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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의 깨달음이 꽃피는 저수지

꽃님이 |2011.10.05 20:36
조회 79 |추천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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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로 떠나는 여행
 

토요일 오전, 서른네 살의 회사원 길수 씨는 ‘나 홀로 여행’을 해보기로 작정하고 집을 나섰다. 그러나 고속터미널에 도착해서도 행선지를 정하지 못하고 있었다. 거실 소파에 비스듬히 누워 텔레비전을 보고 있다가, 이건 아니다 싶어 무작정 어딘가로 떠나보자고 나선 길이었다. 아무런 목적 없이, 그저 발길 닿는 대로 떠나는 여행, 그런 허허로움 속의 여유를 마음껏 누려보고 싶어서였다.

20여 분 동안 매표소 주변을 맴돌면서 길수 씨는 여전히 가고 싶은 곳, 가야 할 곳을 정하지 못했다. 그는 아예 발길을 돌려 터미널 주변에 있는 서점으로 걸음을 옮겼다. 여행관련 서적을 뒤지다보면 가볼 만한 곳이 잡히지 않을까 해서였다.

서점에 들어서자 에세이 관련 서적들이 꽂혀 있는 서가가 먼저 길수 씨를 맞았다. 그런데 강렬하게 그의 손길을 잡아끄는 책이 한 권 있었다. 얼마 전에 타계한 법정스님의 에세이집이었다. 그는 법정스님에게 길을 묻는 심정으로, 책을 펼쳐 보았다. 그런데 어느 한 대목이 그의 마음을 흔들어놓았다.

    

“한여름 더위 속에 회산 백련지를 찾아 왕복 2,000리를 다녀왔다. 아, 그만한 가치가 있고도 남았다. 어째서 이런 세계 제일의 연지가 알려지지 않았는지 그 까닭을 알 수 없다. 마치 정든 사람을 만나고 온 듯한 두근거림과 감회를 느꼈다.”

 

위 구절을 읽고 나서야 길수 씨는 마음의 행로를 정할 수 있었다.

“그래, 무안이다. 백련지에 가보자. 오늘은 법정스님의 여정을 좇아가보는 거야. 내가 평소 존경해오던 분이 아니던가.”

 

만개한 연꽃의 향기
 

길수 씨가 백련지에 도착한 것은 오후 세 시 무렵이었다. 무안군 일로읍의 백련집단서식지인 ‘하늘백련마을’. 마을 안길을 따라 드넓게 자리 잡은 논을 지나자 둥그런 연잎과 그 위로 솟은 하얀 연꽃의 무리가 끝없이 펼쳐져 있었다. 10만여 평 드넓은 방죽을 빽빽이 메운 연잎과 연꽃의 바다였다. 주말의 여유를 즐기기 위해 이곳을 찾은 관광객들이 제철을 맞아 만개한 연꽃의 향연에 취해 있었다.

회산 백련지는 원래 일제 강점기에 인근 농경지에 농업용수를 공급하기 위해 축조된 저수지였다. 그런데 영산강 하굿둑이 건설되면서 저수지로서의 기능이 상실되자 수면이 점차 낮아지면서 백련이 서식하기에 딱 좋은 환경으로 바뀌었다.  

이곳이 동양 최대 규모의 백련지로 탈바꿈한 것은 60여 년 전 저수지 인근에 살던 한 노인이 백련 12주를 구해 방죽 가장자리에 심으면서부터 시작되었다. 1979년에 세상을 떠난 그 노인의 이름은 정수동. 그는 백련을 심었던 날 밤에 학 열두 마리가 내려와 앉는 꿈을 꾸었다. 날개 접어 내려앉은 학의 자태가 꼭 연꽃처럼 보였다고 한다.

범상치 않은 꿈이라고 여긴 정수동 노인은 연꽃들을 자식처럼 돌보며 정성스레 가꾸었다. 노인의 정성으로 자라난 꽃들이 해마다 번식을 거듭하여 지금의 10만여 평 백련 군락지로 성장해온 것이다.

인근 주민들이 그저 마실 삼아 다녀가던 곳에 불과했던 백련지가 전국적인 명소로 떠오른 것은 1990년대에 이르러서였다. 오늘 길수 씨를 이곳으로 인도한 법정스님의 기행문이 결정적인 계기로 작용했다.

 

그저 걷는 것만으로도 향기로운
 

길수 씨는 ‘연풍연가’로 이름 붙여진 목조 탐방로로 들어섰다. 이 길이 바로 연꽃 감상의 출발점이다. 연인들이 상그러운 연꽃바람을 맞으며 걷는 길이라고 한다.

 

                                              

  

                                                    " 사방에 피어난 연을 두고 걸어가는 백련지 탐방로는
                                      그저 걷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정화되어,  시름없이 가벼운 발걸음을 느낄 수 있다."


