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라운 하나님의 사랑에 관하여서 전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거룩, 창조, 말씀, 공의에 대하여서 말씀 드렸고, 오늘은 하나님의 ‘관심’에 대하여서 말씀드리겠습니다. 들어가기에 앞서, 지금까지의 말씀들을 바탕으로 하나님의 속성과 우리의 행할 바에 관하여서 생각해 볼 수 있는 성경 구절들이 많이 있지만, 특별히 잠언서를 몇 구절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쾌락을 좋아하는 자는 가난하게 되고 술과 기름을 좋아하는 자도 부하게 되지 못하리라
잠언 21:17
모든 목적마다 의논으로 성취되나니, 훌륭한 조언으로 전쟁할지니라
잠언 20:18
여러 사람들의 의견을 통하여서 일의 좋은 결과를 낼 수도 있지만, 우리가 자신의 내면에서 여러 가지 조언들을 스스로 낼 수도 있고, 논리와 분석으로 좋은 판단을 낼 수도 있을 것입니다.
지식이 있는 자는 말을 삼가며, 명철한 사람은 뛰어난 영을 가졌느니라
잠언 17:27
공의를 행하는 것이 의인에게는 기쁨이나, 죄악을 행하는 자들에게는 멸망이 있으리라
잠언 21:15
저는 개인적으로 생각하건데, 스토커 기질이 있는 사람들이 참 괜찮은 사람들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한 사람, 한 인물에게 끊임없이 집중할 수 있는 열정이 있기 때문에, 그 열정의 방향을 예수님께로 돌려서 예수님께 집중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지요.
어떤 학교의 같은 반에 다니던 남녀학생이 있었습니다. 남학생은 여학생을 스토커처럼 따라다니며 좋아하는 마음을 표현하곤 했지요. 여학생은 처음엔 계속 거부하고 밀어내며 남학생을 싫어하고 피했지만, 수년이 지나도록 스토커처럼 붙는 남학생에게 여학생은 마음을 주게 되었고, 결혼까지 하게 되었습니다. 신랑과 신부가 결혼식을 마치고, 신혼여행을 다녀와서, 혼인신고를 하고, 함께 거하는 집에서 그 둘이 같이 거하고 있던 어느 날이었습니다. 여자가 밤에 잠을 자고 아침이 되어 눈을 떠보니 자신의 팔다리가 의자에 묶여 있고, 눈 앞엔 남자의 목매달아 죽은 시신이 정면에서 가볍게 흔들거리고 있었습니다.
수십 시간 후에 경찰이 슬픔과 충격과 공포 속에서 몸부림치던 여자와 유서를 발견하였고 그 유서의 내용은 이러했습니다. “내 인생의 목적은 너와 결혼하는 것이었어. 드디어 다 끝났네?”
경찰은 남자가 스토커처럼 여자에게 구애하는 시간동안 쌓인 거절에 대한 복수로서 잊히지 않을 기억을 여자에게 남기고 죽고자 한 것으로 여기고 사건을 마무리 지으려 했습니다만 국립과학수사 연구소는 남자의 시신에서 목에 졸린 흔적을 발견하게 되었고, 그것은 놀랍게도 밧줄에 목을 매이기 이전에 이미 목이 졸려 숨진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알고 보니, 남자의 끊임없는 구애에 결혼을 한 여자는, 결혼 후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고 정신을 차려보니, 원치도 않던 남자에게 결혼하게 되어서 비참하다는 생각이 들었고, 여자 자신의 어릴 적 꿈과는 멀게 되어버린 현실이 허탈하게 느껴져서 나란히 자던 침대 위에서 남자가 잠든 사이에 목을 졸라 숨지게 하였다는 것이었습니다. 재판부는 여자의 증언을 듣고 여자가 제 정신이 아닌 상태라고 판단했습니다. 또 필히 사회로부터 격리해야 한다고 판단하여서 여자를 정신병원에 무기한 가두어 관리하도록 판결했다고 합니다. 제가 만든 이야기 입니다만...
사람이 예수님께 집중한다면 얼마나 놀라운 결과를 얻게 되겠습니까?
