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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다의 여왕’ 연수영 」5안시성, 그리고 장산군도 ⑵

개마기사단 |2011.10.03 17:46
조회 82 |추천 0

● 묘도군창 기습작전

 

요동성과 건안성 사이의 안시성에서 격전이 벌어지던 그 해 7월과 8월 사이에 요동반도 남쪽에서도 해상전투가 쉴 새 없이 벌어지고 있었다.

 

7월 10일 건안성 앞바다에서 패전한 장량은 비사성으로 돌아간 뒤에 부하 장수인 장금수(張金樹)와 구행엄(丘行淹)으로 하여금 묘도(廟島)의 군창(軍倉)을 단단히 지키라는 명령을 내렸다. 당군이 군량 보급의 중간기지로 삼은 묘도는 개전 초기에 고구려의 비사성주 겸 수군 군주 우소가 무모하게 함대를 이끌고 출전했다가 풍랑으로 자멸했던 바로 그곳이다.

 

7월 22일 새벽에 석성 도사 겸 수군 군주 연수영은 묘도의 당군 군창을 공격하기 위해 함대를 이끌고 석성기지에서 출항했다. 전광석화(電光石火)와 같은 기습이 목적이었으므로 이번에 이끌고 나간 함대는 중선과 협선 1백여척에 병력은 5천명 정도였다.

 

고구려 수군은 당군 세작들의 감시망을 피해 석성에서 출전하자 이내 선수를 남쪽으로 돌려 바다 한가운데로 나간 다음, 장산군도를 멀리 우회하여 표도로 접근했다.

 

연수영은 장병들이 지난 번 건안성 부근의 해상전투를 치른 지 보름도 되지 않아 피로가 덜 풀린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러므로 휘하 병력의 3분의 1만 선발하여 출전했다. 작전의 목적도 어디까지나 전격 기습작전이었다. 묘도를 기습하여 적의 군량을 불태우고 신속하게 회군하는 것이 이번 출전의 목표였던 것이다.

 

반면, 당군은 안시성을 포위한 황제의 본군이나 그 인근에서 크고 작은 전투를 벌이는 부대나 하나같이 군량 부족이 고통을 받고 있었다. 당나라의 고구려 침략군은 병력이 50만명에 이르는 대군인 만큼 하루에 소비되는 군량의 양은 엄청났다. 그런데 그 보급이 원활치 못하니 태종의 불안감은 가중될 수밖에 없었다. 태종은 하루가 멀다 하고 수군 총사령관 장량과 군수물자 수송 총책임자 저수량(猪遂良)을 들들 볶아댔다.

 

이튿날 유시(酉時)에 묘도 근해까지 이른 연수영은 그 자리에서 닻을 내리고 경계를 철저히 하면서 대기토록 함대에 명령을 내렸다. 밤이 깊기를 기다렸다가 어둠을 틈타 적의 군창을 기습할 작정이었다.

 

이윽고 하늘과 바다에 어둠이 내리고 밤이 깊어갔다.

 

날이 바뀌어 7월 24일 축시(丑時)가 되니 연수영의 대장선 장대에 등이 켜졌다.

 

“지금이다. 진격하라!”

 

연수영의 명령이 떨어졌다. 그러나 이번 싸움은 함대와 함대 간의 해전도 아니고, 환한 대낮에 서로 마주보고 맞붙는 접전도 아니다. 어디까지나 기습작전이므로 고각(鼓角)을 울릴 수도, 함성을 지르며 진군할 수도 없었다. 또 전함마다 등불을 환하게 밝힐 수도 없었다.

 

연수영의 함대는 그저 전위장 강철우의 향도(嚮導)에 따라 조용히 항진하여 묘도로 다가갔다. 당 수군의 경비선이 고구려 수군을 발견했을 때는 고구려의 군선들이 이미 당군 전함들이 정박한 부두 바로 코앞까지 진군한 다음이었다.

 

“전고(戰鼓)를 울려라!”

