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니가 이 글을 볼 일은 절대 없을테니까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장문의 편지를 쓴다.
사실 마지막이니까 지금까지 내가 힘들었던거, 너 싫었던 모습 다 써서 부칠까 했는데
그래봤자 서로 좋을거 없으니까 그만 두기로 했어.
근데 아무리 생각해도 넌 나쁜놈이라서 내가 무슨 말이든, 어떻게든 해야
널 깨끗하게 정리할 수 있을것 같아서 말야.
일병, 그때쯤이었지 우리가 사귀기 시작한게..
그때부터 열심히, 고무신카페에 가입해서 이것저것 알아보고..
TV나 뉴스에 나오는 군인관련 얘기에 귀기울이게 됐고....
평소엔 쳐다보지도 않았던 편지지를 빤히 쳐다보게 되고..
군인들을 보며 웃기도 하고, 부러워하기도 하고.....그래 그때는 참 좋았던것 같다.
사귀게 되고..두달만엔가 만나게 됐지..특박이라 아주 잠깐이었지만 얼마나 열심히 만나려고
애쓰고 노력했는지....그 때 생각하면..너도 날 참 좋아하긴 했었나보다.
근데...나는 여전히 섭섭하다..
사귀고 처음 맞는 기념일 이었는데....내 생일말이야.........물론 연말이라서 힘들었던거 알지..
그래서 나 혼자 있어야했던거, 나도 그런건 다 이해하지..그럼 그건 이해할수 있어.
그런것쯤 쿨하게 이해해주는 쿨한 여자잖아.
그런데말야, 내 생일 한달 후에 나왔던 네 첫 정기휴가......그때 넌 내 생일을 축하해줬어야해.
드라마에서나 나올법한 사람 몸보다 더 큰 인형,
카페를 빌려 장미로 수놓은 테이블과 멋진 식사, 나 그런거 바랬던거 아니잖아.....
그냥.."생일 같이 못있어줘서 미안했어. 생일축하해." 그리고 꼭 안아주는거..
나 그거 바랬던거란말이야....근데 너 그런얘기 단 한마디도 없이 복귀했어..
크리스마스도..생일도..연말연초도........다른 사람들은 손잡고 보내는 그 따뜻한 날..
나는 내내 혼자였잖아......그러면 너, 나중에라도..그 다음에 봤을때라도..
나 꼬옥 안아줬어야 되는거잖아..그냥 미안하다, 고맙다 그런말 해주면 좋았잖아.
너는 그런거 참 못했어.......지나간 일은 금방 잊어버리는거..그런것만 잘했어..
발렌타인데이에 보내준 소포는 고마워서 어쩔줄을 모르더라..
"아, 그래도 이런거에 행복해주는것 만으로도 참 감사하다..다행이다"하고 좋아하는 나한테
너 복귀하는 화이트데이에 사탕 쪼가리하나 안쥐어줬어..그 흔한 츄파츕스 하나도..
근데 너 그러면 안됐어.....나는 화려하고 큰 이벤트..그런거 바라는사람 아니니까,
군인월급 얼마 안되는거 알고, 나는 너보다 알바비 더 많이 받으니까
그리고 너 휴가때 나 만나면서 돈 많이쓴거 아니까.....그저 쪼그만 알사탕이라도
입에 넣어주면서 "이런거밖에 못해줘서 미안하다"고 손잡아주고 껴안아주는거....
그거라도 안됐니? 이것저것 하려고 생각하다가 결국 아무것도 못해버렸다는 네 핑계....
이해하려 했지만 그래도 역시 속상하더라.
그 후에도..내 성년의날도 넌 "미안하다"는 말 뿐이었지..성년의 날 전전날, 전날
우리 분명 같이있었는데......너는 "축하한다"는 말, 그 뻔한 말 한마디도 없었어..
너는 너무 무신경하고 무감각해. 여자들은 소소한거에 감동받는거야. 다음 여자친구 한테는
절대 그렇게 "니가 말하지 않으면 나는 알수가 없잖아. 그냥 말하지 그랬어."같은 말 하지말아라.
남들은 데이트에 커플링에 뭐에.......그런다는 백일 이백일도 나는 그냥 혼자 보내버리고..ㅋ
너도 나도 그냥, 그러려니 하고 넘어갔는데........
꼭 그렇지 않은 군인커플도 많다는걸 나중에 알았어ㅋㅋㅋㅋㅋ
면회오라며 가끔 칭얼대던 너........섭섭해하던 너....그래도 나한테는 참 잘했던 너..
날 많이 좋아해주고 아껴주고....티나게 사랑해줬던 너......
물론 나는..10단 도시락 싸서 면회가는 여자친구도 못됐고..
때때로 커다란 소포 보내주는 여자친구도 못됐고..
그렇다고 매주 매일 폭탄편지 써서 으쓱하게 하는 여자친구도 못됐지만...
그래도 나 너 많이 사랑했는데..
"군인하고 사귀는거면, 여자가 더 많이 좋아하는건 아니라고 생각한다"면서
너 상처받을 말, 못된말도 서슴치 않았지만.....그래도 나 너 많이 사랑했어.
엄마아빠 다음으로 나를 제일 사랑하는 이기적인 여자인 내가...
