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에 톡 많이보는건 아니지만
항상 보기만하다 처음 글써보네요
시간은 참 빠르네요... 아직도 엄마 마지막모습이 눈에 선한데
벌써 49재라니..
저희 가족은 여섯식구입니다.. 아빠 엄마 누나셋 막내아들인 저. 저는 24살 남자입니다
아빠가 8남매중 장남이셔서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장손은 꼭 낳아야한다는.. 바램에
가난했는데도 누나셋과 저를 낳으셨습니다
저희집은 항상 살림이 빠듯했습니다. 자식이 넷이라 그런것도 있었겠지만
아빠는 공무원이셨는데 결혼하시기 직전에 친구분 도와주시다가 잘못돼서 짤리고
건설업을 하셨습니다. 작은 회사에 사장으로계셨고
넉넉한건 아니였지만 여섯식구 화목하게 잘지냈습니다.
그러다 제가 어렸을때 아빠가 누구 보증서주다 잘못되고, 또 누구 돈빌려줬다가 돈떼이고..
결정적으로 IMF때 부도나서 완전히망했습니다
초등학교땐데 집으로 막 빚쟁이들 찾아왔던 기억있고요..
전세보증금 없어지고 제가 중학교 2학년때 보증금 2000만원짜리 월세집으로 이사했습니다
엄마는 4남매를 뒷바라지하는 전업주부셨는데
집이 너무 어려워지자 이사하고부터 일을 시작하셨습니다
호텔에서 청소하는 일을하셨는데 월급 100만원정도 받으셨던거 같네요..
이때부터, 그러니까 한 2001년부터 어머니가 위암진단 받으신 2009년까지
정말 한번도 안쉬고 일만 하신거같네요.. 호텔청소 몇년 하시다가 텔레마케터도 하시고..
주5일 일을하셔도 주말엔 호텔청소 아르바이트를 다니셨습니다..
그러면서도 저희 누나들, 저 전부 뒷바라지하셨습니다
아침일찍 나가셔셔 7시쯤 퇴근하고 집에오시면 청소,빨래,설겆이,밥.. 생계를 책임지셨습니다.
근데도 전 계속 어긋났습니다.. 집안이 어려워도 엄마 도와드릴생각 안하고, 부모님생각안하고
철없이 게임에 미쳐서 게임만했습니다 학창시절 내내 게임만한거같네요..
집에서 게임하는게 아니면 친구들이랑 밖으로돌았고.. 사고치고다녔습니다
하루 일 안나가면 10만원인가? 벌금이라서 하루쉬는것도 벌벌떠셨는데
저때문에 일 쉬고 학교도 몇번 불려오셨고요.. 학교에서 우셨던게 기억나네요...
오토바이때문에도 부모님, 누나들 속 엄청 썩였습니다.. 매일 제걱정뿐이였죠..
전 그냥 가난한게 원망스러웠습니다.. 제가 잘사는동내에 살아서 친구들은 다 빵빵했거든요
그러다 고등학교도 졸업하고...아 지금생각해보니 중학교 졸업식, 고등학교 졸업식에도 엄마와 찍은 사진한장 없네요.. 누나가왔었고요.. 엄마는 항상 일해야만 했습니다, 생계를 이어가려면..
아무튼 졸업하고 대학진학은 포기했습니다 부모님은 대학진학을 너무나 원하셨지만
제가 공부와는 담을쌓고살았고 대학가고싶은 맘도 없었습니다
누나들은 다 본인들이 학자금대출받고 과외,아르바이트 해가면서 좋은대학갔습니다
지금은 대기업에 선생님에 좋은직장 다니고있고요.. 저랑은 다르게 일찍 철들었죠..
누나들은 엄마한테 효도도 많이하고 엄마생각도 많이했습니다
저는 잘하는게 게임질이였기때문에 프로게이머한다고 깝치다 포기하고
밤에 일했습니다.. 돈 많이벌었고요 모으는돈없이 쓰고다녔습니다
그러다 여자에 빠져서 집나와서 여자친구랑 동거했습니다 1년반동안..
이때도 엄마속 엄청썩였습니다.. 제마음대로 그냥 짐싸서 나와버렸거든요.. 혼자 자취하겠다고.
막내라서그런건지.. 그냥 생각이없었던건지.. 철이없었던건지..
그냥 그렇게 살았습니다 불효의 불효에 쓰레기같았죠..
엄마는 평생 가족만을위해 사셨습니다 자식들을 끔찍히 생각하셨습니다
전 번돈으로 흥청망청 쓰고다닐때
엄마는 돈 천원이라도 아끼려고 항상 멀리 시장까지 혼자 버스타고 다니셨습니다
항상 어깨엔 큰 배낭, 양손엔 장바구니가 가득했죠..
