인 수사방식과 시민의 집까지 일일이 파헤치는 태도에 대해 강력한 비난을 퍼부었고, 언제나처럼 한국경찰들과는 좀 더 나은 것처럼 보이는 몇몇 똑같은 수사방식의 선진국 특수 수사기관을 조명하며 그들을 본받아야 한다는 목소리를 높였다. 범죄수사프로그램은 은미 양 실종사건에 대한 다양한 가설을 제시하면서 시청자들의 관심을 끌었고, 뉴스 중간 중간에도 그녀의 사진을 보여주면서 하루빨리 그녀가 돌아오기를 빈다는 멘트를 남겼다.
거리의 사람들도 이제 서너 사람만 모이면 은미의 이야기가 먼저 오갈 정도가 되었다. ‘어떤 변태성욕자의 짓’이라는 한 대학생의 주장에 다른 사람이 ‘범인은 주변인이고, 경찰이 초반 수사에서 그를 찾아내지 못했다’라고 자못 똑똑한 체 자기 의견을 피력하는가 하면, 아이를 기르는 어느 주부는 ‘범인이 아이가 예뻐서 데리고 멀리 달아났을 것이다’라고 말했고, 이 말에 남편은 코웃음을 치면서 ‘돈이 목적이지. 조만간 범인으로부터 협박전화가 올 것이다’라며 자기 생각대로 추리했다.
수사 30일이 지나자 이제 경찰은 ‘은미가 범죄에 관련되어 실종된 것을 발견할 경우 최대 4000만원의 현상금을 지급한다’라는 공문을 내걸기에 이르렀다. 30일이 되도록 그녀의 실종이 범죄에 의한 것인지, 아닌지조차 밝혀내지 못했기에 그들의 희망은 오직 목격자 혹은 은미의 발견에 있었던 것이다.
그녀를 찾아내야 한다. 만약 죽었다면 시체라도 발견해야만 한다. 이런 생각으로 형사들은 증거를 찾기 위해 미친 듯이 뛰었다.
물론 30일 동안 제보가 전혀 들어오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수사시작 8일째에는 한 대학생의 제보로 은미로 보이는 여자아이가 수상한 남자들과 가고 있는데 모양새가 마치 강제로 끌려간 것 같다는 제보가 들어왔었고, 전경들이 은미의 것과 비슷한 옷가지를 몇 벌 찾아냈다. 하지만 자세한 조사 결과, 전자의 경우는 치과에 가기 싫어하는 아이를 그녀의 오빠 둘이서 억지로 데려간 것이었고 후자의 경우는 모두 은미의 옷이 아닌 것으로 판명되었다. 기타 경찰들에게 왔던 많은 제보들은 모두 별로 들을만한 가치가 있는 것이 아니었다. 수사는 아무런 진전도 보여주지 못하고 답보상태에 머물고 있었다.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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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황 : 초등학생 미귀가자 수색
일시 : 20##년 $월 $일
출동시간 : 08시 20분
종산시간 : 17시 (예정)
장비 : 탐침봉
복장 : 기동복, 기동화
장소 : ##공원
중식 : 도시락
관련서 : @@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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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또 수색이냐. 요즘 시위 좀 없으니깐 이런 게 터지고 그러냐.”
김 수경은 투덜거렸다. 제대도 이제 얼마 남지 않았는데 이런 성가신 사건 때문에 말년을 바쁘게 보내는 것이었다. 은미가 실종되건 유미가 실종되건 그와는 아무 상관없는 일이다. 그로서는 그냥 말년에 조용히 지내다가 제대하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뭐 그래도 찾으면 대박이지 말입니다. 일계급 특진에다 휴가도 9박 10일이니 말입니다.”
박 상경이 옆에서 얄랑거리자, 김 수경이 귀찮은 듯 퉁을 놓았다.
“무슨 특진이든 휴가든 이제 상관없으니까 빨리 제대나 시켜 달라 그래라, 미치겠다. 빨리 나가서 놀아야지, 이게 뭐냐, 이게?”
“그러게나 말입니다. 어이구, 우린 언제 전역하나……야 싸이코!”
“일경 김일호!”
