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책갈피

##### 독일의 죽음의 천사(쫌스압,극악)

꽃청년 |2011.06.16 01:09
조회 26,996 |추천 39

스압이니까.... 인내하구 다 읽었으면함.... 내용은 좀 튼실하고. 잔인함.

처음 켜자마자 사진나와서 깜놀했따는 사람 많은듯...

그래서 글쓴이가 주저리함..

이런 사건들이 있으면 보통 일본하고 잘 엮이는듯...

일본 씹는 이야기야 워낙에 잘 퍼져있어서..

이젠 치가 떨리고, 지겹기까지 함.

그리구 천사라는 단어는

의사, 잘해주는 척. 양의 탈을 쓴 늑대.

곧 이런뜻.. 천사라는 타이틀에 , 악마라는 카테고리.

역시 세상에서 제일 잔인한건,

 

단지 사람.

### 주저리 끝 !

 

 

 

 

 

 

 

요제프 멩겔레 1911-1978

제2차 세계대전 중 나치 독일의 일부 의사들은 국익이라는 명분 하에 장애인,

정신병 환자, 혼수상태의 환자들을 죽이는 히틀러의 계획에 적극적으로 참가했다.

일부 저명한 의과대학 교수들도 인종적으로 열등한 민족의 박멸을 지지했으며

어떤 이들은 강제수용소에서 이루어진 대량학살에 관여했다.

이 '히틀러의 의사들' 중에서도 가장 악질적이었던 의사가 요제프 멩겔레였다.

멩겔레는 성공한 사업가의 3형제 중 장남으로 태어났고, 가톨릭신자였으며,

지능이 평균 이상이기는 했지만 노력형인 모범생이었다.

젊은 시절의 요제프는 의과대학의 교수로 출세해보려는 명예욕에 불타는 의학도였다.

그는 성공하기 위해 나치의 열렬한 추종자가 되었으며 학문적으로도

당시의 정치적 흐름에 맞는 연구방향을 설정했다.

그의 박사논문은 '인종에 따른 턱의 구조 차이'였다.

1934년에는 교수의 딸과 결혼하는데 이 역시 교수가 되기 위한 포석이었다.

군의관이 된 멩겔레는 1943년에 아우슈비츠에 부임하였다.

그가 '죽음의 천사'라는 별명을 얻게 되는 것은 여기서의 21개월 동안 그가 벌인 행적들 때문이었다.

그는 감시가 소홀한 틈을 타 도망치다 잡혀온 유태인 소년 300명을

큰 웅덩이 속에 넣고 휘발유를 끼얹어 산채로 불태워 죽이면서도 눈 한 번 깜짝하지 않았다는

비정한 인물이었다. 그의 직책은 화물열차에 가득 실려 오는 유태인들을 강제노동이나

의학실험을 위해 잠시 살려둘 것인지 아니면 바로 가스실로 보낼 것인지를

결정하는 것이었는데, 그가 채찍으로 손목을 가볍게 치는 포로는

따로 수용되어 끔찍한 인체실험에 사용되었다.

멩겔레 박사가 가장 관심을 가졌던 것은 일란성 쌍생아를 사용한 연구였다.

유전적 성질이 동일한 인간을 비교하는 논문을 쓰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푸른 눈동자를 만든다며 파란색 물감을 눈에 주사하기도 했고, 쌍생아를 낳는 성질이

유전하는지 보기 위해 남녀 쌍생아들에게 성교를 강제하기도 했다.

또 혈액을 서로 바꾸어 넣는다든가 쌍생아끼리 등을 외과적으로 접합시켜 샴쌍생아를 만들기도 했다.

그는 150에서 200쌍의 쌍생아들을 실험에 사용했는데 이들 역시 실험후 모두 죽임을 당했다.

약 40만 명의 죽음에 관여한 것으로 알려지는 멩겔레는 끝내 자신의 행위를 반성하지 않았다.

유대인들은 어차피 죽을 운명에 있었기 때문에 의학을 위해, 그리고 자신의 출세를 위해

사용하는 것이 뭐가 문제냐는 것이 그의 주장이었다. 그는 러시아군이 아우슈비츠를

해방하기 직전에 도망쳐 남미로 피신했다. 34년 동안이나 추적자들을 따돌리며

비교적 자유롭게 생활하던 그는 1979년 브라질에서 바다 수영을 즐기다 뇌졸중 발작으로 익사했다.

그의 죽음은 1985년에야 세상에 알려졌고 1992년에 미국, 독일, 남미정부가 공동으로 시행한

사체의 DNA 검사에 의해 확인되었다.

전쟁이 끝난 후 일부 독일의사들은 자신들이 “단지 명령을 따랐을 뿐으로,

그런 실험은 전시 상황에서 어쩔 수 없는 것이었으며 다른 나라들도 유사한 실험을 했다”고 항변했다.

그러나 뉘렌베르크 전범 재판의 재판관들은 이들의 유죄를 인정하면서

포로를 사용한 실험을 허용하는 10가지 원칙을 제시하였다.

후일 ‘뉘렌베르크 강령’이라고 불리게 된 이 원칙의 가장 중요한 요소는 ‘어떠한 실험이라도

피시험자들이 자유로운 상황 하에서 참여 여부에 동의할 때에만 허용된다’는 것이었다.


