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원순씨, 아직 뚜껑은 끝까지 열어봐야겠지만 당선됐다는 가정하에 한가지 말해두겠습니다.
당신이 결코 좋아서 표를 준것이 아닙니다. 당신에게 표를 준 이유는 안철수라는 사람과 상대방이 나경원이었기 때문입니다. 오늘 아침 출근하기 전에 10분일찍 나와서 투표장에 들렀습니다.(망할 선관위가 투표장소를 이상한데 박아놔서 찾는데 시간 좀 걸렸고 덕분에 지각할 뻔 했습니다) 그리고 투표장에 들어서서 도장을 찍는 그 순간까지도 전 망설일 수 밖에 없었습니다.
나경원을 뽑을 것인가, 박원순을 뽑을 것인가.
정상적인 민주사회 국가에서라면 김정일 만세를 외쳐도 된다는 당신의 소신발언, 이해는 합니다. 하지만 납득할수는 없습니다. 우린 정상적인 민주사회 국가이지만, 김정일이라는 국가 최대의 적을 두고 있는 상황입니다. 전시상황이라면 즉결처형감으로도 손색이 없습니다. 적군의 적장을 응원하다뇨. 더군다나 우리는 정전이 아닌 휴전상태입니다. 정상적으로 군대를 다녀온 청년들이라면 기겁할만한 안보의식을 가진 당신을, 과연 차기 대선후보라고까지 불리는 서울시장자리에 앉혀도 될런지 몇 주동안 심각하게 고민했습니다.
솔직히, 도장 찍는 그 순간에 누군가가 마법을 부려서 박원순이라는 글자가 박영선이 됐으면 하고 기도까지 했습니다. 그런데 역시나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더군요.
당신을 뽑은 이유는, 당신이 잘나가서 아닙니다. 서문에 밝혔듯이 안철수가 있었기 때문에- 그리고 상대자가 나경원이었기 때문입니다. 만약 상대방이 원희룡이었다면 전 원희룡에게 한 표 던졌을 겁니다. 그나마 한나라당에서는 괜찮은 위인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요. (최고위원 되더니 많이 바뀌었습니다만, 아직까지는 개중에선 쓸만하다고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나경원이 당선됐을 경우를 몇가지 상상해봤습니다. 언론에서는 분명히 이렇게 떠들겠죠.
"박근혜 대세론 부활"
"서울 시장 선거 승리의 숨은 주역은 박근혜"
"박근혜 차기 대선 주자로 입지 확고히 굳혀"
이 꼬라지가 너무 보기 싫었습니다. 더불어 이런 기사도 날겁니다.
"안철수 거품론"
"여당의원들 일제히 안철수 비난, 교수직이나 열심히 해라"
"안철수 박근혜와 사실상 대결 패배"
이딴 기사가 날 것도 싫었습니다.
정말 두 눈 질끈 감았습니다. 정책적인 관점에서 본다면 박원순 당신의 정책은 소설입니다. 실현가능성이 뭐 하나 제대로 보이지도 않습니다. 그래서 당신에게 무엇인가를 해달라고 할 생각도 없습니다. 당신이 당선됐을 경우 제가 기대하는 의의는 두가지 입니다.
1) 기존 여당에게 젊은 표를 무서워하게 해서 제대로 된 정치를 하라는 의미입니다.
2) 안철수씨는 대선후보에 아마도 안 나오겠지만, 적어도 야당에서는 여당을 견제할 위치를 찾게 될 것입니다.
안철수씨는 아마도 대선후보에 나오지 않을거라 생각합니다. 서울시장도 등 떠밀려 나온 격이고, 기회가 보이지 바로 걷어차버렸습니다. 대선후보도 등떠밀려 나올 가능성이 없잖아 있겠지만 아마 같은 이유로 뻥 차버리지 않을까 싶습니다. 박원순씨, 당신은 야당에게 인물을 만들어낼 구심점만 만들면 됩니다. 적어도 안철수씨가 대선후보로 거론됨으로써 여당에게 경각심을 심어주고, 야당에게 새 인물을 찾을 여유를 만들어줬습니다. 당신의 의의는 여기까지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당신을 뽑은 이유는
나경원을 뽑아도 당신을 뽑아도 서울시 2년을 버릴 거라면, 차라리 대선을 보고 투표하자는 생각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투표를 하고 출근해서도, 퇴근해서도 내내 찝찝하고 뭔가 불쾌한 느낌이 가시지 않습니다.
박원순씨, 당신이 잘나서 당신에게 투표를 한거 절대 아닙니다. 이 점 알아두세요. 당신은 안철수 바람이 없었다면 고작 지지율 5%에 머물러야 했던 듣보잡 인물에 지나지 않습니다. 우연히 시대와 사람을 잘 만나 서울시장직까지 할 수 있을 기회를 얻었지만 여기에서 만족하십시오.
만약 대선후보로 나오겠다고 준비한다면 전 쌍수를 들고 반대할겁니다. 당신과 같이 어처구니없는 안보의식을 가진 사람에게 대한민국 대통령 자리를 넘겨줄 순 없습니다. 여기까지입니다. 서울시장이 당신에게는 상한선입니다. 더이상 넘을 생각 하지 마십시오.
개인적으로 서울시장이 되었을때 이 발언 하나만은 철회해줬으면 좋겠군요.
"서울 시장이 된다면 제게 주어진 권한을 최대한 활용해서 10.4선언에 준하도록 북한을 돕겠습니다."
당신은 서울시장이지 평양시장이 아닙니다. 서울시장은 서울시민을 위해서 일해야 하지 평양을 위해서 일하면 안됩니다.
아버지 세대가 당신보고 친북이 아닌 종북이라고 비난하는데에는 다 이유가 있습니다. 저도 당신은 친북보다 종북에 가깝다고 생각합니다.