널 많이 좋아하지 않는것 같다고 했지.. 그런데.....그런 날 제일 많이 사랑하는 내가 말이야..
너랑 결혼해서 행복할 날들도 생각했었어...
전역하는 그날 너 꼬옥 안아주는거 해주려고 힘들고 섭하고 화나는거 다 까먹으려고 애썼어..
근데 나는 눈물도 많고, 외로운거 못견디고, 상처받는거 지지리도 싫어하는 여자라서
조금만 더 있으면, 조금만 더 기다리면 니가 곧 내 옆에 오는데..
그렇게 기다리고 기다리던 니가 내 앞에 짠 하고 나타나는데......나는 그거 더이상 못하겠더라
일년중에 300일 넘게 혼자있어야 되는거...그리고 30일도 안되는 날들만 바라보고 사는거..
왠지 알아?
내가 나를 너무 많이 사랑해서???아니 그거 아니야..
점점 나를 쉽게 생각하는 너의 태도....커플 다이어리도, 방명록도 편지도.....점점 뜸해지고
나는 여느때처럼 널 계속 기다리게 되더라....
그래, 물론 다 알고 시작한건 맞는데...혼자 있어야 되는거 감수하고 시작한건 맞는데
네 마음이 변해갈 것까지 알고 시작한건 아니어서 힘들더라.
우리가 함께 한 30일 남짓한 시간으로 남은 300여일의 매일이 행복했으면 좋았을걸..
넌 항상 내게 조금만 더, 조금만 더, 조금만 더 기다려 달라고 했지....
근데 그 조금만 더가 왜 전역이었어야만 해?
내가 너 보고싶어서 새벽 네다섯시에 일어나 면회갔을때면 안되는거였어?
니가 그렇게 열심히 애써서 나온 포상휴가때면 안되는거였던거야?
특박이나 외박일때는 안되는거였어? 꼭....꼭 니가 민간인이 된 후에야
넌 날 제대로 사랑할수 있는거였니?
모든것이 갖춰진 환경이어야 너는 날 사랑할수 있었던거야...?그건 아니잖아.....
나는..드라마같은 사랑 하고싶었던거 아니라구.........나는 그냥 '너'이면 좋았던거라구..
춥다고 하면 손 잡아주는거, 안아주는거, 머리쓰다듬어주고 밥 떠먹여주는거
그런게 좋았던게 아니라 그런걸 니가 해줘서 좋았던거라구.......근데 넌..뭘 해주고싶었던거니?
넌 너무 착해서......바보같아..늘 내 마음을 몰랐어.....내 진심을 못봤어...
그래그래..니가 너무 순수해서 그랬겠지..
화도 많이 나고, 속상했고, 힘들었지..그렇지만 난 헤어지자고 얘기한 그 순간부터 후회했고
다시 만나자는 얘기도 했고, 니가 날 잡아주길 바랬는데, 마지막까지 넌 내맘을 몰랐어.
아니, 알고 있었는데..나를 위한다는 핑계로 '날 믿지 못해서' 결국 날 잡지 않았어.......멍청이.
얼마 전, 우리 일년 되기 하루전날, 결국 너는 끝끝내 헤어짐을 말했지.
그래도 나는 기다렸는데....너여야하니까, 나는 아직 너니까, 너를 사랑하니까,
나는 니가 아니면 안되니까.
근데....아무리 기다려도 넌 오지 않을것같아. 그래서 나도 돌아서기로 했어.
당분간은 다른 사람 못만날거라 생각했고, 너도 그렇다고 했지만
내 마음이..다 너한테 있어서 한동안은 다른 사람 좋아하긴 힘들것 같았지만
노력하기로했어. 다른사람을 좋아해보기로. 니가 아닌 또 다른사람을 담아보기로.
전역하든, 아니든..널 다시 만난다 해도 그건 내가 사랑했던 네가 아니니까. 아닐테니까.
얼른, 좋은사람 만나. 아니 넌 좀 나쁜여자를 만날 필요가 있어..그래야 여자가 뭔지 알것같아.
착하고 순수한 여자만 만나면....너는 절대 여자는 어떤 종족이라는걸 모르고 말테니까.
욕심쟁이여서 미안했고, 잘해주지 못했던것도 미안했다.
더 많이 사랑해주지 못했던것도 미안하고.
무엇보다.....힘든 시간 버팀목이 되어주지 못한게 제일 미안해..정말 미안하고 고마웠어.
그런데, 사람은 다 같은게 아니잖아. 나는 내 나름대로의 최선이었다는것만 알아줘.
내가 조건부로 널 사랑했던 이유중에 하나는, 니가 전역하고 나서 더 잘해주겠다던
지키지 못할 말을 하는것에 대한 불만도 포함되어 있었다는걸 죽을때까지 모르겠지.
내가 그렇게 싫어했던 욕과 담배를 입과 손에 달고 사는 모습을 보니
나는 지난 일년간 너한테 뭐였을까 싶다..너도 힘들긴 했었던가 싶긴 한데,
근데 너 하는거 보면 꼭 힘들어서 그러는것만은 아닌것같아.
그래. 이제 너도 나도 서로가 서로에게 아닌 사람들이니까
잘 먹고 잘 살아라.
근데, 담배는 좀 끊어라. 더 늦으면 끊기도 힘들다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