<싸이코>라고 불린 한 대원이 달려왔다. 박 상경이 욕을 퍼부으며 김 일경을 ‘갈구기’ 시작했다.
“개 자식아, 뭔 놈의 새끼가 중대모를 삐뚤게 쓰고 다니냐? 그리고 너 옷을 이 따위로 다리면 어떻게 할 거냐, 앙?”
“시정하겠습니다.”
“야, 야. 그만 갈궈라. 뭔 옷 가지고 그러냐?”
김 수경이 부드럽게 후임을 감싸자, 박 상경도 한 두마디 더 잔소리를 퍼붓는 것으로 물러날 수 밖에 없었다.
일경 김일호.
소대에 들어올 때부터 우울한 표정과 힘없는 말투, 그리고 남들보다 더 어리버리한 행동 때문에 고참들에게 <싸이코>라고 불리며 군에서 알게 모르게 행해지는 괴롭힘과 구타의 대상이 되었다. 육군들 말로 ‘고문관’까지는 아니었지만 왠지 구타를 부르는 그런 타입이었다. 김 수경은 혹시라도 그가 딴 마음을 품을까봐 항상 그의 행동거지를 예의주시하고 있었다.
후임들이 모든 출동준비를 마치고 줄을 서자 그는 그때서야 기동복을 천천히 갈아입고 나갈 준비를 했다. 제대도 얼마 남지 않은 몸, 중대열외나 태워줘서 좀 편안히 쉬었다가 가버렸으면 좋겠다는 생각만 들 뿐이었다.
전경버스가 출발했고, 김 수경의 옆자리에는 싸이코가 잔뜩 긴장해서 앉아 있었다. 그는 농담조로 물었다.
“그래, 오늘 수색에서 뭐 좀 찾을 거 같냐?”
“예, 그렇습니다.”
김 수경은 고개를 돌렸다. 싸이코의 대답에서 뭔가 확신에 찬 듯한 뭔가가 전해졌기 때문이다.
“뭘 그렇게 확신하냐? 실종자 물건이 하늘에서 떨어지기라도 한다냐?”
“그냥 찾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짜식, 싱겁기는.”
김 수경은 피식 웃고는 싸이코의 머리를 쥐어 박았다.
“야, 무슨 돼지꿈이라도 꾼 모양인데, 꿈 깨는 게 좋을 거다. 나도 제대할 때까지 수색이라면 수십 번도 더 나가 봤는데 피 묻은 양말 하나 못 봤다고. 아서라, 아서.”
전경버스는 9시 25분쯤에 현장에 도착했다. 오늘 수색할 곳을 둘러본 다음 어떤 식으로 대형을 펼쳐서 나갈 것인지 중대장과 소대장, 그리고 각 소대 수하나 (군대의 내무반장격)와 분대장 대원들이 의논했다. 회의를 마친 고참이 오늘의 수색에 대해 모두에게 설명했다.
“오늘은 전방에 산을 수색하는데, 오전에는 바로 앞을 올라가면서 뒤지고 오후에는 오전에 수색한 부분 뒤로 돌아서 내려 갈 거다. 각 분대별로 조를 짜서 이동하고, 늘 그랬듯이 다치지 마라. 요즘 제대자가 많아서 출동인원이 없다.”
“예, 알겠습니다.”
오전 수색이 분대별로 시작되었고, 김 수경이 이끄는 3분대는 유난히 힘든 길로 접어 들었다. 중간 중간 절벽이 도사리고 있었고, 길을 막고 있는 덤불 사이에는 가시덤불이 그들을 귀찮게 했다. 김 수경이 탐침봉으로 가시덤불을 헤집으며 짜증을 냈다.
“아, 진짜 뭐 이런 데를 뒤지냐. 미쳤다고 시체를 이런 데 쳐 묻겠냐. 안 그래?”
“그러게나 말입니다. 여기는 길도 없는데 어떻게 시체를 묻겠습니까.”
박 상경이 동의하면서 나뭇가지에 몸을 의지했다. 가파른 경사 때문에 3분대는 채 발을 딛고 서 있기에도 어려운 상황이었다. 싸이코가 잡은 썩은 나무가 그대로 부러지면서 그가 그대로 미끄러지자, 박 상경의 불호령이 떨어졌다.
