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기독교인 Yona 입니다.
요거이 판 첫글입니다.
믿음과 신앙 카테고리가 그닥 사람이 모여드는 자리는 아닌걸 알지만
그래도 여기가 적합하다고 생각되어서 이 새벽에 글을 씁니다.
단적으로 요점만 말씀드리자면,
방언기도는 자제해달라는 것이, 이 글의 목적이자 요지입니다.
오해하지 마시고, 차근히 이유를 들어주세요.
교회에서 방언,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가 무엇일까요.
그렇습니다.
넓게 말해서 영이 임해서 무엇인지 알 수 없는 말이 입에서 흘러나오는 현상을 가르키는 것일 겁니다.
정확히 말해서 이것은 교회에서만 쓰는 용어는 아닙니다.
단어는 다르더라도 본질적으로 같은 행위는 무교(무당 분들) 등에도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헌데 잘 모르는 일반인이 듣기에는,
이 방언기도가 꽤나 이상해보이고, 심하게는 공포감까지 들게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특히 단체가 큰 목소리로 그렇게 기도한다면 그 고독감과 쇼크는 얕잡아볼만한게 아닙니다.
저는 조용한 분위기의 교회에서 자라났기 때문에, 처음으로 그런 광경을 봤을땐 굉장한 충격이었습니다.
특히나 알고 있던 사람이 그렇게 했다는 것에 더욱 놀라서,
그 사람이 이상한 사람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그 모습을 본 뒤로 좀 거리를 멀리했었던 적도 있습니다.
물론 제 개인적인 체험담만으로 근거를 삼는 것은 아닙니다.
여담이지만
제가 이 믿음과신앙 판을 보아하니, 분위기가 대충 기독교 옹호vs개독교vs기타 로 나뉘어지는 듯 합니다.
저는 어쩔 수 없이 기독교인이라 기독교를 반대하시는 분들께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습니다만,
개인적으로는 기독교가 타 신념에 어떻게 반응하는지보다 어떻게 자기의 믿음을 올바르게 세우고 보여주는지가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이같이 기독교인들께 드리는 글을 먼저 쓰게 되었습니다.
먼저 기독교인분들은 모쪼록 기분나빠하지 마시고, 제 의견을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기독교인이시라면 성경을 읽으시거나 그 이야기를 듣게 되시겠죠.
그렇다면 최초의 방언이 나온 장면도 말하기만 하면 '아 그 부분!'하면서 알아채실 분이 많을 것입니다.
그것은 사도행전 2장으로, 오순절에 살아남은 예수의 제자들이 모여있다가 불로 된 혓바닥 같은 것이 나타나서, 성령으로 충만하게 되어 각각이 성령이 시키시는대로 방언으로 말하게 되었다-라는 부분입니다.
중요한 것은, 그 이후인데,
그 당시 예루살렘에는 여러 각지에서 온 사람들(로마인, 그리스인, 터키인 등등)이어서 각자마다가 자랐던 지방이 다른 만큼 다양한 언어를 사용하고 있었습니다.
헌데 성경에서는 갈릴리 촌놈들이었던 사도들이 그 각.기.마.다.의.언.어.로 외국인들에게 말을 전하였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해하셨는지요?
말하자면 저기 중국인이 방언했는데, 중국어라곤 하나도 모르는 한국인이 한국어로 들리는 겁니다.
판타지 소설같죠?
그렇습니다.
최초의 방언이란 것은, 남이 알아듣지 못하는 하나님과의 1:1 면담창구의 의사소통 수단이 아니라,
오히려 모르는 사람들이 복음을 알아듣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이후의 의미는 앞서 말한 1:1 면담창구의 의사소통 수단으로 여겨졌지만요.
그런데 지금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나요?
서로의 방언을 알아듣고 은혜가 되던가요?
도대체, 알아들을 수도 없는 말로 기도를 하고 마지막에 아멘(그대로 될것을 믿습니다)이라고 하면 같이 기도했던 다른 사람들은 진심으로 함께 아멘 할 수 있겠습니까?
바로 그.렇.기.때.문.에, 통역하는 사람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통역하는 사람이 없이는, 방언으로 기도하는 것을 자제해달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혼자기도하는 것이 아닌 이상에,
주변 사람에게나 교회에 아무런 도움이 안됩니다.
(물론 기도의 능력을 부정하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그래서
10. [고전 14:2]
방언으로 말하는 사람은 사람에게 말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말하는 것입니다. 아무도 그것을 알아듣지 못합니다. 그는 성령으로 비밀을 말하는 것입니다.
