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뱉고 싶었던 말을 다 쓰려니 글이 길어질 것 같은 점
글이 이리저리 두서없을 점 양해부탁드릴께요.
안녕하세요
저는 엄마와 단 둘이 살고있는 21살 여학생입니다.
저희 가족은 아빠 엄마 그리고 12살, 10살 차이나는 두 언니와 저 입니다.
다섯가족이죠
다섯가족이었습니다.
저의 친아빠는 제가 어렸을 때 (지금은 아니지만) 무역업을 하셔서 외국에서 많이 생활하셨습니다.
외국 나가면 1~2년은 기본으로 계셨고
한국에 들어오셔봤자 6개월에서 길어야 1년정도였습니다.
그래서 저의 엄마는 세 딸을 낳을 때 모두 혼자 낳으셨다고 합니다.
제가 초등학교 2학년이었을 봄날
언니들을 먼저 학교를 가고 저혼자 아침밥을 먹고 있었을 때
싸움이 났습니다. 내용은 대충
왜 찬밥을 버리냐 안먹냐 라고 따지는 아빠와 찬밥을 왜 내가 먹어야 하냐
그렇게 아까우면 당신이 먹어라 라고 반박하는 엄마
였습니다.
제가 학교를 갔다오고 난 뒤 집에 와보니 아빠는 조용히 쇼파에 앉아계시고
엄마는 방에서 짐을 싸고 계시더군요 그리고 물으셨습니다. '누구랑 살래'
전 당연히 엄마였습니다. 아빠와의 추억도 기억도 별로 없는 저는, 아빠와 어색한 딸이었던 저는
당연히 엄마라고 대답하였고
이혼이 뭔지 모를정도로 어렸던 저는 언니들에게 쪽지를 남겼습니다.
'언니 나지금 엄마랑 어디가 나 혼자 가서 미안해 갔다와서 꼭 말해줄께'
아마 저의 친아빠는 저를 사랑하시지 않으셨나봅니다
원했던 딸이 아니셨나봅니다.
그렇게 엄마와 집을 나오고 난 뒤 저의 양육에 대해서 아빠와 얘기를 하러 가셨던 엄마는
우시며 집으로 오셨습니다.
너 혼자 낳은 딸 아니냐. 나는 원한적 없으니 너가 알아서 잘 키워라
나는 돈도 없고 두명이나 키워야 하니까 교육비는 못주겠다.
그렇게 엄마와 4년을 살았습니다. 힘들고 힘들게 말입니다. 변변하게 할수 있는 일이 없었던 엄마는
식당일을 하면서 저를 키우셨는데 제가 중학교를 들어가야 했을 무렵 버거우셨는지
재혼을 하셨습니다.
저의 두번째 아빠인 셈입니다.
저의 두번째 아빠는 직업이 있다고 속여 결혼을 했습니다. (사실혼 법률상으로는 혼인관계가 아닙니다.)
의처증이 있었구요 술을 먹으면 손찌검을 했습니다.
처음 재혼하고 나서 한달은 조용했습니다.
그 뒤부터 많으면 일주일에 4~5번 적으면 1~2번
술을 먹고 들어오셨고 그런 날이면 엄마는 새아빠를 피해다녔고 결국 저랑 찜질방을 갔습니다.
두번째 아빠의 엄마는 (즉 시어머니) 치매였습니다. 똥오줌도 못가리는
저희엄마는 시어머니 똥오줌 다 치우면서 살았습니다.
두번째 아빠의 시댁에서는 저의 엄마를 좋게 안보셨고 핏줄은 못 속인다고 새아빠의 동생도 술만먹으면
개가 되는 사람이었고 저희집을 찾아와 엄마에게 썅욕을 하고 문자로 죽여버리겠다 라는 협박문자도
보냈습니다.
어느날 엄마가 침대에 저를 눕히고서는 얘기합니다.
'아빠한테 가 아빠한테 가도 되..딸. 그래도 되
그래도 아빠야 그럴 자격있어.. 엄마는 더이상 살고싶지가 않아....그렇다고 너를 데려가고싶지도 않아
엄마랑 죽을래??그럴래?? 그러기 싫지 그러니까 아빠한테 가..제발...'
