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이트판 없이는 하루도 못사는 판죽순이임.
요새 기모노의 유래라하여서 글이 많이많이 올라오는데
그거에대해 한번 적어보려고함
나란팬더 어렷을적 7살시절 우리집과 막내이모네와같이
독립기념관에 놀러가봄.
근데.. 밀랍인형 재현해논거보고 하얗게질려 토하고 ...햇던 팬더임.
그리고 거슬러 사회란걸배우고 국사란걸배우고 한국사 배울때,
흔히들 지칭하는 반일감정 정말 정말 깊음..
나쁜말이지만, 위안부뉴스나, 독도문제나올때마다 그냥 침몰해버려라 라고 생각한적이
한두번이 아님.
기모노의 유래 읽으면서 내심 속으로 고소하기도 했지만,
내심, 진짜인가? 싶어서 인터넷을 쥐잡듯이 뒤져봄..그랫더니 나온진실임.
'일본알고까세요' 하는 종자들도 올려주지않던 기모노의 유래 올려드리겠음.
잘못된정보를 알고 잇는게 안좋은것같아서 올리는거지
내가 일본을 사랑하거나 좋아한다는건 죽어도 아님을 알려드림
다시한번 말씀드립니다.
댓글이 가관이네요. 저 일본놈아니구요 쪽바리도 아닙니다.
대한민국에서 나고자라 국사 한국사 배워가며 자란사람입니다.
일본옹호하려고 쓴글도 아닙니다.!!
정말 어이가 없고 속상합니다.
제가쓴글이 확실히! 라고 말씀드리긴 어렵습니다만은,
일단 일본의역사에 나오는이야기는 이렇다라고 말씀드리려고 했던것입니다.
정말 어처구니가 없군요.
무작정까자는식보다는 적을알고 나를 알아야 백전백승이라는 이야기입니다.
혹시나 성관계를 위해 만들어졌다는 기모노이야기가 잘못된정보일까,
그걸알고 그렇게 믿는사람들이있다면 잘못된정보를 계속 알아야하는걸까,
해서 올린글인데 쪽바리 취급당할줄은 몰랏습니다.
제윗글 안읽어보신분 정말 많더군요.
저 반일감정도 잇고 일본이라면 치를떠는 사람입니다.
근데 일본옹호글이라니..어이가 없습니다 정말
열받네요 오늘도 역시나 악플뿐, 지금 기모노이야기는 조회수 10000이넘어요 ㅋㅋ
근데 그거 아세요? 한복유래도 올렷는데 조회수 700인거?
댓글도 추천도 기모노이야기보다 못하다는거
기모노는 일본의 전통의상으로 천여년을 거슬러 올라간 헤이안 시대 중엽부터 제법 틀을 갖춘 기모노를 입기 시작했다고 전해진다.
기모노는 넓은 천을 둘둘 감는 식으로 특히 복대 같은 넓은 띠로 배에서 가슴 아래까지를 통째로 감싸는 오비가 기모노의 꽃으로 어떤 오비를 쓰느냐에 따라 기모노의 가격이 결정 되는데 오비에 따라 기모노 가격이 비싼 것은 수억엔에 이르는 것도 있으며 또한 이 오비만 풀리면 기모노는 완전히 벗을 수가 있다.
특히 현재는 아니지만 옛날에는 기모노 안에 속옷을 입지 않는데 이는 여체의 선에 포인트를 맞춘 기모노가 속옷 선을 드러내지 않기 위해 아예 생략했다는 말도 있고, 종족번식을 위한 어쩔 수 없는 '고육책'이었다는 분석도 있다.
바쿠후 시대 들어 파벌간의 싸움이 심해지면서 남자들의 씨가 점점 말라가자 여성들은 언제 어디서든 관계를 가질 수 있도록 만반의 준비를 하고 다녔다는 얘기다.
이게 우리가 전반적으로 판에서 보고들은 기모노의 유래,
정말인가 싶어서 인터넷 뒤지고 뒤져서 기모노의역사 이런거 알아냄.
