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노현 재판부 "약속 없어도 금품제공 범죄"
첫 공판서 관련법 해석 밝혀 ´눈길´
곽노현 “보다 높은 도덕률 실천한 것"
지난해 서울시교육감 선거 후보단일화 대가로 박명기 서울교대 교수에게 2억원을 건넨 혐의로 구속기소된 곽노현 교육이 ‘선의로 준 것’이라는 기존 입장을 재확인하며 혐의를 부인했다.
곽 교육감은 17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7부(김형두 부장판사) 심리로 형사 311호 법정에서 열린 첫 공판에서 “후보단일화 이전에 후보매수를 사전에 합의하거나 공모한 적이 없고, 사후에 승인한 적도 없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재판부는 이날 공판의 쟁점사안이었던 사전합의 및 금품제공의 대가성과 관련한 공직선거법 조항의 해석과 관련해 ‘사전 약속과 관계없이 후보직을 사퇴했다하더라도 후에 사퇴한 후보자에게 금품을 제공하면 범죄가 성립된다’고 밝혔다.
이는 곽 교육감 측의 주장과 대치되는 것으로, 그동안 곽 교육감 측은 사전합의가 없었다면 대가성은 증명되기 어렵기 때문에 해당 조항을 적용할 수 없다며 무죄를 주장해왔다.
곽 교육감은 자신의 혐의가 없다는 것에 강한 확신을 나타냈다. 연두색 수의를 입고 출석한 곽 교육감은 “검찰이 오해할만한 몇 가지 정황이 없는 건 아니다”면서도 “저의 상세한 진술을 통해 사전에 합의했거나 공모한 적이 없고, 사후에 승인한 일이 없음을 충분히 알 수 있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곽 교육감은 “검찰은 진실을 외면하고 시나리오 대로 일방적인 진술만 끼워넣어 억지로 기소를 강행했다”며 “선거 전후로 포괄적 의미의 경제적 지원을 약속하지 않았다”고 부인했다.
곽 교육감은 후보단일화에 따른 경제적 지원을 구두로 합의하거나 보고받은 바 없다면서 “지난해 10월 하순 그런 내용을 보고받았을 때도 추인하지 않았다. 불미스러운 일이 없었다는 것이 아니라 나 모르게 됐으며, 꼬리자르기 같아 내키지 않고 부끄럽지만 이것이 진실”이라고 거듭 주장했다.
곽 교육감은 “내가 깨달은 도덕률에 따라 박명기 교수의 형편이 너무나 어려워 도와드리기로 한 것이다. (다만) 이것이 드러나면 크게 오해를 받을 수 있어서 몰래 전달했다”며 “‘2억 원이 어떻게 선의의 부조냐’는 비아냥이 들려오지만 그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곽 교육감은 “진실이 오해보다 강하고 선의가 범의보다 강하다는 것이 재판을 통해 드러나리라 확신한다”며 “나는 보다 높은 도덕률을 실천했다고 생각한다. 내 양심과 친구의 양심, 그리고 하늘이 이 사실을 알고 있다”고 덧붙였다.
박명기 서울여대 교수도 후보단일화에 따른 경제적 지원은 곽 교육감이 모르는 일이었다고 말했다.
박 교수는 “곽 교육감이 중요한 교육감직을 수행할 수 없게 된 것을 죄송하게 생각한다”며 “선거 이후에 인간적으로 너무나 힘들었다는 점을 이해해 주기 바란다”고 말했다.
박 교수는 “후보단일화 과정에서 곽 교육감이 정책연대 약속을 했지만 지켜지지 않았고 교육감 당선 이후에는 나와 가까운 사람들을 교육청 인사에서 일방적으로 배제시켰다”며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이 지속되면서 선거비 보전 약속도 이행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어 박 교수는 “지난해 8월경 곽 교육감을 찾아가 선거비 보전 등을 물어봤더니 곽 교육감이 깜짝 놀라면서 모르는 일이라고 부인했다”며 “이후 11월 중순경 곽 교육감을 한번 더 만났을 때도 부인했었다. 단일화에 따른 선거비 보전 등에 관련해 서로 내용을 공유했다고 생각했는데 금전적 어려움보다 마치 집단 사기꾼들에게 당하는 듯 서로에게 넘기는 것을 보면서 화가 났었다”고 털어놓았다.
