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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에서 태어난다는 질문

기독교인 |2011.09.08 21:49
조회 66 |추천 0

 

왜 천국에서 안태어나고 지구에서 태어나냐는 질문의 의미는 어차피 태어나서 살다가 언젠가는 죽을텐데

왜 태어나느냐는 질문과 비슷한 맥락인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말씀드리자면 예수님을 몰라서 구원을

얻지 못할 처지에 놓인 사람들이 불쌍하다면 그들을 구원할 사명이 예수 믿는 사람에게 있다는 것이지요.

 

제가 신학을 한건 아니라서 잘 모릅니다. 틀린점이 있을수도 있어요.

좋은 질문입니다만.

구원 교리가 촛점을 맞추고 있는 것은 "현재 나 자신과 하나님"에 대한 것이지 과거의 사람들에 대한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이는 마치 우리나라 역사의 한 부분의 농민수탈 정책에 대하여서 왕이 사람들에 대하여서 그렇게 대할 수가 있느냐는 질문이 무의미하게 느껴지는 것과 비슷한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정통 교단, 즉 개혁주의 교리에 의하면 '하나님은 실수가 없으시기 때문에 한번 선택한 신자는 결코 멸망당하지 아니한다'라고 합니다. 즉, 예수를 믿게 되면 100% 천국에 간다는 것이지요.

만약 구원이 실패할 수 있다고 한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전능에 흠을 생기게 하는 것이므로 하나님에 대한 신성모독이라는 것이지요.

그러나 순복음교단은 이겨야만 천국에 갈 수 있다 라는 좀 더 좁은 구원에 대한 견해를 갖고 있는것 같습니다.

알미니안 주의에 의하면 인간의 구원에 대하여서 하나님의 의지가 바뀔 수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인간의 행위 여부에 따라서 구원이 달라진다고 하는 것이지요.

성경엔 여러군데에서 분명하게 '태초부터 택정하여서' '창세전에 택하심을 따라' '그의 선하신 뜻대로' 라는 말들로 우리의 선택의 여지나 결정에 따라서가 아니라, 능력정도에 따라서가 아니라 하나님 편에서 구원했다는 것을 볼 수 있지요.

 

그런데 구약 성경의 여호와를 안 몇몇의 경우들을 보면,

창세기를 보면 아담과 하와가 에덴동산에서 쫓겨난 이후에, 가인과 아벨 사건이 나오고 이후에 아담이 낳은 셋(하나님이 내게 가인의 죽인 아벨 대신에 다른 씨를 주셨다)이 아들을 낳고 그 이름을 에노스라 하였을 때에 사람들이 비로소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더라고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섬기고 여호와라는 이름을 불렀다는 뜻이 되지요. 그런데, 모압과 암몬 족속의 출발만 보더라도, 그들의 조상은 소돔성에서 도망친 롯과 그의 딸들 사이에서 술을 아버지에게 마시우고 들어가서 근친상간을 통하여서 낳은 아들 암몬이란 자와 모압이란 자의 후손이란 것을 볼 수 있듯이, 처음에는 여호와를 믿었는데, 점차 인류가 퍼져가면서 하나님을 잊고, 또 율법을 잊어버리면서 후손대로 내려오면서 하나님께로부터 멀어진것이 아닌가 합니다.

그러니까, 유대민족이란 민족을 택하신 것은 하나님이시고, 그것에 대하여서 우리가 이렇다 저렇다 할 수가 없다는 것이, 지음을 받은 물건이 지은 자에게 무엇을 하느냐 할 수가 없다는 것과 비슷하게 가는 맥락으로 설명되는 것 같습니다.

 

 

성경의 예를 보면 이방인 가운데 구원 얻었다고 볼 수 있는 예가 있는데, 룻이 그렇습니다.

나오미라는 여자가 유대인으로서 남편과 결혼하고 모압지방으로 이사갔는데 거기서 자기 아들들이 자라서 결혼을 합니다. 말룐과 기룐이라는 두 아들이 결혼하고 살다가 자기 남편이 죽고, 아들들도 죽습니다. 그래서 나오미와 말룐의 아내와 기룐의 아내가 남습니다. 룻은 그 두 아들들중 한명의 아내였습니다. 나오미가 그 아내들에게 '너희는 젊고...또 내가 오늘 당장 아이들을 수태해서 그들을 너희 남편이 되게 낳아준다고 할지라도 어찌 그들이 다 자라기를 기다리겠느냐 너희의 행복을 찾아서 가라' 합니다. 그런데 한 아내는 나오미에게 입맞추고 가고, 한 아내, 즉 룻은 남습니다. 룻은 시어머니인 나오미를 어머니라고 부르면서 "어머니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고 어머니의 백성이 나의 백성이 되리니" 라고 합니다. 이것을 보면서 사람들은 룻이 여호와에 대한 신앙을 갖고 있었다고 보는 것이지요. 룻은 나오미와 함께 유대땅으로 돌아가서 거기서 보아스라는 사람과 결혼하고 훗날 태어날 다윗의 증조할머니가 됩니다. 위대한 족보의 위대한 신앙의 가문을 이루는 중요한 사람이 된 것입니다.

 

열왕기에 기록된 시대에 아람의 나아만 장군이, 즉 이스라엘 외부의 군사적 지도자가 문둥병에 걸려서 이스라엘에 고칠 수 있는 선지자가 있다는 것을 듣고 고치러 옵니다. 그리고 그가 고침을 받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의 흙을 퍼가면서 선지자에게 말하길 "내가 섬기는 왕이 림몬(우상) 신전에서 경배할 때에 내가 그의 옆에 수종 드는데 그때 여호와께서 나를 생각하시기를 바랍니다"라고 합니다. '평안히 가라' 라고 대답하지요. 예수님은 '엘리야가 한 여인에게만 보냄을 받았었고' '문둥병이 있었으되 고침을 받은 자는 나아만 뿐이었다' 라는 사실을 말씀하셨습니다.

 

즉 이는 무슨 뜻인가 하면, "우리의 입장에서는 구원의 기회를 주신것 자체가 감사한 일"이라는 뜻입니다. 당신의 질문이 너무나 순순하고 어린아이같아서 귀엽고 좋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하나님의 주권과 결정에 대하여서 우리가 다 알 수 없는 것이 너무나 많고 그 결정에 대하여서 무어라고 이유를 다 알 수 없는 것이 많다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는 공산주의 국가에서 태어나지 않은 것이 감사한 일이고 예수그리스도의 복음이 전파된 곳에 산다는 것이 감사한 일이라는 것이지요.

더 나아가서 그러므로 어서 선교해야 하고 복음을 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런 맥락으로 나아가는 것이 옳은 생각인것 같습니다.

 

또, 이스라엘 백성들 가운데서 실패한 예도 있는 것이지요.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려고 나아가다가 하나님께 불신과 원망을 함으로서 광야 40년 세월동안 그곳에서 죽고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한 사람들은 구원얻지 못한 것으로 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도, 유대 민족들도 너무나 오랜 전쟁과 수탈당함과 도륙함과 진멸함의 역사가 있고 그것은 인간의 실패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제가 아는 개혁주의 구원론의 촛점은 "그러므로 인간의 실패 가운데서 오직 예수그리스도가 길이며 진리이며 생명이다" 라는 것에 촛점을 두는 것이지요.

 

천국에선 시집가거나 장가가는 일도 없고 하늘에 있는 천사들과 같다고 예수님이 말씀하신 내용이 복음서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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