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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다의 여왕’ 연수영 」4고구려 수군의 승리 ⑸

개마기사단 |2011.10.01 19:42
조회 105 |추천 0

● 건안성 앞 해안에서 당나라 수군을 격퇴하다

 

6월이 가고 어느새 7월로 접어들었다. 비오는 날이 점점 많아졌다. 태종은 점점 초조해졌다. 더 늦기 전에, 장마철로 접어들기 전에 안시성과 건안성을 함락시켜 배후의 위협을 완전히 제거한 뒤, 천산산맥을 넘어 오골성과 박작성을 무너뜨리고 압록수로 진격해야겠다고 결심했다.

 

황제의 명령에 따라 장손무기는 평양도행군대총관 장량(張亮)에게 전령을 보내 어서 건안성 공격을 개시하라는 어명을 전달했다. 장량은 이미 두 번의 패배를 통해 고구려 수군의 전력이 만만치 않으며 적장의 용병술(用兵術)이 매우 뛰어나다는 것을 절감했다. 그는 이미 첩자를 풀어놓아 고구려 수군의 대장이 놀랍게도 여자이며 고구려의 군사통수권자인 연개소문의 누이동생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만약 여기에서 더 시간을 지체하다가는 황제가 진노하여 절대 자신을 살려두지 않을 것이다. 자신의 어깨 위에 붙어 있는 목을 온전하게 지키려면 장검(張儉)이 공략하다가 실패한 건안성을 꼭 함락시켜야 했다.

 

그는 황제의 명령을 내세워 산동반도 등주와 내주 등지에서 3만여명의 수군을 추가로 징발했고, 3백여척의 전함을 더 건조해 발해만을 건너 비사성 앞바다로 건너오게 했다. 그리하여 병사 4만여명과 4백여척의 전함을 동원하여 비사성에서 건안성으로 북상하기 시작했다. 세작들의 보고로 이런 당군의 움직임을 파악한 병마대원수 고정의는 연수영에게 건안성을 공격하려는 당 수군을 바다에서 저지라하는 명령을 내렸다. 

 

연수영은 고정의의 명령을 전달받자 즉시 작전회의를 소집했다.

 

“지금 첩보에 의하면 당의 수군 총대장인 장량이 본국으로부터 3만의 병력과 3백여척의 전함을 지원받아 4만의 병력과 4백여척의 전함으로 대함대를 구성하여 건안성을 치기 위해 출동했다고 하오! 비록 건안성주 고원부가 기지(奇智)를 발휘해 영주총관 장검 휘하의 당군을 물리쳤지만 이번에 장량의 대군으로부터 공격을 받으면 독자적인 힘으로 버티기 힘들 것이오. 그래서 대원수께서는 우리에게 적군을 격멸하라는 명령을 내리셨소.”

 

장운형이 연수영의 말을 받아 설명을 이어간다.

 

“비록 우리가 지난번 창려와 해양도에서 승리를 거두면서 당적(唐敵)의 동진(東進)을 저지하고 당 수군이 압록수나 패수로 직공하려는 기도를 막을 수 있었던 것도 사실이지만 지금 비사성을 점령한 당 수군의 군세는 10만의 병력에 군선도 1천척이 넘소이다! 이런 군세를 가진 그들이 한두차례의 전투에서 졌다고 해서 본래 세운 작전을 포기할 턱이 만무 아니겠소? 우리가 건안성을 잃고 안시성을 빼앗긴다면 천산산맥의 방어선은 완전히 무너지게 될지도 모르오. 또 당 육군이 천산산맥을 넘어 오골성과 박작성으로 마구 내달리게 되면 당 수군도 총력을 다해 압록수와 패수 하구로 달려갈 거요!”

 

다시 연수영이 뒤를 받았다.

 

“따라서 이번 출전은 앞서 두 싸움보다 훨씬 중요하다는 사실을 제장은 명심하기 바라오! 우리는 내일 출전하여 비사성을 우회하고 발해만을 북상하여 건안성 앞바다에서 적군을 막아야 하오!”

 

“이번 출전에 아예 비사성도 탈환하는 게 어떻겠소이까?”

 

성미 급한 돌격장 모청호가 나섰다.

 

연수영이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다.

