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절경, 장관, 뭐라 하든 경천대
상주읍에서 동쪽으로 20리, 낙동강 제1경이라 불리어지는 곳이 있다. 바로 경천대(擎天臺)다. 예부터 경천대는, 태백산에서 발원하여 1,300여 리를 굽이쳐 흐르는 낙동강 물길에서 만날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곳으로 손꼽혀 왔다. 곳곳에 깎아지른 기암절벽 위에 멋들어진 노송이 우거져 있다. 건너편에는 눈부신 금빛 모래사장이 펼쳐진다. 그리고 그 사이로 푸르디푸른 강물이 휘돌아 흐른다. 한 폭의 동양화가 펼쳐진다. 말 그대로 절경(絶景)이다. 하늘이 스스로 만들었다고 하여 자천대(自天臺)라고 불릴 정도였던 이곳에서 바라보는 경관은 어떤 말로도 표현하기 어렵다.
경천대를 말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사람이 있으니 바로 우담(雩潭) 채득기(蔡得沂) 선생이다. 자천대로 불리다가 지금의 경천대로 불리게 된 것은 우담 선생의 지은 봉산곡(鳳山曲)에서 처음 비롯되었다고 전한다. ‘가노라 옥주봉아, 있거라 경천대야’로 시작되는 봉산별곡은 병자호란 이후 소현세자와 봉림대군이 볼모로 청나라 심양에 끌려가게 되었을 때, 그가 세자를 호종하는 관료가 되어 떠나면서 지은 한글가사라고 한다. 심양에 들어간 우담 선생은 왕세자를 보호하는 한편 청나라가 조선을 함부로 대할 수 없도록 했다고 한다. 그는 거기서 고초와 박해를 무릅쓰고 기어이 왕호단(往護團)과 협력하며 봉림대군과 북벌의 밀약을 나누기도 했다.
自天臺 자천대
奇巖斗起自成臺(기암두기자성대) 기이한 바위 우뚝 솟아 저절로 대(臺)를 이루니
翠壁東西碧水回(취벽동서벽수회) 푸른 절벽 동서에 시퍼런 강물이 감돌아가네
矗矗豈容人力築(촉촉기용인력축) 저 우뚝우뚝한 돌을 어찌 인력으로 쌓았겠는가
層層應是化工裁(층층응시화공재) 층층의 저 돌은 아마도 하늘이 만든 것일 거야
雲收玉柱珠簾捲(운수옥주주렴권) 구름이 옥주봉에 걷히니 주렴을 거둔 듯하고
日射丹崖畵障開(일사단애화장개) 햇빛 붉은 언덕에 쪼여 그림장 막 열어 놓은 듯하네
最愛高標千百尺(최애고표천백척) 제일 멋있구나 높이 우뚝한 천백 척은
直擎天闕任無頹(직경천궐임무퇴) 바로 하늘을 받들어 무너짐 없음을 맡겼네
" 우담 채득기 선생은 경천대에 올라 낙동강의 정기를 받아서,
북벌을 주창하는 경천대비를 세웠다.
경천대에 오르면 애국심이 절로 나는 장관이 펼쳐진다. "

옥주봉은 경천대 뒷산을 말한다. 한편 경천대 바위 사이에는 우담 선생이 쓰고 세웠다는 경천대비(擎天臺碑)가 있다. 거기엔 임진왜란 때 조선을 도운 명나라와의 의리를 지켜한다는 뜻으로 ‘대명천지 숭정일월(大明天地 崇禎日月)’이라는 문구가 쓰여 있다.
채득기 선생이 모든 관직을 마다하고 은거했다던 무우정(舞雩停)은 수백 년 풍상에도 고결한 기상을 잃지 않은 곳이다. 거기서 조금 더 아래로 난, 호젓한 산책로를 따라가면‘재물은 평등하기가 물과 같아야 하고, 사람은 바르기가 저울과 같아야 한다’는 유언을 남긴 조선 최고의 거상 임상옥의 이야기를 다룬 드라마 <상도(商道)>의 촬영장을 만날 수 있다. 대장간을 비롯해 조선후기 가옥이 몇 채가 조성되어 있는데 여기서 내려다보는 낙동강 전경 역시 일품이다.
