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처음으로 글을 써보는 48세 주부입니다.
다름이 아니라 올해 27먹은 오빠 딸년 때문에 속이 타들어가는것같습니다.
그 애가 볼지 안볼지는 모르겠지만 도저히 방법이 없어서 조심스럽게 이곳에 올려봅니다.
앞서 저에 대해 조금 얘기하자면 저는 충남 모 시골동네에서 3남 2녀중 막내로 태어났습니다.
없을때 첫째로 태어나서 가장 고생한 언니, 한 명이 뇌성마비인 쌍둥이 오빠와 제가 아주 어렸을때 물에 빠져 세상을 떠난 막내오빠, 그리고 저.
엄하지만 부지런하신 아버지 밑에서 저희 오누이,남매 정말 모난 사람 하나도 없이 잘 살아왔습니다.
언니와 작은 오빠 그리고 저는 돈벌러 도시로 올라오고, 몸이 불편한 큰오빠는 고향에 남아서 홀로 되신 엄마와 선산을 지켰습니다. 서울로 놀러오라해도 비닐하우스 걱정이 가득한 오빠 내외와 엄마는 저와 언니 식구가 친정 오면 동네에서 잡은 흑돼지고기 냉동해놨다가 얼른 꺼내줍니다.
뇌성마비로 두 팔도 제대로 못 드는 오빠지만 항상 고맙고 치매끼 있으신 엄마 돌보느라 얼마나 고생이 많을까 미안한 마음뿐입니다.
그래서 제가 할 수 있는 일이라면 뭐든 도우려고 했습니다. 어느날 생전 부탁이라고는 안하던 오빠가 제가 친정에 내려간 날 저녁먹고서 마당에서 모닥불 피워놓고 얘기를 꺼냈습니다.
이제 00(오빠딸 이름)이도 사회생활 할 나이인데, 대학을 안나와도 서울서 할 수 있는일이 없을까, 하는 오빠의 목소리엔 걱정이 가득했습니다.
00이(이하 조카)는 뇌성마비 아빠와 정신지체2급인 엄마와 남동생 중에서 유일하게 사회생활이 가능한 애였습니다. 다만 아직 철이 덜 들어 핸드폰비가 80만원이 나오기도 하고 공부와도 연 인연이 없었습니다.
오빠 딴에는 아들은 아버지따라 농사일을 시키면 되겠지만 딸은 시집도 보내야 하는데, 서울에 가서 번듯한 직장을 갖는게 좋겠다 싶었나봅니다.
그길로 집에 가자마자 남편이랑 딸과 상의해 결국 우리집에서 지내게 하기로 했습니다(생판 모르는 하숙집이나 고시원 같은곳에 보내고 싶지는 않았기에).
며칠뒤 조카가 저희집에 올라왔고 친정에 확인전화를 넣으면서 오빠가 고맙다고, 어눌한 발음이지만 기뻐하는 모습이 눈앞에 그려지는것 같아 기분이 좋았습니다.
처음으로, 정말로 오빠를 도와줄 수 있다고 생각되어 기뻤습니다.
남는 방이 없어서 미안하게도 딸 방에서 재우게 됐지만 딸도 언니가 생긴것같아 좋다며 웃었습니다.
조카는 조금 서툴더라도 자꾸 설거지나 청소기를 돌리려고 했습니다. 별로 만나본 적도 없는 고모댁에 와서 눈치가 보이는 모양인지.. 어느날 외출했다 들어오니 또 치우고 있길래 청소기를 탁 뺐으며 다그쳤습니다. 너 여기에 가정부하러 온거냐고, 너 아빠는 니가 여기서 정신차려서 공부도 하고 좋은 직장 얻기를 바라는데 지금 뭐하는거냐고.
조카는 안하던 공부를 하려니 좀이 쑤셨는지 이주일정도 밖으로 쏘다니거나 잠만 퍼 잤습니다. 그래도 뭐라 안하고 그냥 냅뒀습니다.
대신 이주일이 딱 끝난 이후부터 저는 아수라로 돌변했습니다. 놀땐 놀더라도 일할땐 죽어라 일을 하는게 좌우명인 저라 태만한 조카에게 윽박도 많이 지르고 역정도 많이 냈습니다.
딸이 사춘기가 오는 바람에 둘이 방을 같이 쓰는것 때문에 싸웠는데 나란히 앉혀놓고 카렌다로 마구 때린적도 있었습니다(하나은행에서 줬던..아직까지도 기억에 남네요).
