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Bereavement의 한 장면을 보면 살인자가 자신이 유괴한 소년의 몸을 따뜻한 물수건으로 닦아주고 옷을 입혀주면서 이런 대사를 합니다.
“구원은 용서로부터 시작되지. 용서”
개인적으로 American Movie나 Drama들을 접하면서 느낀 점은 범죄와 악에 대하여서 처벌과 보응을 늘 갖춘 스토리를 갖고 있다는 것이 참 좋다는 것입니다. 물론 모든 것이 가하나 모든 것이 유익한 것은 아니므로 절제가 중요하지만, 이렇게 부족한 저는 그래서 예수님이 필요합니다.
나이를 먹게 된다는 것은 어떤 면에서 참 고독해지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걱정이나 근심거리가 생겨도, 마땅히 의뢰할 곳이 없습니다. 모두가 자신에게 의지하고 조언과 도움 얻기를 바라지, 조언 해주려 하는 경우는 거의 없기 때문이지요. 상담 요청을 할 만한 대상이 없는 위치가 되면 자신의 힘으로 감당하기 어려운 문제도 홀로 해결해야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런 경우에 대하여서 이해할 수 있는 사람들이 많지 않지만, 예수그리스도께서는 이해하시리라 믿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연약함을 감싸 안고 승리를 주실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큰 대제사장이 계시니 승천하신 이 곧 하나님의 아들 예수시라 우리가 믿는 도리를 굳게 잡을지어다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하지 못하실 이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똑같이 시험을 받으신 이로되 죄는 없으시니라
히브리서 5:14,15
Hillsong의 Ultimate Worship이라는 앨범의 Still이라는 찬양의 가사 중엔 이런 부분이 있습니다.
When the oceans rise and thunders roar
I will soar with you above the storm
Father you are King over the flood
I will be still and know you are God
우리의 감정을 흔드는 것은 실제로 굉장하고 큰 파도와 같고 천둥과 같을 수도 있습니다.
내면의 모든 내적 지구력을 붕괴시키고 살아있는 소망까지 없게 만드는 그런 큰 어려움일수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하나님께서는 그 모든 것보다 위에서 왕이십니다. 그 사실을 기억합시다.
우리가 폭풍우 너머에 계신 하나님을 바라봐야 합니다. 자신과 주위 사람과 환경을 바라보면 희망이 없습니다. 그것은 당연합니다. 연약한 인간에겐 선을 행할 능력이 없습니다. 스스로에겐 한치의 구원의 소망도 없습니다. 그렇지만 그 모든 것 너머로 계신 하나님을 바라보며 일어설 때에 희망이 있는 것입니다.
누군가를 용서한다는 것, 그리고 나아가서 그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말하기는 쉬운 일이지만, 실제론 어려운 일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직면하는 모든 순간들이 결코 혼자가 아니라, 하나님과 함께 라는 사실을 믿는다면 우리는 분명코 하나님께서 하실 수 있는 일에 대하여서 낙심하지 않을 수 있을 것입니다.
복수는 우리의 것이 아닙니다. 복수는 하나님께 맡겨야 합니다.
“내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친히 원수를 갚지 말고 하나님의 진노하심에 맡기라 기록되었으되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고 주께서 말씀하시니라” 로마서 12:19
예수님은 원한에 관한 한 어중간한 태도를 허락하지 않으셨습니다.
“또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갚으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악한 자를 대적하지 말라 누구든지 네 오른편 뺨을 치거든 왼편도 돌려 대며 또 너를 고발하여 속옷을 가지고자 하는 자에게 겉옷까지도 가지게 하며 또 누구든지 너로 억지로 오 리를 가게 하거든 그 사람과 십 리를 동행하고 네게 구하는 자에게 주며 네게 꾸고자 하는 자에게 거절하지 말라” 마태복음 5:38-42.
예수님은 우리가 다시 이용당하는 한이 있더라도 기꺼이 감수하고, 심지어 원수를 보살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왜냐하면, 이겨야 하기 때문입니다.
“네 원수가 주리거든 먹이고 목마르거든 마시게 하라 그리함으로 네가 숯불을 그 머리에 쌓아놓으리라
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 로마서 12:20,21.
