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많은 일이 있었던 그를, 나는 끝없는 신뢰와 믿음, 사랑으로 함께 해주면 둘이 함께 행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그를 믿고 쭈욱 나는 그의 여자친구로 지내왔었다. 하지만 모든 것이 없어져버린 지금… 잃어버렸던 기억을 찾아 글로 써보기 시작했다. 어디부터, 무엇이 잘못 되었는지. 나는 왜 그랬는지, 그때 심정과 상황을 다시 한 번 보고 싶었다…...
그 사람을 만난 것은 약 2년전, 유학을 가기 위해 준비하는 출국자 모임에서 만났다. 공부하는 사람치고는 개방적인 성격과 장난끼에 의외라는 느낌이 들었다. 잘 생기지는 않았지만 밝게 웃는 표정과 머리 스타일이 개성있는 그는 유학생 사이에서 눈에 띄었다. 여자친구가 있다고 하면서 장거리 연애 중이며 홍콩에서 만나 2년반정도 사귀었다고 자신있게 말한 그 사람을 보며 ‘오~ 그래도 여친있는 것을 숨기지 않네?’라는 인상을 받았다. 일전에 여자친구가 있음을 숨기고 확실히 결혼할 때까지 알리지 않고 이 여자, 저 여자 치근덕 거리는 사람들과는 조금 다른 느낌이었다.
모임이 있는 다음 날 아침,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왔다. 받아보니 그 사람이었다. 여자친구가 과외를 가서 없다며 시시콜콜한 질문을 하며 1시간이나 통화를 했다. 이 사람이 나한테 웬 전화를 이렇게 하지? 싶으면서도, 여자친구에 대한 이야기는 당당히 하니 그냥 이성친구가 많은 사람인가 보다 싶으며 종종 오는 전화와 메신져 신청을 받아주었다.
그래,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부터 아예 그 사람을 신경쓰지 말았어야 했다……
홍대주변에 살던 그는 내가 마침 신촌으로 일이 있어서 온 날 저녁을 같이 하자고 말했다. 맛집에서 저녁을 하고 우리는 근처 바로 옮겼다. 술이 들어가니 어쩌다보니 ‘누가 더 애인과 힘들었나’ 싶을 정도의 신세 한탄이 나왔다.
“사실 오빠와 같은 남자 만나봤어요. 여자친구 있다고 당당히 밝히면서도 은근히 여자들과 연락 자주하고 자주 보는 사람. 지긋지긋하게 당해봤으니까 죄송하지만 오빠 이미지, 별로예요.”
평소에 아니다 싶으면 좀 직설적으로 얘기하는 타입이라 일침을 놓고 시작했다.
“그래, 내가 좀 그렇게 보이나? 어렸을 때부터 미국에서 지내서 그런지 좀 개방적인 면이 있더라. 그래서 여자들이 날 쉽게 보나봐…좀 서운하네…” 라고 운을 띄운 그 사람은, 사실 자기 여자친구는 외국인이고 현재 서로에게 여지를 두는 연애 중이라고 했다. 그말인 즉슨, 둘은 커플이지만 누구하나에게 더 좋은 사람이 생기면 헤어지고 그 좋은 사람과 사귈 수 있다는 말이었다.
“무슨 그런 연애가 어딨어요?”
“그러게…그런데 내 여자친구가 그렇게 하재. 나는 여자친구가 너무 좋은데…… 그런데 그 여자친구는 그 쪽에서 이미 만나고 있는 남자가 있는 것 같아. 날 그만 놔줬으면 좋겠는데 왜 이렇게 잡고 있는 지 모르겠다…힘들다 사랑해도 다른 사람과 있는 여자친구를 보면….”
라면서 그 사람은 힘들어했다. 나도 여러 남자에게 상처받은 경험이 있기에, 나에 대한 이야기도 함께 하면서, 괜찮을 거라고 다독여줬다. 그러면서 한 편으로는 ‘이 사람을 너무 첫 인상만 보고 평가했구나’ 라는 미안한 생각과, 한편으로는 ‘저래놓고 필요하면 여자를 꼬시고, 필요가 없으면 다시는 그 여자한테 돌아가는거 아니야?’ 라고 반신반의했다.
한국에서의 만남은 그것이 마지막이었다.
나는 일찍 미국으로 나왔고, 약 1개월 후, 그 사람은 이 동네로 왔다.