“야, 임마! 정신 안 차려!”
“시정하겠습니다.”
싸이코가 허둥지둥 산을 기어오르며 대답하다가, 다시 발을 제대로 헛디뎌서 절벽 아래로 주르륵 미끄러지고 말았다. 3분대 대원들이 모두 깜짝 놀라 아래를 쳐다보았고, 모두들 싸이코가 심하게 다쳤다고 생각했다. 박 상경이 아래를 향해 힘껏 소리쳤다.
“야, 임마, 싸이코! 괜찮은 거냐? 야!”
싸이코가 꿈틀거리며 간신히 몸을 가누었고, 곧 자리에서 일어나서 흙묻은 옷을 털었다.
“괜찮습니다. 그냥 미끄러졌습니다.”
“야, 이 자식아. 그러니깐 조심하랬잖아!”
박 상경이 절벽 아래로 조심조심 내려와 그의 상태를 살폈다. 다행히 몇 군데까지기만 했을 뿐 별다른 상처 없이 멀쩡했다.
“다행이네, 짜샤. 일단 올라가자.”
“그런데 박 상경님……저기 저게 뭐지 말입니다?”
“저기 뭐가 있다고?”
박 상경이 투덜거리며 고개를 돌렸다가 그대로 그 자리에서 멎고 말았다. 절벽 깊숙한 곳에 돌무더기가 쌓여 있었는데, 어설프게 숨기려 했다는 점에서 뭔가 수상한 낌새가 역력했다. 굉장히 인위적으로 쌓인 듯한 나뭇가지들을 헤친 박 상경과 김 일경은 탐침봉으로 돌무더기를 쑤셔보기 시작했다. 절벽 위에서 무슨 일인지 궁금해하던 김 수경이 직접 절벽 아래로 내려왔다.
“너네 둘, 뭐하냐?”
“김 수경님! 안에 사람이 있습니다!”
싸이코의 목소리가 평상시의 목소리가 아닌 굉장히 날카로운 목소리로 변했고,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은 박 상경의 손이 빨라졌다. 곧 심하게 부패된 여자아이의 모습이 드러났다.
실종신고 43일째, 숨겨져 있던 은미의 주검이 세상에 드러난 것이었다.
3
시체가 발견되면서 수사는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
경찰들은 이토록 잔인한 범죄를 저지른 범인을 잡겠다는 일념으로 수사에 나섰고, 지방청장이 직접 ‘반드시 범인을 잡겠다’며 기자회견을 열기도 했다.
감식반에서 나온 공식적인 사인은 교살, 그 외에 사후에 생긴 것으로 보이는 여러 생채기가 몸 이곳저곳에 있었는데, 범인이 시체를 끌고 와서 절벽 아래로 굴렸기 때문에 생긴 것으로 보인다. 강간의 흔적은 없었고 신체의 일부를 훼손하지도 않았다. 범인은 그저 은미를 죽인 뒤에 은닉장소로 끌고 와서 숨겨버린 것이었다. 세부적인 사항을 두고 전문가들 사이에서 약간의 의견충돌이 있기도 했지만 큰 틀은 위에서 말한 것과 달라지지 않았다.
수사관들은 은미의 주변 인물들부터 근처에 사는 전과자들이나 정신병자, 주정뱅이, 그리고 몇몇 미치광이들을 철저하게 조사하기 시작했다.
실종아동을 찾는 플래카드는 이제 목격자를 찾는 플래카드로 바뀌었고, 상금은 500만원이 더 올라서 ‘범행과 관계되어 보이는 사람을 신고’할 시에 4500만원이라는 현상금을 지급한다는 파격적인 조건을 내걸었다. 점차 은미의 행방에 시들한 반응을 보이던 언론도 시체발견 이후에 다시 의욕적으로 방송소재로 사용했고, 그녀에 대한 시사프로그램이 두 편이나 방송되었다. 범죄관련 프로그램에서는 사건의 수상한 점을 파헤쳐 나름대로 추론과 가정을 세워서 의견을 피력했고, 다른 범인의 비슷한 범죄사례를 들어가며 자못 그럴 듯한 방송을 만들어냈다.