기모노(着物 )의 역사
의복이라고 해봐야 고작 천에다 목 부분에 구멍을 뚫어 입던 것이 原始시대에 와서 비로소 옷다운 형태를 갖추게 된다. 이 시대의 옷은 여자는「きぬも」 , 남자는「きぬばかま」라고 해서 윗도리를 앞에서 여미고 끈으로 허리 부분을 묶어 양장 느낌이 드는 것이다. 그러다 아스카(飛鳥)시대에 와서는 당나라의 옷과 염직 기술이 들어와 여자는 소매가 긴 短衣에 허리 아래에 입는「も」를 한두 장 겹쳐 입고 그 위에 조끼와 같은 역할을 하는 背子(せし )를 둘렀으며, 남자는 머리에 관을 쓰고 목 부분에서 여미는 긴 상의에 허리띠를 두르는 의복을 입게 되었다.
귀족중심의 사회였던 平安(へいあん)시대에는 일본 풍토에 적합한 기모노가 만들어진 시기로, 의복도 귀족중심으로 발전하기 시작했다. 여자는 十二單(じゅにひとえ )라는 아주 화려한 옷을 입고 머리 모양을 앞머리를 좌우로 부풀려 정수리에 묶고 나머지는 길게 늘어뜨리는 모양을 주로 했으며, 남자는 사모관대를 연상시키는 束帶(そくたい)를 주로 입었다. 그러다가 귀족문화의 화려함이 사라지고 의복의 간소화를 추구하던 카마쿠라)시대를 거쳐 히로마치 시대에 와서는 현재의 기모노의 기초가 잡히기 시작했으며, 옷에 그 집안의 문장인 家紋을 새기는 관습도 생겨났다. 모모야마시대에는 조선으로부터 끈으로 묶는 기술이 전해지면서 帶(おび)가 생겨나 현재의 기모노가 확립되었고, 에도 시대에 들어와서는 帶(おび)가 점점 넓어지고 그 묶는 방법도 다양 시작했다.
메이지 시대가 되면서 서양 옷이 들어오긴 했지만, 여성들은 여전히 기모노를 입었고, 大正(たいしょう)시대에 들어와서야 여성들도 양장을 입기 시작했다. 요즘은 평상시에는 잘 입지 않고 결혼식이나 성인식, 기타 예의를 갖추어야 할 모임에 나갈 때나 명절에 주로 입는다.
- 기모노의 기본 형태
일본의상의 최초의 형태는 관두의로 목부분에 구멍이 있어 머리를 넣는 기모노였다. 후에 불편하다 하여 앞을 가로로 가르고 앞쪽으로도 입을 수 있도록 고안하였다. 그리고 옆선의 트인 부분은 맞물려 박고 소매를 붙이게 되었다. 현대 기모노의 기본형태는 발목까지 내려오는 길이에 소매는 길고 넓으며 목부분이 V자로 패여있고 단추나 끈이 없이 왼쪽 옷자락으로 오른쪽 옷자락을 덮어 허리에 오비를 둘러 묶는다. 목적에 따라 옷감의 종류, 모양, 색깔, 입는 법 등이 다르고 기혼여성과 미혼여성, 또 정식방문인지 가벼운 외출인지에 따라서도 옷모양이 달라진다.
-기모노의 유래
남방의 개방적 요소의 기초위에 일본 야마또 민족이 고온다습한 여름과 한랭한 겨울을 나기 위한 대비책과 작은 체격상의 결함을 감추고 보충하기 위한 수단으로서 연구, 개발한 것이다
기모노의 역사
1. 원시시대(∼561년)
원시시대의 복장은 하니와(옛날 무덤의 주위에 묻어주고 찰흙으로 만든 인형이나 동물)로 추측할 수 있는데 여성의 의상은 키누모(衣裳), 남성은 키누바카마(衣袴)라는 옷을 입었다. 웃옷의 왼쪽 여밈과 허리에 두른 띠가 특징.