---------------------------------------------------------------------------------



멩겔레가 '죽음의 천사'라는 별명을 얻게 된 것은 생사자 선별이나 구타 때문이 아니었다.

비인간적인 실험 때문이었다. 그는 살아있는 어린이들을 해부했다.

마취를 하지 않고 성인 남자나 소년들을 거세했다.

여성들의 '인내력을 시험하려고' 전기 충격을 가했다.

그가 과학이라는 이름으로 행한 잔인하고 역겨운 수많은 실험은 약간의 증거만 있을 뿐이다.
(옮긴이 주: 뒤에서 쌍둥이 이야기가 나오는데 멩겔레는 쌍둥이들 말고도 아우슈비츠에 수용되는 유대인 중 절름발이, 소인증 환자 같은 특이한 신체적 특징을 지닌 수용자들을 모아서 별도의 막사에 수용하도록 지시했다 한다. 물론 그러한 질환과 관련한 실험 대상으로 쓰기 위함이었다. 멩겔레가 수집한 자료들은 모두 카이저 빌헬름 인류학 연구소의 폰 페르슈어(Von Verschuer) 박사에게 보내졌으나 전쟁이 끝날 무렵 폰 페르슈어 박사가 파기해서 총량은 추정되지 않고 있다.) 

몇몇 정신과 의사들은 멩겔레가 고통을 가하는 것을 즐긴 것은 아니라고 믿는다.

오히려 그는 누가 언제 죽을지를 결정하는 권력을 즐겼다. 

멩겔레가 선호하는 '종자'는 쌍둥이였다. 그는 쌍둥이에 매력을 느껴서, 그들을 매우 잘 대해 주었다.

그는 경비병들에게 쌍둥이들을 혹사하지 말라는 특별 명령을 내렸다.

쌍둥이들은 더 많은 식사, 좋은 옷, 좋은 생활 환경을 누렸다. 그들은 '멩겔레의 아이들'이라 불렸다.

그러나, 이것이 멩겔레가 쌍둥이들을 아꼈다는 뜻은 아니다. 

아이러니컬하게도 멩겔레가 그토록 돌보아 주었던 쌍둥이들은 그에게 가장 주된 실험 대상이 되었다.

그는 눈 색깔이 바뀔 수 있는지를 확인하려고, 쌍둥이들의 눈에 염색약을 주사했다.

이 때문에 때로 실명하는 아이들이 생겼다.

이들 쌍둥이가 죽으면, 그는 그들의 눈을 수집해서 집무실 벽에 핀으로 꽂아 두었다. 

어떤 쌍둥이들은 마취도 하지 않고 늑골을 절제당했다.

또다른 쌍둥이들은 여러 가지 병으로 죽는 데 얼마나 걸리나를 관찰하고자 전염성 물질을 주사당했다. 

멩겔레의 실험은 진정한 과학 연구와는 아무 상관이 없었다.

오히려 그것은 아리아 족의 우수성이라는 나치식 환상에 대한 광적이고 야심찬 집착이었다.

그리고 공교롭게도, 유전학 분야에서 새로운 발견이라 할만한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옮긴이 주: 나치식 우생학의 한계 중 하나는, 그들이 우수한 형질로 생각한 게르만 족의 특성 중 어떤 것은 유전학적 열성이라는 것이다. 또한 눈에 염색약을 주입하는 실험 같은 것을 멩겔레가 단순한 고문이 아닌 진지한 연구로서 행했다면, 나치 정권 당시 독일 생물/의학계에서 라마르크 이론이 주류였는가 하는 것도 확인할 필요가 있다.)

주 텍스트에서 설명한 것 외에 멩겔레가 행한 생체 실험으로는 다음과 같은 것이 알려져 있다.

또한 조 화이트(Joe E. White)가 쓴 책 ≪불길 속의 아이들≫(Children of the Flames)에 따르면

쌍둥이 3000명 가량이 아우슈비츠에 수용되었는데 이 중 200여 명만이 살아남았다고 한다(보조 텍스트 1번에서 재인용).
- 혈액형이 다른 쌍둥이 중 한 쪽의 피를 뽑아서 다른 쪽에 수혈
- 성전환 수술 (성별이 다른 쌍둥이의 생식기 교체)
- 고압실에 가두고 대기압에 얼마나 버티는가를 실험 (관동군 731부대에서도 행해졌다.)
- 인공 '샴 쌍둥이' 만들기

 

수용소시절의 멩겔레박사

 

 아우슈비츠의 수감자들은 그를 죽음의 천사, 죽음의 손이라고 불렀다.

 

출처 : 외커.

추천수39
반대수3
베플2NE3男|2011.06.16 01:42
수영하다 익사? 행적에 비하면 과분하기 그지없는 죽음이다.
베플인생뭐잇나|2011.06.16 01:24
그래도 일본놈들이 한국인들에게 행한 고문보다 가혹할까.. 이런거말고 일본 극악무도하고 죄의식없는 조카뻔뻔한 일본슥기들 만행을 좀올려주라고! 일본ㅂㅅ들 좀 보라고 머봐도 눈하나 꼼짝할지 몰르지만... 일본놈들은 뼛속까지 잔인해서 독일나치들은 배꼽때만큼도 안됨.

공감많은 뉴스 시사

더보기

뉴스 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