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올렸던건데 다시 올려봐요...ㅜ
좀 더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가져주었으면..
안녕하세요! 저는 평소에 눈팅만 하던 남고생입니다.ㅎㅎ.
전 평소에 참 나가수를 즐겨보는데....오늘 못봤어요...외식하느냐...
그래서 X이트 기사에 달린 댓글이나 보려고 기사를 누른 순간...
옥주현 관련 악플이 땋땋땋!
뭔가 해서 찾아봤더니....
최근에 옥주현이 유관순 코스프레 파문으로 참... 욕 보고 있더라고요.ㅎㅎㅎ
이거에 자극을 받아 한 번 글을 써봅니다..
워낙 글재주가 없으니 읽기가 짐스러우셔도....양해 ..좀..
사실 옛날에도 이와 비슷한 사건이 있었죠... 이것도 옥주현 찾아보면서 안 건데 이승연 사건 아세요?
그냥 이런 사건들은 한 번쯤 다시 생각해볼 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2004년 인가... 그 때쯤에 이승연의 누드화보가 참 이슈가 됐죠
누드화보라는 건 별 문제가 아니었지만 그 주제가 위안부 할머니들이었다는 것이 문제였죠
일단 화보의 내용은 대략 이랬다고 합니다
1차 게이샤 누드 - 일본군에게 겁탈(강간)당한뒤 일본을 증오하며 살아간다.
2차 일본군 누드 - 일본남자와 사랑에 빠져 일본에 대한 감정을 많이 푼다
3차 불교원 누드 - 해탈의 경지에 올라 일본의 모든걸 용서한다.
위안부 할머니들을 상업적으로 이용했다는 비난을 받고 결국엔 포기했다고 하더라고요...
위안부(慰安婦):
일본 제국주의 점령기에 일본에 의해 군위안소로 끌려가 성노예 생활을 강요당한 여성
총 숫자는 적게는 5만 명에서 많게는 수십 만명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
이들은 1930년대부터 1945 일본에 패망하기까지 강제로 전선으로 끌려가 일본 군인들의 성노예로 인권을 유린당하였으며, 전후에도 육체적. 정신적 고통으로 힘겨운 생활을 하고 있다.
한국 중국 필리핀 인도네시아 등의 여성들이 강제 동원되었으며,
일본의 식민지였던 한국 여성들이 가장 많았다.
여러분 위안부가 뭔지는 다들 아시죠..?
저는 교과서에서만 보다가 고등학생 돼서 동아리 활동하면서 위안부 할머니들의 안식처인 나눔의 집에 봉사활동하러 되게 자주 갔었거든요...
그러면서 자연스레 관심이 많아졌죠..
저는 정말 놀랐습니다. 전 제 눈 앞에 펼쳐지는 살아있는 역사에 충격을 먹었습니다.
솔직히 여러분들 중에서 나눔의 집이란 게 존재한다는 분이 얼마나 계십니까?
아니 심지어는 위안부 할머님들께서 생존해 계신다는 사실조차 모르는 사람들도 있더군요.
그러나 그 살아있는 역사들은 오늘도 역사를 바로잡기 위해 애쓰고 있습니다.
할머님들 정말 열심히 활동하십니다. 매주 수요일마다 일본 대사관 앞에서 수요집회도 하시고요
※수요집회: 공식명칭은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정기 수요집회입니다.
1992년 1월 8일 이쟈아화 기이치 일본 총리의 대한민국 방문을 계기로 시작되었으며 그 후로 정기적인 시위로 자리매김했다고 위키피디아가 그러네요.※
그림을 그리며 당신들의 한을 표현하기도 합니다.
위안부 문제를 세상에 알리기 위해 당신의 힘든 몸을 이끌고 열심히 일하십니다.
그러면서도 그들은 미소를 짓습니다.
그들은 희망을 믿습니다.
근데 일본요? 참 어이가 없습니다.
시마무라 요시노부 농수산상은 '성노예는 자발적 매춘부'라는 발언을 해
피해자들에게 다시 한 번 수치심을 남겼습니다.