2. 아스카 · 나라시대(562년∼793년)
불교가 전해지면서 당나라 풍의 복식과 염직이 사용되기 시작했다. 여성은 양 소매가 긴 단기누(短衣)를 입고 모(裳 · 옛날에 귀족이 정장을 입을 때 하카마 위에 입던 옷)를 한 장 혹은 두 장을 입었다. 그 위에 세시(背子)라는 조끼와 같은 것을 입고 어깨에는 히레(比礼 · 귀부인이 정장을 입을 때 어깨에 드리운 길고 얇은 천)라는 스카프를 걸쳤다. 남성은 머리에 관을 쓰고 목닫이의 아게구비(盤領)의 긴 쪽을 입고 허리에는 허리띠를 매고 속바지를 입었다.
3. 헤이안 시대(794년∼1191년)
귀족사회는 명주, 서민사회는 마로 옷을 만들어 입었던 시대로 일본의 풍토에 맞는 기모노가 만들어졌다. 여성은 쥬니히토에(十二単 · 옛날 여관들의 정장)나 코우치기(小うちぎ · 상류 계급 여성의 약식 예복), 남성은 소쿠다이(束帯 · 천황 및 문무 백관이 정무를 볼 때나 의식 때 입던 정장), 노우시(直衣 · 예 귀족의 평복), 카리기누(狩衣 · 귀족들의 평상복으로 에도 시대에는 무늬 있는 천으로 만들어 예복으로 입기도 함)라는 옷을 입었다. 서민들이 명주로 옷을 만들어 입는 것은 허가되지 않았다고 한다.
4. 가마쿠라 시대(1192년∼1333년)
검소한 생활, 활동적인 옷을 입었다. 여성은 키누바카마(衣袴 · 명주로 만든 하카마), 키누카즈키(衣被姿 · 명주로 만든 귀부인이 나들이할 때 머리로부터 덮어 쓰던 옷), 츠보쇼우조쿠(壷裝束 · 옷의 자락을 항아리처럼 늘어뜨리고 한 가운데를 상투와 갗이 옻칠을 한 상류사회의 여자용 삿갓)를 쓴 모습이었다. 남성은 무사의 경우 히타타레(直垂 · 소매 끝을 묶는 끈이 달려 있고 紋章이 없으며 옷자락은 하카마 속에 넣어서 입음), 카리기누, 옷깃은 타리구비(垂領 · 좌우 옷깃이 젖히는 것을 막기 위해 가슴 부분에 단 끈이 달려 있음), 소매는 츠유(露)라 하고 소매 끝을 끈으로 장식했다.
5. 무로마치 시대(1334년∼1573년)
지금의 기모노의 기초가 된 무로마치 시대는 네덜란드나 포루투갈 사람의 일본 방문을 계기로 사라사(更紗 · 인물, 조수, 화목, 또는 기하학적 무늬를 날염한 베, 무명, 비단 또는 무늬), 벨벳, 공단 등을 사용하게 되었다.
여성은 고소데가 겉옷이 되고 고소데바카마(小袖ばかま · 하의)나 고소데유마키(小袖湯巻 · 속치마)를 허리에 둘렀다. 남성은 무사의 경우 히타타레가 무사의 예복이 되고 옷자락을 길게 한 나가바카마(長袴)에 집안의 문장을 넣기 시작했다.
6. 아즈치 무로야마 시대(1574년∼1602년)
지금의 기모노 형태를 성립시킨 시대. 짧은 소매 형식의 의복이 완성되었다. 히젠노쿠니(肥前の国 · 옛 지방의 이름으로 사가현과 나가사키현의 일부 지방), 나고야에 조선에서 꼰 끈의 기술이 전해져 나고야오비(名古屋帯 · 양끝에 술을 붙인 둥근 실 띠로 무로마치 시대부터 에도 시대 초기까지 유행했으며 남녀가 다같이 사용)가 탄생했다. 그것을 허리에 여러 겹으로 돌려 묶었는데 기생이나 온천, 여관의 하녀들이 주로 입었다. 여성은 고소데와 기모노와 오비, 남성은 무사의 경우 히타타레가 무사의 예복이 됐고 평복으로는 카미시모[동풀이 센 가타기누(어깨와 몸통만 있고 소매가 없는 옷으로 고소데 위에 받쳐 입었음)]와 하카마가 한 빛깔로 염색된 에도 시대에는 무사의 예복으로 사용됐다.
