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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상 땅 찾기 나선 친일파 이완용

땅찾기 |2011.07.28 14:03
조회 14 |추천 0

'이완용'이란 이름을 들으면 무엇이 생각나시는지요 매국노가 떠오를 것이다. 좀 더 길게

는 '나라를 팔아먹은 역적' 정도. 그 외에 다른 이미지는 어떤 게 있을까. 친러파에서 친일파로 변신했다는 것과 후손들이 뻔뻔하게도 조상 땅 찾기에 나섰다는 후일담이 생각날 것이다. 그렇다면 이완용은 '친일 매국노'란 딱지 외엔 또 다른 면이 전혀 없었을까. 이상하지 않은가. 한 인간이 단어 하나로만 규정된다는 것이 너무 단순하지 않은가 말이다.

이 책은 이 같은 의문에서 출발한다. 저자는 친일 매국노로 낙인찍힌 이완용의 삶을 살펴보고, 이제까지 잘 알려지지 않은 흥미로운 사실들을 보여 준다. 명문 반가에 양자로 들어가 스물다섯에 과거에 급제한 이완용의 관직 생활부터 을미사변이 벌어졌을 때 아관파천을 감행해 성공시킨 과정, 을사조약 체결 즈음부터 조약 체결에 나선 을사5적과 함께 매국노로 호명된 사연, 죽음까지 그동안 숨겨져 있던 그의 모습을 생생하게 그리고 있다.

저자에 따르면 이완용은 '합리적인 근대인'이었다. '충군(忠君)'과 '애국'이라는 이데올로기적 가치를 위해 용기를 내거나 제국주의의 폭력에 분노하기보다는 자신을 포함한 다수가 문명화의 혜택을 누리기 위해 절대로 분노하지 않는 이성적 인간이었다. 왕과 국가, 개인과 민족 사이에 심각한 균열이 빚어질 때 이완용이 선택한 것은 어느 한쪽도 아니었다. 균열을 직시하고 그것을 파열시켜 새로운 질서를 만들기 위해 용기를 내기보다는 국가와 민족의 가치를 '미래'로 밀어내고 왕과 개인이 살아갈 현실을 끌어안으려 했다. 한마디로 근대적 합리성이 극단의 시대와 마주했을 때 어떻게 발현될 수 있는지를 이완용은 보여 주고 있는 것이다.

이완용은 어린 시절 고전을 익혔으며 과거 급제 후 육영공원에서 영어를 배우고 주미대사관 참찬관으로 파견됐던, 동양의 전통과 서양의 지식에 두루 열려 있는 인물이었다. 또한 각종 교육 개혁을 이끌고 독립협회 회장을 지내며 정동파의 수장으로 자리매김하는 등 복잡다단했던 구한말 정계에서 주목받는 기민한 정치인이었다.

그는 현실에 분노하기보다는 현실을 조망하려고 했다. 그래서 이완용은 을사조약과 한일병합조약을 주도할 수 있었고, 그 과정에서 평소 자신의 소신이었던 왕과 왕실에 대한 의리를 지켰다. 분노해야 할 현실이 없었던 이완용은 현실의 부조리를 극복하고자 하는 그 어떤 사회적 가치의 부름에도 호응할 수 없는 인물이었던 것이다.

저자는 "물론 그의 매국 행위는 비판받아야 하겠지만, 대한제국의 정치 구조 속에 배태돼 있던 문제들이 이완용 개인의 문제로 환원됨으로써 이완용을 제외한 모든 이들은 국가 혹은 민족의 이름 아래 일종의 탈출구를 얻었던 것은 아닐까"라고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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