예수님은 복수하려는 마음, 미워하는 마음을 완전히 버려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영생을 얻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형제를 사랑함으로 사망에서 옮겨 생명으로 들어간 줄을 알거니와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사망에 머물러 있느니라
그 형제를 미워하는 자마다 살인하는 자니 살인하는 자마다 영생이 그 속에 거하지 아니하는 것을 너희가 아는 바라
그가 우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셨으니 우리가 이로써 목숨을 버리는 것이 마땅하니라”
요한1서 3장 14,15,16절 말씀.
어느 목사님께서는 하나님께서 이끄시는 방법에 관하여서 설명하기를, 그에게 하나님께서 보여주신 좋은 인도하심에 대하여서 그 스스로가 거절한다면 하나님께서는 몇 번이고 그의 결정대로 가도록 두실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의 언약, 하나님의 약속이 이행되지 못하게 막을 수 있는 단 한 가지가 있다면 그것은 불순종인 것입니다.
만일 그들이 우리 주 되신 구주 예수 그리스도를 앎으로 세상의 더러움을 피한 후에 다시 그 중에 얽매이고 지면 그 나중 형편이 처음보다 더 심하리니
의의 도를 안 후에 받은 거룩한 명령을 저버리는 것보다 알지 못하는 것이 도리어 그들에게 나으니라
참된 속담에 이르기를 개가 그 토하였던 것에 돌아가고 돼지가 씻었다가 더러운 구덩이에 도로 누웠다 하는 말이 그들에게 응하였도다 베드로후서 2:20-22
우리가 다른 사람을 용서하지 못하고 분노의 응어리를 풀지 못할 때에 영혼에 고통을 가하는 악한 영들이 우리를 괴롭게 할 수 있습니다.
정신과 의사들과 과학자들은 용서하지 못하는 마음과 고통스러운 마음이 관절염이나 암 같은 질병들과 상관관계가 있다고 봅니다. 그리고 대다수의 정신병도 용서하지 못해서 맺힌 마음과 관련이 있습니다.
만일 사탄이 지금까지 당신을 자기 의지대로 무너뜨릴 수 있었다면 훨씬 이전에 심각하게 무너져 버렸을 것입니다. 지금 오늘의 모습의 당신의 존재는 하나님께서 보호하셨기 때문에 가능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많은 사람들에게 치료와 위로가 되셨고 어떤 사람들에게는 걸려 넘어지는, 실족케 하는 존재가 되셨습니다.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실족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예수님을 죽이려하였던 무리들은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실족한 것입니다.
세례요한은 예수님이 오실 길을 예비한 사람입니다. 그는 사람들에게 회개의 세례를 전파하였고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여서 모든 것을 바쳐서 열정적으로 헌신한 사람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를 예비하셨고, 하나님께 그가 순종했으며 하나님께서 그를 사용하셨고 하나님께 그가 순종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여자가 낳은 자 중에 세례요한보다 더 큰 자가 없도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나타나신 이후, 세례요한을 따르던 사람들은 모두 예수님께로 갔습니다. 게다가 세례요한은 옥에 갇히게 되었고, 또 금식하며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한 자신과 달리 예수님은 죄인과 세리와 먹고 마신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세례요한은 자신의 제자들을 예수님께 보내서 물어봅니다.
“오실 그이가 당신입니까? 아니면 우리가 다른 이를 기다려야 합니까?”
예수님은 그때 이렇게 대답하셨습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가서 듣고 보는 것을 요한에게 알리되
맹인이 보며 못 걷는 사람이 걸으며 나병환자가 깨끗함을 받으며 못 듣는 자가 들으며 죽은 자가 살아나며 가난한 자에게 복음이 전파된다 하라
누구든지 나로 말미암아 실족하지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하시니라“ 마태복음 11장4,5,6절 말씀입니다.
사실 세례요한은 ‘나는 쇠하여야 하겠고 그는 흥하여야 하겠다’ 라고 말한 사람입니다.
또한 그는 하나님의 영으로 충만하였을 것이며 충분히 환경을 뛰어넘어서 하나님과 동행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는 어린 자녀가 아니라 장성한 자였습니다.
그럼에도 예수님께서는 세례요한을 위하여서 ‘나로 말미암아 실족하지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다’라고 말씀하심으로서 마음을 쓰셨습니다.
하지만 오늘날엔 어떻습니까?
예수님과 같지 않은 사람들도 있고, 그러므로 우리는 상처받을 수도 있습니다.
그것이 실제로 공평하지 않기 때문에 자신이 상대를 용서치 않고 분내는 것이 당연하며 정당하다고 생각될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예수님께서는 거짓말을 하지 않으신다는 사실을 기억하고 다음의 구절을 생각해봐야 합니다.