 

“비사성을 탈환해도 우리에게 그곳을 지킬 군사가 어디 있는가? 사실이지 지금 우리 힘으론 이번 싸움에서 이기는 것도 버거운 일이야! 비사성을 지키는 적군은 육군과 수군을 합해 10만이 넘어. 더구나 그곳은 당 수군의 본거지로 활용되고 있는데다가 좁은 협수로가 많아 공략이 유용하지 못해. 적의 본거지를 치려면 최소한 적군 병력의 3배가 있어야 한다는 말이 되지. 그럼 아군은 줄잡아 30만 대군은 있어야 비사성을 탈환할 수 있는데 솔직히 우리 수군은 겨우 2만명에 불과하지 않은가? 우리가 선택해야 할 것은 비사성을 지키는 당 수군의 눈을 피해서 먼 바다로 우회해서 건안성 앞바다로 올라가는 것 뿐일세.”

 

이제 기본 전략은 정해졌다. 연수영은 쾌속 첩보선을 건안성으로 보내 고원부 성주에게 통보했다. 7월 10일에 건안성 앞바다에 도착할 터이니 수륙합동작전으로 당 수군을 잡자는 내용이었다. 그리고 군사 1만여명과 대소 전함 2백여척을 거느리고 7월 7일에 출전했다.

 

안시성 공격을 준비하는 태종의 당군 본진은 자국에서 병력 증원을 거듭하여 50만명에 이르는 대군을 거느리고 있었다. 그러나 고정의가 이끄는 고구려군의 주력은 여전히 건재하여 천산산맥 방어선을 잘 지키고 있었다.

 

비록 당군은 고정의의 군대와 안시성 수비군을 합친 것보다 5배에 이르는 월등히 우세한 군세를 보유하고 있으면서도 보급이 원활치 못한 약점을 지니고 있었다. 가장 큰 이유는 연수영이 이끄는 고구려 수군에 의해 해로가 막혔기 때문이었다.

 

그때까지 연수영은 중앙 정부로부터 병력과 물자 등을 제대로 지원받지 못하면서 거의 자력으로 요동반도 남해안의 길목을 막고 당군의 동진을 막아내고 있었던 것이다. 연수영은 가까이는 건안성의 지원도 받고, 멀리는 동북 변경의 군량과 군수품을 국내성과 박작성, 그리고 오골성 등을 통해 군량을 지원받기도 했다. 물론 그 양은 언제나 부족했다.

 

치열한 첩보활동을 통해 고구려군 역시 보급에 어려움이 많다는 사실을 간파한 태종은 요동의 고구려군과 평양의 연개소문 사이에 병력과 물자 지원의 통로를 차단하기 위해 장문간(張文翰)에게 평양으로 직공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이에 장문간은 상하(常何)와 좌난당(左難當)을 부장으로 삼아 병사 2만명, 전함 2백척으로 구성된 수군을 이끌고 요동반도에서 멀리 남쪽 외해로 돌아 평양성으로 향했다.

 

패수 하구로 들어온 장문간의 당 수군은 평양성의 외곽 방어요새라고 할 수 있는 식성군(息城郡)을 손쉽게 점령했다. 이 때에 장문간은 군사를 절반으로 나누어 자신은 식성군에 주둔하고, 상하와 좌난당에게 나머지 병력을 이끌고 평양성을 공격하도록 시켰다. 몸소 요동벌로 건너가 태종과 일전을 벌이리라고 다짐했던 연개소문은 황성 외곽에 적군이 나타났다는 보고를 받자 즉각 군사를 소집했다.

 

“내가 이놈들을 모조리 쓸어버리겠다!”

 

연개소문은 황성 방위를 내사부 군주 해철주에게 맡기고, 두방루와 술탈을 부장으로 삼아 중갑기병대 1만과 조의선인군(早衣仙人軍) 1만명을 차출하여 급히 출전했다.

 

연개소문의 측근 장수인 두방루와 술탈이 기병대를 좌우로 나누어 식성군의 당군 병영으로 매섭게 돌격하였다. 당군은 연개소문의 군대가 나타나자 크게 당황하여 제대로 응전할 생각도 못한 채 흩어지기 시작했다. 장문간이 거느린 군사들은 모두 수군이었기 때문에 대부분 군마(軍馬)가 없는 보병이었다. 두방루가 철퇴(鐵槌)로 내려치고, 술탈은 장창(長槍)으로 찌르면서 눈에 보이는 대로 적병들을 마구 척살하였다. 고구려의 기병들은 자유자재로 말을 몰면서 당군 보병들을 신나게 짓밟고 있었다.

 

상하와 좌난당은 전의를 상실하고 다급히 살아남은 군사들에게 후퇴를 명령하면서 말머리를 돌려 달아났다. 연개소문은 앞장서서 군마를 몰아 장문간의 군영으로 뛰어들어 현월도(弦月刀)를 풍차처럼 휘둘렀다. 연개소문을 에워싸던 당군 병사들이 그의 매서운 칼날에 베이며 추풍낙엽(秋風落葉)처럼 쓰러졌다. 장문간은 간신히 사지(死地)에서 벗어나 상하와 좌난당 두 부장의 옹위(擁圍)를 받으며 패수 강변으로 도주, 다시 군선에 올라 뱃머리를 서쪽으로 되돌리고 바다 쪽으로 후퇴했다.

