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성경 속 핍박의 예
이방인을 위하여 복음을 전파한 사도바울은 자기 삶을 이렇게 기록한 바 있습니다.
“그들이 그리스도의 일꾼이냐 정신없는 말을 하거니와 나는 더욱 그러하도다 내가 수고를 넘치도록 하고 옥에 갇히기도 더 많이 하고 매도 수 없이 맞고 여러 번 죽을 뻔하였으니
유대인들에게 사십에서 하나 감한 매를 다섯 번 맞았으며
세 번 태장으로 맞고 한 번 돌로 맞고 세 번 파선하고 일 주야를 깊은 바다에서 지냈으며
여러 번 여행하면서 강의 위험과 강도의 위험과 동족의 위험과 이방인의 위험과 시내의 위험과 광야의 위험과 바다의 위험과 거짓 형제 중의 위험을 당하고
또 수고하며 애쓰고 여러 번 자지 못하고 주리며 목마르고 여러 번 굶고 춥고 헐벗었노라”
고린도후서 11:23-27
이 땅의 많은 신앙의 선배들도 핍박 속에서 믿음을 지켰습니다.
신사참배 거부로 많은 사람들이 옥에 갇혔지요.
그 신앙 선조들의 믿음을 이해합니다. 그들이 지키고자 한 것들의 가치도 이해하고, 그들의 진정성과 훌륭함을 이해합니다. 그렇지만 정작 나 자신은 그렇게는 못할 것 같았습니다.
개인적으로 나는 그런 핍박 앞에서는 굴복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절 한번만 하고나면 목숨도, 자유도 지킬 수 있는데...절 한번 하고나서 나가서 열심히 주님을 위하여서 더 나은 일들을 계획하고 시행하면서 살아가는 것이 더 나은 것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지요.
여러분 가운데서도, 어떤 어려운 일들을 생각해 볼 때 ‘과연 내가 견뎌낼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드는 부분이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제 생각은 이렇습니다. 우리가 언제 자기 힘으로 구원을 얻었습니까?
모두가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승리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직면하는 상황에 따라서 어떤 능력과 새로움을 부여해주실지 모르는 일입니다. 하나님께서 핍박을 이길 힘을 주시면 능히 이길뿐 아니라 더 높은 차원의 신앙으로 들어가게 하실 수도 있고, 핍박의 상황에 따라서 평소에 없던 힘과 사랑과 용기를 주실 수도 있는 것이라고 봅니다.
그러므로 자신의 현상태가 어떻든, 자신의 신앙이 어떻든,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사람이라면 하나님이 주시는 능력으로 말미암아 능하게 하시리라 믿는 것이 좋은 믿음일 것입니다.
2.핍박의 형태
“무릇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자는 박해를 받으리라”
디모데후서 3:12
“내가 세상에 화평을 주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화평이 아니요 검을 주러 왔노라
내가 온 것은 사람이 그 아버지와, 딸이 어머니와, 며느리가 시어머니와 불화하게 하려 함이니
사람의 원수가 자기 집안 식구리라
아버지나 어머니를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는 내게 합당하지 아니하고 아들이나 딸을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도 내게 합당하지 아니하며
또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지 않는 자도 내게 합당하지 아니하니라”
마태복음 10:34-38
“사환들아 범사에 두려워함으로 주인들에게 순종하되 선하고 관용하는 자들에게만 아니라 또한 까다로운 자들에게도 그리하라
부당하게 고난을 받아도 하나님을 생각함으로 슬픔을 참으면 이는 아름다우나
죄가 있어 매를 맞고 참으면 무슨 칭찬이 있으리요 그러나 선을 행함으로 고난을 받고 참으면 이는 하나님 앞에 아름다우니라”
베드로전서 2:18-21
3.핍박을 면하는 길
어떤 목사님께서는, ‘하나님의 법칙 안에서 살지 않기 때문에 핍박을 받는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즉, 예수를 믿으며 성경을 믿고 알면서, 구체적인 사항들에 하나님의 뜻을 따르지 않았을 때 하나님의 보호 영역 밖으로 나가게 되고, 핍박이 온다는 것이지요. 성령의 음성에 민감하여서 실생활 속 결정에도 세밀한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따르면 핍박이 아닌 형통의 길을 계속 갈 수가 있다는 것이지요. 이것은 거룩함과 지속된 기도의 삶 안에 헌신된 심령으로부터 가능한 것일 것입니다.