7. 에도시대(1603년∼1867년)
오비의 폭이 점점 넓어졌고 묶는 법도 다양해지게 됐다. 일반 서민 여성은 에리모토(襟元 · 옷깃 언저리)나 에몬(衣紋 · 깃섶)을 느슨하게 해서 요염하게 입었다고 전해진다. 남성은 무사의 예복으로는 카미시모를 입었고 하오리(羽織)를 예복으로 입게 됐다.
8. 메이지 · 다이쇼 · 쇼와시대(1868년∼1989년)
메이지 시대는 여성들은 기모노를 입고 있었다. 남성은 양복을 입기도 했지만 정장은 기모노였다. 여성의 정장은 쿠로치리멘(縮緬 · 오글쪼글한 비단), 쿠로하부타에(羽二重 · 견직물의 일종으로 얇고 부드러우며 윤이 나는 순백색 비단)의 쿠로토메소데(留袖 · 예복으로 소매 길이는 보통이며 무늬와 문장이 달려 있음)를 입었다. 남성의 정장으로는 검은 문양의 하오리와 하카마였다.
다이쇼 시대에는 양복이 유행하고 여성들도 양장을 입게 됐다. 기모노에 있어서는 화려한 하오리가 유행했다. 또, 남성은 오오시마츠무기(大島紬 · 오오시마에서 나는, 붓으로 살짝 스친 것 같은 무늬가 많이 있게 짠 명주), 메이센(銘仙 · 꼬지 않은 실로 거칠게 짠 비단) 명주 등이 유행했다.
기모노의 종류
후리소데(振袖)
후리소데는 미혼 여성의 제 1예복으로 정해져 있고 가장 화려한 기모노로 에도 시대까지는 남녀 모두 입었지만 지금은 미혼여성만 입는다. 에바하오리(絵羽羽織 · 큼직한 그림 무늬가 들어있는 덧옷) 모양이며 무늬가 바느질 자리를 따라 연결되어 전체가 한 장의 그림처럼 되어 있는 것이 특징이다.
토메소데(留袖)
기혼여성의 제 1예복으로 쿠로토메소데(黒留袖)와 이로토메소데(色留袖)가 있다. 쿠로토메소데는 상반신에 무늬를 넣지 않은 옷단에서 옷깃까지 에바하오리 모양으로 되어 있는 것이 특징이며, 상반신은 소메누키(染抜 · 무늬 부분만 바탕 색깔로 남기고 다른 부분은 염색하는 것) 다섯 문장을 넣는다. 이로토메소데는 바탕이 컬러로 되어 있다. 문양 수에 따라 착용 범위가 넓어지는 것이 특징으로 화려한 바탕색과 격조를 살려서 사교용으로도 입을 수 있다.
호우몬기(訪問着)
기혼, 미혼에 관계없이 입을 수 있는 기모노로 에바하오리 모양으로 되어 있어 사교용으로 애용되고 있다.
이로무지(色無地)
오글쪼글한 비단이나 무늬가 들어간 옷감에 색을 넣은 전체적으로 문양이 없는 기모노를 말한다.
츠케사게(付け下げ)
어깨나 팔 옷단 등에 물들인 무늬가 앞길, 뒷길에서 모두 같은 방향으로 된 것을 츠케사게라고 한다. 근대에 와서 만들어진 기모노로 호우몬기와 구별이 쉽지 않은데 가봉한 상태에서 문양을 넣은 것이 특징으로 만들 때 상하가 바뀌지 않도록 그림을 그려 넣는다.