길수 씨는 내년에 결혼을 약속한 6살 연하의 연인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길수 씨의 연인은 한창 진행 중인 프로젝트 때문에 지금도 사무실을 지키고 있다. 길수 씨는 휴대폰 카메라로 연꽃을 찍어 그녀의 휴대폰으로 전송하려다가 그만 두기로 했다. 한참 일에 몰입해 있을 그녀의 집중력을 흩트리지나 않을까 염려되어서였다.

‘연풍연가’에서는 멸종 위기의 희귀종인 ‘가시연꽃’의 집단 군락을 감상할 수 있다. 백련은 물론 홍련, 수련, 어리연, 왜개연 등을 감상할 수 있으며, 부래옥잠, 물배추, 물창포, 물아카시아 등 50여 종의 수생식물까지 덤으로 감상할 수 있다.  

백련은 연꽃 중에서도 꽃이 크고 꽃잎도 넓은 편이다. 꽃송이가 올라올 때는 꽃잎 끝자락이 붉은 기운을 띤다. 종자의 수명이 길기로도 유명하며, 2000년이나 된 씨앗이 발아한 경우도 있다고 한다.

홍련은 수련과 7~8월에 꽃이 핀다. 관상용으로 주로 쓰이며 잎과 뿌리는 식용, 씨는 약용으로 쓰인다. 키가 1~1.5미터로 비교적 큰 편이다.

가시연은 국내에서 자라는 식물 중 가장 잎이 크다. 작은 것은 지름 20센티미터, 큰 것은 무려 2미터에 달한다. 주름 잡힌 잎 표면에 가시가 돋쳐 있다. 7~8월에 걸쳐 가시 돋친 꽃자루 끝에 한 송이의 붉은 꽃이 핀다. 다행스럽게도 멸종 위기에 처해 보호식물로 지정된 뒤로 가시연 자생지가 늘어나고 있다고 한다.

개연은 긴잎종련꽃이라고도 한다. 8~9월에 긴 꽃자루 끝에 노란 색을 띤 꽃이 한 송이씩 핀다. 어린잎은 식용으로도 쓰인다. 뿌리를 달여 먹으면 피로 회복과 소화 불량, 장염 등에 효과를 볼 수 있다고 한다. 왜개연은 개연보다 작고, 꽃 피는 시기는 개연과 같다.

7~8월에 피는 어리연꽃은 새끼손톱만큼 작은 꽃으로, 솜털 같은 톱니가 꽃 주변에 둘러서 있다.

5월부터 9월에 걸쳐 꽃이 피고 지는 수련은 긴 꽃자루 끝에 한 송이씩 핀다. 정오쯤 피었다가 저녁 때 오므라든다 해서 자오련(子午蓮)이라고도 불린다. 수련(睡蓮)이란 말도 물에 떠있는 연꽃이 아닌 ‘잠자는 연꽃’이란 뜻이다. 꽃말은 청순과 순결. 종류가 40종이나 되며 꽃의 색깔 또한 다양하다.    

이렇듯 다양한 연꽃들 중 하나만 꼽으라면 단연 백련이다. 탐스러운 꽃송이가 유독 눈길을 끄는 백련의 원산지는 인도와 이집트이다. 홍련과 달리 한꺼번에 꽃이 피지 않고 7월부터 9월까지 차례로 피는 꽃이다. 따라서 10만여 평 백련지에서 순백의 연꽃 물결을 보기란 쉽지 않다. 하지만 짙푸른 백련 잎으로 무성한 탐방로를 조용히 걷는 것만으로도 신선과 함께 전설 속을 거니는 듯한 기분을 느끼게 된다.



 


                               "‘ 연꽃은 연꽃끼리 모여 산다. 운명의 연줄, 그 인연으로 뒤엉켜 산다’는 말처럼
                     옹기종기 모여 핀 무안의 연들. 파랗게 펼쳐진 백련지의 연에서 청아한 싱그러움이 느껴진다. "   
 

 

어딜 보나 연으로 가득한 이곳
 

탐방로에서 벗어난 길수 씨는 최근 문을 열었다는 500평 규모의 수상유리온실로 향했다. ‘사막의 오아시스’라고 불리는 이 온실은 백련지의 또 다른 볼거리이다. 연꽃 모양을 한 온실 1층에 연꽃을 감상하며 한 잔의 차와 여유를 즐길 수 있는 카페테리어와 수련전시관이 들어서 있었다. 2층에는 열대식물과 기타 수생식물 전시관이 들어서 있었다.              

수생식물 전시관에 들어선 길수 씨는 잘 모르고 있었던 연의 다양한 쓰임새에 새삼 놀랐다. 연잎차를 비롯하여 여 냉면, 연 국수, 연 과자, 연 맥주, 연근 된장 같은 식품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연꽃은 뿌리는 물론 꽃, 잎, 열매, 줄기까지 모든 부분을 식용이나 약용으로 이용할 수 있다고 한다.