박 교수는 “나중에 강경선 방송통신대 교수가 도와주겠다고 제안해, ‘(2억원 외에) 조금만 더 도와 달라’고 했지만 강 교수는 ‘이것도 (마련하는 게) 힘들다’고 해서 급한 것들만 처리하기 위해 받았다”며 “"실체적 진실을 밝히는 것도 중요하지만 땅에 떨어진 내 명예가 법리적 논쟁에 파묻히는 건 아닌지 우려스럽다”고 했다.
박 교수는 “곽 교육감이 이해할 수 없는 방식으로 나를 대해 힘들었고 많이 원망했지만 강 교수 등의 노력으로 곽 교육감과 신뢰가 어느 정도 회복됐다”며 “후보단일화는 ‘민주진보진영의 분열로 선거에서 졌다’는 멍에를 지고 싶지 않아 결정한 것이었다. 선거비용을 처리하는 방식에서 문제가 있었고 그것이 실정법에 어긋난다면 (처벌을) 달게 받겠다”고 말했다.
한편, 곽 교육감과 박 교수가 ‘후보단일화에 따른 이익제공을 사전에 약속했는지 여부에 따라 범죄가 성립된다’는 주장을 펼치자 재판부는 이에 대한 프리젠테이션을 해 눈길을 끌었다.
재판부는 “피고인과 검찰의 법 해석이 달라 공직선거법 제232조 1항 2호에 대한 해석을 교과서 등에서 찾아 봤다. 이에 따르면 ‘사전약속 없이 사퇴했더라도 나중에 이익이 제공되면 죄가 성립한다’고 해석하고 있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후보자에 대한 매수 및 이해유도죄’를 명시한 해당 조항에 대해 ‘사퇴한 동기가 이익의 제공과 무관해도 그 후에 후보의 사퇴에 대한 대가 목적으로 이익의 제공이 행해지면 범죄가 성립된다‘고 해석한 한국의 교과서를 들었다.
또 일본의 관련법 해석과 대법원 판례를 들어 “‘사퇴의 동기가 이익의 동기와 무관해도 입후보 단념의 보수로 공여를 하면 범죄가 성립한다고 해석했다’”고 밝혔다.
다만 재판부는 “변호인들의 해석도 충분히 가능하고, 사회 현상에 따라 법 해석은 바뀔 수 있다”면서 “이런 해석을 그대로 받아들이겠다는 것은 아니지만 교과서가 이렇게 해석하고 있다는 점을 알아두셨으면 좋겠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검찰과 양측 변호인들은 관련법 해석을 두고 입장차를 보이며 치열한 공방을 예고했다. 검찰은 ‘사전약속이나 합의 여부를 떠나 대가성 혐의를 성립되며 박 교수가 제공받은 서울시교육발전위원회 부위원장직 역시 대가성의 일환’이라는 점을 지적했다.
이에 대해 양측 변호인은 사전합의 여부가 범죄사실의 성립에 중요한 요소이며, 서울시교육발전위원회 부위원장직은 무보수 명예직인데다 위원들에 의해 선출되는 자리인 만큼, 대가성의 일환으로 보기 어렵다고 반박했다.
곽 교육감과 박 교수는 지난해 치러진 6.2 서울시교육감 선거에서 후보단일화의 대가로 지난 2월부터 4월까지 6차례에 걸쳐 현금 2억원을 주고 받고, 서울교육발전자문위원회의 위원직을 제공하고 이를 받은 혐의로 구속기소됐다.
2차 공판은 다음달 1일 열릴 예정이며, 재판부는 올해 안으로 선고를 내릴 방침이다.[데일리안 = 변윤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