2007년에는 아베 총리아 위안부 문제와 관련, "미안한 느낌(sense of apology)이 든다"라는 황당한 사과를 해 우리를 당황시켰었죠. 미안한 느낌이 든다니요? 참 어휘선택 적절합니다..ㅡㅡ 고개 숙여 사죄해도 모자랄 판에...
2009년에는 피해자들의 후생연금 요구에 달랑 1300원을 지급하라는 결정을 하여 또 한 번 피해자들을 우롱하였습니다.
1300원? 말이 된다고 생각하십니까?
할머니들은 자신의 순결을 빼앗겼고 인생을 빼앗겼습니다.
그들의 인생은 고작 1300원(99엔)의 가치인 건가요?
이러한 일본의 대응은 할머니들에게 위로는 커녕 그들의 한만 더 깊어졌습니다.
또 2003년 일본 최고재판소에서는 이른바, ‘시모노세키 소송’사건에서
“일본 정부는 위안부에 대해 보상해 줄 필요가 없다”라는
확정판결을 내리는 등 일본의 반성은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일본의 이러한 태도는 상식적으로 이해가 가지 않으며,
자신의 잘못을 가리고 적반하장 하는 어리석은 태로도 밖에 안 보입니다.
일본이 선진국이라면 그 지위에 걸맞는 성숙한 모습을 보여야하지 않을까요?
<힘들었던 위안부들의 삶>
최근에는 제주해녀들이 일제 강점기 당시 독도에서 일본 위안부 생활을 했다는 기록도 나왔답니다.
쏟아지는 증거들 속에서도 일본은 묵묵부답입니다.
많은 걸 바라는 것도 아니고 법적 배상은 커녕 공식적인 사죄...
그것조차도 못하는 게 말이 됩니까?
아니 오히려 역사를 왜곡하는 저 행태를 보면 정말 가관입니다.
일본의 공식적인 사과 및 법적배상에 대한 인정은 지난 1993년 고노(河野) 담화 이후로 거의 전무한 상태라고 합니다.
시민단체들이 발 벗고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기는 하지만
정부 차원에서 이를 공식적으로 요구한 적은 없다고 합니다.
아마 외교적인 문제 때문이겠지요.
우리나라나 일본에게나 너무나 민감한 문제이기 때문에..
하지만 이런 문제를 방치했다간 언제간 곪을 때로 곪아 치료가
불가능해질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그거 아세요 이명박이 강제징용과 위안부에 대해서 사과 요구 않겠다는 서약을 한 것을요?(맨 아래에 주소로 들어가서 서명에 동참을 해주세요ㅜㅜ)
지난 3월 말 공개된 일본의 새 교과서를 분석한 전문가들에 의하면
"왜곡했고, 회피했고, 전반적으로 후퇴했다." 라고 합니다.
일본군 '위안부' 등 일본의 전쟁 범죄는 모든 교과서에서 언급조차 되지 않았다고 하는군요.
산 증인이 모두 사라질 때까지 모르쇠로 일관할 작정인 걸까요?
위안부 할머님들 한 명씩 돌아가시고 있습니다.
일본이 노리는 것이 이것일까요?
얼마전 5월 15일 위안부 피해자 박옥련 할머니께서, 5월 17일 정마리아 할머니께서 타계하셨습니다.
박옥련 할머니께서는 매주 수요집회에 참석하시고 활발히 활동하셨던 분이시랍니다..
올해만 대략 10명의 피해자 할머니들이 돌아가셨고
이제 나눔의 집에는 8분의 할머니들이 남아 계세요.
(총 70분 정도 생존해 계십니다.)
일본은 언제까지 미룰까요?
생존자들의 평균연령은 86세(올해 1월 기준)라고 합니다.
생존자들은 생전에 최대한의 자료를 남기기 위해 애를 쓰고 계십니다.
그들은 말합니다,
" 죽는 날까지 증언하고 또 증언할 것이다"
5월 25일 (수)에도 971차 수요집회가 있었다고 합니다.
우리는 1000 번째의 수요집회를 봐야만 하는 것일까요?
위에 나와있는 그림은 할머니께서 직접 그리신 그림입니다
[한] "못다 핀 꽃" -김순덕 할머님
여러분....나가수 기사 보려다가... 4시간 동안 글을 쓰게 됐군요...