이라며 수면제를 꺼냅니다. 저는 그저 웁니다. 새아빠가 제 방으로 들어옵니다.
저는 쳐다봅니다. 새아빠는 말합니다.
'그런 눈빛으로 보지마라, 엄마가 잘못한거야 엄마가 딴 남자가 있으니까 저러는거야'
세상에 살인이란게 왜 일어날까요 충동 저는 살인충동을 처음 느꼈습니다.
내가 저사람은 저 쓰레기는 꼭 죽이고 죽어야지. 라는
중학교2학년때였습니다
그렇게 맞고 지내길 2년. 저는 맞기 전 새아빠가 엄마를 졸졸 따라다니면서 정신적으로 괴롭히는
시간에 저는 그저 티비를 보거나 인터넷을 하거나 혼자 방안에 앉아있었습니다.
무서웠고 그땐 그때는 내 엄마는 저의 엄마는 괜찮을 줄 알았습니다.
그리고 아무렇지 않게 엄마 그냥 우리 찜질방가자 하고 같이 찜질방을 갔습니다.
저의 엄마는 저의 방패막이였습니다. 2년이라는 시간동안 너덜너덜해질대로 너덜너덜해진 엄마는
제가 낮에 학교에 있는 시간에 또 술을 드시고 오신 새아빠가 때리셨고 못참고 경찰을 부른뒤
경찰이 있는 동안 급하게 대충 옷가지만 챙겨서 저와 집을 나왔습니다.
갈때가 있었냐구요? 없었습니다.
엄마가 주머니에서 뭔가를 꺼냈습니다. 신문쪼가리였습니다. 아내를 구한다는
들어갔습니다. 처음보는 남자 집으로. 처음 보는 아저씨가 아빠가 됫습니다. 처음 보는 아저씨가
저희 엄마와 안방에서 잠을 잡니다 처음 보는 아저씨가 제 이름은 묻지도 않습니다. 엄마만 봅니다.
세번째 아빱니다.
무슨이유에서인지는 모르겠지만 세번째 아빠가 일을 나간 고 난 뒤 ( 일주일인가 지났을 무렵)
다시 저희 엄마와 저는 집을 나왔습니다. 엄마의 아는 친구분한테 돈을 조금 빌렸습니다
드디어 엄마와 저 다시 두명이서 살게됫습니다. 눈물이 날 만큼 기뻤습니다. 저는 다시는
엄마가 재혼하길 원치않았고 그러기 위해서는 뭐라도 해야했기에 고등학교 1학년때부터 아르바이트를
했습니다. 물론 적은 돈이었지만 사고싶은것이 있으면 이 돈으로 샀고 차비 준비물비 정도는 할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3년
제가 대학에 들어가야 할 무렵
저희엄마는 또 말합니다. 소개시켜줄 사람이 있다고
네번째 아빠가 될 사람을 만납니다.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하지만 엄마는 힘들다고 합니다.
공장에서 일하셨던 엄마는 그 돈으로는 저의 대학을 책임질수 없다며 말합니다. 엄마를 믿어보라 합니다.
엄마를 믿습니다.
네번째 아빠가 생겼습니다.
네번째아빠는 하던 일을 그만두고 장사를 한다고 합니다
먹자골목이라고는 볼수 없는 곳에다 돈이 없어 어쩔수없이 가게를 차렸습니다
망했습니다 가게를 옮겼습니다. 그래도 조금 나은 곳으로 옮겼습니다.
사람이 없습니까 장사가 안됩니다. 엄마와 새아빠 사이가 안좋아집니다.
새아빠가 엄마에게 눈치를 줍니다.
(저희 엄마는 허리랑 팔이 선천적으로 안좋으십니다)
엄마가 허리가 아프다며 쉬겠다고 하는 날. 가게에는 여전히 파리세끼 하나 없습니다.