“너희가 사람의 잘못을 용서하면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도 너희 잘못을 용서하시려니와 너희가 사람의 잘못을 용서하지 아니하면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 잘못을 용서하지 아니하시리라” 마태복음 6:14,15
John Bevere 존비비어 라는 목사님은 필리핀 선교사 친구로부터 아주 특이한 간증을 들은 적이 있다고 합니다. 그 친구가 선교 활동 중에 알게 된 사람의 이야기인데 그는 목회자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지만 7년 동안이나 거부하고 있었답니다. 사업적으로 아주 성공한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많은 돈을 벌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어느 날 그는 심장마비로 병원에 실려 가게 되었습니다.
그는 수술대 위에서 죽었고 자신이 천국문 밖에 서 있는 광경을 보게 되었습니다. 주님이 그 앞에 서 계셨는데 주님은 그의 불순종에 대하여 꾸짖으셨답니다. 그는 주님께 다시 한 번만 자신의 생명을 연장해 주신다면 순종하고 섬기겠노라고 간청했습니다. 다행스럽게도 주님은 허락해 주셨습니다. 그가 자기 몸으로 다시 돌아가기 전에 주님이 지옥의 한 장면을 보여 주셨습니다. 그는 그곳에서 그의 장모가 지옥의 불꽃 가운데서 타고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는 매우 놀랐습니다 장모는 ‘영접 기도’를 했고 그리스도인이 되기로 고백한 후 교회에 출석했었기 때문입니다. “왜 장모님이 저기 계신 거죠?” 그는 주님께 물었습니다.
주님께서는 장모가 그녀의 친척을 용서하지 못하고 끝내 거부했기 때문에 그녀 자신도 용서받지 못했다고 말씀하셨답니다.
...용서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용서를 받을 것이요. 누가복음 6:37
우리가 우리의 왕이신 주님을 섬긴다면, 그리고 진정으로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려면, 우리는 하나님의 법을 따라야 할 것입니다.
피차 사랑의 빚 외에는 아무에게든지 아무 빚도 지지 말라 남을 사랑하는 자는 율법을 다 이루었느니라. 로마서 13장8절
주님께서는 우리의 모든 죄를 용서해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천국은 그 종들과 결산하려 하던 어떤 임금과 같으니
결산할 때에 만 달란트 빚진 자 하나를 데려오매
갚을 것이 없는지라 주인이 명하여 그 몸과 아내와 자식들과 모든 소유를 다 팔아 갚게 하라 하니
그 종이 엎드려 절하며 이르되 내게 참으소서 다 갚으리이다 하거늘
그 종의 주인이 불쌍히 여겨 놓아 보내며 그 빚을 탕감하여 주었더니
그 종이 나가서 자기에게 백 데나리온 빚진 동료 한 사람을 만나 붙들어 목을 잡고 이르되 집을 갚으라 하매
그 동료가 엎드려 간구하여 이르되 나에게 참아 주소서 갚으리이다 하되
허락하지 아니하고 이에 가서 그가 빚을 갚도록 옥에 가두거늘
그 동료들이 그것을 보고 몹시 딱하게 여겨 주인에게 가서 그 일을 다 알리니
이에 주인이 그를 불러다가 말하되 악한 종아 네가 빌기에 내가 네 빚을 전부 탕감하여 주었거늘
내가 너를 불쌍히 여김과 같이 너도 네 동료를 불쌍히 여김이 마땅하지 아니하냐 하고
주인이 노하여 그 빚을 다 갚도록 그를 옥졸들에게 넘기니라
너희가 각각 마음으로부터 형제를 용서하지 아니하면 나의 하늘 아버지께서도 너희에게 이와 같이 하시리라” 마태복음 18장 22절로부터 35절 말씀.
예수그리스도께서는 십자가에 못박혀 피흘려 죽으셨습니다. 그는 하나님께 순종하심으로 십자가로 가셨고, 하나님께서는 모든 입이 예수님을 주라고 시인하게 하셨고, 모든 무릎이 그 앞에 꿇도록 하셨습니다.
“또 범죄와 육체의 무할례로 죽었던 너희를 하나님이 그와 함께 살리시고 우리의 모든 죄를 사하시고 우리를 거스르고 불리하게 하는 법조문으로 쓴 증서를 지우시고 제하여 버리사 십자가에 못 박으시고” 골로새서 2장 13,14절 말씀.