다 널 위한거다,라고 생각해도 혼나서 방에 힘없이 들어가는 애들 등을 보면 기분이 착잡했습니다. 혼내지 않고선 애를 바르게 키우지 못하는 저는 어찌보면 엄마 자격 박탈감이네요.
처음엔 어른한테 존댓말도 제대로 안쓰는 조카, 사람 하나 만들어놓는데 참 오래걸렸습니다.
20살에 와서 저희집을 떠난게 25이니 5년.
어금니 하나가 뿌리까지 썩어버려서 할머니처럼 밥도 제대로 못먹는 애를 이부터 새로 해넣고, 어긋난 턱은 교정을 시켜줬습니다. 세세히 신경쓰지 않는 오빠라 조카는 거의 방치되다시피해서 오죽하면 치과에서는 그 애를 토씨하나 안틀리고 '저희 치과에서 가장 심각한 케이스'라고 하기도 했습니다.
조카는 나중엔 혼자 도서관도 다니고 학원도 다니면서 삼년만에 무슨 자격증을 따 모 항공사 소속 공항안내원으로 일하게 됐습니다. 그날 저희집 전화통은 난리가 났죠.
첫 출근 보내고 참 뿌듯했습니다. 오빠딸 내가 이만큼 키워놨다고. 이제야 오빠 볼 면목이 있다고 그날 하루종일 기분이 좋았습니다.
그런데 몇주 뒤 병원에서 전화가 왔습니다. 조카가 길에서 갑자기 쓰러져서 지금 응급실에 와 있다고.
눈앞이 하얘져서 달려가보니 병명은 평소 저희집안 내력인 빈혈이 도진것이었습니다. 다행히 어디 부러지거나 다친데는 없었습니다. 평소 건강한 애라 미처 신경을 쓰지 못한게 화근이었습니다.
조카는 집에 오는길에 차안에서 한참을 머뭇대다 일을 그만두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키도 크고 운동도 해서 체력 하나는 대단한 아이라고 생각했는데 쓰러질 정도라면. 그렇게 열심히 한 공부를 포기하고싶을 정도로 힘들었나봅니다.
그렇게 삼년의 세월에서 다시 원점으로 돌아온 조카는 몇달동안 시골집에 내려가 쉬었습니다.
조카가 원망스럽기보다는 오빠한테 미안한 마음이 더 컸습니다. 득의양양해서 딸을 데려가놓고선 몸이나 상하게 해서 돌려보냈으니.
몇달 뒤 조카가 다시 올라왔을땐 마치 삼년전 처음 저희집에 데려왔을때가 생각났습니다.
예전과 똑같이 단지 잘못만 저지르지 않는다면 일체 터치하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올라온 지 채 1년도 안 지나 조카는 간호조무사자격증을 땄습니다.
그리고 약 한달동안 직장을 구하다가 집에서 버스타고 30분정도 거리의 시내에 있는 한 소아과에 취직하게됐습니다. 너무 기특해서 그날 저녁 온식구 고급 레스토랑 데려가서 신나게 칼질했습니다.
조카는 새 직장을 정말 마음에 들어했습니다(단지 소아과라 애들에 대해 툴툴거리긴 했지만).
첫월급을 타고선 감사하다며 친척들에게 양말과 손수건을 선물하기도 했습니다.
한 일 년 있다가 어느날 조카가 밥상 앞에서 이제 돈도 어느정도 모았으니 방을 얻어 나가겠다고 말했습니다. 코딱지만한 월급 모아서 얼마나 모였겠느냐고 콧방귀를 뀌니까 아는 언니(학원에서 사귄듯한)가 고시원에 살아서 거기라면 지금 돈으로도 갈 수 있다고 합니다.
그리고 딸이랑 5년째 같은방 쓰기 미안하다고 하는걸 보니 문득 못 챙겨준 딸이 생각나서 더는 잡지 않았습니다.
이제 정말 다 컸구나, 하고 흐뭇해했지요.
그런데 조카가 독립하고나서부터 이상해졌습니다.
안부전화도 꼬박꼬박 하던 애가 바쁘다면서 한달에 많이해야 두 통에(제가 하면 거의 안받더군요) 누구의 생일같은 큰 일이 아니면 얼굴도 비치지 않았습니다.
일을 배우는 단계니까 시간도 없고 정신도 없겠지, 싶어서 별일 아니겠지 싶었습니다.