 

연수영의 명령이 떨어지자 대장선의 고수가 그제야 전고를 힘차게 울리지 시작했다. 이를 신호로 전 함대가 일시에 전고를 울렸다. 큰북과 작은북이 일시에 울리고 뿔나팔이 마구 울부짖었다.

 

“전 함대, 돌격!”

 

연수영은 패검(佩劍)을 빼어 휘두르며 앙칼지게 부르짖었다.

 

“공격하라!”

 

“적선을 모조리 불태워라!”

 

강철우나 담열 등 연수영의 부하 장수들도 저마다 목청껏 외치며 적선을 향해 돌격했다.

 

야음을 틈타 묘도에 접근한 연수영의 함대는 먼저 화공(火攻)으로 적선을 불태우기 시작하면서 적군의 혼란을 틈타 돌격장 모청호의 특공 돌격대를 태운 쾌속 협선을 상륙시켜 적의 군창에 불을 지르도록 했다. 모청호와 그의 부하들은 먼저 마굿간을 덮쳐 당군의 군마를 탈취한 뒤 말을 몰아 적의 군창으로 달려가서 군창을 지키는 당병들을 처치하고 유황(硫黃)을 뿌려 불을 놓았다. 군창을 지키는 군사들은 모두 보병이었기에 군마 위에서 창과 칼을 휘두르는 모청호의 특공대를 이길 수 없었다.

 

당군이 군창에 난 화재를 진압하려고 우왕좌왕하는 사이 모청호와 그의 부하들은 협선을 정박시킨 곳으로 달려가더니 군마를 버리고 배에 올라 무사히 함대로 복귀하였다. 연수영의 작전계획이 한 치의 오차도 없이 그대로 수행되었던 것이다. 이번 기습작전으로 묘도 군창에 보관 중이던 수만석의 군량이 소실되었다. 군창을 경비하던 장금수의 함대 50여척 가운데 40여척의 군선이 불타고 침몰했으며, 화살에 맞거나 불에 타고 바다에 빠져 죽은 당병의 수는 3천여명에 이르렀다.

 

기습작전이 성공하자 연수영은 재빨리 함대를 이끌고 회군했다. 비록 이번 전투에서는 포로도 없고 노획한 전함이나 군수품도 없었지만 승전의 의미는 컸다. 군량 부족에 대한 당군 전체의 불안감이 더욱 높아졌고, 고구려 수군에 대한 공포심 또한 그와 비례하여 더욱 커졌던 것이다.

 

패군지장인 장금수는 황제에게 “갑작스러운 풍랑과 해일로 인해 여러 척의 배가 서로 부딪쳐 깨졌고, 창고가 무너져 군량을 잃었다”고 허위보고를 했다. 고구려 수군의 기습공격을 당했다고 이실직고했다가는 당장 목이 달아나게 생겼으니 고구려 수군이든 해적이든 그 따위 소리는 아예 꺼내지도 않았다. 하지만 귀중한 군량을 잃었다는 보고에 노발대발한 태종은 감군(監軍)을 보내 상황을 파악하게 하고 장금수와 구행엄을 잡아들여 볼기를 매우 치도록 했다.

 

네번째 해전에서 승리를 거두고 묘도에서 개선한 연수영은 격전의 피로가 쌓이고 쌓인 탓에 그 길로 몸져눕고 말았다. 소장루로 돌아와서 전쟁총사령부인 평양의 대막리지부에 승전 보고서를 써서 보내자마자 측근 모두를 물리친 채 자리에 누웠다. 연수영의 곁에는 친자매 같은 해란봉과 금화만이 남아서 간병을 했다.

 

해란봉이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당적이 쳐들어온 이후 지난 두 달 동안 군주(軍主)께서는 단 하루도 편히 쉬셨던 적이 없었습니다. 군주께서 건강을 잃으시면 이 바다를 지킬 사람이 없습니다!”

 

“난봉 언니 말이 옳아요! 이젠 제발 자기 몸부터 먼저 돌보고 나서 다른 일을 하세요.”

 

금화도 거들었다.