우리는 도저히 갚을 수 없는 죄의 빚으로 죽어있었고 하나님께서는 값없이 주 예수그리스도를 통하여서 죗값을 치러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용서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죽음이라는 권세를 이기시고 부활하셨습니다. 예수그리스도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신 것을 기억하십시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를 믿는 자는 내가 하는 일을 그도 할 것이요 또한 그보다 큰 일도 하리니 이는 내가 아버지께로 감이라” 요한복음 14장 12절 말씀.
예수님께서 아버지께로 감으로서 우리게 오신 것이 무엇입니까? 성령이 오셨습니다!
그러므로 이길 능이 있을 뿐 아니라 넘치도록 영광스런 승리가 가능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겨야만 하는 것입니다!
제가 어렸을 때, 입시학원을 다닐 때의 일입니다. 모든 수업이 끝나고 모든 학생들이 각자 버스를 타고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저도 밤늦게 버스에 올라탔는데, 그만 버스가 다시 학원으로 돌아올 때까지 잠이 들고 말았습니다. 정신을 차렸을 때, 버스 기사님께서는 버스를 학원에 세워놓고 뒷좌석을 둘러보고 계셨습니다. 나는 그 밤늦게 모든 교통이 끊어진 상태에서 집으로 돌아갈 수 있는 방법이 전혀 없었습니다. 막막했습니다. 그런데 그 아저씨께서 자신의 자동차에 타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달렸습니다. 그 깜깜한 시간, 도로엔 차들이 거의 없이 능숙한 솜씨로 달리시는데, 나는 경주용 자동차를 탄 듯한 착각이 들 정도였습니다. 코너링을 하는데, 마치 도로 위에 레일이 있어서 그 레일에 자동차가 고정된 채로 G를 견디며 완벽하게 도는 느낌이었습니다. 나는 무사히 집으로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그는 훌륭한 버스 운전기사였고, 또한 반복적으로 숙련된 도로였기 때문에 그런 놀라운 운전을 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도 우리의 인격을 단련시키고 연습시킴으로서 능숙하게 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지혜로우시기 때문에 우리에게 한꺼번에 많은 것을 요구치 않으십니다.
우리는 우리를 상처 입힌 사람들을 위하여서 기도할 수 있습니다. 우리 자신을 위하여서 기도하듯 그들을, 그를 위하여서 기도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우리는 외칠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 나는 그를 사랑합니다! 진심으로 그를 용서했습니다. 이제 나는 참으로 나를 사랑하는 것과 같이 그를 사랑합니다.”
‘성숙함’이라는 한걸음 전진을 이룬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도와주실 것입니다.
너희가 악할지라도 좋은 것을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 하시니라 누가복음 11장 13절
어떤 일들에 대하여서 사람은 책임지지 않으려 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결코 언약에 대하여서 책임감 없지 않으신 것입니다. 약속하신 바에 대하여서는 신실하신 것입니다.
오늘 이 기도문이 마음에 든다면 함께 기도했으면 좋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저는 저를 실족하게 했던 사람들을 용서하지 않음으로 하나님께
죄를 지었음을 인정합니다. 지금 이 시간 회개하오니, 용서해 주시
옵소서.
저는 하나님의 뜻을 저버리고 그들을 용서하지 않았습니다. 이제
저는 온 마음을 다해 그들을 용서하기로 결심했습니다(가능하다
면 그들의 이름을 부르면서 한 사람 한 사람을 용서한다.) 저는 이
제 그들이 내게 잘못한 모든 일들을 거룩하신 예수님의 보혈 아래
내려 놓습니다. 그들은 이제 더는 저에게 아무런 빚도 없습니다.
그들의 모든 죄를 없던 것으로 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우리 구주 예수님이 하나님께 죄를 범한 사람들을 용서해 달라고
기도하셨듯이 저도 저에게 잘못을 저지른 모든 사람들을 용서해
달라고 하나님께 기도드립니다.
그들을 축복해 주시고 하나님과 더욱 친밀한 교제를 나눌 수 있도
록 그들을 인도해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Lincoln Brewster의 iWorship Connect라는 앨범의 Today is the Day라는 찬양의 가사 중 이런 부분이 있습니다.
Today is the Day you have made
I will rejoice and Be Glad in Him
내일뿐 아니라 바로 오늘이 하나님이 만드신 날, 하나님 안에서 즐거워하며 기뻐하시기를 바랍니다.
참고:존비비어의 관계/NC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