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수저작만 150권… '평생 미치도록 공부해온' 김윤식 전 서울대 국문과 교수
"요즘 학생들 思想이 없소… 저 괴물들이 다음 세대를 끌고 갈 텐데"
염상섭은 "6·25는 소낙비에 불과" 박경리 '토지'는 오래 살아남을 것 친일파는 시대에 정확히 적응한 者
4·19세대 김현은 '自由'에 묶이고 박완서는 "내 나이 20세에 정지" 누구든 세대 감각을 못 뛰어넘어한강이 보이는 서재에는 낡고 누렇게 변색된 책들이 빼곡하게 꽂혀 있었다. 그 속에 책상을 놓고 그는 연필로 원고지를 채워나갔다.
"교수 정년퇴임 하면서 트럭으로 2만여권을 지방대학에 실어 보냈어요. 내 인생 다 끝났다 했어요. 그런데 살아보니까 뭐 그렇지도 않아요. 여전히 매달 발표되는 문예지를 다 읽고 월평(月評)을 쓰니 말이오."
김윤식 전 서울대 국문과 교수가 또 책을 펴냈다. 정년 10년이 지난 75세의 나이다. '한국문학, 연꽃의 길'과 '혼신의 글쓰기, 혼신의 읽기' 등 2권이다. 전자는 '심청전' 연구서이고, 후자는 각종 문예지에 발표된 소설 111편에 대해 비평한 것이다.
어느 시기에 공부에 미칠 수는 있지만, 평생 공부에 미치는 사람은 드물다. 그는 '잡글'이 아닌 순수 저작물만 지금껏 150여권을 냈다. 그 속에는 '한국문학사' '한국근대문예비평사연구' '한국근대문학사연구' 등 기념비적 저술이 포함돼 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그것밖에 없었으니까. 취미도 없고. 바둑도 못 두고 테니스도 못 쳐요. 에도 준이라는 비평가가 있었는데 일본 극우의 대표였어요. 이념에 상관없이 내가 존경하는 이유는 죽을 때까지 글만 썼어요. 글을 못 쓰니까 자살해버렸어요."
―당초에는 작가가 되려는 꿈을 갖고 있었지요?
"대학에 들어간 것도 그 때문이었는데, 내가 재능이 없다는 걸 알았어요."
▲ 김윤식 전 교수는 "자기 분수를 모르면 훌륭한 비평가가 될 수 없다"고 말했다./채승우 기자 rainman@chosun.com―작가에 대한 콤플렉스가 있었습니까?
"비평가라면 당연히 있는 거지. 비평가에게 제일 중요한 것은 자기 분수를 알아야 한다는 겁니다. 겸허해지는 게 쉽지 않죠. 그걸 모르면 훌륭한 비평가가 될 수 없어요."
―남의 작품을 읽는 게 직업인데, 실제 읽다 보면 시시한 작품이 대부분 아닙니까?
"어떻게 보면 좋은 점이 있지 않을까 보는 거죠. 비평하려면 한 작품을 세 번은 읽어야 해요. 밤에 자다가 일어나도 고치곤 해요. 이건 지엽적이고…. 인간적으로 나보다 훌륭한 사람 많고, 평론가로서 나보다 잘난 사람 많을 거요. 하지만 '문학교육자'로서는 나보다 나은 사람이 별로 없을 거요."
―문학교육자라면 국문학 교수로서 학생들을 가르쳐온 것을 말하는 겁니까?
"아니, 그것과는 좀 달라요. 국사교육이 있지 않습니까. 어떤 교과서는 북한 이론과 똑같고, 어떤 교과서는 우편향이라 시끄럽지 않소. 어떻게 하든 편파적이지. 누가 집필해도 그럴 수밖에 없어요. 어느 세대나 자기 세대가 제일 아프다고 생각해요. 세대감각을 뛰어넘을 수가 없지. 김현(서울대 불문과 교수이며 문학평론가)같은 사람은 4·19세대거든. '내 나이는 18세(4·19가 난 해)에 정지돼 있다'라고 썼어요. 이청준이니 김승옥이도 그 패거리인데, 자유(自由) 그게 제일 중요해. 그러니 독재자 이승만을 절대 인정할 수 없어. 이들에게 맡겨놓으면 국사교과서를 그렇게 쓰겠지."
그는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을 이끌어갔고, 내가 방문한 목적은 모호해졌다.