 

“역시 아녀자의 몸은 사내들보다는 약한가 보네. 하지만 그대들이 잘 알다시피 그동안 우리가 어디 쉴 틈이나 있었던가? 아무리 쉬고 싶어도 지금은 전쟁 중이지 않은가? 적군이 쉴 틈을 주지 않는 걸 어쩌겠는가?”

 

연수영은 그렇게 자리에 누워 열흘 가까이나 호되게 앓고 나서야 가까스로 다시 일어났다. 그 사이에 당 수군은 수차의 패전을 만회할 대반격전을 준비하고 있었다.

 

장량을 비롯한 당 수군 수뇌부는 또 다시 싸움에서 지고 군사와 전함을 잃는다면 황제가 절대로 용서하지 않으리라는 사실을 분명히 알고 있었다. 더군다나 고구려 수군의 지휘관이 연개소문의 누이동생이란 사실이 황제의 귀에도 들어갔다고 하지 않던가?

 

● 대흠도해전(大欽島海戰)

 

중국의 야사서(野史書)인『태평광기(泰平廣記)』에 의하면 태종이 645년 7월 하순에 장량을 질책하는 글을 보냈다고 하는데, 그 내용은 이렇다.

 

‘그대는 아국 제일의 수신(水神)이면서도 근좌에 오랑캐와 해적들에게 번번이 낭패를 보는 것은 무슨 까닭인가? 이는 경을 장수로서의 자질이 모자라는 사람으로밖에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 일로서 수차례 오랑캐와 접전했으나 지금껏 이기지 못하였으니 우리 본군의 분전에도 불구하고 오랑캐를 제압하지 못한 것은 참으로 통탄스러운 일이로다. 그대는 이번에 기필코 오랑캐의 수군을 꺾어 짐의 위엄을 사해에 떨치기를 희망하노라!’

 

장량은 이깉은 황제의 질책을 듣자 도저히 화를 참을 수 없었다. 네 차례의 해전에서 수십명의 장수, 수만 군사, 수백척의 군선을 잃었으니 분하기도 했지만 그에 앞서서 대당제국 수군 대총관이란 체면이 형편없이 구겨졌기 때문이었다. 고구려에 비해 군사와 전함이 적은가 하면 그것도 아니었다. 고구려 수군에 비하면 열배나 되는, 압도적으로 우세한 전력이 아닌가? 게다가 고구려의 장수는 사내가 아닌 아직 서른도 안 된 계집이며, 대막리지 연개소문의 누이동생이라고 한다. 장량은 자존심이 상할대로 상해 있었고, 이번에는 반드시 이겨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시달리게 되었다.

 

장량은 장수들을 소집하여 작전회의를 열었다.

 

“황상께서 또 칙사를 보내 독전(督戰)을 하셨다! 우리가 또 다시 여우 같은 저 고구려의 계집에게 패배한다면 모두 칼을 물고 엎어져 죽어야 마땅할 것이야! 이제부터 군령을 하달하겠다. 첫째, 전 함대는 경계를 철저히 하여 다시는 지난번 묘도 군창처럼 적의 기습을 허용해서는 안 된다! 둘째, 훈련을 강화하라! 싸우기만 하면 동이(東夷) 오랑캐에게 깨지니 이러고도 우리가 어찌 대당제국의 수군이라고 낯을 들고 다닐 수 있겠는가? 셋째, 함대를 재편성하고, 장수들의 책임을 철저히 묻겠다! 그렇게 하여 본래 우리 수군의 임무인 평양을 공격하고, 군량 수송에 만전을 기한다! 모두 잘 알겠는가?”

 

“넷!”

 

“알겠습니다!”

 

대답은 모두 시원하게 잘했다.

 

장량은 압도적인 군세로 고구려 수군을 밀어붙이기 위해 본국에서 2만여 증원 병력을 더 모아오게 했다. 그렇게 해서 8월 초순 현재 비사성의 당 수군은 13만명에 육박하기에 이르렀다.