힘들었으니 부디 잘 읽어주시기 바랍니다... 웬만하면 추천도..ㅎ
억 벌써 2시 반이네요.. 자야되는대...내일 학교에서 졸면 안돼는데..ㅜ
그래도 뿌듯합니다! 저작권 따위 없습니다..ㅎ 많이 퍼뜨려주세요..
아 그리고 혹시 문제되는 사항이나 잘못된 내용이 있으면 댓글 달아주세요!
그리고 시간이 되시면 나눔의 집 방문해보세요!ㅎㅎ
그리고 한가지 더!
종군위안부에서 종(從)은 종군기자 등에서 쓰이듯이 자발적으로
군을 따라가서 위안했다는 의미가 담겨 있어서 올바른 말이 아니라네요...
그래서 일본군 성노예라는 용어로 표현하고자 했는데,
우리나라 사회에서 성노예라는 단어가 좋지 않게 들리기 때문에
할머님들이 많이 꺼리셨답니다.
지금은 일본군 '위안부'라고 작은따옴표를 표기해서 표현한다고 해요!
+) 이 사진들도 제가 나눔의 집에 갔을 때 직접 찍은 사진들이에요
(Bibliography-네이버 블로그&기사&위키피디아&내 머리)
<관련 사이트>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후원금(2011)
http://happybean.naver.com/donation/RdonaView.nhn?rdonaNo=H000000036304
*나눔의 집
*서명에 참여해주세요
MB의 "정신대와 강제징용을 용서한다" 공식서약에 대한 해명요구
http://agora.media.daum.net/petition/view?id=106982
꼭 한 번 방문해주세요!
읽어주셔서 감사해요..
<조국이여, 나는 결코 지지 않았다!
- 송신도(89) 할머니의 다큐멘터리 제목에서>
내 이름이 뭐냐고/ 가만있어 보자 그때 내 이름이 뭐였더라/
하나꼬/
그래, 그렇게들 불렀었지/
꽃처럼 예쁘다고 말이야/
한문으로 쓰면 花子 아마 이렇게 쓸 게야/
하지만/
나의 조국 우리 고향에서 부르던 이름은/
송.신.도... ... 야/
내 고향이 어디냐고/
가만있어 보자 충남하고도 유성이었지/
1922년 생이고 1938년 어느 날에 느닷없이 끌려갔으니까/
그때 내 나이 꽃다운 열여섯이었지/
처음으로 고향을 떠나 중국으로 끌려갔지/
명령이었고 어기면 죽을만큼 맞곤 했을 게야/
정말 내 몸이 내 몸같지 않은 참 치욕이었지/
해방이라고 되었는데/
고향으로 돌아 갈 수 없었어/
화냥년이 감히 어떻게 고향을 가겠어/
밥 먹다 아침에 느닷없이 끌려왔다는/
아사꼬(朝子)하고 현해탄을 건너왔어/
일본으로 와서 이날 이때껏 죽지 못하고 부끄럽게 살았지/
그러다 일본 땅에서 1993 년부터 2003 년까지 10 년간 싸웠어/
강도짓 한 것에 대하여 사과하고 공식적으로 배상하라고/
허, 오직 지금까지 나만 일본군 강제 위안부 피해자요 밝혔지/
죽어간 그나마 살아있는 일본 땅의 서러운 목숨들 중에서 말이야/
10년간의 재판, 일본과의 전쟁에서 질 수 밖에 없지 않았겠어/
조국도 없는 것이 홀로 싸우는 게 오죽 했겠어/
그러더니 일본정부에서 위로인지 배상인지 뭐랍시고 주더라고/
99엔, 한국돈으로 치면 아마 1,000 원 쯤 할 게야/
나, 걱정하지 말어/
전쟁통에도 우리 고향 민들레처럼 살아남았는데/
그런데 말이야/
죽기 전에, 눈감기 전에 나, 꼭 한 번만 보고 싶어/
우리 고향 산이랑 들이랑 강이랑 동무들/
어머니 아버지 형제들/
어이, 기자 선상님, 나 죽기 전에 소원 풀 수 있을까/
내 고향 가서 무덤자락들 발치서라도 보고 싶은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