또한 우리 자신이 하나님께로부터 택함 받은 자들로서, 지옥에 가지 않고 천국에 가는 길을 알게 되어 영원한 복을 향하여서 침노해 들어갈 수 있다는 사실이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이렇게 행하면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내 영혼이 잘 될 것이라고 여기기 때문에 이 일을 합니다!” 라고 세상에서 많은 사람들 앞에 말한다면, 아마도 적지 않은 무리들이 우습게 여기고, 깔보고, 비방할 것입니다. 그 가치를 모르는 것이지요. 하나님 앞에서 두려움과 즐거움으로 의를 행하는 것을 목적으로 두는 것에 대한 의지도, 생각도, 개념도 갖추지 않고 있는 자들이 있는 것입니다. 그만큼 적지 않은 무리들이 내면에서 하나님을 업신여기고, 공의와 참 진리의 가치를 알줄 모른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약속대로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 된 바울은” 디모데후서 1:1
“오직 부르심을 받은 자들에게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니라” 고린도전서 1:24
여호와 하나님의 사랑을 입어서,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어 하나님의 사랑을 입은 우리는 얼마나 소중하고 가치가 있는 은혜를 입은 존재입니까? 얼마나, 참으로, 귀중한 보석을 얻은 것보다 더 가치 있고 기뻐할만한 일이라 이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관심’을 갖고 계십니다!
당신은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하셨습니까? 하나님께서 예수를 죽음에서 다시 살리신 것을 마음에 믿습니까? 회개하였습니까? 거듭났습니까? 성령으로 충만하십니까? 영원한 천국에 대한 소망으로 넘치고 계십니까?
이 모든 질문 가운데 하나라도 ‘예’ 할 수 있다면 이는 여호와 하나님의 ‘관심’ 안에 있다는 증거인 것입니다.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로마서 5:8
성경은 하나님이 마음을 살피시는 이시라고 말씀합니다.
“마음을 살피시는 이가 성령의 생각을 아시나니 이는 성령이 하나님의 뜻대로 성도를 위하여 간구하심이니라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로마서 8:27,28
하나님께서는 특별히, 우리의 영혼에 ‘관심’을 갖고 계십니다!
“여호와께서 사무엘에게 이르시되 그의 용모와 키를 보지 말라 내가 이미 그를 버렸노라 내가 보는 것은 사람과 같지 아니하니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 하시더라” 사무엘상 16:7
“의인을 시험하사 그 폐부와 심장을 보시는 만군의 여호와여 나의 사정을 주께 아뢰었사온즉 주께서 그들에게 보복하심을 나에게 보게 하옵소서
여호와께 노래하라 너희는 여호와를 찬양하라 가난한 자의 생명을 행악자의 손에서 구원하셨음이니라” 예레미야 20:12,13
이 사실은 절대로 잊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그토록 사랑하신 다윗은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보소서 주께서는 중심이 진실함을 원하시오니 내게 지혜를 은밀히 가르치시리이다”
시편 51:6
우리들도 하나님께서 갖고 계신 ‘관심’을 닮아야 하는 것입니다!
어떤 관심입니까? ‘영적관심’ 입니다!
“육신을 따르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따르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하나니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이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하지 아니할 뿐 아니라 할 수도 없음이라
육신에 있는 자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느니라” 로마서 8:5-8
또한 여러분이 영혼을 구원함에 이르는 믿음을 가진 자라면, 과연 그 사실이 증명되어서 살아있는 믿음, 능히 구원하는 믿음이 되도록 해야 합니다.
“너희가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로되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니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사람은 하나님의 아들이라” 로마서 8:13,14
다른 사람들을 볼 때나 대할 때에도, 전에는 세상이 추구하는 것과 자기 욕심이 선택하는 바를 따랐다면, 이제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적관심’으로 목적을 두고, ‘영적관심’에 방향을 두고서 나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내면의 얼굴은 가꾸면 가꿀수록 젊어지고 아름답게 됩니다!
사람을 대할 때에도, 사람들을 도울 때에도, 사업을 할 때에도, 직장을 다닐 때에도, 공부 할 때에도, 연구할 때에도, 기도하고 찬양하고 헌금하고 선교할 때에도, “어떻게 하면 한 영혼이라도 더 구원되도록 할까?” “어떻게 하면 여호와의 말씀이 전파되며 인정되게 할까?” “어떻게 하면 성령의 역사를 도울까?” “어떻게 하면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도록 할까?” 라는 고민을 하게 되고, 실천을 하게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인과응보’나 ‘권선징악’에 대한 개념조차 없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논하기 이전에, 선을 행하면 선한 보응을 받을 것이며, 악을 행하면 악한 보응을 받을 것이라는 기본 인륜에 관한 믿음조차도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런 사람들의 삶을 조금만 들여다보면, 삶 자체가 ‘토사구팽’ 입니다. 모든 생활과 행동의 기준을 자기 이기적 욕심과 선치 않은 이익과 눈앞의 쾌락에 두지요. 이러한 상태 자체가 심히 교만한 것입니다. 진리를 알지 못하고 거짓에 자기 믿음과 행위를 두고 있으니, 이야말로 얼마나 교만한 자인 것입니까?