11. [고전 14:4]
방언으로 말하는 사람은 자기에게만 덕을 끼치고, 예언하는 사람은 교회에 덕을 끼칩니다.
12. [고전 14:5]
여러분이 모두 방언으로 말할 수 있기를 내가 바랍니다마는, 그보다도 예언할 수 있기를 더 바랍니다. 방언을 누가 통역하여 교회에 덕을 끼치게 해주지 않으면, 방언으로 말하는 사람보다, 예언하는 사람이 더 훌륭합니다.
13. [고전 14:6]
형제자매 여러분, 내가 여러분에게로 가서 방언으로 말하고, 계시나 지식이나 예언이나 가르침을 전하는 방식으로 말하지 않는다면, 여러분에게 무슨 유익이 되겠습니까?
14. [고전 14:9]
이와 같이 여러분도 방언을 사용하기 때문에 분명한 말을 하지 않는다면, 그 말이 무슨 뜻인지 남이 어떻게 알겠습니까? 결국 여러분은 허공에다 대고 말하는 셈이 될 것입니다.
15. [고전 14:13]
그러므로 방언으로 말하는 사람은 그것을 통역할 수 있기를 기도하십시오.
라는 성경 말씀이 있는 것이겠지요.
바울 선생(or사도)은 명백하게 말했습니다.
비기독교분들께야 성경의 권위나 신뢰성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시겠지만서도,
우리는 같은 신앙을 공유하는 기독교인이니, 이에 고개끄덕이실 것으로 생각합니다.
사실 말은 이렇게 했지만.
방언을 할 수 있느냐, 없느냐, 얼만큼 하느냐, 응답은 어떻게 오느냐 이런건 사소한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개인적으로 고백하자면, 전 하지 못합니다.
하지만 구하면 받으리란 확신은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하지 않는 것은, 이것을 구하는 것보다 월등히 중요하고 필요한 은사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사랑입니다.
방언기도하면 좋겠지요.
마음속에서 하나님과 깊게 친밀해지면서 연결되는 느낌과 이해받음의 확신 등의 어우러짐이 있음이.
하지만 그렇게 해서 삶이 변화 되었는지는 의문입니다.
몇 번이나 열정적인 분위기의 부흥회에 견문하러 갔었습니다만,
그 많은 사람들이 울고웃고 기도하고 찬양한대로, 그 말씀대로 살아가려고 애쓰는지는 모르겠습니다.
삶이 변화되지 않아서야 고거이 무슨 쓸모가 있습니까?
정말 허공에 대고 말하는 셈이 아닙니까?
물론 차근이 일하시는 손길을 무시하는 것은 아닙니다.
노력하고 있음에도 제가 눈치채지 못하는 것이겠지요.
혹 이 글을 보시는 분 중에, 방언을 기도하며 구하시는 분이 계신다면 전 응원하겠습니다.
그렇지만 방언보다도 더 구할 것은 앞서 말한 사랑입니다.
모든 계명이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라는 것에 요약되어 있다는 것처럼,
그 귀중한 마음이, 기독교인비기독교인을 가리지 않고 내부에 가득찼으면 좋겠습니다.
종교를 불문하고서, 어머니의 사랑은 만국공통으로 따듯함과 안정과 자애로움을 상징하지 않습니까.
얼마나 되는 분이 보실지도 모르고,
어떤 생각을 떠올리실지도 전 모릅니다.
그렇지만 역시 같은 신앙의 동료로써 말씀드리고 싶은건,
콜라같이 여기저기에 펑펑 터져서 마구 반응하기 보단, 먼저 겸허히 그 의견을 받아들이고 그 입장을 이해하려 애쓰며 사랑을 보여주는 것이 더 나은 대답의 관철이 아닌가 하는 것입니다.
오해하실까봐 덧붙이지만, 방언기도는 절대 나쁜것이 아닙니다.
다만, 타인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배려하기를 부탁드리는 것입니다.
기껏 교회를 알아보려고 찾아왔다가 이런 모습에 놀라서 뛰쳐나온 사람을 여럿 봤기도 했고,
이 부분에 있어서 많은 비판을 보았기에, 안타까운 마음으로 글을 쓴게 이것입니다.
이렇게,
이 새벽에
짧은 지식으로 감히 몇 마디 적어보았습니다.
부족한 긴 글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말하고 싶으신게 있으시다면 기탄없이 말씀해주시길 바라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좋은 하루 되시길 바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