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안함 폭침 그 이후
안녕하세요 고1 남학생 입니다!
이번에 기회가 되어 천안함 견학을 다녀 왔답니다!
거기서 나눠준 프린트를 전부 쓰는 걸로 시작을 하죠 후후후... 양이 엄청나요 ㅜㅜ ㅋ
제 2 연평해전
우리나라는 물론 전 세계가 월드컵 경기로 들떠 있던 2002년 6월 29일 오전 10:40 서해 연평도 서쪽 140마일 해상에서 느닷없이 NLL(북방 한계선)을 침범한 북한 경비정의 기습적인 포격으로 인하여 교전이 벌어졌다.
이렇게 시작된 31분간의 교전으로 우리 해군 참수리 357정이 격침되고 윤영하(28세, 대위) 정장 등 6명이 전사하고 18명이 부상당하였다.
우리 고속정의 대대적인 반격으로 북한 해군 함정에서도 화염이 휩싸였고 다른 함정이 북한 경비정을 예인하여 북상하였다.
북한 경비정에 타고 있던 북한 해군 50여명 중 10여명이 죽고, 수십명이 부상당한 것으로 보인다고 해군은 발표하였다.
이 해전으로 인하여 2000년 남북정상회담 이후 평온한 분위기를 유지해 오던 남북관계는 냉기류에 접어들었다.
남북간의 해전은 1999년 6월에 북한군이 북방한계선을 침범하는 것을 포격을 가하지 않고 밀어내기 전법으로 북한함정을 격퇴시켰는데 이 과정에서 북한 해군함정 1척이 격침되고 수십명이 사상되는 등 우리 해군의 일방적인 승전이였다.
그로부터 꼭 3년 뒤인 2002년 6월 29일 북한 해군이 느닷없이 북방한계선을 넘어와 우리 해군함정에게 집중공격을 가한 것이다.
북한은 남한을 적화 통일시키기 위해 휴전이후 지금까지 150여차례에 걸쳐 끊임없이 대 남도발을 계속해 오고 있다.
천안함 폭침 사건
사건 개요
2010년 3월 26일에 백령도 해상에서 대한민국 해군의 초계함인 천안함이 북한의 어뢰공격으로 폭침당한 사건이다. 사건 발생 직후 출동한 인천해양경찰서 소속 해안 경비정에 의해 천안함에 탑승하고 있던 승조원 104명 중 58명이 구조되었으며 나머지 46명은 실종되었다.
이후 실종자 수색과 선체 인양이 진행되면서 실종자 46명 중 40명이 사망자로 확인되었으며 6명이 실종자로 남아있다.
한편 일반에 공개되지 않은 수색과정에서 3월 30일에는 UDT 대원인 한주호 해군준위가 작업 중 실신하여 병원으로 후송되었으나 순직하였다. 김현진 상사, 김정호 상사도 실신해 치료를 받았다. 4월 2일에는 저인망어선 금양 98호가 천안함 실종자 수색을 마치고 조업구역으로 복귀하던 중 서해 대청도 서쪽 55Km 해상에서 침몰해 탑승 선원 9명 중 2명이 숨지고 7명이 실종됐다.
사고 원인에 대해서도 초기에는 어뢰설, 기뢰설, 내부폭발설, 피로파괴설, 좌초설 등 다양했으나 조사가 진행되면서 좁혀졌다. 당초 정부와 민군 합동조사단은 어뢰에 의한 피격설과 좌초설의 가능성을 조사했었다.
2010년 5월 20일 조사단은 침몰 원인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어뢰에 의한 공격이였다고 공식 발표했다. 조사단은 발표문에서 어뢰에 의한 수중폭발로 발생한 충격파와 버블효과로 절단되었으며 가스터빈실 중앙으로부터 좌현 3m, 수심 6~9m에서 폭발하였고 무기체계는 북한에서 제조한 고성능 폭약 250kg 규모의 어뢰로 확인되었다고 밝혔다.
이어 사건 발생해역의 작전환경을 고려할 때 소형잠수함정으로 판단되며 주변국의 잠수함정은 모두 자국의 모기지 또는 그 주변에서 활동하고 있었는데 반해 황해의 북한 해군기지에서 운용되던 일부 소형 잠수함정과 이를 지원하는 모선이 천안함 공격 2~3일 전에 황해 한 해군기지를 이탈하였다가 천안함 공격 2~3일 후에 기지로 복귀한 것이 확인됐으며 폭발지역 인근에서 수거된 어뢰의 부품들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산 무기와 일치한다고 밝혔다. 그렇지만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이 조사를 신뢰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2010년 5월 24일 이명박 대통령은 담화문을 통해 “대한민국을 공격한 북한의 군사도발”로써 북은 상응하는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며, 북한의 책임을 묻기 위해 북한선박이 우리 해역, 해상 교통로 이용은 불가하고 남북간 교역을 중단하는 조처를 할 것이다 라고 밝히고 덧붙여 우리의 영해, 영공, 영토를 무력 침범시 즉각 자위권 발동, UN안전보장이사회 회부 및 국제사회와 함께 북한의 책임을 요구 할 것이다. 또한, 군 전력 및 한, 미 연합 방어태세를 한층 강화할 것이다. 라고 언급했다.