사건에서 의심스러운 점은 두 가지가 있다.
첫째, 범인은 왜 마을에서 멀리 떨어진 야산까지 가서 시체를 유기했을까?
단순히 깊은 곳에 유기한다는 이유라면 해석 못할 것도 없지만 돌무더기가 사건 이전부터 있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바, 범인은 그 근방의 지리에 어느 정도 통달해 있는 사람이었을 것이다. 그 가파른 절벽 아래의 돌무더기의 존재를 아는 사람은 그다지 많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은미네 마을 근처의 많은 산을 놓아두고 일부러 멀리 떨어진 곳까지 가서 유기했다는 점이 이를 받쳐주고 있다.
둘째, 범인의 동기가 불분명하다는 것이다.
협박전화가 없었으니 유괴범의 소행도 아니다.
강간의 흔적이 없었기에 강간범의 소행도 아니다.
교살로 살해되었기에 우연한 사고로 인한 시체유기 역시 아니다.
일부러 멀리 떨어진 곳에 계획적으로 유기했기에 미치광이의 소행마저 아니다.
경찰의 수사망에 아무도 걸려들지 않았기에 원한관계에 대한 범죄도 아니다.
습관적인 분노? 종교적인 제물? 아니면 다른 어떤 이상심리?
아니면 또 어떤 동기가 이 사건의 내면에 존재하고 있었던 것일까?
사건이 두 달이 지나가고 70일이 넘어가는 이 시점에서도 경찰은 계속 허탕만 치고 있었다.
은미의 목을 조른 손자국 외에는 어떤 증거도 나오지 않았다.
신빙성 있는 목격자도 발견되지 않았다.
은미 살인사건은 완전히 어둠 속으로 사라지는 듯 했다.
사건 73일째에 걸려온 한 통의 전화가 아니었다면 어쩌면 사건은 영원히 미궁 속에서 허우적거리고만 있었을 지도 모를 일이다.
4
“네, @@파출소 최경훈 순경입니다.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은미 살인사건에 대한 결정적인 제보를 하기 위해서 전화했습니다.”
건장한 남자의 목소리가 엄청난 사실을 알려 주었다. 곧바로 범인의 체포를 위해서 순찰차가 출동했고, 곧 약속장소에서 기다리고 있던 남자를 태웠다. 남자의 모습을 알아본 담당형사의 입이 딱 벌어졌다.
“아니, 자네는…….”
“알아보시는군요. 일전에 시체를 발견했던 사람입니다.”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하며 푹 눌러쓴 모자를 벗은 사람은 놀랍게도 김 수경이었다. 시체를 발견한 공으로 그는 조기 전역했고, 최초 발견자였던 박 상경과 김 일경은 9박 10일의 포상휴가와 중대표창을 받았었다. 그런데 최초 발견자 중 한 사람인 김 수경으로부터 범인에 대한 제보를 듣다니 도대체 이게 무슨 일인가? 담당형사가 말을 더듬으며 물었다.
“자네가 정말로 이 사건의 범인을 알고 있다는 건가? 그게 정말이야?”
“예, 그렇습니다. 지금까지의 일은 모두 제가 알고 있는 한 사람에 의해 저질러진 것입니다. 추악한 동기에 추악한 방법으로 어린 여자아이를 살해하고, 그 시체를 유기했던 겁니다.”
순찰차 안이 일순간 조용해졌다. 담당형사는 어떤 끔찍한 결말에 이를 것을 직감적으로 깨닫고는 대답을 재촉했다.
“자, 이야기해보게. 범인이 누군가?”
김 수경이 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그리고 대답했다.
“일경 김일호, 싸이코 그 자식입니다.”
뜻하지 않은 범인의 폭로에 담당형사는 할 말을 잃었다. 믿을 수 없다는 그의 표정을 읽은 김 수경은 차근차근 설명하기 시작했다.