 

연개소문이 이끄는 고구려군은 강변을 따라 당군을 추격하며 쉴 새 없이 소나기처럼 화살을 퍼부었다. 그뿐 아니라 결사대로 하여금 불붙은 작은 배들을 이용해 계속해서 화공을 펼쳤다.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른다더니, 바로 저놈들을 두고 한 말이 아니더냐?”

 

연개소문이 마상(馬上)에 앉은 채 두방루와 술탈 두 장수를 돌아보고 웃으며 말했다.

 

“우리의 황성을 기마병력도 없이 저 2만의 오합지졸로 공략하려고 하다니…! 저 놈들이 우리를 너무 만만하게 본 것이 아닙니까?”

 

“서토의 오랑캐 놈들을 한 놈도 살려 보내지 말걸 그랬습니다. 하하하하!”

 

패수를 거슬러 올라 식성군을 점령했던 당 수군은 연개소문의 역습을 받아 2만의 병력 가운데 무려 9천의 군사가 희생되었고 중선과 협선 1백여척이 파손되거나 불태워져 바다 속으로 가라앉았다. 장문간은 상하·좌난당과 더불어 뒤도 돌아보지 않고 남은 군선과 병사를 거느리고 바다 멀리 서쪽으로 전속력을 다해 달아났다.

 

연개소문은 부서지고 불타는 배에서 뛰어내려 강변으로 헤엄쳐 나온 3백여명의 당군 병사를 포로로 사로잡아 평양성으로 개선했다. 그렇게 해서 바다를 통한 평양성 직공작전은 실패로 끝나버렸다.

 

연수영의 함대가 석성 군항을 출발, 외해로 우회하여 건안성 쪽으로 항진할 무렵 장량이 이끄는 당 수군도 비사성을 떠나 건안성을 공격하려고 북상하고 있었다.

 

양국 수군은 7월 10일 미시(未時)에 마침내 건안성 앞 해안에서 대치했다. 장량은 수적으로 월등하게 우세한 군세를 믿고 처음부터 고구려 수군을 포위하여 섬멸하려고 덤볐다.

 

“여우 같은 년! 오늘에야 드디어 잡게 되었구나. 전군, 돌격하라! 고구려의 배들을 한 척도 남기지 말고 격침시켜라!”

 

장량은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소리쳐 명령했다.

 

그러나 연수영은 풍향이 아군에게 유리하기 때문에 적군이 아무리 포노와 화살을 퍼부어도 그 효력이 반감될 것이라 판단하여 침착한 태도를 유지하고 있었다. 그녀는 적군의 움직임을 살펴보다가 부하들에게 명령했다.

 

“즉시 함대를 세 패로 나누어 이자방진을 펼치고, 좌우측의 함대는 항진하여 적선과 사거리를 좁혀라!”

 

양군 함대가 사정거리에 근접하자 어느 쪽이 먼저랄 것도 없이 포격이 시작되었다. 역시 풍향이 고구려 편이었다. 당 수군의 포노에서 발사된 돌덩이와 쇳덩이들이 쉴 새 없이 하늘을 가르며 날아왔지만 역풍으로 인해 별 위력을 발휘하지 못하였다.

 

당군의 포노는 갈수록 맥이 빠졌고, 역풍이 심해질수록 자기네 전함끼리 부딪쳐 피해가 늘어나고 있었다. 장량은 자신이 연수영의 계략에 말려들었다는 사실을 깨닫고 마지막 전술로 정면 돌파를 시도했다. 장량은 마구 소리치며 미친 듯이 군령기(軍令旗)를 흔들어댔다.

 

“적선은 아군의 전함보다 그 수효가 아주 적다. 여기서 물러나려 하다간 더 강한 역조류에 휘말려 완전히 몰살당하고 말 것이다. 전 함대는 돌격하라! 마구 쏘면서 돌격하라!”

 

대총관 장량의 명령에 따라 당군 병사들은 저마다 포노와 활을 쏘며 고구려 함대를 향해 돌진했다. 하지만 아직까지 충분한 사거리가 확보되지 않은 고구려 수군은 노포와 궁시의 사격준비 태세만 갖춘 채 적군의 접근에 대비하여 진형을 유지하는 데 더욱 힘썼다. 마침내 적선들이 유효사거리까지 접근하자 연수영은 공격명령을 내렸다.

