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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드는 것에 대하여...

김진철 |2011.07.27 16:37
조회 12 |추천 0

나는 소설가 박완서 선생을 잘 알지 못합니다. 얼마 전 선생의 부고를 듣고 ‘벌써 돌아가시다니’하고 놀랄 정도였으니까요. 난 선생을 육 십 언저리인 어머니 또래라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돌아가실 적 연세는 향년 80세. (서울대학교 국문학과 50학번이다. 숫자 ‘50’과 ‘학번’이란 단어는 왠지 어울리지 않는 조합이다.) 그럼에도 선생의 나이를 20살이나 깎아먹은 것은 아마도 내가 선생을 떠올릴 때마다 나의 장모님을 함께 연상했기 때문일지 모릅니다. 두 분의 외모는 닮지 않았지만, 난 박완서 선생을 떠올리면 장모님이 함께 떠오릅니다. (물론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박완서 선생의 큰 딸이 장모님 또래라고 한다.)

두 분의 외모가 모두 온화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또 장모님 역시 소설을 쓰셨고, 지금도 동화나 글쓰기에 관심이 많습니다. 글을 쓰는 사람답게 두 분 모두 사소한 자연의 풍경에 감동할 줄 아는 감수성이 있고, 감수성은 자연히 흙을 만지며 밭일을 즐기는 공통점으로 이어집니다. 자연의 미물에도 감동할 수 있기에 얼굴은 항상 웃는 표정이고,(내가 본 박완서 선생의 사진엔 항상 온화한 미소가 있었다.) 세상의 냉혹함에는 분노하고 슬퍼할 줄 아는 휴머니즘이 있습니다. 생각해보니 무엇보다 장모님이 박완서 선생을 참 좋아했고, 종종 그 분의 이야기를 하셨습니다. 그래서 아마도 내 무의식은 장모님을 박완서 선생과 연결시켜 놓았나 봅니다. 그런데 얼마 전 박완서 선생의 <호미>를 읽으며, 무의식적으로 엮어놓은 두 사람의 연관성이 점차 의식적으로 분명해져갔습니다. 두 사람의 연결고리는 바로 ‘딸 가진 엄마’였습니다.

박완서 선생은 아들이 하나 있었지만, 딸을 넷이나 둔 엄마입니다. 그래서인지 책 곳곳에서 선생 스스로를 딸 가진 부모라 생각하는 흔적이 드러납니다. 장모님은 아기를 봐주시면서 아내에게 종종 ‘나는 너 때 애 돌보느라 아무 것도 못한 게 참 후회되더라. 그러니 넌 엄마가 아기 자주 봐줄 테니 하고픈 거 있음 다 해’라고 말했습니다. 높은 교육열로 지금의 박완서를 가능케 한 선생의 모친 역시 자신은 못 누렸던 자유를 딸에게 누리게 하고자 엄청 애를 썼습니다. 그런 모친의 가르침은 분명 딸을 키우는 박완서 선생의 태도에도 영향을 미쳤을 터. 그래서 선생은 딸 자식에 대해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엄마들이 아들에게 거는 기대는 한 집안의 이익과 노후대책을 바라는 지극히 이기적인 것인 데 비해 딸에게는 이 세상을 바꾸기를 바라는 더 원대한 꿈을 건다고 믿고 있다.’ (P.107)

장모님은 아내가 결혼할 때, 시를 하나 써서 메일로 보냈습니다. 난 옆에서 곁눈질로 대충 읽었는데도, 딸을 사랑하는 어머니의 마음이 고스란히 전해져왔습니다. ‘점점 밋밋한 촌부로 나이 먹어가도 나의 몸속에서 네가 꽃으로 피어나면 흉하게 굽어진 등허리도 부끄럽지 않았다… 해마다 잎을 틔우고 키우고 떨구는 나무처럼 내가 이 세상에서 한 일이라곤 결국 너를 키우고 떨군 것뿐이구나.’ <호미>에서 박완서 선생도 어린 자식, 손자들에게 한글을 깨우쳐주며 이렇게 말합니다. ‘어느 부모가 그렇지 않겠냐마는 나도 내 자식이 문 열고 나가 부딪힐 몇 겹의 이 세상이 아이들에게 우호적이길 바랐다. 아이들은 자라면서 아마 점점 비우호적인 세상으로 나아가게 될 것이다. 그렇더라도 간판을 읽으면서 배운 친절과 배려, 그림책을 읽으면서 상상한 동물과 곤충하고까지 소중하고 우정을 나눌 수 있는 한없이 아름답고 우호적인 세상에 대한 믿음이 힘이 되길 바랐다.’ (P.215) 두 사람은 딸을 사랑하는 부모로서 명확히 연결되고 있었습니다.