오기 전에 공항 픽업을 부탁을 했지만, 내가 사정이 안되서 그 오빠와 동갑인 다른 언니가 나간 것으로 안다. 비가 엄청 내리는 날이었다. 걱정도 많이 됬지만 어련히 잘 도착하겠지 생각하고 신경을 쓰지 않기로 했다.
그 후에 때때로 그 사람한테 ‘뭐야~ 픽업 못 한거 신경 안쓰여?’ 라는 식으로 전화가 오고. 때론 힘들다고 타지 생활하지 슬프다고 넋두리를 했다. 나는 그래도 이 사람과 엮이지 말아야지 하는 생각으로 “각오를 하고 오셨어야죠. 당연한거예요.” 라고 말했다.
“너….생각보다 굉장히 무섭구나” 끊긴 전화는 얼마간 다시 울리지 않았다.
후에 그 오빠를 공항으로 데리러 갔던 그 언니와 사귄다는 소문이 들렸다. 예전에 사귀던 외국인 여자친구와는 헤어지고…. 그래서 잘 사귀는구나 싶었다.
그런데 오빠한테 또 연락이 왔다.
“나는 모든 것을 정리하고 현재 여자친구와 사귀는데, 그 아이는 아직도 전남자친구랑 연락을 하고있어. 아니, 안 끊은 것 같아. 오래 사귀었기 때문에 한순간에 끊어내는 것이 어렵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그래도 힘들다.”
하루가 멀다하고 들려오는 나쁜 소식. 자신의 여자친구가 바빠서 밥 안 먹는다고 해서 밥을 사가지고 갔는데 다른 남자와 밥을 먹고 왔다. 힘들다고 울면서 연락와서 1시간을 비를 맞고 집으로 뛰어갔는데 전남친과 통화하고 안정되어있었다. 자신에게 잔다고 하고 나가서 다른 남자들과 술을 마시고 왔다…….
하루는 자신과 통화를 하다가 언니의 거짓말이 또 드러나서 홧김에 벽을 쳤는데 그만 화재 경보기를 울렸다는 것이다. 놀란 마음에 대피를 했는데 미국인 중에 누군가가 자신의 모습을 보고 경찰에게 알려줘서 ‘폭력성’을 띈다는 이유로 경찰서로 잡혀갔다고 했다. 다행히 자신의 지도교수가 와서 사정을 하며 ‘이 학생은 내가 보장한다’고 해주어서 사회봉사를 대신으로 풀려놨다고 했다.
그 사람은 자신이 미국 시민권이 있지만 한국인으로서 군대를 다녀와야 한다는 아버지의 명령 하에 미국 시민권을 포기하고 군대를 다녀왔다. 때문에 미국에서 이런 사고를 치면 강제 송환될 가능성이 있고 다시는 자신의 꿈을 못 이룰 지도 못할 것이라며 언니를 원망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둘의 관계는 아슬아슬 위태로웠다. 그러던 어느 날, 새벽 1시. 그 여자친구 언니한테서 전화가 왔다.
“여보세요?”
“…..” 아무소리도 없었다.
“여보세요?언니?”
터치폰이기에 잘못 눌렀나싶어서 이내 전화를 끊었다. 그런데 다시 걸려오는 전화.
“여보세요?”
“흐흐흐흐흑. XX야… 나 좀 살려줘.”
언니는 흐느끼면서 전화를 했다. 제정신이 아니었다. 알 수 없는 말만 늘어놓아서, 곧바로 나는 차를 타고 언니 집으로 갔다. 처음 가는 길이라 헤매면서 도착한 그 집 앞. 그 언니는 추운 날씨임에도 불구하고 맨발로 나와있었다.
“언니, 무슨 일이예요? 왜 맨발 이예요?”
“흑흑. 나…너무 무서워. 지금 남자친구가 화나서 집도 다 부수고, 칼 들고 난리가 났어.”
“에이~ 언니 설마…..” 하면서 옆을 봤는데 계단에서 그 사람이 올라오고 있었다.
추운 날에 흰 나시티만 입은 그 사람. 눈에는 화가 잔뜩 서려있었고. 그 다음으로 눈에 들어온 것은 흰색에 얼룩덜룩하게 물들어 있는 피였다.
“언니, 다쳤어요?”
“아니야, 저거 자기가 자살한다고 소동피우면서 다친거야….나 때문에 열받았다고….자살한다고..”