새아빠는 말합니다. 가게에 여자가 없어서 사람이 안들어오는거야. 넌 너만생각해 못되처먹은 년
결국 가게를 팔아야 할 지경까지 왔습니다. 엄마가 그나마 모아왔던 돈은
이집에서 못낸 전화비 등등 세금으로 모두 나갔습니다 엄마는 돈이 없습니다
가게는 돈이 깎이고 깎여 200만원에 팔려나갔습니다.
이돈은 엄마한테 줍니다.
'이돈주고 나가던가, 아니면 일을 해서 월세 내면서 살아'
엄마는 눈물을 머금고 몇박몇일 신문광고를 뒤집니다
200만원 200만원으로 얻을수있는 집이 어디있을까요?
그나마 싼 집으로 가 집주인에게 사정을 합니다. 모든 걸 다 말합니다.
월세는 밀리지 않겠다고 사정을합니다.
그래서 집을 구했습니다.
현재 저는 엄마와 단둘이 살고있습니다.
초등학교 6학년 이후로 반지하에서 쭉 살았습니다.
그래도 좋습니다. 엄마와 둘이 사는게 전 좋습니다.
저의 친아빠와 저의 두 언니는 이 사실을 전혀 모릅니다.
사실 첫째언니랑 저의 엄마랑은 사이가 별로 안좋습니다.
언니가 성인이 되고나서 집을 나간 엄마가 언니는 배신감이 들었나봅니다.
버려졌다는 생각이 들었는지 엄마가 이혼을 하고 나서 둘은 마주친적이 없습니다.
저의 엄마는 지금 야간 병원 청소부 일을 하십니다.
월급은 110만원 정도
저는 아르바이트를 합니다.
죽자 살자 어쩔수없이 하기싫어도 할수없이
합니다.
이렇게 해도 현실을 똑같습니다.
여기로 이사올때만 해도 드디어 엄마랑 단 둘이구나. 좌절하지말고 이제는 정말 바닥까지 쳤으니까
더이상 불행을 없고 행복만 가득할꺼야 라는 생각에 들떳습니다.
하지만 현실을 그대롭니다.
대학등록금은 빚으로 쌓여가고 핸드폰비는 밀려가고 고기먹을 일은 한달에 한두번정도
반찬거리가 없어도 잘 먹습니다. 저는 젊습니다.
저희 엄마는...올해 54세이십니다.
저의 방패막이였던 저희 엄마는 이제 지치시나봅니다.
우울해 하는 엄마를 보면서 어린 저를 탓합니다. 한 때 안좋은 생각을 가진 적이 있습니다
만약 내가 안태어났다면 초등학교 2학년 그 봄날 싸움이 일어나지 않았을까
내가 안태어났다면 엄마가 재혼할 일도 없엇겠지 그러면 엄마는 맞을 일도 없고 참을 일도 없고
처음보는 사람과 살일도 없고 듣고싶지 않은 말 들을일도 없었을까
나는 엄마한테 짐이겠다 엄마가 죽겠다고 한 날 내가 만약 아빠한테 간다고 했다면
차라리 그랬다면 엄마는 저 위에서 행복했겠지 그때 왜 말렸을까 어차피 현실이 이런데
왜 엄마를 잡았을까 하는 생각말입니다.
저는 저의 엄마는 저의 방패막이셨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저의 방패막이입니다.
이미 너덜너덜해질데로 너덜너덜해졌지만 저는 여전히 엄마 등뒤에 숨어 지내는
마냥 어린 셋째딸입니다.
저는 행복한 딸입니다. 행복한 외동딸입니다. 하지만 저희 엄마는 불행합니다.
저희 엄마는 철부지 딸 하나를 둔 불행한 엄마입니다.
이제는...엄마 뒤에서 숨어지내고 싶지 않습니다. 엄마가 두번째 아빠한테 시달릴 때 가만히 있었던 저를
증오합니다. 이제 제가 엄마의 방패막이가 되주고싶습니다. 하지만 저는 어립니다.
그래도 최선을 다하려고합니다.
그러면 현실도 조금은 나아지겠죠^^?
저희 엄마와 제가 더이상의 불행은 겪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그냥 이래도 좋으니 아프지않고 엄마와 오래오래 살았으면좋겠습니다
엄마 정말 사랑해
정말 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