 

장량은 다음 해전에 대비하여 이들에게 실전과 같은 맹훈련을 시켰다. 심지어는 군사들의 담력을 길러주기 위해 허수아비가 아닌 살아 있는 고구려인 포로들을 표적으로 세워놓고 창과 칼로 찌르고 베고 활로 쏘아 죽이는 잔인하고 악독한 실전훈련까지 시켰다. 이쯤 되면 군사훈련이 아니라 학살 만행이었다.

 

또한 바다에서도 실전훈련을 실시하여 함대를 나누어 모의해전을 벌이기도 했다. 이 훈련에서 군선이 실제로 부서지고 불타고 침몰하고, 군사들도 실제로 화살에 맞고 백병전을 벌이다가 창과 칼에 찔리거나 베여 죽었다. 하지만 워낙 군사가 넘치도록 많고 군선도 많기 때문에 장량은 눈 한번 깜빡하지 않았다. 이기지 않으면 내가 죽을 판이니 이제 앞으로는 더욱 모진 놈이 되어야겠다고 그는 작정했다.

 

그런데 훈련하다가 죽는 군사보다도 전쟁이 무섭다고, 고향이 그립다고, 심지어는 뱃멀리를 참을 수 없다고 탈영하는 자가 속출했다. 하지만 요동반도 남쪽 끝 비사성 군영에서 탈영해봐야 산동반도로 돌아갈 길이 막연했다. 이따금 무리를 지어 군선을 탈취하여 바다로 달아나는 자들도 있었지만 거의 모두 붙잡혀 목이 잘리고 군문에 효수됐다. 장량은 고구려 수군의 동향을 파악하기 위해 밤낮없이 수십척의 탐망선을 사방으로 띄워 보냈다.

 

한편 연수영도 군사력 증강에 안간힘을 쏟고 있었다. 되는대로 인근의 수부들을 모아 수군에 입대시키고, 부지런히 군선을 건조하고 수리했다. 물론 실전과 같은 높은 강도(强度)의 맹훈련도 빼놓지 않았다.

 

그러나 전력 증강이 생각처럼 쉬운 것은 아니었다. 요동이든 평양이든 어느 곳이나 당군에 비해 병력이 열세한지라 정규군의 증원은 바랄 수도 없었고, 어민이나 피란민들의 지원에도 한계가 있었다. 군량과 물자의 부족도 발목을 잡았다. 군졸들은 낡은 군복을 입고 늘 굶주림에 시달렸다. 군졸들이 버티는 힘은 오로지 당나라의 침략군으로부터, 내 나라와 내 가족을 지키겠다는 일념에서 비록되었다. 그나마 불행 중 다행이랄 수 있는 것은 계절이 여름이라서 추위 때문에 고통당하지 않는다는 사실이었다. 그런 군졸들의 모습을 볼 때마다 연수영은 가슴이 미어질 듯 아파서 남몰래 눈물을 훔쳤다.

 

그 무렵 연수영이 거느린 고구려 수군 병력은 약 2만 3천명 정도였고, 대소 군선은 3백여척 정도였다.

 

묘도 군창에 대한 기습작전은 당 수군이 안시성을 포위한 당 육군에 대해 군량과 물자 보급을 원활하게 진행하는 것을 방해하고 산동반도 내주에서 비사성으로 유입되는 당군 병력의 진입로를 차단하려는 목적에서 전개된 전투였고, 이것은 적지 않은 성과를 거두었다. 그러나 연수영이 척후선을 계속 띄워 살펴보도록 한 바, 적군의 병력은 계속 비사성으로 유입되고 있어 연수영 휘하의 병력만으로 단독작전을 해서 이들을 막아낸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었다. 또한 적군의 평양으로의 직공도 막아야 했으니 더 이상 병력을 묘도로 파견할 수 없었다.

 

연수영은 부하 장수들을 불러모아 서로 머리를 맞대고 새로운 전략을 구상했다.