경천대가 낳은 위인, 정기룡 장군
어디에서 바라봐도 그림 같은 풍경이 펼쳐지는 경천대에는 아름다운 경치만큼이나 마음을 사로잡는 영웅의 전설이 살아 숨 쉰다. 그 전설의 주인공은 임진왜란 당시 육지의 이순신이라 일컬어졌던 정기룡 장군이다.
그는 1562년(명종 17년) 경상남도 하동군 금남면에서 태어나 1586년 무과에 급제한 뒤 선조의 명에 따라 기룡으로 이름을 고쳤다. 1592년, 임진왜란이 벌어지자 별장으로 승진하여 경상우도 방어사 조경의 휘하에서 종군하면서 거창 전투에서 일본군 500여 명을 격파했다. 그리고 금산 전투에서 그의 직속상관인 조경을 단기필마로 뛰어들어 구출하였는데, 이 모습이 마치 당양 장판에서 아두 유선을 구하려고 뛰어든 조운과 흡사하여 '임진왜란의 조자룡'이라는 별명을 얻게 되었다고 한다.
이후 곤양의 수성장이 되어 일본군의 호남 진출을 막는 데 결정적 공을 세웠다. 이어 상주판관이 되어 상주성을 탈환하고, 이후 진주대첩에도 크게 기여했으며 계속하여 여러 공을 세워 성주, 합천, 초계, 의령 등 여러 성을 탈환하는 데 성공한다. 광해군 때에는 삼도수군통제사와 경상우도수군절도사에 오른다.
1794년에 홍량호(洪良浩)가 지은 <해동명장전(海東名將傳)>에는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다.
‘정기룡은 담력과 용력이 뛰어나고 두 눈이 횃불처럼 빛났다. 그가 적지에 뛰어들어 적을 무찌를 때에는 마치 평지를 달리는 것 같았으며, 왜적이 그를 향해 집중사격을 해도 그를 명중시키지 못했다. … 용기가 북받쳐 오를 적에 그가 탄 신마(神馬)가 여섯 길이나 되는 참호를 능히 뛰어 넘고, 가파른 절벽이나 위험한 언덕길도 매나 솔개처럼 날아올랐다.’
60전 60승. 단 한 번도 패한 적이 없는 무패의 장수 정기룡. 경천대에는 그가 영남의 산야를 평지처럼 누비며 왜적의 손에서 나라를 구하는 데 빼놓을 수 없는 이야기가 있다. 임진왜란 7년 동안 그와 함께 모든 전쟁터를 누빈, ‘매나 솔개처럼 날아올랐다’던 용마(龍馬) 이야기다.

" 아무도 길들일 수 없던 말을 온순하게 만든 정기룡 장군과
그에게 순순히 등을 내어준 용마의 동상을 보면 전설도 실제처럼 더욱 가깝게 다가오는 듯하다. "
신비의 말, 용마를 만나다
어느 날, 큰 뜻을 품고 무예를 익히며 심신을 단련하고 있던 청년 정무수는 마을 사람들로부터 기이한 이야기를 들었다. 경천대 절벽 밑에 강물이 휘도는 곳을 용소라고 불렀는데, 그곳에서 바람처럼 달리는 말 한 마리가 뛰쳐나와 절벽과 백사장 사이를 한걸음 뛰어다니다가 사라진다는 것이었다. 어떤 사람은 겨드랑이에 날개가 달린 말이 하늘을 날아다니다가 쏜살같이 사라진다고 하고, 또 어떤 사람은 강물 위를 뛰어다니는 것을 보았다고 했다. 그 말을 용마(龍馬)라고도 하고 천마(天馬) 혹은 비마(飛馬)라고도 했다.
‘세상에 그런 말도 다 있다니!’