어느날 언니 생일이라(언니와 같은 아파트단지에 살아서 항상 붙어다닙니다) 언니식구 저희식구 다같이 밥먹으러 가면서 조카를 제 차에 태웠습니다.
그동안 어떻게 살았는지 궁금해 여러가질 물어도 그냥 애들 때문에 힘들다, 원장이 너무 깐깐하다 같이 평범한 얘기만 했습니다.
그런데 딸이 언니 핸드폰을 갖고 놀던 모양인지 사진첩에 이 오빠 누구냐고, 남자친구냐고 물었습니다. 조카는 웃으며 그렇다고 했습니다. 호기심 반, 염려 반에 여러가지 물으니까 나이는 4살 연상에 인테리어 보조 한다고 하더군요. 혹시 막되먹은 놈은 아닐까 걱정돼 너 그냥 가볍게 만나는거면 적당히 선 긋고, 결혼은 꿈에도 생각 말라고 했습니다.
조카는 그냥 친구같은 사이라며 걱정 말라고 합니다. 문득 연락도 안하고 찾아오지도 않는 게 남자가 생겨서 그런건가 조금 서운했습니다.
어느날은 조카 아프다길래 안먹고 곯을까봐 언니랑 반찬 두손 가득 싸들고 갑자기 찾아갔습니다.
안에서 쿵쾅소리 나더니 한참 있다가 문을 열어줍니다. 예상대로 밥도 제대로 못챙겨 먹었는지 볼이 푹 들어갔더군요. 고시원은 반평이나 되보이는 좁은 방이라 키 큰 조카는 누워서 다리도 똑바로 펼 수 없었습니다. 안쓰러워서 밥 안먹는다는거 억지로 먹이고 약 타다놨길래 또 먹이고 재웠습니다.
조카 자는거 놔두고 옆에 앉아서 언니랑 얘기를 했습니다.
언니 왈, 고모집에서 있으면 밥도 먹여줘, 잠도 따땃하게 잘 수 있는데 왜 나와서 고생을 사서 하냐고 투덜거립니다. 문득 조카가 남자친구 얘기 꺼냈던게 생각나 말했습니다. 아무래도 남자가 생긴거 같다고.
언니가 놀래기에 조카한테 들었던 얘기 전부 다 했습니다(비밀이 없는 자매지간인지라).
예전에 조카한테 아직도 그놈 만나냐고 두어번 물었는데 그때마다 헤어졌다고 말했습니다.
그래놓고 그 뒤로 계속 뭔가 숨기는게 눈에 보였습니다. 예전 휴가때 시골에 일주일 있다오겠다고 해놓고선 오빠한테 전화해보니 이틀자고 올라갔다고 말하더군요. 제가 눈치가 빠른지라 이것 말고도 의심이 가는 행동들이 꽤 많았습니다. 굳이 고모들한테 거짓말을 하면서까지 계속 만나고 싶었던 걸까요.
정말 아직까지도 만나고 있는건가 확인하고 싶어서 미안하지만 조카 가방을 뒤졌습니다. 다른건 없고 담배 한 곽만 있더군요. 핸드폰은 잠금설정 되있길래 언니랑 뭐라 더 얘기하다 그냥 나왔습니다.
조카는 분명히 뭔가가 달라졌습니다. 남자 때문이 아니기를 바랬습니다. 담배도 그렇고, 창창한 이십대에 몸을 망칠까봐 그게 제일 걱정이 되고 화도 났습니다.
그런데 올해 늦은 봄쯤에 집에 찾아오더니 갑자기 결혼을 하겠다고 폭탄 선언을 하더군요(항상 중요한 일은 저에게 가장 먼저 말했습니다). 상대가 누구냐고 물으니 예전에 그 인테리어 하는 오빠라고 말합니다. 기어이 그놈이랑 결혼하겠냐고 화내니까 아무 말 없이 고개만 푹 숙였습니다. 딸도 내맘대로 안되는데 조카딸은 오죽할까요. 다음번에 저녁사줄테니 한번 데려와보라고 했습니다. 직업이 변변찮아도 성실하면 괜찮겠지,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주말에 약속시간 잡아놓고 먼저 와서 기다리고 있으니까 약속시간 10분 넘어서 조카한테 전화가 왔습니다. 오빠가 갑자기 일이 생겨서 못오게 됐으니 죄송하지만 다음번에 만나자구요.