“사람의 마음은 멸망에 앞서 교만해지고, 존귀에 앞서 겸손이 있느니라” 잠언 18:12
하였습니다.
그러한 생각을 갖고 사는 사람은 반드시 망하게 되어 있습니다. 환난과 고통과 앙화가 멀지 않아요. 또 혹여 그들에게 이 땅에 살 때에 재앙이 임하지 않는다고 할지라도, 오히려 저주일수밖에 없는 것은, 돌이킬 기회를 얻지도 못하고, 회개하지도 못한 채 영원한 지옥형벌로 떨어져 영원히 저주받은 존재가 될 수밖에 없다는 데 있는 것입니다.
“육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의 성령의 일들을 받지 아니하나니 이는 그것들이 그에게는 어리석게 보임이요, 또 그는 그것들을 알 수도 없나니 그러한 일은 영적으로 분별되기 때문이라
신령한 자는 모든 것을 판단하나 자기는 아무에게도 판단을 받지 아니하느니라”
고린도전서 2:14,15 말씀
복음의 비밀은 이 세계에서 통하는 인륜과 도덕으로도 다 설명될 수 없는 고차원의 것인데 하물며 기본적 수준의 도덕률도 알지 못한다면, 인정하지 않는다고 한다면, 어떻게 하나님을 알 수가 있겠습니까?
옳고 그름에 대한 바른 가치기준이 세상 어느 곳에도 있고, 그것은 분명 사실입니다.
그런데 이 사실을 보고, 듣고, 경험하고, 알고도! 인정하지도 않고, 일부러라도 내면에서 받아들이지 아니하는 행위와 태도의 어리석음은 얼마나 큰 어리석음입니까? 그러한 사고방식과 그러한 태도는 지옥에 이를 만큼 어리석은 것입니다!
머리를 어떻게 하고 왔는지, 입술은 어떤 색깔로 칠했는지, 볼터치는 자연스러운지, 바지는 깨끗한지, 눈은 동그랗게 떠졌는지, 몸매는 육중한지 가늘게 되어 있는지를 보지만, 여호와 하나님은 중심을 보신다는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영혼을 보신다는 것입니다!
즉, 잘하면 상을 받고, 잘못하면 벌을 받는 것이 없다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이미 멸망 받은 것이며, 하나님께 버림받은 것이라 이 말입니다. 선과 악의 보응에 대한 기본 인지가 그 속에 없고, 심은 대로 거둔다는 생각을 갖지 못하는 것 자체가 이미 영원한 형벌을 피할 수 없는 것이라 이 말입니다.
저는 이러한 사람들을, 사람으로 여기지도 않고, 사람으로 지칭하지도 않습니다.
개, 고양이, 소, 말, 돼지, 쥐, 짐승으로 여깁니다.
죄송합니다, 그러나 적절한 표현이기 때문에 이런 표현을 사용했습니다.
성경에서도 분명히, “너희 진주를 돼지 앞에, 개에게 던지지 말라!” 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이 무슨 뜻입니까? 이는, ‘돼지’에 해당하는 자들에겐 ‘진리’를 접할 기회조차 줄 필요가 없다는 뜻인 것입니다! ‘개’와 같은 자들에게는 ‘옳은 교훈’을 전달할 필요도 없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의 구원 계획 밖이요, 하나님의 관심 밖이라는 뜻입니다.
구약 시대를 생각해보시면 이해가 쉬울 텐데요, 이스라엘 백성들이 믿음으로 홍해를 건넜을 때, 하나님의 온갖 재앙의 역사와 큰 권능을 체험하고도 마음을 변개하여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뒤쫓아왔던 애굽군사들은 홍해를 건너보려 하나님을 시험한 것입니다. 그러다가 그만야 갈라진 홍해가 다시 닫히면서 그들은 물에 빠져 몰사하게 되었지요.
또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께 회개하기 위하여서 모여서 금식하며 기도할 때에 이방의 우상을 섬기던 민족이 이스라엘 백성을 쳐들어왔고, 이에 부르짖어 하나님께 기도하니, 하나님은 그들이 그들 스스로 혼란 속에 죽이고 죽도록 하셔서 이스라엘을 보호하셨지요.