 

“지금 시시각각 적의 병력이 비사성으로 유입되고 있어 당 수군이 엄청난 수효로 늘어났다는 사실은 제장(諸將)도 잘 알고 있을 것이오. 더구나 안시성을 포위한 당주 이세민의 본군이 어느새 50만에 육박하니 안시성의 고립화는 날로 심해지고 있소. 비록 신성·남소성·건안성·오골성 등이 건재하여 그들이 요동전선을 뚫고 나가는 것을 막기 위한 방어선을 형성하고 있는 상황이오. 그럼에도 전세를 뒤집지 못한 채 갈수록 상황이 악화되니 큰일이 아닐 수 없소. 이제 새로운 대책을 세워야 할 것이오!”

 

“군주! 아군은 지난 네 차례의 출전에서 당 수군을 연속 격파하여 군사들의 사기는 하늘을 찌를 듯 높습니다. 이제 총병력을 움직여 비사성을 탈환해야 할 때입니다.”

 

모청호는 비사성의 당군이 계속 백성들과 포로로 잡힌 고구려 군인들을 상대로 무차별적인 살인행각과 자신들의 훈련도구로 이용하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크게 분노하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그들의 원수를 갚기 위해서라도 비사성을 공격해야 한다는 과격한 주장을 펼쳤던 것이다. 그러나 신중하고 과묵한 장운형이 고개를 저었다.

 

“지금 비사성으로 병력을 움직이는 것은 불가합니다. 지난날 장군께서 창려와 여목으로 출전하실 때에 여러 장수가 승산이 없는 싸움이라며 말리지 않았습니까? 허나 장군께서는 과감히 밀어붙이셨고 마침내 승리했으며 적에게 여러 차례 타격을 주었습니다. 하지만 적군의 본거지를 치는 일은 다릅니다. 적군의 본거지에는 10만이 넘는 대군이 있는데 아군의 병력은 비전투원까지 포함해 2만 3천여명뿐입니다. 이대로 진군하다가는 당 수군이 소흑산도나 대흠도 같은 곳에 매복해 있다가 아군을 급습할 가능성이 높아서 위험합니다!”

 

연수영도 장운형의 말이 옳다고 여겨 그를 거들었다.

 

“적군의 피비린내 나는 칼날이 포로가 된 우리 군사와 백성들의 무고한 목숨을 빼앗고 있다는 사실을 내 모르진 않소. 나 또한 온몸이 피로 들끓으며, 마음이 내키는대로 하자면 내 주검을 저 바다에 던져서라도 비사성의 당군을 통째로 날려 버리고 싶은 심정이오. 그러나 전쟁은 애통한 마음만으로 되는 것이 아니고, 일기당천의 용맹만으로 할 수 있는 것도 아니오. 지금은 모든 면에서 비사성 진공은 어려운 실정에 있소. 내가 만일 적장 장량이라면, 아군의 5배에 달하는 규모의 병력과 함대를 가진 만큼 오히려 아군의 본거지를 치겠소. 그대들이 적장이라도 그와 같은 생각을 어찌 하지 않겠소? 지금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적군이 더 이상 장산도 일대로 진격하지 못하게 막아내는 수 밖에는 없소. 적군의 전력을 최대한 집중시켜 좁은 협수로로 끌어들이고 전후좌우익으로 나뉜 아군 함대로 하여금 총공세를 전개하도록 하여 격멸시키는 전술이오.”

 

장수들은 연수영의 신중하면서 치밀한 전략 구상에 대해 깊이 탄복하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8월 9일, 척항문 고성운이 급히 소장루 안으로 뛰어들어와 연수영에게 보고했다.

 

“군주, 우리 탐망선이 적군의 새로운 동향을 탐지했습니다. 100여척의 당군 병선이 비사성 기지를 떠나 남진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적의 주장은 누구인가요?”

 

“부총관 정명진(程名振)이며, 군사 1만여명이 1백여척의 병선으로 가시도를 거쳐 대흠도와 광록도 근해로 접근하고 있습니다.”

 

“음…. 그렇다면 적장 장량은 전면전을 앞두고 탐색전을 벌이는 것입니다.”

 

“탐색전이라고요?”