정무수는 설마 하는 생각과, 만약에 그런 말이 있어 길들일 수만 있다면 자신의 뜻을 유감없이 펼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 사이에서 혼란스러웠다. 어느새 정무수의 머릿속은 용소를 들락날락하는 용마의 생각만으로 가득 차 있었다.
‘내 눈으로 한 번 확인해봐야겠다.’
다음날 이른 새벽, 정무수는 경천대 위의 소나무 숲 사이에 몸을 숨기고 있었다. 가뜩이나 횃불 같은 그의 눈이 어느 때보다 활활 타올랐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아침 이내가 점점 걷히면서 날이 밝아오고 있었다. 여전히 정무수는 숨을 죽이고 강물이 휘도는 용소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그때였다. 용소의 물이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듯싶더니 말 한 마리가 물에서 솟구쳐 올라 백사장 위에 사뿐히 내려서는 것이 아닌가. 정무수는 숨이 턱 막혔다. 참을 수 없이 쿵쾅거리는 가슴을 애써 억누르며 가만히 용마를 주시했다.
윤기가 흐르는 잿빛 바탕에 크고 작은 흰 점들이 보기 좋게 박혀 있었다. 눈은 흑진주처럼 빛났고 겨드랑이 쪽에는 비늘이 있는지 움직일 때마다 햇빛에 반짝였다. 절벽 위에서 내려다보던 정무수의 눈이 더욱 빛나기 시작했다. 듣던 것보다 더 날쌘 말이었다. 한달음에 동쪽 용바위 쪽으로 튀는가 싶더니 금세 백사장 쪽으로 내려앉았다. 재빠르기가 정말 번개 같았다.

" 내 소원 위에, 네 소원 얹고….
낙동강 제1절경으로 유명한 경천대에는
오늘도 많은 관광객들이 올라 그 경관을 구경하고 있다.
수북이 쌓인 사람들의 소박한 정성이 보기 좋다. "
용마를 얻기 위한 비상한 비책
정무수는 가만히 마음을 가라앉혔다.
‘저 말은 분명 내 것이 될 터이니, 서두르지 말자.’
마음을 정하고 나서도 정무수는 섣불리 용마 앞에 나서지 않았다. 다만 조용히 숨어서 지켜볼 뿐이었다. 며칠을 살펴보니 용마를 노리는 마을 사람들은 많았지만 모두 용마의 근처에도 가지 못했다. 가만히 있다가도 사람이 보이기만 하면 용마는 다시 용소로 뛰어들어 손을 쓸 수 없었다. 먹이를 놓고 올가미를 놓아 보아도, 용마가 다니는 길목에 함정을 파보아도 다 헛수고였다. 사람의 기척만 느껴져도 용마는 부리나케 용소로 뛰어 들었다.
‘자, 어떻게 해야 할까.’
다른 사람과 같은 방법으로 접근했다가는 결과 역시 뻔할 터였다. 정무수는 며칠 동안 궁리에 궁리를 거듭했다. 그러다가 무릎을 탁 쳤다.
‘그래!’
무슨 생각이 떠올랐는지 정무수는 입가에 미소를 머금었다. 그러고는 사람과 흡사한 허수아비를 백사장 이곳저곳에 세워놓았다. 그리고 숨어서 용마의 행동을 조심스럽게 살폈다.
허수아비를 세워놓은 다음날 용소에서 솟아나온 용마는 소스라치게 놀라며 용소로 들어갔다. 이틀이 더 지나자 용마는 허수아비를 경계하며 그 곁으로 가지 않을 뿐 처음처럼 놀라 달아나지는 않았다. 그렇게 하루하루 지날 때마다 용마는 허수아비 곁으로 조금씩 다가가기 시작했다. 그러다가도 흠칫 하고 뒤로 물러섰다.
하지만 날이 갈수록 용마는 허수아비에 조금씩 다가갔다. 며칠이 더 지났다. 용마는 허수아비가 같은 자리에서 아무런 움직임이 없다는 것을 알아차렸는지, 가까이 다가가 냄새를 맡고 몸을 문지르기 시작했다. 용마는 이제 허수아비에 대해 아무런 경계도 하지 않았다.