구약의 역사 속엔, 하나님의 백성 주위에서 의미도 없이 죽어간 자들이 많은 것이지요. 하나님의 택하심 밖에 처하여 어떤 은총도, 은혜도, 관심도 받지 못하고 가치 없게 죽어간 예들이 수없이 많이 있는 것입니다. 그들의 멸망은 하나님의 뜻이었습니다.
이처럼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그의 의지로서 태초부터 택정하신 뜻대로 구원하시며 택하신 자들을 사랑하시지, 결코 멸망케 하시기로 작정하신 자들을 구원하시는 것은 아닌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택하신 하나님의 백성에게 관심과 애정을 갖고 계신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 은총은 택하심을 입은 자들에게 주시는 놀라운 사랑인 것입니다!
예수그리스도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십니다! 이것을 압니다! 얼마나 감사한 은혜입니까?
예수그리스도를 통하여서 진리를 알도록 하시는 은혜는 오직 하나님이 부르신 자들에게 주시는 하늘로서부터의 은혜라는 것입니다!
“참 빛 곧 세상에 와서 각 사람에게 비추는 빛이 있었나니
그가 세상에 계셨으며 세상은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되 세상이 그를 알지 못하였고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하지 아니하였으나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들이니라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요한복음 1:9-14 말씀
진리가 무엇입니까?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는 것입니다! 참으로 무엇을 어떻게 심든지, 알고 그랬든지 모르고 그랬든지, 알게 모르게 그랬든지, 사람은 자기가 심은 그대로 다 거두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업신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질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리라” 갈라디아서 6:7,8 말씀
야곱은 형 에서의 장자권을 팥죽 한그릇에 사서, 아버지를 속여 형의 축복 기도를 가로채 도망쳐나왔습니다. 삼촌 라반의 집에 살면서는 가축 가운데서 아롱진 것을 자기 것으로 삼겠다는 협의를 받아낸 후 가축들이 물을 마시는 시냇가에 칼로 얼룩무늬를 낸 나뭇가지들을 세워놓고 아롱진 것을 새끼베어 낳도록 했습니다.
야곱은 남자였지만 여성스럽고 온순한 성품을 갖고 있었고, 동시에 약삭빠르고 계산적이며 술수에 능했던 것입니다. 그는 형 에서에게 잘못 심었고, 삼촌 라반에게도 잘못 심었습니다.
어쩌면 성경에 기록되지 아니한 그의 행위에 대한 역사가 더 있을런지도 모르겠습니다.
그가 그토록 잘못심고 얍복 강가 직전에서 자기를 죽이려고 달려오는 형 에서의 군대에 대한 소식을 들었을 때 어떻게 하였습니까?
하나님의 천사를 붙들고 끝까지 늘어졌던 것입니다!
“나를 축복하지 아니하시면 놓을 수가 없습니다!”
“놓아라!”
“싫습니다! 나를 축복하시옵소서!”
“놓으라니까!”
“안됩니다! 나를 축복하지 아니하시면 한발짝도 물러서지 않겠습니다!”
그렇게 밤새도록 씨름하다가 결국 축복을 받지 않습니까?
“네 이름이 무엇이냐? 이제 네 이름을 이스라엘이라 하라 이는 네가 하나님과 겨루어 이기었음이라!” 할렐루야! 창세기에서 이 장면은 읽는 이에겐 참으로 감격적이고 환희가 있는 순간입니다!
야곱, 그는 분명히 잘못 심었습니다! 참으로, 사기꾼과도 같은 삶을 살았습니다.
그러나 그가 위기 앞에서, 지난날 잘못 심은 것에 대한 보응을 만나게 되었을 때에, 하나님께 의지하여서 끊임없이 간구하는 영적인 복을 추구한 것이 가장 중요한 해결점이 된 것입니다.
그는 형이 배고플 때를 예비하여서 팥죽을 끓여놓고서 장자의 축복권을 샀을 정도로 주도면밀하게까지 하나님의 영적인 복에 대한 관심이 있었던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의 천사와 씨름하여서 밤새도록 버틸만큼 포기할줄 모르는 집념으로 영적인 하나님의 축복을 간구하였던 것입니다! 참된 진리에 속한 아름다운 것의 가치를 알았고, 그것을 얻기 위하여서 몸부림치며 하나님께 구한 것입니다.
우리도 우리 자신의 삶의 선과 악과 축복과 재앙 앞에서 언제나 겸손하게 하나님의 영적인 축복을 바라보며 간구하고, 하나님과 겨루어 이기었다 인정하실만큼 포기치 않는 열정으로 영적인 축복을 얻어 누리는 축복된 사람들이 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