"박완서는 '자기 나이는 20세에 정지됐다'는 거요. 자기 오빠가 빨갱이에게 총살당했잖아. 풍비박산된 집안이야. '나목(裸木)' 작품을 보면 나만 억울하다는 거야. 왜 우리 집안만 이래 됐나. 그걸 절대 용납할 수 없어. 죽기 전 수필집 '못 가본 길이 더 아름답다'에도 그렇게 나와. 어째서 지만 억울해. 억울하지 않은 세대가 어디 있고 억울하지 않는 사람이 세상에 어딨어. 팔십이 돼도 그걸 못 버리는 거야. 이러니 국사 교과서를 집필하는 세대에 따라 달라질 수밖에 없어요. 방법은 개화기나 일제초로 끝내고, 최근대사를 안 가르치는 것밖에 없는데. 그러면 역사가 단락이 돼요. 그 뒤로 연속성을 어떻게 하느냐. 그게 문학이 담당하는 거요."
―문학이 어떤 방식으로 역사의 연속성을 담당한다는 뜻인가요?
"고교 과정에 '문학 상하(上下)'를 배웁니다. 대입 국어 지문이 대부분 문학이니, 좋든 싫든 문학을 공부하지 않을 수 없어요. 작품을 통해 최근대사를 배우게 되는 겁니다."
그는 "내가 어떤 존재인지를 보여드릴까요" 하며 서재로 가 자신이 작품 선정을 맡고 있는 검인정 문학교과서 목록을 들고 왔다.
"문학교육자로서 내가 이 사회 이 나라에 기여하고 있다고 감히 말하는데, 이게 건방지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어떤 작품을 선정할 때면 나름대로 역사를 보는 시각이 작용하겠지요?
"사상적으로 이쪽, 저쪽, 중간인 작품이 섞여 있어요. 이걸 가르치면 역사를 가르치는 겁니다. 염상섭의 '취우(驟雨)'는 조선일보에 2년 동안 연재한 것인데, 6·25라는 그 엄청난 비극이 소낙비에 지나지 않는다는 거요. 서울에 인민군이 왔을 때도 쌀가게 다 열어놨고 전차 다 다녔다고, 남한의 최고 작가라는 그가 햇빛이 나면 금방 마르는 물방울 떨어진 흔적만 좀 남아있을 뿐이라고 써버렸다고. 굉장하지 않습니까. 최인훈의 '광장(廣場)'은 그때는 대단했지만 요즘 보면 엉터리고(웃음)."
―대표적인 지식인 소설로 꼽히지요.
"이건 포로 교환할 때 남(南)도 북(北)도 거부하고, 제3국을 택하는데, 이는 4·19 분위기가 아니고는 절대 그렇게 쓸 수가 없어요. 이런 역사의 연속성을 문학이 아니면 어디서 획득하겠소."
―교수님 개인은 어떤 이데올로기를 갖고 있느냐가 궁금합니다.
"박경리의 '토지'는 21권짜리인데, 아무리 빨리 읽어도 보름 걸립니다. 내가 세 번 읽었어요. 최 참판댁 당주인 최치수가 만주로 독립운동 하러 가는 이동진과 이런 대화를 나눕니다. '독립운동을 하러 가는 것은 군왕을 위해서냐?' '아니다.' '백성을 위해서냐?' '아니다.' '그러면 누굴 위한 독립운동이냐?' '이 산천(山川)을 위해 간다.' 이게 '토지'의 주제라고. 이 작품을 자세히 읽어보면 뻐꾸기 울음이 여섯 번 나옵니다. 사실 뻐꾸기는 밤에 안 울지만. 또 주인공이 만주 벌판에서 괴로워할 때마다 최 참판댁 담을 타고 피어 있는 능소화를 떠올립니다. 이 작품의 생명이 상당히 길 것으로 봅니다. 이데올로기는 바뀌지만, 산천은 변함없거든. '태백산맥(조정래)'이나 '지리산(이병주)'은 오래가지 못할 겁니다."
―교수님은 마르크스주의자인 게오르그 루카치(헝가리)의 영향을 많이 받은 걸로 압니다. 소설 분석의 틀을 거기서 빌려왔지요.
"1970년 일본에 공부하러 갔을 때 '소설의 이론' 원서를 구했어요. 지금 생각하면 유치하기 짝이 없는데, 첫줄에 별을 노래하고 있어. '복되도다 그 시대가, 하늘의 별이 지도의 몫을 하는 그 시대가 복되도다.' 그 시대는 신과 인간이 함께 살았다는 희랍시대를 뜻하는 거요. 어느 날 신이 떠나니 세계가 캄캄해졌어요. 그러면 길을 어떻게 찾나. 각자가 찾아야 한다. 불안한 개인이오. 이게 근대입니다. 여기에 맞는 양식이 소설이다, 그런 얘기인데…."