 

“그래요. 당군이 정면대결을 원한다면 그 압도적인 군세 중에서 적어도 병선은 3백척 이상, 군졸은 3만명 이상의 전력을 투입해야 정상일 터인데 1만명에 1백척의 비교적 소규모 함대라면 아군의 대응태세를 떠보고, 치고 빠지겠다는 의도가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그렇다면 우리는 일단 적군의 움직임을 주시하면서 경계태세를 취하면 되겠군요.”

 

“아닙니다. 지금 나가서 놈들을 공격해야 해요. 대흠도는 우리 본영이 있는 장산군도의 석성에서 그리 먼 곳이 아니에요. 적군 함대의 규모가 크든 작든 일찌감치 차단하지 않으면 적군이 전 함대를 동원해서 총공세를 펼칠 것이 분명합니다. 즉시 군사 1만명과 전함 1백척을 출동시킬 수 있도록 준비하세요!” 

 

“분부대로 거행하겠습니다.”

 

고구려 수군은 신속하게 출항 준비를 마치고 발진하여 대흠도로 항진, 8월 10일 축시(丑時)에 대흠도 포구 일대에 정박 중인 당군 함대를 발견했다. 연수영은 즉각 공격명령을 내렸다. 돌격장 모청호가 20여척의 중·협선에 선봉군 2천여명을 태우고 공격을 개시했다. 그 뒤를 이어 전위장 강철우가 역시 20여척의 군선에 2천여명의 전위대를 태우고 공격에 가담했다.

 

먼동이 터올 때까지 이어진 이 전투에서 연수영의 함대는 적선 50여척을 격침시키고, 적군 5천여명을 사살하는 대승을 거두었다. 적장 정명진은 남은 절반의 함대를 이끌고 광록도로 달아났으나 연수영은 승세를 탄 군사를 거느리고 맹렬히 추격했다. 그리하여 광록도에서 적군의 후미를 잡고 맹공을 퍼부었다. 정명진은 이 싸움에서 다시 30여척의 전선과 3천여명의 병력을 잃었다.

 

정명진은 가까스로 목숨을 건져 10여척의 함선을 이끌고 황망히 비사성으로 퇴각했다. 아군이 또 연수영의 함대에게 참패를 당하자 장량은 다시 머리를 싸매고 들어앉았다. 어떻게 하면 이 치욕을 씻을 수 있을까? 장량은 다음 작전을 구상하며 더 많은 탐망선을 동쪽 장산군도 해역으로 파견하여 첩보를 수집했다. 

 

대흠도해전에서 또 다시 당 수군을 무찌른 연수영은 수군 본영을 석성도에서 임시로 대장산군도의 노백성으로 이동했다. 노백성은 석성도와 비사성의 중간쯤에 위치한 곳이니 이는 하루 빨리 비사성을 탈환하고 당나라의 침략군을 고구려 땅에서 완전히 몰아내겠다는 의지의 표출이었다. 물론 군영만 임시로 이동했지, 말객(末客) 담열(曇烈)은 낭자군인 양희봉(梁喜逢)·금화(金花)와 함께 본거지인 석성 소장루에 남아서 그대로 지키게 했다.

 

연수영이 담열과 양희봉을 석성에 남긴 것은 두 사람이 부부관계를 맺게 됐기 때문이다. 담열은 연수영 휘하 12낭자군의 한 명인 양희봉과 서로 눈이 맞아 정분이 새록새록 쌓였고, 두 사람 사이에 연정(戀情)이 있다는 것을 눈치 챈 연수영과 주위 사람들의 주선으로 소장루에서 조촐한 혼례식을 치르고 성내에 작은 집 한 채를 얻어 신혼살림을 차리게 되었다. 언제 무슨 일을 당할지 알 수 없는 살벌한 전란 중이긴 하지만 남녀간의 사랑을 막을 수는 없다는 생각에서 추진한 연수영의 배려였다. 양희봉은 처음에는 연수영이 아직 홀몸인데 자신이 먼저 시집을 간다는 것에 부담을 느꼈지만 해란봉과 금화 등 낭자군 동료들의 끈질긴 권유에 마지못해 담열과 혼인하게 된 것이었다.

 

▶ 다음 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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