성경엔 고요하고 평안한 신앙생활을 할 수 있도록 지키신다는 것에 대한 약속의 말씀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내가 첫째로 권하노니 모든 사람을 위하여 간구와 기도와 도고와 감사를 하되
임금들과 높은 지위에 있는 모든 사람을 위하여 하라 이는 우리가 모든 경건과 단정함으로 고요하고 평안한 생활을 하려 함이라” 디모데전서 2:1,2 말씀
주 안에서, 오직 주 안에서 우리 위에 세우신 권세에 대하여서 복종하며 위하여 기도하되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함으로 하는 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각 사람은 위에 있는 권세들에게 복종하라 권세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지 않음이 없나니 모든 권세는 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바라
그러므로 권세를 거스르는 자는 하나님의 명을 거스름이니 거스르는 자들은 심판을 자취하리라
다스리는 자들은 선한 일에 대하여 두려움이 되지 않고 악한 일에 대하여 되나니 네가 권세를 두려워하지 아니하려느냐 선을 행하라 그리하면 그에게 칭찬을 받으리라”
로마서 13:1-3 말씀
또한 어느 목사님께서는 '돕는 일' '지원하는 일'에 대한 분별을 요구하십니다.
즉, 아무에게나 어떤 상황에나 지원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순종하는 일을 하는 사람에게,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일에, 물질과 관심과 기도와 정보와 가르침과 여러가지 요소들을 투입하라는 것입니다.
반면, 불순종의 길을 가는 사람에게는 돕는 것이 오히려 그의 사탄의 일과, 죄짓는 일을 도와주는 일이 될 수가 있기 때문에, 끊어버리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함으로서, 자기 자신도 올곧게 하나님의 편에 투입하는 인생으로서 존재할 수가 있겠지요.
그럴 때에, 자신의 삶의 모든 영역이 하나님의 보호하심 안에 거하면서 사탄의 공격으로부터 안전하며, 하나님의 축복속에 형통하고, 핍박이 있을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4.성도로서의 본분은 무엇일까요?
찬송가 ‘나 맡은 본분은’의 가사입니다.
나 맡은 본분은 구주를 높이고 뭇 영혼 구원 얻도록 잘 인도함이라
부르심 받들어 내 형제 섬기며 구주의 뜻을 따라서 내 정성 다하리
주 앞에 모든 일 잘 행케 하시고 이 후에 주를 뵈올 때 상 받게 하소서
나 항상 깨어서 늘 기도드리며 내 믿음변치 않도록 날 도와주소서
니다.
어떤 사람은 말하길, 군인이 절도 있는 동작과 말로 자신이 군인임을 스스로에게 확고히 하며 소임을 다하듯이 성도가 살아갈 때 주님의 명령과 자기 사명을 되새김으로서 스스로에게 확고히 할 수가 있다고 말합니다.
찬송을 부르는 일은 그런 면에 있어서도 아주 좋은 일입니다.
