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들어가!!"
현표는 교도관에게 내던져지듯 밀쳐져 바닥에 고꾸라졌다.
그가 돌아오자 방안의 다른죄수들은 그를 벌레보듯 쳐다보았다.
" 너 이새끼 저리로 안비켜-"
현표가 있는 방은 중방으로 6명이 생활하고 있었고, 그곳의 봉사원. 일명 빵장으로 불리우는
녀석이 현표를 발로 걷어찼다. 현표는 몸을 웅크린채로 녀석의 발길질을 견디며 작은 신음소리
와 함께 벽쪽으로 조심스레 기어갔다.
잠시후 문이 다시 열리고 교도관이 누군가를 안으로 들여보냈다.
그가 들어오자 안에 있던 죄수들의 표정이 조금씩 굳어지며 봉사원녀석의 표정조차 일그러 졌
다. 교도관에 의해 이끌려 들어온 녀석은 며칠전 소동으로 인해 독방에 가두어져 있었고, 사흘
만에 방으로 돌아온 거였다. 공허한 눈을 하고 무언가 쇠뇌당한 듯한 표정을 한 그. 그가 들어
오고 문이 닫히자 그의 시선이 자연스레 현표에게로 갔다. 벽앞에 웅크리고 누어 작은 숨소리
조차 내고 있지 않은 현표...
" 현표야-"
사흘동안 물한모금조차 마시지 못한듯. 낮게 깔리는 메마른 음성과 함께 그의 손이 현표의
어깨에 닿자 현표는 반사적으로 몸서리 쳤다.
" 현표야-"
다시금 그의 목소리가 방안에 낮게 울려퍼지자 현표는 조심스레 숨을 쉬며 고개를 돌렸다.
" 으...으...읍...형..."
현표는 그를 보자 쏟아지는 눈물을 참을 수 없었고, 그는 현표를 안아 주었다.
그의 이름은 신태빈이었고, 현표보다 2년 먼저 이곳에 들어온 2살 많은 형이었다.
현표의 울음소리가 방안을 가득메우고, 방안에 있던 어느 누구 하나 그들에게 뭐라 하는 사
람은 없었다. 한참을 울던 현표의 울음소리가 사라지자 방안은 다시금 서로의 눈치를 볼 뿐
작은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았다.
태빈이 현표를 벽에 기대어 두곤 뒤에 있던 녀석에게 눈치를 주자 녀석은 얼른 모퉁이로 달려
가 사모포와 관모포 몇장을 가져온다. 교도소에선 수용자를 위해 모포를 주는데 그걸 관모포라 하며, 수용자 본인의 영치금이나 가족등이 넣어주는 모포를 사모포라 했다.
태빈은 녀석이 가져온 관모포를 바닥에 깔아 주었고, 현표를 그위에 눕혔다. 그리고 사모포로
현표를 덮어주었다.
얼마지나지 않아 현표는 잠이 들었고, 그의 수의사이로 보이는 마른 몸엔 여기 저기 상처투성
이었다. 처음 현표를 만난건 태빈이 스물한살이 되던해 였는데...처음본 현표는 뽀얀 피부에 여
성스러운 얼굴, 깡마른 몸매를 하고 있었다. 이따금 태빈이 없을때면 봉사원녀석이나 쓸데없이
힘을 쓰는 녀석들, 변태적인 교도관들에 의해 학대 받거나 매를 맞아야 했다.
그리고 4년이 지난 지금에 와서 현표는 그들에게 지쳐 자살이라도 해 이곳을 나가려 했다. 그
게 발각이 되 현표는 교도관들에게 구타를 당했고, 교도관들을 말리려던 태빈은 독방에 갇히게
된 것이었다. 4년동안 잘 참아온 현표였다. 그렇게 힘들면서도 견디어 왔던 현표였다.
한 사람을 위해서 견디어 왔었다.
태빈은 3년전을 생각했다. 현표가 이곳에 온지 일년 여정도가 되었을 때 자신에게 들려주었던
그를 그동안 버티게 해준 사람에 대한 얘기와 이곳에 오게 된 얘기들과 그때의 일들...
방안의 한켠에 앉아 시작된 현표의 어릴적 이야기...