너무 화가 나서 탁 끊어버렸습니다. 갑자기 일때문에 못 오는건 이해를 하겠는데 약속시간도 어기고, 그것도 직접도 아닌 조카를 통해 말을 전하는게 과연 성실한 사람이 할 행동일까요? 몇 번 본 사이도 아니고 첫만남에, 결혼얘기가 나왔는데도 그때까지 얼굴은 커녕 목소리도 못 들어봤습니다.
제가 그냥 끊어버렸는데 다시 전화도 안오더군요. 조카한테도 너무 화가 나서 문자로 너 당장에 그거랑 헤어지라고 보내고 전화기 꺼버렸습니다.
화를 넘어 이젠 배신감까지 들었습니다.
그래도 조카는 꺾임이 없었습니다. 부득부득 결혼을 하겠다고 버티길래 몇 주 이따가 언니네 식구랑 다 불러서 한자리에 모였습니다. 첫인상은 괜찮은 편이었습니다. 170이 넘는 조카보다 키도 한뼘은 크고 말하는것도 싹싹하니 붙임성도 좋았습니다.
다만 이전에 있었던 일 때문에 고깝게 보이는건 어쩔수 없었습니다.
최대한 좋게 봐주려고 했지만 예비 조카사위는 그런 제 마음에 휘발유를 들이붓다못해 불을 질렀습니다.
31살 먹고 인테리어 보조인데, 직업이 자기한테 안맞는다고 결혼하면 그만두고 새로운 직업을 찾아볼 생각이라고 합니다(참 솔직해서 또 열불터집니다). 무슨 직업을 할거냐고 물으니까 이제부터 찾아봐야지요 하고 웃더군요. 그자리에서 상견례 얘기를 꺼내는데 당장 파토내고 싶은걸 참느라 혼났습니다.
그래, 정말 만에 하나, 직업을 바꾸면 뭔가 나아지지 않을까 해서 아는 사람이 하는 철학관에 찾아가 궁합을 봤습니다. 궁합이나 사주같은걸 맹신하지는 않지만 결과가 좋지않더군요. 예상은 했지만 많이 좋지 않았어요. 결혼을 하게 되면 남편 직업이 없어서 조카가 마흔 넘어서까지 남편을 먹여살리느라 고생을 바가지로 하고 남편이 폭력을 쓰거나 바람을 필거라고 했습니다. 괄괄한 조카 성격에 부부싸움도 잦을거라 했습니다. 어떻게 떼어놓을 방법은 없나 물으니 없답니다. 나무가 금에 달라붙은 형상이라 떼어내고싶어도 떨어지지 않고 조카쪽에서도 둘이 좋아죽어 절대로 불가능하답니다.
전에 딸이 조카가 우리집에 왔다가 통화로 싸우는걸 들었다는데 소리지르고 욕하고, 너한테 나를 줘서 아깝다느니 그런 말을 했다고 합니다.
혹시 둘이 벌써 같이 잤고, 그래서 못 떨어지는건 아닐까 하는데 생각이 미치니까 허탈해졌습니다.
정말 더이상 어떻게 해야할지, 눈앞이 깜깜해졌습니다.
그 뒤 일사천리로 저번달에 상견례가 이뤄졌고, 오빠한테 전화해보니 신랑쪽 집에서 4천만원을 주겠다고 했답니다. 둘다 서울쪽에 직장이 있는데 과연 그 돈으로 반지하 월세방이나 구할 수 있을까요?
더 가관인건 조카가 말하길 오빠가 자기가 살던 집 계약기간이 끝났다고 결혼할 때까지 자기 월세방에 와서 살겠다고 했답니다(조카는 작년 말에 하숙집으로 이사했습니다).
아직 결혼날짜 얘기가 오르내리는 상황에 이게 말이 되나요? 제 눈엔 돈 나올 구석이 많은 이모들에 둘러싸인 조카한테 빌붙으려하는것으로밖에 안보입니다.
이대로 조카를 시집보내게 되면 정말 오빠를 볼 면목이 없습니다. 그동안 조카를 키운게 모두 물거품이 되어버리고요. 친딸처럼 귀하게 키워서 돈도 많이 대주고 해준것도 많은데 그걸 웬 떨거지 같은 놈이 가로채려 하는것 같아 분하기 짝이 없습니다.
답이 없는 예비 조카사위와 조카.. 어떻게 해야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