바울과 실라는 복음을 전하다가 점치는 귀신들린 여종에게서 귀신을 내쫓았습니다. 그 여종의 주인은 많은 이득을 얻고 있었는데, 귀신이 쫓겨가고나니 자기 수익이 끊어지고 소망이 끊어졌습니다. 그래서 바울과 실라를 관리들에게 고발하여서 감옥에 갇히게 하지요. 그 때, 감옥 안에서도 그들은 찬송을 불렀고, 그 결과 기적이 일어났으며 간수에게도 예수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게 되는 놀라운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사도행전 16:16-34
“우리가 기도하는 곳에 가다가 점치는 귀신 들린 여종 하나를 만나니 점으로 그 주인들에게 큰 이익을 주는 자라
그가 바울과 우리를 따라와 소리 질러 이르되 이 사람들은 지극히 높은 하나님의 종으로서 구원의 길을 너희에게 전하는 자라 하며
이같이 여러 날을 하는지라 바울이 심히 괴로워하여 돌이켜 그 귀신에게 이르되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내가 네게 명하노니 그에게서 나오라 하니 귀신이 즉시 나오니라
여종의 주인들은 자기 수익의 소망이 끊어진 것을 보고 바울과 실라를 붙잡아 장터로 관리들에게 끌어갔다가
상관들 앞에 데리고 가서 말하되 이 사람들이 유대인인데 우리 성을 심히 요란하게 하여
로마 사람인 우리가 받지도 못하고 행하지도 못할 풍속을 전한다 하거늘
무리가 일제히 일어나 고발하니 상관들이 옷을 찢어 벗기고 매로 치라 하여
많이 친 후에 옥에 가두고 간수에게 명하여 든든히 지키라 하니
그가 이러한 명령을 받아 그들을 깊은 옥에 가두고 그 발을 차꼬에 든든히 채웠더니
한밤중에 바울과 실라가 기도하고 하나님을 찬송하매 죄수들이 듣더라
이에 갑자기 큰 지진이 나서 옥터가 움직이고 문이 곧 다 열리며 모든 사람의 매인 것이 다 벗어진지라
간수가 자다가 깨어 옥문들이 열린 것을 보고 죄수들이 도망한 줄 생각하고 칼을 빼어 자결하려 하거늘
바울이 크게 소리 질러 이르되 네 몸을 상하지 말라 우리가 다 여기 있노라 하니
간수가 등불을 달라고 하며 뛰어 들어가 무서워 떨며 바울과 실라 앞에 엎드리고
그들을 데리고 나가 이르되 선생들이여 내가 어떻게 하여야 구원을 받으리이까 하거늘
이르되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 하고
주의 말씀을 그 사람과 그 집에 있는 모든 사람에게 전하더라
그 밤 그 시각에 간수가 그들을 데려다가 그 맞은 자리를 씻어 주고 자기와 그 온 가족이 다 세례를 받은 후
그들을 데리고 자기 집에 올라가서 음식을 차려 주고 그와 온 집안이 하나님을 믿으므로 크게 기뻐하니라
날이 새매 상관들이 부하를 보내어 이 사람들을 놓으라 하니”
간수와 그의 가족이 구원을 얻고 나서 바울과 실라는 풀려나지요.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하나님께서는 귀신의 간섭으로부터 시작하여 간수과 그의 가족의 구원에 이르기까지, 사람들에게 자유를 주셨고 (여종-귀신으로부터, 죄수-감옥으로부터) 원수의 활동도 모두 자기의 뜻을 이루시는 정황 안에서 사용하신 것 같습니다.
하나님은 가장 크시고 위대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자녀들아 너희는 하나님께 속하였고 또 저희를 이기었나니 이는 너희 안에 계신 이가 세상에 있는 이보다 크심이라” 요한1서 4:4
내 생각엔, 여종의 주인은 참 악독하고 불의합니다. 바울과 실라에게 있는 귀신을 쫓아내는 권능의 이유, 하나님께 대하여서 회개하며 돌아오려 하지 않고 오히려 그들을 고발하다니요, 반면 감옥의 간수는 참으로 책임감이 강합니다. 죄수들이 도망한 것이 지진 때문이요 자기 탓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자결하려 할 정도로 자기 직임에 충실한 정신을 갖고 있던 것을 봅니다. 하나님께서 그의 충직된 내면을 보셨기 때문에 바울과 실라를 만나게 하신 것은 아닐까요?
“여호와께서 사무엘에게 이르시되 그의 용모와 키를 보지 말라 내가 이미 그를 버렸노라 내가 보는 것은 사람과 같지 아니하니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 하시더라” 사무엘상 16:7
하나님께서는 나쁜 사람의 나쁜 행동을 사용하셔서도 결과적으로는 영혼을 구원하셨습니다.이처럼 하나님과 함께 하는 사람들에겐 하늘나라의 영광스런 승리가 있는 것입니다. 바울과 실라가 감옥에 갇히고, 간수를 만나고, 그에게 복음을 전하여서 구원을 얻게 하시는,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역사를 이루어 가신 것을 보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어떤 상황 가운데 있든지, 어떤 여정 안에 있든지 낙심하지 않고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은 분명 좋은 일입니다. 하나님의 선한 역사를 기대하십시오.
하나님을 찬양할 때 어느 곳에서든 하나님의 나라의 의가 이루게 되는 것을 보게 될 것을 믿어보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