" 아빠 그애는 누구예요?"
" 넌 알거 없다."
기석은 사채업을 하는 사람이었고, 그의 아들 현표는 5살이었지만 아빠가 하는 일에 대해 알고
있었다.
" 넌 몇살이니?"
현표는 아빠가 데려온 또래의 여자아이에게 호감이 갔고, 겁에 질린듯한 여자아이는 현표의 얼
굴을 물끄럼히 바라보았다.
" 몇살이야?"
현표가 여자아이에게 한번더 물었고, 아이는 자신의 동그랗고 맑은 눈을 깜빡였다.
" 나이 몰라?? 나는 다섯살이야"
현표는 웃으며 오른손을 펴 다섯살임을 나타냈고, 그러자 여자아이는 한참을 망설이더니 현표
를 따라 하기라도 하듯 오른손을 쫘악폈다.
" 어? 너두 다섯살이야?"
현표가 묻자 여자아이는 뽀얗고 작은 왼손의 엄지손가락을 살며시 펴들었다.
" 여섯살이야?"
현표의 말에 여자아이는 긍정을 하는 듯 현표의 눈을 바라보았다.
" 그럼 누나네...내 이름은 이현표야. 누나 이름은 뭐야?"
여자아이는 갑작스레 바닥에 쪼그리고 앉았다. 그리곤 거실 바닥에 오른손의 검지손가락을 펴
이현표 라고 적었다.
" 으응...내이름은 이현표야...누나는??"
여자아이는 현표의 얼굴을 한번 보고는 바닥에 뭔가를 적기 시작했다.
" 송...지...우?"
현표는 여자아이를 보았고, 아이는 긍정을 하는듯 눈을 한번 감았다 떴다.
" 지우 누나구나. 누나 근데 우리집엔 어떻게 온거야?"
현표의 말에 지우는 아무것도 쓰지도 않았고 현표의 얼굴도 보지 않았다.
" 아빠 어디 가세요?"
지우를 데려다 놓고는 다시 집을 나서는 아빠에게 현표가 달려가 물었다. 현관문을 닫고 나가
는 아빠를 따라 현표도 문을 열고 나갔다.
" 아빠...근데 저 누나 어떻게 데려 온거예요?"
" 송마담이 내돈을 빌려 써놓고는 줄돈이 없다고 자기딸이라며 저애라도 데려가라지 않냐."
" 그래서...저 누나 데려 온거예요?"
" 그럼 어떻게 해. 돈은 받아야 되고 줄돈은 없데고, 저애라도 팔던가 해야지."
기석은 굉장히 화가 나있는듯 했다. 송마담이란 여자. 젊고 예뻤다. 언제나 술에 취해 있었지만
현표가 큰길을 지날때면 가게 앞에 나와 앉아 예쁘다며 현표의 볼에 뽀뽀를 해주곤 했었다.
현표는 송마담에게 누나라고 불렀고, 그런 예쁜 누나에게 딸이 있을거란 생각을 하지 못했다.
지우의 쌍꺼풀진 큰눈이 닮은 것 같았다.
현표가 생각을 하는 동안 기석은 벌써 저만치 걸어가고 있었고, 정원을 지나 대문을 열자 그는
차에 오르고 있었다.
" 아빠-"
" 또 뭐야?"
" 저 누나 그냥 우리집에서 살면 안되요?"
" 무슨 소릴 하는거야!! 여기가 고아원도 아니고, 할줄아는건 하나도 없는 말도 못하는 자폐아
를 키워서 어디에 써. 한살이라도 어릴때 팔아야지!"
" 아빠 제발요."
현표는 차에 오른 기석을 붙잡고 매달렸다.
" 아빤 바쁘다. 그러니 들어가서 밥이나 챙겨 먹어. 출발해."
" 예."
현표는 기석의 차가 시야에서 사라 질때까지 그곳만을 바라 보고 있었다.
" 후우..."
현표는 깊은 한숨을 한번 내쉬고는 미소짓는 연습을 하였다. 지우에게 웃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은 듯...현표가 뒤로 돌아 정원에 들어서자 집 현관문이 열려 있는게 보였고, 조금전 그는 분
명 문을 닫고 나왔던 게 생각이 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