실종자 수색 및 천안함 인양
대한민국 해군은 27일 오전 수상함 10여 척과 해난구조함 평택함을 포함한 대부분의 병력을 사건 지점에 배치했다. 사건 지점에 배치된 100여 명의 해난구조대(SSU) 잠수 요원들은 선체의 구멍을 조사하고 있었다. 28일에는 실종자 수색을 위해 피격위치에 광양함을 추가로 배치했다. 수색과정에서 대한민국 해군은 침몰 지점으로부터 서남방 16마일 부근에서 구명복 상의 22개와 안전모 15개를 발견했다.
29일 밤, 아시아 최대의 수송함인 독도함을 침몰한 천안함의 탐색 및 구조 활동을 지휘하기 위해 현장 해역에 긴급 투입했다. 30일, 실종자 수색 작업을 하던 UDT 대원 한주호 준위가 작업 도중 실신해 후송 치료 중 사망, 순직했다.31일 함수쪽을 수색한 잠수사의 증언에 의하면, 격실 안에 물이 가득 차 있다고 했다.
4월 2일 수색작업을 돕던 쌍끌이 어선 금양 98호가 22시 30분쯤 조난신호를 보낸 뒤 실종됐다. 캄보디아 화물선과 충돌하여 침몰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현재까지 탑승 선원 2명이 숨지고 7명이 실종됐다. 4월 3일 천안함에서 시신 2구를 발견했는데, 그 중 한명은 남기훈 상사로 확인됐다. 4월 3일 실종자 가족 측이 실종자 수색 작업을 중단해 달라는 요청을 했으며, 해군은 실종자 가족 측의 요청을 받아들였다.
그리고 4월 7일 함미 절단면에서 김태석 상사가 발견되었다.
영결식
2010년 4월 29일, 천안함 희생 장병 46명의 영결식이 거행되었다. 이 날 영결식에는 2,800여 명이 참석해 천안함 장병들을 애도 했다. 해군 제 2 함대 사령부 인근의 원정 초등학교는 영결식이 열린 4월 29일 오전 10시를 기해 전교생이 묵념을 올렸다. 원정초등학교에는 천안함 희생 장병의 일부 자녀들도 재학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영결식은 국기에 대한 경례 → 묵념 → 경위보고 → 화랑무공훈장 추서 → 조사 → 추도사 → 종교 의식 → 주요 인사 헌화 → 조총 발사 순으로 진행되었다. 희생 장병 46명(산화자 6명은 유품)은 국립대전현충원의 사병 3 묘역에 안장되었다. 또한 천안함 실종자들을 구조하려다 사망한 한주호 준위도 묘역 인근에 안장되어 있다.
우햐..... 다썼다.......+.+
사실 북한의 대남 도발 실태....도 있지만
이 썩을 노미 귀차니즘 ㅡㅡㅋ
여러분은 이 글을 보고 무엇이 느껴지시나요?
천안함 폭침 당시에도 굉장한 충격을 받았지만 이렇게 자세히는 몰랐죠.
지금의 평화에 안주하여 막연히 사시고계시진 안나요?
우옼ㅋㅋ ㅈㅅ 너무 버릇없게 굴었음 ㅎㅎ
이번에 기회가 되어서 천안함 폭침 후에 건진것을 공개해서 봤습니다.
아래는 사진이예요 ^^
자아 화질은 무시하죠 ㅋㅋㅋㅋ mp로 찍은거라 그래여 ㅋㅋㅋ
출발!!!
이야.... 건물 하나없이 탁 트인 하늘 ㅜㅜ 서울에선 꿈도 못 꿈 ㅋㅋ
사실 여기 하늘이 왜이렇게 시원하지? 했는데... 하늘을 가리는 건축물이 없더군요....
화질 ㅈㅅ ㅋ
입 짜 앙~~~~
보이시는 저게 천안함 이랍니다~ 위용이 아주 +.+
이번에 많은 사람들이 오셨더라구요 ㅎㅎ
아래부터는 스압 ㅇㅇ 화질은 역시나 ㅈㅅ
폭파 당시 날라간 부위 허......
위!풍!당!당!
슬슬 폭파된 부위가 보이기 시작합니다.
이곳이 폭파당시 절단된 곳입니다.
아직 수리 중인가 봅니다
뭔가 이상하실 것입니다.
어 저 빨간모자 군인 아냐?
ㅋㅋㅋㅋ 정답!!
군인분들도 견학하시더군요.. 사진도 찍으시고 ㅎㅎ
떨어져나간..... 당시의 폭발의 규모를 상상하게 합니다.
열심히 일하시는 아져씨들 ㅜㅜ
참...... 굉장하군요...... 하.......
천안함의 앞모습
읽어 보시는 것을 권장합니다만 눈의 피로는 책임 못집니다.
이 스크류에 사용된 금속이 사람손톱 정도의 양만으로도 3톤을 버팁답니다. 근데 저꼴.....
숨막히는 뒷....아니 기자들 따라해 보고싶었어요.....ㅈㅅ
이것으로 저의 천안함 폭침 후 견학을 마치겠습니다~~ 와아~~ 짝짝짝
다 읽어 주신분들 감사합니다 흙흙
사진만 보신분들 본문도 읽어주세요ㅜㅜ 나름 힘들게 쳤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