그 사람은 제 3자의 모습을 보고 놀란 듯 싶었다. 진정된 것 같아서 언니 집으로 들어갔는데…. 정말 말도 아니었다. 거울 깨져있고, 석회로 된 벽, 나무로 된 문은 주먹으로 뚫려있었다. 한 차례 폭풍이 휩쓸고 지나간 모습이었다. 그 사람이 한 것 이었다…..그 사람이 이렇게 모든 것을 부숴논 것이었다. 무서운 마음에 언니와 그 사람을 쳐다보았다. 내심 침착한 척을 해도 무엇을 할 지 몰랐다. ‘경찰’이라는 생각도 떠올랐지만, ‘강제송환’이라는 단어도 함께 떠올랐고 그 언니도 그것을 바라지 않았다.
정적이 흐르고, 두 사람 사이에 대화가 필요했다.
“xx야, 이제 괜찮을 거 같애. 집에 들어가 고마워.”
새벽 2시30분. 마음이 편치 않아 누차 언니한테 물었다. 그 오빠를 집에 데려다주겠다고 했지만 둘은 듣지 않았다. 결국 무슨 일이 생기면 연락을 달라고 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 오빠에 대한 공포심을 가득 품고. . .
다음 날 오빠에게 연락이 왔다. 어제 일은 여태까지 거짓말한 언니에 대한 오빠의 분노가 한꺼번에 터진 일이었다고…마지막까지 자신의 눈을 똑바로 보며 거짓말한 그 언니의 모습에 순간적으로 이성을 잃었다고….그러면서 그 사람은 나한테 이렇게 말했다.
“내가 세상에서 제일 싫어하는 사람이 3명 있어. 첫째는 거짓말한 사람, 둘째는 여자를 때리는 사람, 그리고 셋째는 바람피는 사람. 그 중에 내가 한가지를 한 거야. 정말 할 말이 없고, 난 내 자신을 용서할 수 없어.”
전화기 너머로 그 사람의 흐느끼는 목소리가 들렸다. 마침 그 언니는 그 날부터 학회를 가야했기에 집을 비워야했다. 그 사람은 언니가 돌아오기 전에 집을 치워야하겠다고 하면서 차가 없기에 나에게 도와달라고 요청을 했다. 필사적으로 그 사람은 벽의 구멍을 메우고 예쁜 인테리어 소품을 가져오고 집안의 구조도 바꿨다.
“돌아오면 예전의 일을 떠올리고 괴로워할까봐…집 구조도 바꾸는 게 나을 것 같아. 난 이제 그 애한테 평생 빚을 졌어. 힘들지 않도록 내가 옆에서 도와줘야지….난 평생 그 애한테 잘해주고 그 기억이 없어지도록 도와줄거야. 내 자신을 도저히 용서할 수가 없어.”
그렇게 자신이 싫다고 되뇌이는 그 사람. 그러다가 일이 터졌다.
그 사람은 매일 밤 자신이 그 날밤의 악몽에 시달린다는 것이다. 잠도 잘 수 없고. 소화도 할 수 없고. 체력은 최악으로 갔다. 하루하루 체중은 빠져갔고 불면증에 시달리면서 두통도 같이 호소하였다. 언뜻언뜻 그는 머리 속이 멍하다는 느낌도 들었다고 한다.
그러면서 그는 입버릇 처럼 이야기했다. “걔가 먼저 내가 좋다고 해서….내가 내 여자친구도 정리하고 사귀었는데. 그 아이는 전 남자친구와도 계속 만나고…다른 남자들도 만나고…그렇게 나를 남자친구로 사랑해주지 않는 것 같았어… 거짓말도 매일 하고…하지만 이렇게 될 줄은 몰랐어. 나도 싫고 그 아이도 너무 미워. 헤어지고 싶었지만 그 아이도 나도 헤어지지 못하고 이렇게 엮여있어. 그 아이는 날 감시하고 날 따라와. 나를 붙잡고 있으면서 자신은 자유로워….”
하루가 멀다하고 나아지지 않는 악몽과 불면증에, 그는 가까운 도시에 있는 아는 동생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그 동생은 심리학과 박사과정으로 유명한 교수님 밑에 있다고 했다. 그렇게 그는 일주일에 한 번 씩, 심리상담을 받으러 그 도시로 다녀왔다.
그 무렵 그는, 그 언니를 만나는 것을 무서워했다. 그 언니가 자신을 스토킹하는 것도 같았고, 만나면 자신이 어떻게 변할까 두려워서 피하고 싶다고 했다. 때문에 나는 그를 도와주면서 동시에 그를 숨겨주었다. 언니가 그의 안부를 물으면 모른다고 했고, 종종 그의 장을 봐주거나 밥을 해주었다. 그렇게 약 1달, 2달 간을 거의 매일같이 보면서, 나는 그를 점점 좋아했고, 그도 나에게 마음이 있는 것 같았다. 하지만 서로에게, ‘절대 좋아하면 안되’라는 암시를 걸면서 지냈다.