“그 자식은 신병 때부터 이상한 녀석이었습니다. 일을 잘 못하는 후임은 있을 수 있고, 어리버리한 후임도 있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자식처럼 뭔가를 곰곰이 꾸미는 후임은 찾기 힘들었죠. 그 녀석이 이경 때 우리 소대에서 누군가의 신고로 제 선임이 영창에 간 일이 있었습니다. 그 때 분명히 그 녀석이 신고한 게 틀림없었지만 그 자식은 걸려들지 않았습니다. 완벽하게 일처리를 해서 어떤 증거도 남기지 않았거든요.
그래서 저는 싸이코 그 녀석이 뭔가 일을 내도 크게 낼 것 같아서 종종 가까이 두고 친절하게 대해 주었습니다. 첨에는 나를 경계하는 것 같았지만 시간이 지날 수록 서서히 마음을 열더군요. 그 녀석과 많은 이야기를 나누면서 그 녀석이 위험하다고 느낄 수 있는 것은 금방이었습니다.
싸이코 그 자식은 단 한순간도 군에 몸담기 싫어했습니다. 그 녀석은 자유를 원했고, 그러기 위해서는 어떤 수단과 방법도 가리지 않을 것이란 것을 은연중에 내비쳤습니다. 물론 그 때 그 당시에는 저도 이렇게까지 일이 전개될 줄 몰랐습니다. 그저 괴로워하다가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지겠지라며 스스로를 위안했습니다.
그 녀석이 1차 휴가를 다녀온 뒤로 사람이 더욱 이상해졌습니다. 몰래 나와 이야기하면서 조만간 산악수색을 나갈 것 같다고 하고, 몰래몰래 큭큭대며 구석에서 괴상한 웃음을 짓는 것입니다. 다른 지역에서 수색하던 다른 부대가 허탕을 치고, 우리 중대가 근처 지역을 수색한다고 하자, 그 녀석은 시체를 찾으면 상금이 나오고 포상휴가가 나올 거라며 어린아이처럼 좋아했습니다.
그리고 문제의 그 날이 왔습니다.
그 산으로 가는 도중에 제가 뭔가를 찾을 수 있겠냐고 넌지시 묻자, 곧바로 ‘예, 그렇습니다.’라고 대답하더군요. 그리고는 ‘이젠 때가 왔다’는 기색을 쉽게 숨기지 못하는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 녀석이 가자는 곳으로 넌지시 길을 정하고는 일부러 험한 길로 올라갔습니다. 그리고 봤습니다.
굳이 미끄러질 정도도 아닌 길에서 미끄러져서 절벽 아래로 떨어지는 녀석을. 그럴싸한 연기였기만 제 눈을 속일 수는 없었습니다.
이 녀석이다. 이 녀석이 여자아이를 죽였다.
그리고 그 뒤는 잘 아실 겁니다. 시체가 발견되었고, 싸이코 그 자식은 열흘 간의 자유와 표창장을 얻었습니다. 저는 제대한 뒤에 당시의 싸이코의 행동을 추적했고, 은미의 최초 실종일과 싸이코의 1차 휴가기간이 일치하다는 점을 알아냈습니다. 그의 부모님께 접근해서 1차 휴가기간동안 산에 다니다가 흙이 잔뜩 묻어 돌아왔다는 이야기도 들었습니다. 지금 가서 그의 손바닥을 찍어 보십시오. 피해자의 목을 조른 범인의 손과 일치할 것입니다.”
엄청난 사실에 담당형사는 할 말을 잃었다.
자유, 자유 때문에 아무런 관계도 없는 여자아이의 목을 조른단 말인가. 갑자기 뭔가를 알아챈 담당형사가 김 수경을 똑바로 노려보았다. 그리고 엄하게 물었다.
“그런데 당신은 그것을 직감해놓고도 왜 이제야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겁니까?”
김 수경은 의자 등받이에 몸을 파묻었다. 그가 자못 유쾌한 투로 본심을 털어 놓았다.
“그건 나도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부대에 있을 때 이 사실을 이야기했다면 현상금이 부대 소유로 들어가게 됩니다. 하지만 잠시만 이 사실을 숨기면 내게 그 모든게 들어오는 거지요. 나는 제대했고, 지금 사실을 알리면서 현상금 4500만원을 받게 되었습니다. 같은 값이면 다홍치마 아닙니까?”
- End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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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포와 추리의 어중간한 경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