연잎은 철분 함유량이 높아 빈혈 예방 효과가 탁월하다. 천연 항산화제인 비타민E와 필수 아미노산이 다량 함유되어 있어 성인병 예방은 물론 노화를 억제하는 효과도 있다고 한다.  무안군은 1997년부터 연꽃축제를 개최해오다가 2008년에는 ‘2008 대한민국 연 산업축제’로 명칭을 바꿔 진행했다. 축제보다 ‘산업’에 초점을 둔 행사로 탈바꿈한 것인데, 연이 지닌 산업적 가능성을 십분 활용하기 위해서였다.

연꽃의 절정기는 8월이다. 무안군은 해마다 이때를 기해 축제를 연다. 축제 때에는 연의 역사와 문화, 연의 일대기, 세계 연 기획전시 등이 망라된 ‘생태관’과 연을 이용한 차류, 면류, 장류 식품 등 가공품 홍보 및 판매의 장으로 개설된 ‘산업관’ 등을 둘러볼 수 있다.   

저수지 주변 복룡리와 산정리는 백련을 매개로 2007년 행정안전부의 ‘살기 좋은 지역 만들기’ 시범지역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백련은 그 자체로 훌륭한 관광 상품이며 연잎과 연근 등을 이용한 다양한 제품 생산을 통해 부가가치를 창출해주기도 한다.

하늘백련마을은 사업 첫 해에 기본계획을 세워 다목적 마을회관인 ‘하늘백련의 집’을 신축했다. 주민들은 이곳에 모여 의견을 하나로 모아 하늘백련마을 조성공사를 마무리 지었다.

백련지 외에도 다른 주변지역에 백련 재배지를 더 늘려나가 현재는 18만 평에 이른다. 백련지 밖에 조성된 8만 평 재배지에서는 주로 관련 상품을 생산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고 한다.


                         

                                                         " 영산강 하구 유역에서 느껴지는 한가로움.
                                           연꽃과 함께 사는 무안의 이야기는 백련지의 오후처럼 여유롭다. "

 


연꽃처럼 살고픈 마음
 

온실에서 나온 길수 씨는 다시 백련지 주변을 산책하듯 거닐었다. 연꽃들 사이로 물오리의 뒤태가 보이는가 싶더니 황급히 사라졌다. 연의 줄기를 타고 오른 분홍빛의 우렁이 알도 눈에 들어왔다. 연잎 밑에 찰싹 달라붙어 짝짓기에 여념이 없는 실잠자리 한 쌍이 각별한 정서를 불러일으켰다. 나 홀로 여행의 호젓함이 외로움으로 바뀌는 순간이었다.

김선욱 시인은 <연꽃예찬>에서 ‘연꽃은 연꽃끼리 모여 산다. 운명의 연줄, 그 인연으로 뒤엉켜 산다’고 노래했다.

떼 지어 모여 있는 연꽃은 이처럼 감상자들로 하여금 복잡하게 얽힌 인연의 고리와, 그 인연의 의미를 되새김하게 한다.

그런가하면 송나라의 유학자 주돈이는 연꽃을 ‘꽃 중의 군자’라고 칭했다. 때로는 순결한 이미지로, 때로는 학처럼 고아한 자태로 다가오는 백련. 세속에 찌든 범부들의 마음을 깨끗이 정화해주는 꽃이다. 주돈이가 연꽃을 ‘군자’라 칭했던 것도 이 때문일 테다.

연꽃은 ‘순결’이라는 꽃말을 지녔다. 진흙탕에서 청아한 꽃을 피우고 청결하고 고귀하게 살다 지는 연꽃의 특성을 상징적으로 드러내주는 꽃말이다. 

또한 연꽃은 깨달음을 얻은 부처를 상징하기도 한다. 그러므로 백련지의 연꽃은 부처의 꽃이다. 꽃잎들은 저마다 부처의 그림자를 한입 가득 물고 있다. 진흙탕에 박힌 뿌리는 부처의 고행을 상징하고, 잎과 줄기는 언제나 낮은 곳을 지향하며 깨달음을 설파했던 부처의 포교활동을, 꽃은 불가에서 말하는 이상향인 ‘극락정토’를 상징하는 게 아닐까?

이런저런 사념에 젖어 있던 길수 씨는 문득 연꽃들 속에서 부처의 얼굴을 스치듯 보았다. 연꽃에서 부처의 미소를 본 기분이 들었다. 백련 한 송이가, 그 안에 깃든 부처의 자애로운 미소가 가슴으로 스며드는 느낌이었다.

 연인과의 약속을 위해 이제 돌아가야 할 시각. 서울행 고속버스에 오른 길수 씨는 휴대폰으로 찍어둔 백련 사진과 함께 이런 메시지를 연인에게 전송했다.

 

‘나미아미타불. 내 안에 부처님이 앉아 계신다. 사랑하자, 베풀며 살자. 사랑해.’
 


< 주변관광지 >

* 도리포 061-450-5885
* 월두마을 061-452-2714
* 조금나루해수욕장 061-450-5885
* 톱머리 해수욕장 061-450-5885
* 무안회산백련지 061-285-1323

* 홀통유원지(해수욕장) 061-450-5882


                                                                                                           * 글, 사진제공 : 「강,이야기를 품다_영산강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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