그랬던 그에게 청천벽력같은 이야기를 들었다. 그것은 그가 그도 모르는 사이에 뇌세포를 죽이고 있다는 것이었다. 심리적인 이유로 self-destruct, 즉 자아파괴상태로 돌입했다는 것이다. 그는 여러가지 심리극을 참여했다고 했다. 그런데, ‘헤어지자’는 말과 그 언니를 떠올리면 이성을 잃고 폭력성을 보인 후 의식을 잃었다고 한다. 그리고 의식을 잃을 때마다, 잠이 들때마다 자신의 기억을 조금씩 잃어가고 있다고 했다. 그가 보여준 심리학 동생의 편지에는 그 사람의 상태와, 앞으로의 걱정, 그리고 심리치료에 대한 계획이 있었다. 편지 위 귀퉁에는 조그맣게 그의 병명이 영어로 써져있었다.
“만약 심리치료가 성공하지 못하면, 나는 점점 기억을 잃고, 빠르면 1년 안에는 뇌세포가 죽어서 식물인간이 될거야. 잠을 자면 안되. 악몽을 꾸면 기억을 잃는 속도가 더 빨라지거든. 점점 예전에 대한 기억을 떠올릴 수가 없어…”
자신도 믿을 수 없다는 듯이 눈물을 흘리는 그는, 그 후에는 잠을 자지 않으려고 노력을 하며 1주, 2주를 버텼다. 마음에서 생긴 병이기에 마음으로 치료해야하지만 쉽지 않았다. 자기가 한 일에 대한 자괴감은 그를 더 힘들 게 할 뿐이었다.
때문에 병원에서 내놓은 해결책은 하나였다. “최면요법”
마치 올드보이에서 나온 것처럼, 자신의 기억을 도려내고 좋았던 기억으로 바꾸는 것이다. 하지만 그가 말하길, 기억을 바꾸는 것이니만큼, 정신상태 등에 큰 타격을 입을 수 있을 것이니 위험요소가 크다고 했다. 때문에 한국에서 그의 어머니와 동생도 그 시술이 행해지는 날 전에 미국으로 오기로 하였다.
죽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나는 머리가 멍해졌다. 정말 사람이 죽는구나…영화같은 일은 이런 현실에 근거해서 만들어지는구나….그것과 함께 애써 묻어두었던 감정이 밀려왔다. 그것은 아마 정, 사랑, 미안함, 애잔함, 모성애, 동정심, 모든 것이 포함되어 있었을 것이다.
나는 그를 잡고 울었고 그도 나와 함께 눈물을 흘렸다. 좋아하는 것 같은데, 이제 그 감정을 알 것 같은데 이별이라니….
치료를 받기 전날 나는 그를 잡고 말했다. 내년 이 날에 우리는 꼭 축하를 할거라고. 그때 꼭 보자고. 치료를 받는 날, 나는 학회를 가야했기에 함께 할 수 없었다.
그는 그의 어머니와, 동생과 함께 있을 것이기에 마음은 조금 놓였다.
가기 전 그는 나에게 당부를 하였다. 치료가 만약 잘된다면, 너는 예전에 자기를 차갑게 대하던 그냥 동생으로 기억이 되있을 것이라고. 그리고 그 여자친구는 이유는 모르겠지만 자기가 계속 관심이 가고 도와주려고 할지도 모를것이라고. 그래도 이해해주고 살아달라고 했다. 그리고 만에 하나 자신의 최면이 깨지는 키워드인 ‘그날 밤 일’을 말하면 심리상태가 불안정해질수 있으니 그 일은 이제 말하지 말아달라고 했다.
그는 이 당부사항을 그날 일을 아는 모든 사람을 직접 찾아가 이야기했다.
심리치료는 흔한 것이 아니기에 매우 많은 돈이 들었고, 그는 매우 조심스러웠다.
그렇게 모든 준비가 끝나고 나는 학회로, 그리고 그는 다시 그 도시로 떠났다.
-----------------------------------------------------------------------------------
여기까지 1탄입니다.
믿기지 않겠지만. 저에게 실제로 일어난 일이고 꾸밈없이 썼습니다.
2탄을 더 써야할지 모르겠지만....그저 과거의 일을 다이어리처럼, 수필처럼 쓰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