코몬(小紋)
코몬이란 자잘한 무늬를 말하는데 염색한 기모노의 경우 카타조메(型染 · 型紙를 무늬를 박아 염색한 것)로 같은 문양이 전체에 연속해서 놓인다. 사교용 기모노이지만 여러 가지 변형이 있다.
유카타(浴衣)
목욕을 한 뒤 입거나 여름철에 입는다. 무명 홑옷으로 하나비가 많이 열리는 여름 유카타로 한껏 멋을 낸 젊은이들을 자주 볼 수 있다. 옛날에는 목욕을 할 때 입은 것으로 내의로도 사용했다
( 아마 이게 그 속옷안입고 입는 기모노인것같음, 일본애니에서도 흔히 야할때 나오곤한것같음)
오비(帶) (이게 그 문제의 허리뒤에 매고다니는 담요대기)
일종의 허리띠로 작달막한 일본인의 체구를 눈가림하여 보다 예쁘게 보이기 하기 위한 미적 욕구에서 비롯된 아이디어이다. 원래의 기모노는 좁다란 띠를 둘러서 앞에서 묶었으나 임진왜란 무렵 일본인들이 한복의 넓은 옷고름과 선교사들의 사제복 허리에 새끼를 꼰 듯한 띠를 두르고 오른쪽 허리춤께에 예쁘장하게 매듭지어 늘어뜨린 모양을 접목시켜 오비가 퍼지게 되었다.
나고야 오비 - 폭이 34cm, 길이가 356cm이상으로 평상시 할 수 있는 간편한 오비
한하바 오비 - 폭이 15cm, 길이 350cm, 450cm
쯔꾸리 오비 -오비 묶는 법이 간단해서 손쉽게 할 수 있고 여기저기 여행할 때도 편리한 오비
오비의 3대 색상기법
시슈우 : 손으로 직접 수를 놓은 무늬. 입체감과 독특한 따스함을 준다.
소 매 : 옷감에 색상을 들이는 기법, 무궁무진한 무늬와 색상을 낼 수 있는 특징이 있다.
오 리 : 수공이나 기계로 짠 것. 중후감과 격조감이 있어 예의복으로 최고. 화려함
오비(帶)
기모노 위에 허리띠를 몇 겹씩 감아 뒤쪽으로 매듭을 짓는 형식으로 세계적으로 독특한 의복 형태 중의 하나이다. 오비에는 여러 가지 종류가 있으며 옷에 따라서 매는 오비의 종류도 달라지는데, 오비를 매는 위치가 허리보다 위에 있어 상대적으로 하반신이 길어 보이게 하는 효과가 있다고 한다.
그리고 오비(그문제의 허리담요)가 잘풀리는지 안풀리는지 궁금햇는데,
역시 지식인오빠는 모르는게 없는듯, 대답해주심
아학 힘듬 암튼 남자옷이 더잘풀린다고 지식인오빠가 대답해주심.
이건 일본 기모노 그림 ㅇㅇ
쓰다보니까 내가 무슨부귀영화 누리자고 이걸찾아서 여기다가 적고잇는건지 한심하게.. 느껴졌지만.. 그래도 올려봄 정말 알권리가 잇다고 생각해서임. 그럼 읽어주셔서 감사! 그럼 기모노에대한 얘기인만큼 한복사진들 투투투척!!
역시 한복은 퓨전도 예쁨 ㅋㅋ
글쓴이 고생했다● 몰랏던거 알아서 좀시원하다● 난 우리나라 사랑한다● 연예인 한복사진 마음에든다● ㅃㅃ2 .....3줄요약... 기모노는 일본인이 506년도 부터 입던 옷이 변형되고변형된것이다. 그등에까는담요대기의정체는 오비라고하는 천이겹치고겹쳐져서, 짧은 하체를 길어보이게하려고 멋낼라고 입는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