지금생각해보면 내가 그땐 왜그랬나 후회만 남네요..
그러다 2009년 10월 누나한테 전화한통을 받았습니다
엄마 건강종합검진 결과가 나왔는데 위암 말기라고요....
정말 하늘이 무너지는거같았습니다.. 미친놈처럼 울었습니다 계속 울었습니다
숨쉬기가 힘들더군요, 가슴이아파서..
위암은 자각증상이 많은 암입니다 엄마가 위암진단받으시기 몇달전부터
계속 가슴에 통증을 호소하셨거든요.. 아프다고...
근데도 엄마는 우리가 병원가자고하면 쉬면 돈이얼만데 쉬냐고 싫다고하셨습니다..
그렇게 아프시면서도 호텔청소하고 그러셨습니다..
전 집 정리하고 본집으로 들어왔고 엄마는 그때부터 센촌 세브란스병원에서 통원치료하셨습니다
주치의가 처음에 6개월정도 봤습니다.. 전이가 많이되서 수술이 안되는상황이였거든요
근데도 엄마는 하루하루 이겨내셨습니다 2주에 한번씩 통원치료하시면서..
암환자 보신분은 아시겠지만, 온몸이 안쓰러울정도로 뼈만 남습니다..
항암치료도 너무나 독합니다 아무리 건장한 남자도 힘겨워하고 살은 10~30키로씩 쭉쭉빠집니다
작은체구로 그 독한 항암제 꿋꿋히 맞으시면서도 이겨내셨습니다
퇴원하시면 매일같이 몇만보씩 걸으셨습니다 안먹히지만 억지로 뭐라도 드셨고요
신앙심도 깊으시고 의지도 강하셨거든요.. 무엇보다도 저희들을 끔찍히 생각하셨고요..
정말 힘이 닿는데까지 이겨내셨습니다. 항상 긍정적으로 생각하셨고요
그렇게 1년 6개월동안 항암치료 21차까지 받으셨습니다.. 나중엔 먹는항암제로 대체했고요..
그러다 결국 5월부터 급격히 안좋아지셨고 결국 6월14일 앰뷸런스에 실려가셨습니다
응급실에서 레지던트에게 얼마 안남았으니 마음의 준비를 하라는 말을 들었고..
입원하셔서 계속 피토하시고 신음하시고 고통스러워 하셨습니다..
가족모두 같이있었는데 계속 저만찾더군요.. 잠깐 씻으러가도 OO이 어디갔어? OO이 오라고해
비록 불효자지만 아들은 아들인가봅니다... 절 너무 사랑하셨거든요..
의식이 있으셨던 몇일동안 계속 좋은말만 해드렸습니다.
엄마가 그토록 원하는 공부도 할꺼고 나 정말 잘살꺼고 엄마한테 너무 감사하다고
엄마가 주신사랑 그대로 내자식한테도 돌려주겠다고..
너무 죄송하고 사랑한다고 너무 사랑한다고..
돌아가시기 전날밤. 계속 의식이 없으셨는데 그러다 잠깐 의식을 찾으셨습니다
혼자 있을때였는데 제가 귓속말로 엄마 너무 사랑한다고 세상에서 제일사랑한다고 하자
아주 나지막하게 "나도" 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곤 그 뼈만 앙상한 팔을 올리시더니 손가락으로 브이를 만드시더군요..
눈물이 왈칵 쏟아졌습니다..
말할 힘이없지만, 제게 엄마는 괜찮다고 엄마는 괜찮다고... 말하는거 같았습니다..
그게 엄마와 나눈 마지막 말이였습니다..
엄마는 아셨나봅니다. 갈때가된걸.. 그리고 6월22일 저녁8시즈음 돌아가셨습니다
아빠 누나들 저 모두 엄마 임종을 지켜드렸습니다
그때부터 장례가 끝나는 내내 울었던거같네요
화장터에서 유골함을 가슴에 안고 정말 서럽게 울었습니다
아무리 땅을치고 후회하고 목놓아 울어도 변하는건 아무것도 없더군요
평생을 가족만을 위해 사신 우리엄마.... 너무나 사랑하고 보고싶은 우리 엄마.
지금은 분명히 천국에서 지켜보고 계실꺼라 믿습니다...
그냥... 엄마생각에 눈물나서 적다보니 이렇게 길어졌네요...
이 글 쓰면서도 몇번을 눈앞이 흐려졌는지 모르겠네요
긴글 읽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저처럼 불효하고 계신분들께 드리고싶은 말은..
부모님 살아계실때 효자없고
부모님 여의고 불효자 없다고 합니다
나중에 후회해봤자 아무소용 없더군요.. 효도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