수많은 위인과 영웅이 탄생했던 낙동강 물길.
그리고 그곳에서 만날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풍경 경천대. 이곳에서 강줄기를 바라보면,
굽이굽이 청아한 동양화가 그려진다.
용마가 허락한 단 한 사람
‘됐다!’
이튿날 아침 일찍, 정무수는 강변 백사장으로 나갔다. 그리고 용소와 가장 가까이에 있는 허수아비의 옷을 벗겨 입고 그 자리에 허수아비처럼 서 있었다.
드디어 통이 트자 용소에서 용마가 솟구쳐 올랐다. 용바위와 절벽 사이, 절벽과 절벽 사이를 뛰어 다니던 이윽고 용마가 백사장에 내려섰다. 용마는 아무 의심 없이 허수아비 사이를 오가면서 냄새를 맡으며 문지르고 있었다.
드디어 용마가 자신이 있는 곳 가까이로 다가오자 정무수는 오냐 하며 번개처럼 달려들었다. 갈기를 움켜쥐면서 동시에 말 등에 뛰어올랐다. 깜짝 놀란 용마는 정무수를 등에서 떨쳐내려고 미친 듯이 뛰기 시작했다. 백사장에서 경천대로, 경천대에서 용바위로, 용바위에서 절벽으로 길길이 날뛰었다. 정무수는 용마의 갈기를 더욱 세게 틀어잡으며 소리쳤다.
“내가 네 주인인 것을 모르겠느냐? 내가 이 나라를 위해 큰 뜻을 품었으니 너는 나를 따라야 할 것이다!”
벼락같은 호통소리에 듣고 나서 용마는 크게 한 번 울부짖더니 언제 그랬냐는 듯이 온순해졌다. 그리고 가벼운 발걸음으로 강변 모래사장을 한 바퀴 돌았다. 정무수는 말을 쓰다듬으며 나직하게 말했다.
“이젠 됐다, 가자.”
그 소리를 들은 용마는 기쁜 듯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단번에 경천대로 뛰어올랐다. 경천대 꼭대기에서 한동안 생각에 잠겨 있던 정무수는 낙동강을 바라보며 말했다.
“분명히 때가 올 것이다. 우리 함께 이 산야를 마음껏 달리자.”
지금도 울려 퍼지는 용마의 울음소리
경천대에서 용마를 타고 내려오는 정무수를 본 사람들이 감탄하며 한마디씩 했다.
“장수 나는 곳에 용마 난다더니….”
“과연 용마는 주인을 알아보는구나.”
“하늘이 내린 사람에 하늘이 내린 말이로구나.”
정무수와 용마는 함께 달리면서 일심동체가 되어갔다. 갈고 닦은 출중한 무예에 용마까지 하나가 되었으니 그는 이제 더 이상 거칠 것이 없었다. 시간이 흘러 청년 정무수는 선조로부터 기룡이라는 이름을 하사받는다. 그리고 임진왜란 7년 동안 그는 언제나 용마와 함께 달리면서 왜적과 맞서 싸워 이겼다.
지금도 경천대에는 청년 정기룡이 용마와 더불어 무술 수련을 쌓을 때 바위를 파서 만들었다는 말먹이 통이 남아 있다.
북쪽으로는 보은과 상주, 동쪽으로는 울산, 서남쪽으로는 하동과 사천에 이르기까지 영호남의 광범위한 땅을 누비면서 왜적과의 싸움에서 단 한 번도 패하지 않았던 장군 정기룡.
경천대 전망대에 오르면 낙동강이 한눈에 보인다. 오늘도 낙동강은 용마의 울음소리를 따라 휘돌아 흐른다.

< 주변관광지>
* 낙동강 경천대 054-536-7040
* 남장사 054-534-6331
* 상주 자전거박물관 054-537-7211
* 전사벌왕릉 054-537-7211
* 임란북천 전적지 054-533-2210
* 충의사(정기룡장군 유적지) 054-532-2224
* 글, 사진제공 : 「강,이야기를 품다_낙동강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