요즘도 장모님은 우는 아기를 달래고, 안아서 재웁니다. 그 모습이 부쩍 힘에 부쳐 보입니다. 젊은이인 내게도 쉽지 않은 일입니다. 계절이 더 자주 바뀌고, 장모님의 등허리도 점점 굽어가겠죠. 허리가 굽고, 몸이 내 말을 점점 듣지 않을 때, 부모들은 하루하루 나이 먹음을 피부로 인식합니다. 젊은이들은 부모들이 인식하는 시간의 변화를 잘 모릅니다. 그저 부모의 늘어난 검버섯, 쭈글쭈글해진 피부, 그리고 답답해진 성격을 통해 시간이 흘러감을 희미하게 느낄 뿐이죠. 사실 어찌 보면 부모와 우리의 가장 큰 단절은 나이 들어감에 대한 인식의 차이에서 비롯된 건지 모릅니다. 생의 끝자락을 향해 달려간다는 현실을 인지하며 살아가는 사람과 인생은 영원히 계속될 거라 생각하는 사람의 차이. 거기서 노인의 지혜와 젊은이의 패기가 나옵니다. 때문에 부모 세대를 이해하는 첫 걸음은 그들이 인지하는 나이 듦을 공감하는 데서 시작될 수 있습니다.

박완서 선생의 <호미>를 읽으며 가장 눈에 띈 부분도 나이 듦을 어떻게 피부로 인식하는지를 서술한 대목입니다. ‘내년에도 살구꽃을 볼 생각을 하니 가슴이 울렁거렸다. 칠십 고개를 넘고 나서는 오늘 밤 잠들었다가 내일 아침 깨어나지 않아도 여한이 없도록 그저 오늘 하루를 미련 없이 살자고 다짐해 왔는데 그게 아닌가. 내년 봄의 기쁨을 꿈꾸다니… 가슴이 울렁거릴 수 있는 기능이 남아 있는 한 그래도 인생을 살 만한 것이구나.’ (P.35) 시간의 흐름을 느끼며 살아가는 노인들에게는 봄에 핀 살구 꽃 하나도 그들의 가슴을 설레게 만드나봅니다. 그러나 노년의 삶이 언제나 가슴 벅찬 것은 아닙니다. ‘70년은 끔찍하게 긴 세월이다. 그러나 건져 올릴 수 있는 장면이 고작 반나절 동안에 대여섯 번도 더 연속상연하고도 시간이 남아도는 분량밖에 안 되다니. 눈물이 날 것 같은 허망감을 시냇물 소리가 다독거려준다.’ (P.31) 그러니 ‘명은 날로 길어지는데 삶은 왜 이리도 남루해지는지’(P.144)라고 탄식할 수밖에요.

지금도 장모님은 틈만 나면, ‘얘는 내가 봐줄 테니까 니들 나가서 영화보고 와.’ ‘니들 같이 운동 다녀와’ ‘밖에 나가서 니들 맛있는 거라도 먹고 와’라고 말합니다. 평생 자식이라는 열매를 키우고 떨궜건만, 그 열매는 아직도 비료를 달라고 보채고 있습니다. 장모님은 아내에게 편지에서 ‘떠나거라, 가서 내가 누리지 못한 기쁨 다 누리고 살라’했습니다. 결과적으로 우린 떠나지 못했지만, 장모님 덕분에 당신이 누리지 못한 기쁨을 다 누리며 살고 있습니다. 이런 생각이 머릿속에 만개할 때면, 죄송함을 넘어 죄스러워질 때가 있습니다. 죄스러움이 부담감으로 발전할 때면, ‘부모님의 은혜를 갚아야 한다’라는 무모한 생각이 떠오르기도 합니다. 물론 불가능한 일인 걸 잘 압니다. 애초 부모의 덕은 흐르는 물처럼 언제나 아래로 내려갑니다. 때문에 부모의 은혜는 자신의 자식에게 대리로 갚게 되는 게 세상의 이치죠. 대신 은혜의 보답이라는 거창한 말 대신, 부모를 조금이라도 이해하기위해 노력하는 게 훨씬 실질적일 겁니다. 당신이 만약 봄에 핀 들꽃에 가슴 벅차할 때 함께 기뻐하고, 남루한 삶이 허망해질 때 함께 슬퍼할 수 있다면, 제가 볼 때 당신은 이미 효자(효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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