―루카치의 공산주의 세계관과 인간관에 매료됐나요?
"살아보니까 실망했어요. 헝가리 부다페스트로 소련 탱크가 쳐들어왔을 때 그가 아무런 발언도 안 했다는 걸 알게 됐소. 조국이 짓밟히고 있는데, 저게 지식인이라고 할 수 있을까. 당(黨)만 보이고 딴 것은 아무것도 안 보일까. 내가 공부한 것이 동화(童話)였나 했어요."
―이념과 가치가 국가보다 위에 있으면 그럴 수 있겠지요.
"이념에 목을 거는 사람을 무시하진 않아요. 존중해. 하지만 언젠가 이념 자체에 의해 배신을 당할 겁니다.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우리가 살고 있는 일상적 관습이 더 중요한 게 아닌가. 아침에 밥 먹고 출근하고 저녁에 자는 것은 옛날에도 지금도 앞으로도 그럴 겁니다."
―교수님은 일제시대 좌파 계열(카프) 작가들에 대해 본격적인 연구를 했습니다. 금기시되던 월북문인들에 대해서도 그렇고. 이는 개인의 이념 취향과 무관한 겁니까?
"제가 유신반대에 서명했다고 남산 안기부에 붙들려간 적이 있어요. 조사관이 '당신이 그런 글 쓰는데 조사하고 방해했던 적 있던가?' 해요. 우리 집안은 사회주의 사상과 아무 관계가 없어요. 근대자본주의에 대해 연구하다 보니 그렇게 된 것뿐이지요."
―근대사에서 주요 쟁점은 친일문제입니다. 교수님이 연구한 이광수·김동인 등 일류급 작가들은 하나같이 친일로 갔지요.
"이광수는 어린 나이에 일본에 유학 가서 목사댁에서 지냈습니다. 그 일본인 목사가 매일 '하나님, 대일본 제국을 위해 도와주소서' 기도하는 걸 보고는 죽을 때까지 기독교를 믿지 않았소. 이런 인간이 어떻게 친일로 빠졌는지 생애를 복원하고 따져봤죠. 친일파는 어쩌면 시대에 적응해 정확하게 잘 산 사람들이지."
―친일의 잣대로 그 시대 인물을 재단하고 낙인찍는 게 과연 옳은 것일까요?
"국가와 민족을 믿는 사람 같으면 그렇게 해야지. 하지만 그게 진실과는 상관없지. 함석헌씨 표현이 가장 적절해요. '도둑처럼 온 해방'이라고 했듯이. 그 시절 해방이 될 거라고 떠드는 사람이 있었다면 그건 정신병자일 거요. 친일이냐 아니냐는 없고, 다만 통치부와 피(被)통치부만 있는 거요. 채만식의 '태평천하'에는 '구한말 나라가 어지러울 때 의병이 뛰어나와 소도 잡아가고 했는데, 일본 헌병이 와서 질서를 잡아 태평천하가 됐다'는 거야. 풍자(諷刺)지만. 어떤 정부가 제일 좋으냐 하면 자기에게 이익이 되면 좋은 정부지. 민족이 어떻다 뭐가 어떻다는 것은 다 지엽적인 것이지, 그런 걸(이익) 감춰놓고 얘기하면 진실과 상관없는 거지."
―대학에서 강의할 때 자신의 젊은 날과 비교해 학생들의 무지, 철부지함, 얕은 견식을 보면 화가 안 났습니까?
"내 연구실에는 학생이 거의 찾아오질 않았어요. 좋은 소리만 하는 사람들은 성공한 사람들입니다. 실패자는 자신에게든 남에게든 가혹한 법이지."
―교수님 같은 분이 실패자라면.
"내 목표에 못 미치고 있다고 생각한 거죠. 지금 돌아보면 한심하지."
―요즘 학생들이 나약하게 비칩니까?
"무서워요. 내가 안 갖고 있는 것을 굉장히 많이 갖고 있는데, 조각난 지식밖에 없어요. 말하자면 사상이 없어요. 괴물처럼 보여요. 저 괴물들이 다음 세대를 이끌어나갈 텐데."
―어느 날 '내가 미치도록 매달려온 것이 그렇게 대단한 것이었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 적 있습니까?
"작년에 입원했을 때 그런 생각을 해봤어요. 한 달 만에 퇴원하고선 잊어버리고 또 글 쓰고 있어요. 어쩔 수 없구나."
그는 구부정하게 일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