 

“노수는 즉각 방포하라! 궁수는 응사하라!”

 

첨자진(尖子陳)을 이룬 채 총공세를 펼치는 당군에 맞서 연수영의 함대는 반월진(半月陳)으로 맞서면서 적선들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소수의 함대로 다수의 함대를 포위, 공격하는 사생결단의 작전이었다. 그러나 당 수군의 저항이 만만치 않자 연수영은 함대를 어린진(漁鱗陳)으로 바꾸어 포진하게 한 뒤 총공격을 전개하였다.

 

“전 함대는 공진(攻陳)하라!”

 

세 패로 나누어진 고구려 수군이 다시 하나의 대열로 합쳐졌고, 물고기의 지느러미가 꼬리를 펴듯 물살을 가로질러 종횡무진하였다. 돌격장 모청호와 전위장 강철우가 지휘선에서 도선용 협선으로 갈아타고 창과 도끼를 든 군사들과 더불어 적군의 누선을 향해 맹렬하게 돌진했다. 그리고 갈고리를 걸고 적선의 뱃전을 타고 넘어 당군을 마구 시살했다.

 

장량은 아군의 패색이 짙어가고, 고구려 장수들이 무서운 기세로 육박전을 벌이기 시작하자 누각의 난간을 잡은 손을 부들부들 떨면서 지휘도 제대로 못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의 부하들은 장량이 겁에 질려 아무 말도 못하고 있는 모습을 보면서, 그가 담력이 강하고 용기가 대단해서 그렇게 침착한 줄로 착각하고 있었다. 보다 못한 부총관 장금수(張金樹)가 장량 대신 군령기를 잡고 함대의 후퇴를 명령해 가까스로 전멸을 면할 수 있었다.

 

미시부터 시작해 유시(酉時)까지 이어진 이날 해상전투에서 당 수군은 1만여명의 병사와 2백여척의 전함을 잃는 참패를 기록했다. 형편없이 깨지고 남은 장량의 함대는 장금수의 지휘 아래 필사적으로 먼 바다로 도망쳐 남쪽, 비사성을 향해 죽어라 하고 달아났다.

 

영주총관 장검의 군대가 건안성주 고원부의 전술에 의해 대패하여 본국으로 퇴각한 데 이어 평양도행군대총관 장량의 수군마저 연수영의 함대에게 두들겨 맞고 개망신을 당했으니 태종의 주력군은 안시성에서 발이 묶이는 신세가 되었다. 당의 수륙군이 모두 건안성에서 패배함에 따라 이제 태종은 안시성을 점령하고 천산산맥을 넘느냐, 아니면 안시성을 포기하고 그대로 진격하느냐 하는 양자택일에 내몰리게 되었다.

 

장량의 당 수군을 무찌른 연수영은 부두에 함대를 정박시키고 군사들에게 이틀 동안 휴가를 주었다. 그리고 자신은 건안성으로 들어가 고원부 성주를 만나 함께 승리를 자축했다. 그날 저녁, 고원부는 연수영과 그녀의 부장들을 격려하기 위해 만찬을 베풀었다. 고원부는 연수영이 여자로서 군인의 삶을 살려고 아직도 혼인을 하지 않은 채 당당히 고구려 수군의 총지휘관으로 요동의 바다를 지키며 승승장구하는 것에 대해 만찬 내내 감탄과 찬사를 연발했다.

 

날이 새자 연수영은 부두로 내려가 함대를 이끌고 석성도 본영으로 돌아갔다.

 

창려해전·해양도해전·건안성전투 등 세 차례의 해전에서 대승을 거둬 당 수군의 전력 약화를 가져오고, 그들의 제해권 장악을 막고, 고구려군의 사기를 드높인 연수영은 그 빛나는 전공에 따라 제5품관인 조의두대형의 관등에 수군 군주로 승진하였다.

 

그녀의 전공을 보고받은 보장태왕이 대막리지 연개소문과 병마대원수 고정의, 내사부 군주 해철주 등 군부의 실력자들에게 연수영의 공로에 합당한 큰 상을 내리라고 하명했던 것이다. 태왕은 이와 함께 연수영의 상주에 따라 지난번 해전에서 공로가 많은 휘하 장수들의 직급도 모두 올려주었다.

 

태왕의 사자가 석성으로 와서 칙명을 전하자 연수영은 오랜만에 소와 돼지를 잡고, 술을 빚게 하고, 떡을 만들어 모든 군사와 백성들과 함께 승전을 축하하는 잔치를 베풀었다. 오랜만에 환호성이 석성 하늘과 바다에 울려 퍼졌다.  

 

▶ 다음 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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